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64
363
채형석이 이끄는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프로아 왕국의 국경 지대에 거의 도달했을 무렵.
“저, 적이다!”
“도망쳐라! 적들이 몰려온다!”
“모험가들이 몰려오고 있다!”
프로아 왕국의 국경을 지키던 국경 수비대 대원들은 초소를 사수하기는커녕,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쳐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국경 수비대 대원들의 입장에서는 무려 1만 명의 모험가들이 몰려오는 걸 보았으니 초소를 지켜낼 의지가 생길 리 없었다.
그리고 그건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괜히 초소를 지켜 보겠답시고 버텼다가 개죽음을 당하느니, 도망쳐서 본진에 이 사실을 알리는 편이 나았으니까.
씨익-
그런 프로아 왕국의 국경 수비대 대원들을 본 채형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 간다. 기다려라.”
채형석은 굳이 프로아 왕국의 국경 초소를 기습하지도, 도망치는 수비대원들을 쫓지도 않았다.
왜?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현재의 채형석은 역대 최강의 템 세팅을 맞춘 상태였고, 제네시스 길드원들은 무려 만 명에 달했다.
약소국인 프로아 왕국이 이런 대규모 침공을 막아낼 수 있을까?
단언컨대, 채형석이 아는 한 프로아 왕국의 멸망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지금 이 공격은 약소국으로서는 알아도 막지 못할, 일종의 자연재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가서 한태성에게 알려라. 내가 왔다고.’
채형석은 도망치는 국경 수비대 대원들을 일종의 전령이라고 생각했다.
한태성에게 채형석이 왔음을 알리는 죽음의 전령이라고나 할까?
채형석은 저 국경 수비대 대원들이 종말의 징조쯤이라고 해석하면 딱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채형석이 국경 수비대의 초소를 통과하던 순간.
“본부 응답 바란다.”
멀리서 풀숲에 납작 엎드린 채 은신해 있던 프로아 왕국의 정찰병이 휴대용 통신 장치를 이용해 통신을 시도했다.
휴대용 통신 장치는 통신 거리가 고작 1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주제에 그 값이 워프 게이트 열 개를 설치할 수 있을 만큼 비싼 물건이라 어지간한 국가는 보유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거였다.
그러나 프로아 왕국은 이러한 휴대용 통신 장치를 여러 대 보유하고 있었다.
프로아 왕국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부유한 국가라는 단적인 예였다.
“본부 응답하라.”
– 여기는 본부.
“현재 불나방들이 국경 초소를 넘어 유토피아로 진입하려 한다.”
정찰병이 말하는 이란 채형석과 그를 따르는 제네시스 길드원들을 뜻했고 란 진짜 프로아 왕국이 아닌 아공간 속에 마련된 가짜 프로아 왕국을 뜻했다.
– 여기는 본부. 보고 잘 받았다. 수고했다. 본국으로 귀환하라.
“알겠다.”
정찰병은 보고를 마친 후 풀숲에 납작 엎드려 포복 자세로 안전지대로 향했다.
***
정찰병의 보고가 들어온 시각.
지크는 가짜 프로아 왕국인 의 왕성에서 미켈레의 보고를 받았다.
“전하. 모험가 디자이어가 이끄는 제네시스 길드가 본국의 국경 초소를 넘어 유토피아로 진입해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드디어 왔네.”
지크는 보고를 받고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파티 타임인가?”
“즐거우시겠습니다.”
미켈레가 지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즐겁지. 즐겁고말고.”
지크는 정말로 순수하게 즐거워했다.
언제, 이런 날이 올 줄이나 알았겠는가?
한때는 감히 비벼보지도 못할 거대한 힘 앞에 참혹하게 유린당하던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과 시원하게 한판 승부를 벌일 수 있게 되었으니 지크가 느끼는 감정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슬슬 움직이시죠. 즐기실 시간입니다.”
“응. 가볼게. 가자, 햄찌야.”
지크가 햄찌를 돌아보았다.
“뀨! 가자!”
햄찌가 지크의 뒤를 쫄래쫄래 따랐다.
***
채형석과 제네시스 길드원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아공간에 마련된 가짜 프로아 왕국 에 진입했다.
그런데.
“뭐, 뭐야!”
채형석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밖에서 봤을 땐 나름 규모 있어 보이던 프로아 왕국의 수도가 막상 와보니 별 볼 일 없는 시골 마을 같았기 때문이다.
규모라고 해봐야 작은 대학교 크기 정도?
그마저도 오래되고 낡아서 허름하기 짝이 없는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었고,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폐허가 된 도시 같다고나 할까?
“뀌이이익!”
“꽤액! 꽥!”
웬 돼지 한 마리와 오리 한 마리만이 텅 빈 거리를 나돌아 다니고 있었을 뿐….
“…….”
“…….”
“…….”
덕분에 채형석을 포함한 만 명의 제네시스 길드원들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멍을 때려야만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채형석은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프로아 왕국을 멸망시키고 돈 될 만한 걸 모조리 털어버릴 생각으로 왔건만, 고작 이런 폐허에 불과하다니….
“아, 아니야. 절대로 이럴 리가 없어. 이게 그 새끼가 다스리는 나라라고? 개소리야.”
채형석이 지금 이곳이 프로아 왕국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크반트 때문이었다.
[본 공방은 지크프리트 국왕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 서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관계라고나 할까? 후후후!]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아우토니카나 메르세데스를 찾아가도 반응은 똑같을 테니 그리 아시오.] [영 마음에 안 들지만 그놈들 역시 지크프리트 국왕을 VVIP 대접을 해주며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맞고 있거든. 괜히 미움 받기 싫으면 3대 공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크반트의 말에 따르면, 지크는 대륙 3대 공방 모두에서 VVIP 대접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 지크가 다스리는 나라가 이따위 폐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설마 속은 건가?’
채형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 진짜!”
“지금 장난하나?”
“누구 똥개 훈련시키세요?”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어. 이젠 하다하다 길드원들 상대로 낚시를 하냐? 에라이 미친 새끼야!”
제네시스 길드원들의 입에서 하나둘 험악한 욕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길드원들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오직 돈 때문이었다.
그런데 프로아 왕국의 꼬라지를 보니 도저히 돈 나올 구석이 없어 보인다는 게 길드원들이 분노한 이유였다.
“캬악! 퉤!”
한 길드원이 채형석의 앞에다 대고 누런 가래침을 탁! 뱉었다.
“야 이 X발놈아!”
“뭐?”
“사람 불러놓고 장난 까냐? 어?”
“이 새끼가….”
“내가 니 새끼냐? 어딜 퇴물 새끼가 누구더러 새끼래?”
길드원은 채형석이 눈을 부라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왜?
전성기 시절의 제네시스 길드는 마치 군대 문화를 연상시키는 강압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가진 집단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황제의 척살령이 내려진 이상 채형석은 이빨 빠진 호랑이로서, 이제 두 번 다시는 안 볼 사람에 불과했다.
마치 군 생활을 악랄하게 한 말년병장이 전역할 때 후임병들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욕설을 퍼붓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문제는 비단 그 길드원뿐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야! 채형석! 이 사기꾼 새끼야!”
“진짜 병신 같네.”
“저런 새끼를 길마랍시고 그동안 따랐던 내가 병신이지, 병신이야.”
절대 다수의 길드원들이 채형석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을 퍼부으며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난 간다! 수고!”
“캭! 퉤엣! 수고해라!”
“다시 보지 맙시다!”
수천 명의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야. 너 X발. 일로 와 봐.”
“X나 재수 없네? 니가 아직도 잘나가는 게이머인 줄 아냐?”
“나 좀 보자?”
몇십 명의 제네시스 길드원들은 화가 나 채형석을 죽이려고 무기를 빼 들기까지 했다.
“이, 이런 빌어먹을!”
채형석은 일이 꼬여버리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들이 갑자기 돌변하니 당황할 수밖에….
“야 이 새끼들아! 그래도 내가 니들 길마였는데….”
그때였다.
후둑, 후두둑!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싹!
평범한 인간 이상의 스펙을 가진 게이머들이 추위를 느낄 만큼 차가운 비가.
“뭐지?!”
“마른하늘에 비가 내려?”
“으윽! 모, 몸이 어는 것 같은데?”
게이머들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던 순간.
휘이이이!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블리자드(Blizzard)!
오직 그레이트 위저드 이상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들만 구사할 수 있다는 전설적인 주문이 구현된 것이다!
***
휘이이이!
쏴아아아!
블리자드는 제네시스 길드원들을 모조리 얼려버리고 찢어발길 기세로 사납게 휘몰아쳤다.
‘설마 블리자드인가? 그 고레벨 마법이 어째서?’
채형석이 경악하던 때였다.
펑, 퍼엉!
맨땅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되돌아가던 제네시스 길드원들의 다리가 끔찍하게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땅 밑에 지뢰가 묻혀 있었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블리자드 주문과 지뢰뿐만이 아니라는 것.
어느새 나타났을까?
가짜 프로아 왕국의 상공에 총 11척의 비행선이 포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슈우웅!
펑! 퍼엉! 펑펑펑! 펑!
폐허에 불과했던 가짜 프로아 왕국의 시가지가 생지옥으로 변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제네시스 길드원들은 휘몰아치는 블리자드 앞에 얼어붙거나, 지뢰를 밟고 죽거나, 혹은 떨어지는 포탄에 맞아 죽었다.
‘하, 함정!’
채형석은 그제야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으아아아악!”
“아악!”
“사, 살려… 으악!”
제네시스 길드원들의 전사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반짝반짝!
땅에 떨어진 수백, 아니 수천 개의 랜덤 드랍 아이템들이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아, 안 돼! 안 돼! 죽지 마! 죽지 마! 이 새끼들아!”
채형석은 다급히 광역 버프를 켜 길드원들의 방어력과 항마력을 큰 폭으로 늘려주었다.
“이런 젠장! 아군 방어력 높여!”
“항마력도 높여!”
“힐 돌려! 힐!”
덩달아 제네시스 길드 소속의 다른 버퍼들 역시도 각종 버프를 돌리며 아군을 보호했다.
그러자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역대급 템 세팅을 갖춘 채형석의 버프는 너무나도 강력했다.
덕분에 프로아 왕국이 설치해 놓은 함정들로부터 아군을 거뜬히 지켜낼 수가 있었다.
‘이 새끼! 고작 이따위 함정으로 날? 네깟 놈이 아무리 함정을 파고 날 기다려도….’
채형석이 그렇게 생각하며 전의를 가다듬을 때였다.
“형석아!”
저 멀리 블리자드 마법과 비행선의 폭격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묵직한 외침이 들려왔다.
지크는 아니었다.
지크의 목소리는 저토록 중후하고 묵직하지 않았으니까.
“형석아!”
묵직한 목소리가 다시금 채형석을 불렀다.
“아….”
채형석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야! 형석아! 형이야! 형! 오래간만이지?”
“…….”
“어떻게 요즘 통 얼굴 보기가 힘드냐!”
용태풍.
살아 있는 전설이자 현존하는 최고령 게이머가 채형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뒤쪽에는, 제네시스 길드와 마찬가지로 대륙 10대 길드에 들어가는 천명 길드의 길드원들을 대동한 채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