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13
1212
플레이그가 퍼뜨리고 다녔던 온갖 종류의 바이러스들.
그 바이러스들이 잠복기를 지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자 마우레키온 제국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방역?
그런 걸 할 시기는 애초에 지났다고 보면 되었다.
게다가 자연적으로 발생한 바이러스가 퍼진 것도 아니고, 역병의 화신 플레이그가 의도적으로 뿌린 것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이었으니 방역이 될 리가 없었다.
방역이란 바이러스가 발생하거나 유행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서 하는 건데,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상황에서 뭘 하겠는가?
“폐하, 환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사옵니다.”
“사, 사태가 진정이 되지를 않사옵니다. 치료사들의 숫자가 부족하옵니다.”
“치사율이 너무 높사옵니다. 심한 경우 큰 마을 하나가 전염병으로 인해 완전히 전멸해버렸사옵니다.”
덕분에 슈트카르트 황제는 전국에서 올라온 전염병 창궐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이게 현실인가 의심이 든다.”
슈트카르트 황제는 그 보고들을 취합해서 듣고는,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해도 너무했다.
이미 각종 바이러스가 퍼질 대로 퍼져서,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다니….
그것도 특정 지역이 아닌 전국에 걸쳐서,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가지 전염병이 동시에 창궐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각종 바이러스를 살포한 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슈트카르트 황제는 대제국을 경영하는 군주이니만큼,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이건 의도적인 생화학 공격이 분명하다. 누굴까. 프로아 제국?’
하지만 슈트카르트 황제는 그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
프로아 제국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듯 비열한 공작을 펼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슈트카르트 황제가 생각하기에, 프로아 제국은 이런 수준 높은 생화학 공격을 할 능력이 없었다.
지크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긴 했지만, 프로아 제국의 생명공학이 그만큼 발달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고대던전 때문인가.’
그래서 슈트카르트 황제는 고대던전에서 빠져나온 무언가가 이 사태를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쪽이든 확인된 바 없었고,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그렇다면?
“본국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역병을 종식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 지금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염병 통제에 나서라.”
“예, 폐하.”
결국, 마우레키온 제국은 전염병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해야만 했다.
그 말은, 마우레키온 제국이 당분간은 프로아 제국을 압박하거나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계획이 계속 꼬인다는 건… 별로 좋은 징조가 아닌데.”
슈트카르트 황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세계 최강대국을 경영하는, 대제국의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을 느낀다?
물론 권력이라는 게 끝이 없는 블랙홀 같은 거라서, 아무리 가져도 만족이란 게 되지 않는 괴물이긴 했다.
하지만 이건 권력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천족들의 중간계 침공도 굳건히 버텨내었던 제국이 연이은 작전의 실패와 전염병 사태를 맞았다?
이건 개국 이래 최대의 위기라고 봐도 좋았다.
만약 이 시기를 잘 극복해낸다면 마우레키온 제국은 향후 500년은 더 번영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끝이었다.
몰락의 시작.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력을 보유한 시기임에도, 대제국의 영광에 서서히 균열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
같은 시각.
뇌진탕으로 기절했던 나이델베르크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기사들에 의해 자신의 저택으로 옮겨졌고, 곧 감금을 당했다.
이제는 제국의 대공이 아닌 한낱 노예 신분이었으니, 저택에서 감금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이델베르크는 깨어나자마자 슈트카르트 황제가 은혜를 베풀었단 걸 알고, 황궁이 있는 방향을 향해 1시간에 한 번씩 절을 했다.
사실 그건 충성심도 충성심이었지만, 저택을 지키는 기사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였다.
나이델베르크는 자신의 행동이 슈트카르트 황제의 귀에 들어갈 걸 뻔히 알고 있었으므로, 이렇듯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사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있어 나이델베르크란 언제든 죽일 수 있는 그런 존재에 불과했다.
물론 나이델베르크가 지난 몇 년 동안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대단한 인재임을 증명해 보인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우레키온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자랑하는 만큼, 인재 또한 무수히 많았다.
지금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나이델베르크 못지않은 능력을 가진, 재야의 현자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당장 나이델베르크만 해도 노년의 나이가 되기까지 말단 공무원이자 지방 귀족에 불과하기도 했고.
‘한 번만 더 밉보이면… 끝이다.’
나이델베르크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고뇌했다.
‘폐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만, 이건 그간의 내 공로에 대한 예의이다. 폐하께서는 나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신다. 한 번만 더 삐끗하면 나뿐만 아니라 내 일가친척까지 모두 죽는다.’
가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사표를 던질 수도 없었다.
노예 신분이 되기는 했지만, 죽이지 않았다는 건 만회할 마지막 기회가 남았단 뜻이었다.
‘잘해야 한다. 다음번에 주어지는 기회가 내 인생을 결정지을 것이다.’
나이델베르크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이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이델베르크가 고개를 돌려보니, 이건이 창가에 걸터앉은 채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대가 왜 여길….”
“못 올 곳이라도 되나?”
이건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린 거래한 사이 아니었어? 파트너를 보러 온 건데, 뭘 그렇게 놀라?”
“하지만 난 지금 가택 연금 상태다. 어떻게….”
“그게 나한테 통할 것 같아?”
이건이 웃었다.
오싹!
나이델베르크는 순간 이건의 얼굴이 악마처럼 보여서, 흠칫 떨었다.
그만큼 이건으로부터 풍겨져 나오는 아우라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내가 찾아왔단 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질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
“으음….”
“그나저나… 요즘 황제의 신뢰를 잃었다지?”
“…….”
“하긴. 벌써 두 번이나 작전에 실패했는데, 목이 안 달아난 게 신기하긴 하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
“이제 와 사표를 쓰고 고향으로 낙향할 수도 없고. 한 번 기회가 오긴 할 텐데, 그때도 별로 성과가 없으면 네 목이 달아나겠지. 네 일가친척까지도.”
“…….”
“벼랑 끝에 선 거 같은데, 내가 동아줄을 좀 내려줄까 해.”
“그게 무슨 말이오?”
“공을 세워서 슈트카르트 황제의 신뢰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지.”
“……?”
“그러니까 괜히 더 밉보이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말 안 해도 알아서 처신 잘하겠지만.”
“나를 도와주겠다는 거요?”
“정답.”
“어째서?”
“내 입장에선 새로운 인물이 오는 것보다, 익숙한 인물이 더 편하니까?”
“으음.”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꽤 합리적이고 영리하거든.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거지. 게다가 당신의 목이 날아간 후에 온 후임자가 말이 통하리라는 보장이 없잖아?”
“그건 그렇소만….”
“아, 그리고.”
이건이 덧붙였다.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
“……?”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일 거야.”
이건은 그렇게 말하고는 씩 웃었다.
‘위험하다.’
나이델베르크는 그런 이건의 웃음에서 본능적인 위험을 느꼈다.
왠지 이건의 제안이라는 게 악마의 속삭임이나 다름없는, 너무나도 달콤하고 유혹적이지만 끝내는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일 함정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한편, 프로아 제국의 수도 프로이센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때마침 프로아 제국의 개국기념일이라서, 축제는 엄청나게 성대했다.
황궁에서도 파티가 열렸다.
비록 호화롭고 사치스럽지는 않았지만, 황실 식구들과 대소신료들이 한데 모여서 맛있는 술과 음식을 즐기는 자리였다.
“기분 좋아, 우리 딸?”
“네! 아바마마!”
“귀엽기도 하지.”
지크는 연회장에서 베르단디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예뻐해 주고, 브륜힐트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부님, 받으시지요.”
“오냐.”
지크는 사부도 연회에 초대했고, 가장 좋은 술들을 종류별로 대접하며 제자로서의 도리를 다했다.
“아우님. 아주 좋겠네 그려.”
불카누스는 그런 사부가 매우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제자가 출세해 이런 좋은 자리에서 극진한 대접도 받고 말일세.”
“껄껄! 이 맛에 제자 키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껄껄껄!”
사부는 기분이 꽤 좋았는지, 평소의 그 까칠한 모습 대신에 껄껄 웃으며 즐거워했다.
사부는 이미 인과율의 법칙에서 벗어나 세상사에 초탈한 절대자.
한평생 무(武)의 수련에만 집중하다가 때를 놓쳐서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사부였다.
즉, 손주를 본 적이 없었음은 물론 자식조차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지크 일가(一家)와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치 자식들과 함께하는 할아버지가 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제자인 지크는 아들, 브륜힐트는 며느리, 그리고 베르단디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사부님. 만수무강하셔야 합니다.”
지크가 사부의 술잔에 연신 술을 따라주며, 알랑방귀를 뀌었다.
“제가 반드시 사부님을 뒤따라 무적을 이뤄보겠습니다.”
“오냐, 오냐.”
사부는 오늘만큼은 매우 기분이 좋아서, 지크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네 녀석이 무적의 힘을 손에 넣는 걸 보아야 마음 편히 승천할 수가 있을 것이다. 끌끌끌.”
“하하하!”
“저도 더 열심히 수련해서….”
그때였다.
퍼엉!
엄청난 굉음과 함께, 연회장이 뒤흔들렸다.
“……!”
“……!”
“……!”
난데없는 돌발 상황에 연회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얼어붙었다.
“폐하를 모셔라!”
“퇴로를 확보하라!”
주변에 있던 기사들은 경계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며, 지크를 포함한 주요 인물들을 대피시키려 했다.
흉흉한 세상이었다.
적들이 프로아 제국의 황실에 테러를 가했을지도 모르니, 다들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뭐지?!’
지크 역시 화들짝 놀라서 을 움켜쥐었다.
“별일 아니니라.”
그때, 사부가 말했다.
“그 드워프 녀석의 대장간에서 일어난 폭발이니, 크게 신경 쓸 것 없다.”
“아, 그렇습니까?”
“본좌가 언제 틀린 말 한 적이 있더냐?”
“하하하….”
“다들 걱정 말고 편히 즐기라 하여라. 본좌가 있는데 뭐가 걱정인 게냐?”
지크는 사부의 말을 듣고 경계심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생각해 보니, 테러가 벌어진다고 한들 사부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별일 아니니 다들 즐기세요. 사부님께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십니다.”
지크가 말하고.
“자자, 자리에 앉읍시다.”
“이보게! 시종들! 술 더 가져오게!”
“호호호! 깜짝 놀랐잖아요!”
연회에 참석했던 이들 모두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여보.”
지크는 브륜힐트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무슨 일이지? 혹시 다치신 건 아니겠지?’
지크는 크반트가 걱정되어 서둘러 대장간으로 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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