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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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정말로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지크는 미켈레가 경멸 어린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자 당혹스러웠다.
‘뭐지? 왜 날 벌레 보듯 보는 거야? 평소에 얘가 날 좀 무시하긴 해도 이 정도는 아닌데?’
미켈레가 자신을 못 미더워하는 것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나 미켈레가 지크를 경멸한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일까?
저 눈빛은.
“뭐, 뭐야.”
지크가 미켈레에게 물었다.
“나 뭐 잘못한 거 있어? 그런 눈빛은 좀 당황스러운데?”
“실망입니다.”
“시, 실망했다고?”
“예.”
“왜???”
“시치미 떼지 마시죠.”
미켈레가 더는 듣기 싫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물론 전하께는 후궁을 들이실 권한이 있으시지요. 여러 명의 여인을 아내로 두는 건 제왕의 당연한 권리이니까요.”
“뭔 소릴 하는 거야….”
“하지만 그 당연한 권리도 시기적으로 때가 있는 법 아닙니까? 전하.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합니다. 어떻게 왕비마마께서 그렇게 되신 동안에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도대체 뭔 소릴 하는 거지? 야. 자세히 좀 설명….”
그때였다.
“형님.”
승구가 지크에게 슬쩍 다가와 속삭였다.
“으응?”
“빨리 형수님께 가보십시오. 진짜로 극대노하신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그 왜 있잖습니까. 아마조네스 부족의 부족장 안티오페요. 그 여자가 대정글의 특산물을 잔뜩 가지고 전하를 뵈러 왔었습니다.”
그 순간.
쿵!
지크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에 선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 안티오페가 왔었다고?”
“예. 대정글 특산물을 잔뜩 가지고 조공을 바치고 갔습니다.”
“크, 크흠!”
지크는 그제야 왜 미켈레가 자신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는지를 깨달았다.
사실 지크 본인은 떳떳했다.
브륜힐트의 치료제인 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 뭔가 뒤가 구린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안티오페와 알몸으로 잠시 누워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크가 쓰러졌던 사이에 벌어진 해프닝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거 오해할 수도 있겠는데?’
지크는 자초지종을 모르는 이들이 안티오페의 얘기만 단편적으로 듣는다면, 자신을 파렴치한으로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내가 몸져누운 사이 다른 여자와 그렇고 그런 관계를 맺은,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호색한 말이다.
“어….”
지크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냥 조공만 바치고 돌아간 거지? 그렇지? 딱히 뭐 공식 석상에서….”
“형수님이랑 차도 한 잔 드셨습니다.”
“뭐?!”
지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차, 차를 마셨다고?”
“예.”
“…….”
“아무래도 X된 거 같습니다. 그러게 왜 그러셨습니까. 저한테는 그런 말씀도 안 해주시고. 뒤에서 몰래 즐기시… 혀, 형님?!”
승구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쌔앵-!
자신이 X됐단 사실을 깨달은 지크가 왕궁 안쪽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지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프로아 왕실의 시종으로 위장한 칼라일은 오늘도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어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만독불침이라니. 엘프라서 그런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엘프라도 그 많은 독극물을 먹고 무사할 수는 없어. 도대체가 어떻게 된 일이지? 으득!”
칼라일은 지난 며칠 동안 거의 40여 종에 이르는 맹독을 브륜힐트의 간식과 음식에 탔다.
그런데 이 먹성 좋은 엘프 왕비는 칼라일이 탄 맹독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오히려 칼라일이 가져다주는 음식의 풍미가 뭔가 특별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기까지 했다.
부들부들…!!!
덕분에 칼라일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왕궁에서 키우는 토끼에게 실험해보았음에도 전혀 이상 없던 맹독들이 씨알도 먹히지 않으니 그저 황당할 따름.
“이런 빌어먹을. 대놓고 암살을 할 수도 없… 끄아아악!”
그때였다.
콰앙!
칼라일은 엄청난 운동 에너지에 치여 그만 수십 미터를 날아가 분수대에 또다시 처박히고 말았다.
풍덩!
투명한 물보라가 튀어 오르고.
“으아아악!”
칼라일은 상체의 뼈 절반이 부러져버린 듯한 충격에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다.
“어, 어떤 새끼야!”
“아! 미안합니다!”
“저, 전하?!”
칼라일은 제 눈을 의심했다.
철천지원수.
며칠 전 용무가 있어 왕국을 떠났던 지크가 몹시도 미안하단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아이고! 많이 다치신 것 같네요!”
“아, 아닙니다! 크윽!”
“진짜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바빠서 그런데. 혹시 병동까지 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가능은… 크윽!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빨리 병동으로 가보세요. 모셔다드리고 싶은데, 제가 지금 좀 바쁘거든요.”
“망극…하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치료비 겸 위로금입니다. 카일 시종님이라고 하셨죠? 정말 죄송합니다.”
지크가 칼라일의 손에 금화 수십 개가 든 주머니를 쥐어주며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나중에 따로 사과드리는 자리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양해해 주세요.”
“아, 예!”
“그럼, 저는 이만. 치료 잘 받으시고요!”
칼라일에게 충분한 사과와 위로금을 전달한 뒤 다시금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와. 하마터면 사람 하나 치어 죽일 뻔했네. 저 시종이 몸이 튼튼해서 망정이지. 시녀를 쳤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텐데. 저 시종 진짜 맷집 하나는 끝내준단 말이야?’
지크는 카일이란 이름의 시종이 상당히 튼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죽을 정도로 안 다쳐서 다행이야. 나중에 따로 봉급을 올려 주던지, 상을 좀 내리던지 해야겠다. 미안해 죽겠네.’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야 이 개새끼야!!!’
칼라일은 어느새 사라져버린 지크를 향해 속으로 쌍욕을 퍼붓고 있었다.
***
똑똑!
지크는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문 안쪽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진짜 X됐다!’
지크는 지금 상황이 위기라는 걸 깨달았다.
똑똑!
지크는 용기를 내어 또 한 번 문을 두드려 보았다.
역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안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지크는 문 안쪽으로부터 브륜힐트의 존재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어….”
지크가 조심스레 목소리를 내었다.
“여보. 안에 있어요?”
이번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전하. 현재 왕비마마께서 주무시는 중인 것 같사옵니다.”
시녀가 지크에게 말했다.
문제는 그런 시녀의 눈빛.
‘이 쓰레기!’
지크를 바라보는 시녀의 눈빛은 미켈레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멸.
임신한 아내가 죽을병에 걸려 있는데 외간 여자와 놀아난 남자에게 딱 보낼 만한 그런 눈빛이었다.
‘아, 아니야!’
지크는 아니라고, 자신은 떳떳하다고,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시녀의 눈빛은 역시나 ‘경멸’이었다.
“전하. 왕비마마께서는 태교에 힘쓰셔야 하니 잠시 후에 다시 오시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아. 음. 그게. 제가. 지금. 어. 으음.”
지크가 우물쭈물할 때였다.
“…들어오세요.”
문 안쪽으로부터 브륜힐트의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시지요. 쳇!”
시녀가 못내 아쉽다는 듯 지크에게 눈을 흘겼다.
‘아니라고!!!’
지크는 소리 없는 절규를 한 번 내지른 후 조심스레 침실로 들어섰다.
침실 안에는 브륜힐트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어….”
지크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 해명부터 하기로 했다.
“브륜힐트. 오해….”
“괜찮아요.”
브륜힐트가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지크에게 괜찮다며 웃어주었다.
“다 이해해요.”
“예? 뭘요?”
“당신은 제왕이세요. 후궁을 들이실 권리를 가지고 계시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조금 서운했지만, 이젠 괜찮아요.”
“아니에요!”
지크가 살짝 언성을 높였다.
“도대체 무슨 소릴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닙니다. 일단 제 말부터 먼저 들어요.”
“개의치 마세요. 금방….”
“아니.”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전 단지….”
지크가 브륜힐트에게 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쉬지 않고.
아주 열심히.
“저, 정말요?!”
그러자 서글프기 짝이 없었던 브륜힐트의 표정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정말 그녀와 그렇고 그런 관계를 맺으신 게 아닌….”
“당치도 않아요! 제가 왜! 뭐가 아쉬워서! 처자식이 죽을병에 걸려 있는데! 그 와중에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겠어요?”
“아아!”
“제게는 당신밖에 없어요!”
“하, 하지만… 사람들이 당신을 지독한 호색한이라고….”
“누, 누가! 누가 그래!”
“모험가들이 그랬어요. 당신의 머리 위에 절륜한 왕이란 글귀가 떠 있다고요.”
그 순간.
‘아! 내 이미지.’
지크는 자신의 이미지가 쓰레기 그 자체라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
자업자득이랄까?
구질구질한 칭호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니 이런 오해를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여보.”
지크가 브륜힐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저한테는 당신과 뱃속에 있는 아기밖에 없어요.”
“오, 오해해서 미안해요!”
브륜힐트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속 좁은 여자라서 미안해요. 질투한 건 아니에요. 그냥. 그냥. 조금 서글펐을 뿐이에요. 질투는 하지 않아요. 당신은 제왕. 당신이 아내를 더 맞이하시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럴 생각 없어요.”
지크는 그렇게 말하며 브륜힐트를 꼭 안아주었다.
“당신뿐이에요.”
지크는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이고. 내 팔자야.’
구질구질한 칭호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자의 슬픔이었다.
***
이틀 후.
지크는 브륜힐트와 함께 머물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한편, 그간 밀렸던 업무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존엄하신 황제 페하께.
–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지크는 황제에게 채형석이 채무를 상환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후후. 넌 이제 끝장이다.’
지크가 곧 벌어질 채형석 최후의 발악을 떠올리며 즐거워하던 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형님?”
지크의 집무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다름 아닌 승구였다.
“바쁘십니까?”
“어? 지금 잠깐 쉬는 중인데. 왜?”
“저… 그게….”
“으응?”
“흠흠. 그게 그러니까. 으음.”
승구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며 용건을 말하지 못했다.
“뭔데 그래.”
지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승구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냐? 어머니 또 아프셔?”
“건강하십니다.”
“근데 왜? 왔으면 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그게….”
승구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저 좀 도와주실 수 있는지 해서….”
“응? 뭘?”
“제가 퀘스트가 하나 떴는데, 저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못 깨겠습니다. 제가 웬만하면 이런 말씀 잘 안 드리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승구는 아이언 골렘 제작과 운용에 특화된 클래스를 지니고 있어서, 어지간하면 파티 플레이를 잘 하지 않았다.
웬만한 사냥이나 퀘스트쯤은 골렘들과 함께 클리어하곤 했기에, 딱히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 승구가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못 깨서 도움을 요청할 정도면, 결코 평범한 퀘스트는 아니란 얘기였다.
“뭔데. 무슨 퀘스트인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응. 보여줘.”
지크의 말에 승구가 자신의 퀘스트 창을 띄워 보여주었다.
퀘스트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골렘왕의 역습]놀랍게도, 승구가 도움을 요청한 퀘스트는 수백 년째 행방이 묘연하다던 에 대한 것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