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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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템을 모아오는 것이니만큼, 퀘스트의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문제는 재료템의 가짓수와 그 수량이었다.
[이거면 돼!]비머리언 공방의 수석 대장장이 크반트에게 다음의 재료들을 가져다줄 것.
•진행률 : 16%
– 차원의 파편 조각 (21,812/25,000)
– 천잠사 (0/10)
– 블러드 모스의 날개 (0/2)
– 3kg 블랙 스틸 원석 (0/3)
– 타이탄의 힘줄 (0/30)
재료의 가짓수가 총 다섯 개.
그중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인 이 무려 2만 5,000개나 필요했다.
지난 레노마 왕국 차원의 균열 사태 때 21,812개를 주워놓지 않았다면 대단한 노가다가 됐을 게 분명한 퀘스트였다.
‘그때 주워놓길 잘했어. 2만 5,000개를 어느 세월이 다 모아? 5,000개면 몰라도.’
가장 노가다가 될 것이 분명한 재료템을 때마침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어떻소? 구해올 수 있겠소?”
“물론이죠.”
크반트의 물음에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림 :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지크는 퀘스트를 수락한 후 비머리언 공방을 나섰다.
“주인 놈아! 이제 우리 어디 가는 거냐? 뀨우!”
“일단은 프로아에 잠깐 들러서 정비 좀 하고 재료 구하러 가야지.”
“알겠다, 뀨!”
비머리언을 나선 지크는 햄찌와 함께 프로아로 향했다.
***
“…엥?”
프로아 왕성에 도착한 지크는 달라진 풍경에 놀랐다.
“뭐야. 왜 이렇게 개판이야.”
“무슨 일 있는 거냐? 왜 이리 개판이냐.”
지크와 햄찌가 ‘개판’이라고 말한 이유는, 왕성을 중심으로 수도 전체가 공사판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셨습니까, 전하.”
미켈레가 그런 지크를 맞이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나라 꼴이….”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간 겁니다.”
“대대적인 공사?”
“왕궁을 중심으로 수도 전체에 마정석을 이용한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설치하는 중입니다.”
“벌써?”
“딱히 기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도 아니고, 이번에 스톤 아일랜드와의 무역 협정으로 국고도 넉넉해졌습니다. 미룰 이유가 없어서 그냥 바로 진행했습니다. 저쪽 기술자들 말로는 두어 달이면 끝난답니다. 더군다나 마정석 재고도 충분하고요.”
‘코딱지’의 대명사인 약소국 주제에 마정석의 재고가 충분한 이유는, 미켈레가 3국 연합을 불평등조약으로 털어먹는 과정에서 마정석 광산마저도 통째로 집어삼켰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럼 잘됐네. 기대된다.”
지크는 스톤 아일랜드의 발전된 도시 모습을 떠올리며, 프로아가 어떻게 변할지를 기대했다.
‘그래. 차근차근 키워나가서 최소한 약소국 탈피는 좀 해보자. 동네북도 아니고 가는 데마다 개무시 당하니까 기분 나쁘잖아.’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켈레를 향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근데… 내 내탕금은?”
“예?”
“명색이 내가 왕인데… 내탕금이 있어야….”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전하의 내탕금은 따로 충분히 챙겨놓았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지크는 버는 족족 국가 발전에 투자만 할 수는 없었다.
현실의 풍족한 삶을 위한 돈도 필요했고, 캐릭터의 아이템을 맞출 돈도 필요했으며, 또 훗날 제네시스를 상대하게 되는 날이 오면 함께 싸워줄 게이머들을 고용할 돈도 필요했다.
‘어휴. 어떻게든 더 많이 벌어야겠구나.’
지크가 최근 내면에 잠재된 탐욕을 드러낸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평범한 게이머들에 비해 돈 들어갈 곳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눈에 불을 켜고 악착같이 돈을 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 그런데.”
지크가 미켈레에게 물었다.
“혹시 스톤 아일랜드에서 블랙 스틸 원석도 나오나?”
“나올 겁니다. 채굴량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스톤 아일랜드랑 통신 좀 연결해 줘. 블랙 스틸 원석이 몇 개 필요해서.”
“알겠습니다.”
미켈레가 통신병을 불러주었다.
– 전하! 이렇게 빨리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어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스크린 속 앙겔레르 통령이 지크를 반겨주었다.
“신경 써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죠. 에너지 공급 시스템 공사도 들어갔고요.”
– 잘됐네요! 금방 발전을 이루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혹시 블랙 스틸 원석 가지고 계세요? 있으면 좀 팔아 주셨으면 좋겠는데.”
– 블랙 스틸 원석요? 잠시만요. 확인해볼게요.
그로부터 약 1분 후.
– 대략 11톤 정도 보유하고 있는데, 얼마나 필요하세요?
“11톤요?!”
– 본국이 블랙 스틸이 꽤 많이 채굴되는 국가 중 하나거든요.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어… 그게….”
지크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3킬로그램짜리 세 개요.”
– 네? 3톤요?
“3킬로그램짜리… 세 개요….”
– 정녕 3킬로그램짜리 원석 세 개가 필요하시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그런데요? 막 톤 단위로는 필요 없으니까 딱 세 개만 팔아 주시면….”
– 지금 바로 보내 드릴게요.
“얼마죠?”
– 에이. 뭘 이런 걸로 전하께 돈을 받겠어요. 그냥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돈 많은 누님의 선물에 지크는 굳이 블랙 스틸을 비싸게 사거나 어렵게 구할 필요 없이, 공짜로 얻게 되었다.
‘빈부 격차 오지네.’
속으로 가난한 자의 눈물을 흘리며….
“전하! 스톤 아일랜드로부터 3킬로그램짜리 블랙 스틸 원석 세 개가 도착하였사옵니다!”
앙겔레르는 지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프로아 왕국과 스톤 아일랜드 간 설치된 워프 게이트를 이용, 블랙 스틸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4)3kg 블랙 스틸 원석 (3/3)
앙겔레르의 적선(?)으로 퀘스트의 4번째 재료를 획득한 지크는 햄찌를 데리고 워프 게이트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어디선가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와 지크는 화들짝 놀랐다.
“뭐, 뭡니까?”
지크가 자신을 보필하던 시종에게 물었다.
“예, 전하. 저 목소리는 이번에 전범으로 잡혀 온 자의 것이옵니다.”
“전범이요?”
“아둔야뎃 왕국 해군 장교 출신이라고 들었사옵니다.”
“아. 걔구나.”
지크는 저 비명의 주인공이 스텔라루멘 광산에 포격을 가했던 군함의 함장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노동전위대 대원들이 고문이라도 하고 있나 보군요.”
“예, 전하. 며칠째 죽이지도 않고 온갖 끔찍한 고문을 가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쯧쯧. 내 그럴 줄 알았지.”
지크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걸 확인하며, 혀를 찼다.
[죽여라. 나는 위대한 아둔야뎃 왕국의 장교로서, 목숨을 구걸할 생각이 없다.] [아니. 넌 구걸하게 될 거야.]언제는 목숨을 구걸할 생각이 없다더니,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게 완전히 코미디였다.
“차라리 혀를 깨물든가. 시끄럽게.”
“그러게 말이다. 혀 깨물 용기는 없는 모양이다. 뀨.”
지크가 시종을 돌아보았다.
“시끄러우니까 어디 으슥한 지하 감옥 같은 데 가서 고문하라고 해요.”
“예, 전하.”
“정 죽일 생각 없으면 적당히 괴롭히다 어디 탄광에라도 가둬 놓고 평생 강제 노역이나 시키든지 하라고 전해 주시고요.”
그러는 사이 어느새 지크와 햄찌는 프로아 왕국의 워프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어디로 갈 거냐! 뀨우!”
“글쎄.”
지크는 잠시 고민했다.
일단 블랙 스틸 원석을 구했으니 남은 재료템은 넷.
그중 차원의 파편 조각이야 언제 어디서든 가까운 차원의 균열 던전으로 가면 될 테니 굳이 행선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타이탄의 힘줄은 박센 산맥으로 가야 구할 수 있고….’
지크의 눈길이 퀘스트 창을 찬찬히 훑었다.
[블러드 모스]화이트 타운 근처 ‘노을 지는 숲’에 서식하는 초대형 나방.
매우 거대하며, 또한 강력한 개체이므로 상대하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천잠사]신비로운 누에에서 뽑아낸 실. 화이트 타운에 자리한 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그 값이 매우 비싸다.
지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개였다.
첫째, 박센 산맥으로 가 거인족인 타이탄들을 사냥하고 ‘타이탄의 힘줄’을 획득하는 것.
둘째, 화이트 타운으로 가 ‘블러드 모스’와 ‘천잠사’를 획득하는 것.
두 곳 모두 들러야 했으므로, 지크는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만 정하면 되었다.
‘역시 뭐든 한 번에 해치우는 게 좋겠지? 그래, 화이트 타운으로 가자.’
결정을 내린 지크가 워프 게이트를 발동시켰다.
***
화이트 타운에 도착한 지크는 곧장 티에리 상단을 찾아 나섰다.
티에리 상단은 예로부터 비단, 장신구, 가죽 소품, 신발, 옷 등등을 주로 제작해 유통하기로 유명했는데 그 값이 비싸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쉽게 말해 현실의 명품 패션하우스가 판타지 세계 속에 구현된 형태라고나 할까?
물론 상단답게 패션에 관련된 것뿐 아니라 다양한 상업 활동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우와. 건물이 그냥 예술품이네.”
“그러게 말이다! 뀨!”
티에리 상단에 도착한 지크는 곧바로 담당자를 만나 면담을 신청하고, 천잠사를 구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실례지만… 신분을 밝혀 주시겠습니까? 천잠사는 함부로 판매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지라….”
“아, 예. 저는 프로아 왕국에서….”
“그 약소국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순간 지크는 담당자의 ‘그 약소국’이란 표현에 욱할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점잖게 말했다.
“예. 제가 ‘그 약소국’의 왕입니다. 정식으로 소개하죠. ‘그 약소국’의 왕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합니다.”
“헉?”
담당자가 화들짝 놀랐다.
“죄, 죄송합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 제가 실언을….”
“아뇨. 사실인데요, 뭘. 제가 다스리는 나라가 코, 딱, 지, 만, 한, 약, 소, 국인 거 모르는 사람도 있었나요?”
“사, 상단의 가주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담당자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안녕하십니까.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 저는 티에리 상단의 현 가주를 맡고 있는 구찌오 드 티에리라고 합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크프리트 전하. 저희 직원에게 전해 듣기로 전하께서 천잠사를 구입하고 싶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직원이 그 약소국의 왕이란 소린 안 하던가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햄찌는 그런 지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주인 놈 뒤끝 있는 거 확실하다.’
햄찌가 지켜본 바로는, 주인 놈이란 인간은 의외로 속이 시커멓고 은근히 악랄한 면이 있었으며 때때로 매우 약은 주제에 뒤끝도 심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현재 천잠사는 한정 판매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구찌오가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한정 판매요?”
“생산량에 비해서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은 바람에….”
“역시 높은 사회적 지위나 재력 같은 게 필요한 겁니까?”
지크가 선수를 쳤지만, 애석하게도 이번엔 헛다리였다.
“지금 말씀하신 조건은 3대 공방의 VIP 고객의 자격으로 보입니다만, 저희 상단은 아닙니다. 하하.”
“그럼요?”
“천잠사를 구매하시길 원하신다면… 웨펀 아카데미에서 최소 3인 이상의 마에스트로를 이겨서 구매 조건을 충족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지크는 구찌오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니. 천잠사 파는 거랑 마에스트로인지 뭔지 하는 놈들 이기고 오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래서 지크는 구찌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매 조건이 어거지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