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982
981
“이런 빌어먹을…!”
크로노스는 자신이 전혀 다른 세계에 갇혀 버렸다는 걸 깨닫고는 몹시 분노했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시나?”
지크가 히죽 웃으며 크로노스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뭐 바쁜 일이라도 있어?”
“감히.”
크로노스는 한낱 지적 생명체에 불과한 지크가 자신을 모욕하자 이를 부득 갈았다.
“네놈이 우주적 존재인 나를 가둔 것인가? 감히? 죽음의 화신인 이 크로노스를?”
“그렇다고 니가 죽음 그 자체는 아니잖아?”
“뭣이?”
“화신 중 하나면서 유세 떨지 마.”
지크가 경멸에 찬 눈빛으로 크로노스를 바라보았다.
“넌 그냥 우주의 법칙인 죽음이 형상화한 존재일 뿐이지, 죽음 그 자체는 아니잖아.”
“이놈이 감히….”
“죽음이면 죽음답게 행동해. 모양 빠지게 튀지 말고.”
“죽여… 버리겠다. 네놈을 죽여 버릴 것이야!”
크로노스는 화가 잔뜩 나서 개사기 아이템인 을 미친 듯 휘둘러 지크를 공격해 왔다.
하지만 거기에 당해 줄 지크가 아니었다.
우웅!
지크는 즉시 을 켜고 스킬로 그 위력을 증폭시켰다.
번쩍!
그런 뒤 스킬까지 사용해서 크로노스의 이동 속도를 낮추었다.
“이… 이런… 빌어먹을…!!!”
크로노스는 지크가 만들어 낸 슬로우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본래 크로노스는 이렇게까지 디버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슬로우 지옥에 빠지게 된 이유는, 이곳이 인 지크가 지배하는 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죽음의 화신인 크로노스라 할지라도 안에서는 한 수 접어주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죽어라!”
크로노스가 꾸역꾸역 슬로우 지옥을 뿌리치고 을 휘두르며 지크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러나….
쌔앵!
지크는 오랜만에 칭호의 효과를 발동시켜서 크로노스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면서 빛의 검을 원거리에서 날리며 크로노스에게 계속해서 슬로우를 걸었다.
“이런 비열한 쥐새끼 같으니!”
크로노스의 입에서 버럭 고함이 터져 나왔다.
“칭찬 감사요. 데헷~!”
지크는 분노하는 크로노스를 보고 얄밉게 웃으며 요리조리 도망을 다녔다.
“이… 이이…!!!”
크로노스는 그런 지크의 행동에 매우 화가 났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안에서 칭호를 켠 지크를 잡는다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크로노스가 번번이 엿을 먹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크로노스가 아무리 을 휘둘러도 지크의 그림자조차 잡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슈우웅!
마침내 가 걷혔을 때였다.
“이놈! 그럼 그렇지! 네놈이 그런 아공간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리 없다!”
“하하….”
“죽여 버리겠….”
크로노스는 지크를 향해 으르렁거리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닫고 눈을 번쩍 떴다.
왜냐하면….
“네, 네년은…!”
크로노스의 앞에, 어느새 생명의 화신 테라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아. 나는 좀 쉬어야겠다.”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털썩 주저앉아 바위에 몸을 기댔다.
테라가 강림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으니, 할 일은 다한 셈이었다.
“뀨! 주인 놈아! 수고했다!”
햄찌가 쪼르르 달려와 지크에게 따뜻한 스팀 타월을 건네주었다.
“암. 수고했지.”
지크는 진짜 움직일 힘이 없었다.
크로노스와 장기전을 펼친 것으로도 모자라 안에서 도망 다니느라 꽤 죽을 맛이었다.
물론 데미지를 입은 건 아니었다.
크로노스와는 무기 한번 맞댄 적이 없었다.
왜?
충돌하면 죽을 테니까.
대신에 1시간 30분이 넘도록 사력을 다해 도망치고 피하느라, 집중력이 소모된 게 너무 컸다.
무슨 피구를 하는 것도 아닌데, 공격 한 번을 안 맞고 모조리 피하려니 정신적으로 피곤할 수밖에.
하지만 이제는 고생 끝이었다.
‘이제 됐어.’
지크는 브륜힐트의 몸을 빌려 강림한 테라와 크로노스가 대치하는 걸 보고 마음을 놓았다.
이제 지크에게 할 일은 없었다.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이 빌어먹을 년.”
크로노스는 테라를 만나자마자 쌍욕부터 입에 담았다.
“오래간만이야.”
테라는 크로노스의 날 선 반응이 딱히 불쾌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나를 방해하느냐.”
“방해라니?”
테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난 널 방해한 적이 없는데?”
“뭣이?”
“네가 날 방해하면 방해했지. 생명의 불꽃을 꺼뜨리는 건 너지, 내가 아니잖아.”
“나는 죽음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난 생명이야. 나도 내가 하는 일을 할 뿐이고.”
“닥쳐라!”
크로노스가 버럭 소리쳤다.
“네년이 지핀 생명의 불꽃을 끄는 게 나의 일인데! 왜 자꾸 방해를 하는 것인가!”
“그거야 니가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생명의 불꽃을 꺼뜨리고 다니기 때문이 아닐까?”
크로노스와 테라는 각각 삶과 죽음의 화신답게 첨예하게 대립했다.
‘저게 바로 음과 양의 법칙이라는 건가?’
지크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불과 물.
어둠과 빛.
그리고 삶과 죽음.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일 수 없이 대척점에 자리하는 존재들이란,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또한, 설전을 벌인다고 한들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서로의 입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에, 영원히 말다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순환이란 저런 것이구나.’
지크는 크로노스와 테라의 다툼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이제 그만하자.”
테라가 크로노스에게 말했다.
“뭘…?”
“무(無)로 돌아가잔 이야기야.”
“그게 뭔 개소리냐!”
“너도 알잖아? 우리와 같은 화신들은 창세기 이후에도 이렇게 존재해선 안 돼. 이 세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지.”
“닥쳐라! 내가 왜 나의 의지를….”
“우주적 존재인 죽음의 화신이라면서, 우주의 법칙은 따르지 않겠단 거야?”
“그, 그건…!”
“이리 와.”
테라가 크로노스를 향해 다가섰다.
“꺼, 꺼져라! 이 빌어먹을 년!”
크로노스는 그런 테라를 피해 달아나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덥석!
어느새 테라가 크로노스를 등 뒤에서 껴안았기 때문이다.
“같이 가.”
“시, 싫다! 싫단 말이다!”
“우리 함께… 이 세계에 녹아드는 거야.”
“놔라! 놓으란 말이다!”
크로노스는 발버둥을 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만 추하게 굴어. 퇴장할 때를 알아야지.”
“닥쳐라! 나는 이 세계의 창조주를 죽이기 전까지는… 으윽!”
“포기해. 소용없어.”
테라는 저항하는 크로노스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조용히 가자.”
테라의 그 말이 끝난 후.
스으으!
이윽고 크로노스와 테라가 각각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빛나더니, 서로 융합하기 시작했다.
***
“뭐, 뭐야! 왜 합체를 해?!”
지크는 크로노스와 테라가 서로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로 합쳐져 버리자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크로노스와 테라의 융합은 전혀 다른 존재의 등장이 아닌, 소멸이었다.
부스스….
각각 푸른빛과 붉은빛이 된 크로노스와 테라는 완전히 하나로 융합되자마자, 미립자의 형태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화신들은, 이 세계에 녹아들어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늘 우리네 곁을 맴도는 삶과 죽음처럼, 비로소 우주의 법칙에 동화된 것이다.
털썩!
오직 브륜힐트만이 남아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뿐….
“여보!”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지크는 황급히 브륜힐트를 향해 내달렸다.
‘괜찮아. 그냥 기절한 거야.’
확인해 보니 브륜힐트는 강림의 후유증으로 인해 스태미나가 일시적으로 떨어졌을 뿐, 생명에는 그 어떤 지장도 없었다.
‘다행이다.’
지크가 안도할 무렵.
[알림: 를 처치하셨습니다!]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당신의 노고로 죽음의 화신 와 생명의 화신 가 서로 융합하여 이 세계에 완전히 녹아들었습니다!] [알림: 이로써 이 세계 창세기의 마지막 단락이 끝을 맺었습니다!] [알림: 당신은 창조주가 완성하지 못한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알림: 를 달성하셨습니다!]시스템 알림창이 일시에 주르륵 떠오른 직후.
스으으!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부터 한 줄기 서광이 내리쬐어 지크를 비추었다.
[알림: 창조주가 당신을 축복합니다!] [알림: 당신은 이제 창조주의 가호를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그게 끝이었다.
“뭐야… 이게?”
지크는 을 받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자 눈살을 찌푸렸다.
명색이 창조주가 내려 준 축복이라면, 뭔가 대단한 일이 생길 줄 알았 건만….
‘그냥 명예직 같은 건가?’
정확한 내막은 알 방도가 없었으므로, 지크는 대충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
그렇게 까지 잠잠해지면서, 4대 재앙과 관련된 모든 사건들이 드디어 그 끝을 맺게 되었다.
대천사 미카엘조차 절대로 막을 수 없을 것이라던 를 처리했으니 큰 고비를 또 하나 넘은 셈이었다.
물론 아직 많은 위협이 이 세계를 노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수고했다.”
지크가 천우진을 향해 말했다.
“수고는 무슨.”
천우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수고하셨어요.”
지크는 베오울프에게도 수고했단 말을 잊지 않았다.
“아닙니다. 지크 님이 더 고생하시는데요, 뭘. 늘 이리 뛰고 저리 뛰시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신 거 같던데….”
“하하하.”
지크가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에이. 별말씀을요. 베오울프 님이 도와주셨으니까 잘 풀린 거죠.”
“그런가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현실에서도 종종 뵈어요.”
“예, 뭐….”
베오울프는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제가 개인 사정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뵙긴 좀 그렇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뵙죠.”
“기다리겠습니다.”
지크가 베오울프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그렇지만 지금 지크의 겉과 속은 180도 달랐다.
‘이 새끼. 이거, 피하는 거네.’
지크는 베오울프가 오프라인 모임에 나오지 못하는 것을 핑계라고 생각했다.
이미 지크는 베오울프를 일루미나티의 마스터로 강력하게 의심하고 있었기에,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고깝게 들리는 건 당연했다.
‘너 딱 두고 봐라. 내가 더 파 볼 거야.’
지크는 겉으로는 사람 좋은 척 웃으면서도, 속은 냉혹하게 베오울프를 대했다.
물론 아직은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조금 더 지켜보면서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내야만 했다.
“그럼, 나 먼저 간다. 저 먼저 갈게요. 햄찌야, 가자.”
“뀨! 가자!”
지크는 브륜힐트를 안아 든 채로 천우진과 베오울프를 뒤로 했다.
‘메타트론 이 자식 괜찮을까? 좀만 기다려라. 구하러 갈게.’
지크는 프로아 왕궁으로 복귀하는 즉시 메타트론의 근황부터 좀 알아볼 생각이었다.
문제도 해결을 했으니, 이제는 자신의 충실한 부하인 메타트론을 도와주려는 것이다.
물론 메타트론이 살아 있어야 도와주는 게 가능하므로, 일단은 행운을 빌어주는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