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29
028
다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비어만 영지로 진격하는 고르고의 군대.
그런 고르고의 군대를 뒤쫓는 지크의 별동대.
공수가 교대되어 고르고의 군대가 쫓기는 입장이었고, 지크의 별동대가 쫓는 입장이었다.
“성가신 인간들….”
어느새 황금색 안대를 찬 고르고가 증오에 찬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네놈들의 친구, 가족, 자식들의 살점을 뜯고 피를 마실 것이야… 키힛!”
지크의 생각대로, 정신을 차린 고르고는 별동대를 쫓기보다는 비어만 영지로 쳐들어가는 편이 낫다는 걸 깨달은 뒤였다.
만약 별동대를 잡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잡아 죽이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진격이 쉽지만은 않았다.
쒜에에엑, 쒜에엑!
인간들이 날린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
털썩, 털썩!
그럴 때마다 그의 병사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캬악! 인간들의 본거지를 점령하는 게 먼저다! 동요하지 말자! 키힛!”
고르고는 인간 기병들이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우직하게 진격을 계속했다.
***
몇 시간 뒤.
“저, 저기! 저기 온다!”
“옵니다!”
“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망루에 올라 경계 근무를 서던 비어만 영지의 병사들이 전방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모두!”
블리히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어 소리쳤다.
“전투, 준비이이이이이이!!”
“전투, 준비!!”
비어만 영지의 병사들이 블리히의 외침에 따라 복명복창을 실시하며 각자의 무기를 움켜쥐었다.
‘다행히도 준비는 끝마쳤다. 지크가 시간을 잘 벌어 주었어. 이제는 전면전이다.’
블리히는 내심 지크에게 감사하며, 전의를 가다듬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황.
남은 건 전투뿐이었다.
비어만 영지의 사활을 건 결전 말이다.
“가까워져 옵니다! 1킬로미터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망원경을 든 병사가 소리쳤다.
“800미터! 600미터! 500미터! 300미터! 가깝습니다! 200미터! 100미터!”
그때부터는 굳이 소리쳐 거리를 외칠 필요가 없었다.
– 캬아아악!
– 키힛, 키힛!
– 키키!
고블린 병사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비어만 영지의 코앞까지 들이닥친 상태였다.
“사격, 준비!”
블리히가 소리쳤다.
“준비!”
활을 든 궁수들이 복명복창했다.
“셋, 둘, 하나! 쏴!”
“쏴!”
궁수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놓았다.
쏴아아아아!
화살 비가 내렸다.
전투의 시작이었다.
***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처음엔 비어만 영지군이 화살을 통한 원거리 공격으로 이득을 보는 듯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잠깐에 불과했다.
비어만 영지에는 딱히 성벽이랄 게 없었다.
고작해야 4미터 남짓한 돌담이 전부였다.
때문에, 고블린 병사들이 화살 비를 뚫고 비어만 영지의 성벽 아닌 성벽을 오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으악!”
“사, 살려 줘어어어어!!”
“야 이 개 같은 새끼들아!!”
돌담 위에서 치열한 백병전이 펼쳐졌다.
“기름, 기름을 부어라!”
블리히가 명령했다.
촤아악!
병사들이 나무로 된 통에 든 기름을 고블린 병사들을 향해 끼얹었다.
“불, 불을 붙여라!”
기름을 부었으니 불을 붙이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었다.
– 캬아아아아아아아악!!
– 크으으윽!!
– 캬악, 캬아악!!
불붙은 고블린 병사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돌담에서 굴러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캬악! 캬아악!”
날카로운 낫을 움켜쥔 고르고가 가마를 짊어진 자신의 병사들을 향해 고블린의 언어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가마를 짊어진 고블린들이 비어만 영지의 입구를 향해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쿠우웅!!
고르고의 가마가 나무로 이루어진 비어만 영지의 성문을 들이받았다.
고르고의 가마는 단순히 탈 것이 아닌 일종의 충차(공성전에 쓰이는 공성 병기) 역할도 수행했던 것이다.
쿵, 쿠웅, 쿠웅!!
고르고의 가마는 쉬지 않고 비어만 영지의 성문을 들이받았다.
“막아, 막아라!”
“화살을 쏴!”
“기름도 퍼부어!!”
비어만 영지의 병사들이 고르고의 가마를 저지하려 애썼지만, 부질없는 노력이었다.
왜냐하면, 가마에 실린 운동 에너지가 워낙에 커서 성문이 금세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쿵!
고르고의 가마가 다시금 성문을 들이받았을 때.
우지끈!
나무로 된 성문이 마치 썩은 고목나무처럼 무너져 내렸다.
“캬아아아아악!!”
그러자 고르고가 자신의 병사들을 향해 진격을 명령했다.
우르르!
고블린 병사들이 성난 파도처럼 비어만 영지 안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게 노림수였다.
몇 미터쯤 갔을까?
고르고의 고블린 병사들이 비어만 영지의 성문을 지나쳐 약 30미터 정도를 전진했을 무렵.
쩍, 쩌어어억!
난데없이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 키힛?
– ……?
– 키이이익?
고블린 병사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르던 바로 그 순간!
“당겨!”
블리히의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비어만 영지의 병사들이 땅속으로 연결된 밧줄을 당겼다.
그러자 땅바닥이 진짜로 푹 꺼졌다.
우당탕탕탕!!
약 100여 마리에 달하는 고블린 병사들이 구덩이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기름, 기름을 부어라! 불을 붙여라!”
“기름 부어! 불붙여!”
비어만 영지의 병사들이 함정에 빠진 고블린 병사들을 향해 기름을 끼얹고, 횃불을 내던졌다.
화륵, 화르르륵!!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고블린 병사들의 살점이 빠르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고블린은 인간이 아닌 몬스터.
단순히 몸에 불이 붙는 것만으로 당장 전투력을 상실하지는 않는 것이다.
마무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마무리는….
“갑니다!”
지크의 몫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어느새 영지의 다른 관문을 통해 우회해 복귀한 지크가 빠른 속도로 구덩이를 향해 내달려오고 있었다.
지크의 눈에 비친 불붙은 고블린 병사들은, 마치….
‘꿀이다.’
잘 차려진 식탁처럼 보였다.
실제로 잘 차려진 식탁이 맞았다.
[고블린 병사]•생명력 ■■■□□□□□□□
[고블린 병사]•생명력 ■■■■■□□□□□
[고블린 병사]•생명력 ■□□□□□□□□□
불붙은 고블린 병사들의 생명력 대부분이 50퍼센트 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인지상정!
우웅!
지크가 구덩이를 중심으로 장판을 전개했다.
방어력을 하락시키는 .
그리고 매초당 도트 데미지를 선사하는 .
안 그래도 통구이가 되어 가는 고블린 병사들에게 지크의 등장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빡, 빠악, 빡!
지크가 구덩이를 기어 올라오려는 고블린 병사들의 머리통에 쇠몽둥이질을 시전했다.
[고블린 병사를 처치해 경험치가 650 올랐습니다!] [고블린 병사를 처치해 경험치가 650 올랐습니다!] [고블린 병사를 처치해 경험치가 650 올랐습니다!]경험치가 올랐다.
[고블린 병사를 처치해 경험치가 650 올랐습니다!] [고블린 병사를 처치해 경험치가 650 올랐습니다!] [고블린 병사를 처치해 경험치가 650 올랐습니다!]쭉쭉, 아주 미친 듯이 올랐다.
덕분에 잘 차려진 밥상을 먹어 치운 지크는 순식간에 2레벨을 올릴 수가 있었다.
‘아, 조금만 더 먹었으면.’
문제는 30레벨 스킬을 찍기에 딱 1렙이 모자라다는 것.
지난 이틀간 나름 폭렙을 이루었건만, 고작 1레벨이 부족해 30레벨 스킬을 배우지 못한다는 건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었다.
‘아직 1렙이 부족한데….’
지크가 못내 아쉬움을 금치 못하던 때.
“가아아암히…!!”
분노한 고르고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가마 위에서 뛰어내렸다.
“이 건방진 인간들 같으니! 캬악! 감히 과인을 능멸해? 과인이 이 손으로 직접 네놈들을 죽여 버릴 것이다! 키힛!”
그러자 고르고의 주변으로 그의 친위대 격인 일곱 마리의 알비노 고블린들이 나타나 인의 장막, 아니 고블린의 장막을 쳤다.
“아.”
지크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렸다.
고르고의 등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보스전!
비어만 영지의 운명을 건 최후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어떻게 하지?’
지크는 고민했다.
‘지금 싸우면 무조건 져. 30렙을 찍어야 해.’
고르고는 지크가 30레벨을 찍는다고 해도 무려 20레벨이 높은 강자였다.
애매하게 29레벨에 덤볐다간 전투가 시작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드러누울 게 뻔했다.
“이보게, 지크.”
그때, 블리히가 지크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비어만 영지의 근위대를 대동한 채로….
“표정이 좋지 않군. 혹시… 아직 원하던 성장을 이룩하지 못한 건가?”
“조금… 모자랍니다.”
지크가 대답했다.
“다녀오게.”
“……!”
“저기 자네 성장의 디딤돌들이 있지 않은가?”
블리히가 성문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직 살아남은 고블린 병사들이 비어만 영지의 병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가서 저놈들을 정리하게. 여기는 우리가 맡지. 저 정도면 자네가 가진 그 초월의 룬을 활성화시키기에 충분하겠지?”
“하지만…!”
지크는 쉽사리 그러겠노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블리히는 고작 22레벨에 불과한, 사실상 기사라 부르기도 민망한 실력을 가진 약자였기 때문이다.
약 20여 명에 달하는 비어만 영지의 근위대 역시도 20레벨을 넘는 사람이 없었다.
“괜찮아.”
블리히가 손사래 쳤다.
“나도 내가 약한 걸 안다네. 하지만 이런 나도 기사라네. 비록 작위는 없지만, 정식으로 기사 서품을 받은 기사 말일세. 기사로서 아군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가 있어.”
“블리히 경….”
“가게.”
블리히가 지크를 재촉했다.
“얼른 가서 자네가 원하는 성장을 이룩하게. 그리고 우리들 곁으로 최대한 빨리 돌아오게나.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결국, 지크는 블리히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블리히 경. 당신은 진짜 기사입니다.’
블리히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하면서도 지크가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이 중년 기사에게서 기사도 정신이 강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지크가 고르고를 등졌다.
“어서 가게.”
“금방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무탈하시기를.”
그렇게 말한 지크가 고블린 병사들을 향해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빨리 오게. 우리 다 죽기 전에.”
블리히가 그런 지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희게 웃었다.
“고블린 로드.”
그리고 다가오는 고르고와 그 친위대인 알비노 고블린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여기 이곳, 비어만 영지군의 총사령관이자 근위대장인 블리히다. 내가 널 막을 것이다, 고블린 로드여.”
“키힛!”
고르고가 그런 블리히를 비웃었다.
“나약한 인간이 꿈도 크구나! 킥킥!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과인의 앞에 무릎 꿇으라! 그렇게 하면, 네놈만은 특별히 살려주도록 하마! 과인은 관대하도다!”
“어딜 감히 그 잡스러운 혓바닥을 놀리는가!”
블리히가 고르고를 향해 호통을 내질렀다.
“비어만 근위대,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블리히가 검을 움켜쥐고 소리치자 비어만 근위대원들 역시 각자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 복명복창했다.
“가자! 저 사악한 몬스터에게 비어만 근위대의 무서움을 보여주자!”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블리히와 비어만 근위대원들이 고르고와 알비노 고블린들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