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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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강 강화권?”
메르세데스 공방의 수석 대장장이이자 고성능 아티팩트 전담 부서인 디비전의 책임자이기도 한 빌헬름 메이바흐가 눈을 치켜떴다.
큰 키에 올백으로 넘긴 머리, 잘 정돈된 턱수염, 그리고 완벽하게 차려입은 정장까지.
빌헬름은 대장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최고위 귀족이라고 하는 게 훨씬 어울리는 중년의 신사였다.
“예.”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700년 전에 본 공방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을 때 발급했던 그 강화권을 말하는 건가? 그것도 12강 강화권을?”
“그렇습니다.”
“맙소사.”
빌헬름이 피곤하다는 듯 안면을 감쌌다.
“아직도 그 물건이 남아 있었다니… 12강 강화권이라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겠군.”
빌헬름이 그렇게 탄식한 이유는, 강화라는 게 그렇게 쉬운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본래 강화는 100퍼센트의 확률을 보장하기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고, 숙련된 대장장이라고 할지라도 까딱 실수했다가는 무기가 파괴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각 공방은 지점 앞에 사람과 똑같은 강화 확률을 가진 기계 장치인 ‘강화기’를 설치해 놓았다.
왜?
강화에 실패해 무기가 파괴당한 이들이 종종 이성을 잃고 행패를 부리거나, 심지어 대장장이를 살해하는 일이 흔했으니까.
대장장이가 직접 하든 강화기를 돌리든 강화 성공률이 극히 낮은 건 매한가지였으므로, 굳이 화풀이 대상을 대장장이로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강화를, 그것도 무려 12강을 100퍼센트 보장한다는 것은 공방의 입장에서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본 공방을 설립한 선조들의 약속이니. 쿠폰을 가져온 고객님께 잠시 기다리라고 전하게.”
“예, 수석 대장장이님.”
직원이 빌헬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와~. 내부 인테리어도 넘사벽이네. 비머리언이랑 아우토니카도 엄청나게 호화롭던데 여기에 비하면 완전 구멍가게잖아?’
지크는 메르세데스 공방의 초고성능 아티팩트 제조 부서인 을 둘러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안녕하십니까. 저는 수석 대장장이인 빌헬름 메이바흐라고 합니다.”
“아, 예. 지크프리트입니다.”
지크가 빌헬름의 손을 맞잡았다.
“본 공방에서 700년 전에 발급했던 12강 강화 쿠폰을 가지고 오셨다고요?”
“예.”
“강화하고자 하시는 무기는 알아보셨습니까?”
“아직요. 지금부터 봐야죠.”
“흠.”
빌헬름이 자신의 멋진 턱수염을 한 번 쓰다듬고는 지크에게 카탈로그를 보여주었다.
슥, 스윽.
지크의 손길이 카탈로그를 빠르게 넘기다가 멈췄다.
‘유니크는 믿고 거르고… 12강 강화권을 쓰는데 유니크를 강화할 순 없지… 전설… 전설도 좀 애매해… 12강이야… 12강… 여기서 고를 수 있는 것 중에 제일 좋은 걸로….’
하지만 전설보다 상위 등급 중 하나인 은 특수한 환경에서만 획득할 수 있는, 그러니까 제작이 불가능한 아이템이었다.
최고위급인 세계 등급이야 메르세데스 공방 전체를 털어서도 제작이 불가능했으니 역시나 제외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오직 하나.
‘신화 등급… 아예 없진 않네? 보자… 둔기가 어디 있나… 둔기가….’
카탈로그를 훑어보던 지크는 신화 등급의 둔기 중에 유일하게 제작이 가능한 딱 하나의 아이템을 찾아냈다.
[가이아의 주먹]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힘이 깃든 철퇴.
그 파괴력은 가히 재앙에 가까울 정도이다.
•등급 : 신화
•속성 : 無
•레벨 제한 : 210
•공격력 : 4,000
•내구도 : 100 / 100
•추가 능력치 :
– 근력 +500
가이아의 주먹이란 이름의 철퇴는 순식간에 지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공격력이 어지간한 250레벨 무기보다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근력이 무려 500이나 붙어 있었기에, 딱히 다른 추가 능력치가 없이도 아이템의 매력이 충분히 돋보이기도 했다.
물리 공격형 폭딜러에게는 이만한 물건이 없을 지경…
게다가 공격력이 워낙에 높아 지크가 250레벨을 훌쩍 넘겨도 충분히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거기다 12번의 강화를 거칠 테니, 그 강력함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걸로 하죠.”
“가이아의… 주먹 말씀이십니까?”
“네.”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죠? 여기 카탈로그에는 시가라고 적혀 있네요?”
“음. 그 아티팩트의 가격은….”
빌헬름이 가이아의 주먹 아이템의 가격을 말해주었다.
“…입니다.”
“네?”
“말씀드렸습니다. 그 아티팩트의 가격은….”
“자, 잠깐만요.”
지크는 순간 눈앞을 어지럽히는 현기증에 그만 뒷목을 잡았다.
“주, 주인 놈아! 왜 그러냐!”
“갑자기 뒷골이, 확….”
“정신 차려라! 그러다 채형석인가 뭔가 하는 놈처럼 된다!”
“정신줄, 놓지 말자.”
지크는 정말로 채형석처럼 될 뻔했다.
‘아니 무슨 놈의 무기 하나가 천잠사 30배가 넘어!!!’
천잠사를 구매할 때도 그랬지만, 이 가이아의 주먹이란 철퇴의 가격은 억! 소리가 나도록 비쌌다.
여태 지크가 주워 먹었던 그 많은 랜덤 드랍 아이템의 1/3을 쏟아부어야 할 만큼 말이다.
“할인은….”
“저희 공방에는 할인 제도가 없습니다. 그게 VVIP고객님이시라 할지라도.”
“재료 안 부족하세요? 부족한 게 있으면 제가 구해올 테니 어떻게 임무라도 좀 주시면….”
지크는 너무나도 비싼 아이템의 가격에 몸으로 때워보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죄송합니다. 이미 모든 재료는 보유하고 있습니다.”
“…….”
“아, 물론 할부 구매를 하실 수도 있긴 합니다.”
“하, 할부요?!”
“이자가 연간 28퍼센트 정도 붙긴 하지만 이용하시는 고객님이 꽤 되십니다.”
“그건 사채잖아요.”
지크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냥 비머리언이나 아우토니카로 갈까?’
하지만 메르세데스 공방의 강화권을 다른 공방의 아티팩트에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건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였다.
‘아냐. 조금만 더 긁어 보자. 이대로 그 돈을 다 내고 사면 건 진짜 미친 짓이야.’
지크는 빌헬름을 조금 더 구슬려 보기로 했다.
언제까지?
퀘스트가 나올 때까지.
***
“빌헬름 님.”
“예, 고객님.”
“제가 이 무기를 좀 더 저렴한 값에 손에 넣을 방법은 없을까요?”
“제작이라면, 단언컨대 없습니다.”
빌헬름이 대답했다.
“음?”
지크는 말 속에 숨은 뜻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 제작이 아니면 방법이 있다는 건가요?”
“예리하시군요. 예, 있습니다.”
“뭡니까?”
“대륙 어딘가에 있을 완성품을 구하시면 됩니다.”
“완성품을요?”
“사실 그 카탈로그에 있는 제품은 진짜 가이아의 주먹을 매우 높은 퀄리티로 모방한 것입니다.”
“그럼 진짜 가이아의 주먹은 어디서 구할 수 있죠?”
“제가 알기로 진짜 가이아의 주먹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모시는 신전에 있는 걸로 알지만….”
“알지만?”
“아시다시피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모시는 신전이 3년 전에 차원의 균열에 휘말리는 바람에 반쯤 시공간이 일그러져서….”
그 순간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신화 속 무기를 찾아서]지금은 차원의 균열에 휘말려버린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신전을 조사하고 아이템에 대한 행방을 수소문할 것.
•보상 : 없음
•진행률 : 0%
역시나 퀘스트가 떠올랐다.
‘됐다!’
지크는 쾌재를 불렀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지긋지긋한 연계 퀘스트가 줄줄이 이어질 것이기에 짜증부터 났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몸으로 때우고 말지.’
지크는 그 금액을 아낄 수 있다면 구르고, 구르고, 또 구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한번 구해 보죠.”
“으음?”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크는 빌헬름에게 고맙단 인사를 하고는 메르세데스 공방을 나서 한때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모시는 신전으로 향했다.
***
규모가 어지간한 왕국의 왕궁만큼이나 거대한 가이아의 신전은, 차원의 균열에 휘말려 시공간이 일그러지고 뒤틀린 상태였다.
“이건 심한데.”
지크가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면 꼬여도 단단히 꼬인 거 아닌가?”
“그렇다! 뀨! 딱 봐도 위험한 곳이다!”
햄찌 역시 그런 지크의 의견에 동의했다.
“모험가이십니까?”
그때, 차원의 균열 앞을 지키던 장교가 지크를 향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예, 그렇습니다.”
“혹시 이 차원의 균열에 입장하실 생각이시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왜죠?”
“이 차원의 균열은 단일 차원이 아니라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무려 17개의 차원이 뒤섞인 다차원 균열입니다. 잘못 들어가셨다간 비명횡ㅅ….”
하지만 장교는 말을 채 끝마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지크와 햄찌가 이미 차원의 균열 안으로 진입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죽으려면 뭔 짓을 못 해….”
장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역시….”
“앗! 깜짝이야!”
장교가 화들짝 놀랐다.
‘뭐야? 이 인간?!’
웬 미남자가 마치 유령처럼 나타나 지크를 따라 차원의 균열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랭구아르.
팬텀싱어로 전직한 후 그의 존재감은 이제 유령 그 자체라고 해도 좋았다.
***
[알림 : 당신의 캐릭터가 시공간의 균열에 휘말렸습니다!] [알림 : 여러 개의 차원 중 하나에 무작위로 진입합니다.] [알림 : 에 입장하셨습니다!]가이아의 주먹에 대한 단서를 찾아온 지크는 악몽의 도시란 곳에 입장하게 되었다.
“여긴 뭐 하는 데지.”
“으스스하다! 주인 놈아!”
햄찌가 주변을 둘러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악몽의 도시는 폐허가 된 도시에 자욱한 안개가 쫙 깔린 던전이었다.
마치 당장에라도 유령이 튀어나올 것처럼 말이다.
고오오…!!!
게다가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마저 으스스하기 짝이 없어서, 좀비나 레이스 같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잔뜩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일단 무기에 명속성을 좀 두르고.”
지크가 비머리언 공방에 산 철퇴에 명속성 에너지를 주입했다.
딱 봐도 언데드 몬스터가 등장할 것 같았기에, 그에 대비해 카운터를 치려는 것이다.
“뀨우?”
그때, 햄찌가 귀를 쫑긋거렸다.
“주인 놈아.”
“응?”
“저 앞에서 누가 막 소리 지르면서 뛰어오고 있다.”
“그래? 몇인데?”
“하나다.”
햄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랭구아르가 끼어들었다.
“소리가 아니라 비명을 지르는 것 같습니다.”
“아오! 깜짝이야!”
지크가 화들짝 놀랐다.
“저기요. 사관님.”
“예?”
“제발 있는 척 좀 해주세요. 깜짝깜짝 놀라잖아요.”
“죄, 죄송합니다.”
“그러다 진짜 유령 되시는 거 아닙니까? 점점 더 존재감이 없어지시네.”
“이게 제가 의도한 게 아니라… 이 힘이 저를 자꾸만 더 있는 듯 없는 듯 만들어서.”
그랭구아르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러는 동안 지크는 생각했다.
‘얘네는 도대체 얼마나 예민한 거지? 내 감각도 예민한데 이것들은 더해요, 아주.’
사부로부터 육체 개조를 당한 후 게이머 중에서는 상위권의 감각을 가졌다고 생각했건만, 축생(?)과 절대 음감의 소유자보다 잘 들을 순 없는 모양이었다.
“아악!”
그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웬 게이머 하나가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지크 일행을 스쳐 지나갔다.
“저기요! 잠깐만요!”
지크가 그를 불러 보았지만, 그 게이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비명을 지르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뭐야? 왜 저래?”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때.
“큭큭. 이 버러지 같은 새끼. 이제 좀 주제 파악이란 게 되냐?”
순간 지크는 등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홱 돌렸다.
씨익-
채형석.
그가 경멸과 비웃음이 정확히 반씩 섞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채형석?’
지크는 제 눈을 의심했다.
채형석은 급성 뇌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후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게임을 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런 의구심보다 앞선 건 다름 아닌 두려움이었다.
후들후들!!!
지크의 두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주, 주인 놈아 왜 그러냐!”
“전하!”
햄찌와 그랭구아르가 물었지만, 지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크는 이미 반쯤은 겁에 질린 채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