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2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24화
“오~ 새 본부장님 어떤 분이래요?”
“괜찮은 분이라던데?”
매니저와 큰세진의 대화가 들렸다.
‘기대하지 말자.’
새로 온 높으신 분도 예전 본부장처럼 대단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일 확률이 높았다.
어찌 됐든 전 본부장 때 테스타 성적이 괜찮았으니, 회사 입장에서야 또 비슷한 놈을 보냈을 거 아닌가.
그러나 이 예상은 좋은 의미로 깨졌다.
“…결재봇이요?”
“그렇다니까! 퇴직 얼마 안 남았다고 몸 사리는 것 같대.”
회사 사람들에게 건너 건너 들은 말은, 이 본부장이 별참견이나 밀어붙이는 프로젝트가 없고 실무진이 하던 대로 둔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릴 부른다는 말도 없군.’
보통 유일한 소속 가수 얼굴 한번 보자고 할 법도 한데 일언반구도 없었다.
오래 있을 양반은 아닌 것 같다만, 일단은 나쁘지 않았다. 잘 모르는 윗사람이 의욕만 있는 것보다 오케이만 외쳐주는 게 편하니까.
다만 이 영향으로 큰 프로젝트 하나가 떨어졌다.
“콘서트라니…….”
“드디어 저희도 단독공연을 준비하게 되는군요.”
밀린 대형 결재가 하나둘씩 승인처리 되면서, 드디어 콘서트 날짜가 잡힌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3월은 좀 날짜가 애매하지 않나?”
그렇다.
개강, 개학 시즌에 딱 맞아떨어지는… 누구든 공연 보러 갈 마음의 여유가 부족할 시즌에 잡힌 것이다.
……원래는 연초 특수를 노리고 하려고 했는데, 회사가 워낙 난리통이라 대관을 제대로 못 잡았다고 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진 모르겠으나, 이렇게 기간이 밀린 덕분에 공연 장비 등의 대여 준비는 이미 끝난 상태라고.
다행히 멤버들은 금방 날짜에 대한 불안감을 덜었다.
“그래도 주말이니까 오시려는 분들은 꽤 있지 않을까?”
“시, 시간 괜찮은 팬분들이 계실 테니까요…!”
“많이 오면 좋아요!”
“준비를 잘해서 좋은 공연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분위기가 활활 불타올랐다.
‘…그리고 남은 기간 3개월이라.’
뭐, 콘서트를 반년 이상 준비했다는 가수들도 보긴 했지만, 3개월도 나쁘진 않았다.
‘현실적으로 반년 전이면 데뷔곡만 나왔을 때라 준비 자체가 불가능했기도 하고.’
좀 빡센 작업이 되긴 하겠지만, 활동기도 아니니 그럭저럭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라고 생각할 때, 실무진에게 새로운 제안이 떨어졌다.
“신곡 첫 무대를 첫 콘서트에서 발표하는 건 어떨까요?”
“……저희 3월에 컴백도 하나요?”
“좀 무리일까요?”
무리다.
이 사람들 데뷔 앨범 한 달 만에 뽑았을 때 개고생했던 건 잊어버린 건지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이밀고 있어.
…하지만 의외로 상식적인 답이 이어졌다.
“근데 어차피 콘서트 세트 리스트 채우려면 새 곡 무대를 몇 곡 뽑아야 하는데, 기왕이면 다른 가수 커버곡이 아니라 이렇게 테스타의 곡이면 좋지 않을까요?”
“…음, 네.”
“그리고 이번 앨범 이미 수록곡도 거의 다 나왔고, 타이틀만 작업하면 되는 상태잖아요.”
맞는 말이긴 하다.
사실 이번 컴백은… 정규 1집이다.
그래서 공을 들이고자, 여유 있던 지난 앨범을 작업할 때 미리 다음 앨범 수록곡도 반쯤 뽑아놨었다.
이후로도 활동 틈틈이 작업을 했고.
“뮤직비디오 촬영이랑 이런 것도 어차피 콘서트 VCR 촬영해야 하니까, 일정 맞춰서 하면 될 것 같은데…… 컨셉 포토도 콘서트용까지 맞추면 되구요.”
“…….”
비용과 시간의 절감 효과.
그리고 콘서트 컨셉 잡기도 좋겠지. 정규 1집 컨셉하고 연관성 있게 구성하면 상호 홍보 효과도 있고 팬들도 재밌어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실무진과 가수만 갈리면 모두가 행복할 상황이었다.
‘미치겠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조용히 경청만 하던 김래빈이 슬금슬금 동의의 의미로 손을 올리려고 하고 있다.
자진해서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토끼고기가 따로 없었다.
류청우가 일단 상황을 정리했다.
“저희끼리 좀 이야기해 보고 말씀 다시 드려도 괜찮을까요?”
“네네. 근데 내일까지는 꼭 말씀 주세요.”
그리고 내일까지 갈 것도 없었다. 회사의 연습실에서 결론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만장일치였다.
“저희 한번 작업해 보려고 합니다.”
“아, 잘 생각하셨어요!”
회사는 기뻐했다.
그리고 멤버들은… ‘하면 또 할 수 있더라’라고 생각하는 얼굴인 게 뻔했다.
지난 미친 일정에서 결과물이 좋았던 것의 폐해였다.
‘배세진까지 물들었군.’
연말 무대를 한번 일주일 만에 바꿔보니 이쪽도 관록이 붙기 시작한 모양이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콘서트의 세트 리스트 초안을 보내줬다.
류청우가 빠르게 브리핑했다.
“우리 타이틀하고 서브곡 다 들어가고……. 팬송에 수록곡들 넣어도 열 곡이 전부네.”
“음~ 콘서트 하려면 적어도 스무 곡은 필요한 상황인 거죠?”
“사실 스무 곡도 적은 편인 것 같습니다. 더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 맞아.”
군데군데 빈 곡이 있는 세트 리스트는 아직 빈약했다.
“일단 두 곡은 새 앨범에서 가져온다고 쳐도, 나머지 여덟 곡을 새로 넣어야겠네.”
새 앨범 수록곡을 안무 없이 넣는 방안도 고려되었지만, 퍼포먼스용 곡을 더 하고 싶다는 의견으로 기각되었다.
그나마 숨 돌릴 구간을 자기 의지로 썩둑 썩둑 잘라내는 놈들을 보니 말문이 막힌다.
‘이러다 쓰러지겠는데.’
다행히 회사의 권고 사항이 기억났다.
“우리 유닛 곡 좀 넣어달라고 했는데, 그건 일단 채우죠.”
이러면 다른 멤버가 하는 동안 반강제로 쉴 구간이 생기지.
게다가 회사는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아, 그걸로 자체 컨텐츠 찍을 거라고 하셨지?”
그렇다. 위튜브에 유닛 무대를 나누고 준비하는 과정을 예능처럼 편집해서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콘서트가 끝나면 그 유닛 무대도 안무 영상처럼 업로드할 생각이라고.
“그럼 일단 그거 3곡은 빼고 나머지 5곡을 생각해 보자. 하고 싶은 곡 있는 사람?”
“저요!”
“저, 저도……!”
그리고 치열한 접전을 거쳐서 다섯 곡이 선정되었다.
묵비권을 행사한 배세진과 양보를 선택한 류청우 덕분에 과정은 매우 순조로웠다.
“그럼 일단 이렇게 올릴게.”
“넵!”
그리고 회사는 ‘이대로 정말 괜찮겠냐’는 질문을 열 번쯤 한 후에야, 몇 가지 순서를 수정해서 세트 리스트를 컨펌했다.
하지만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았는지, VCR 시간이 길게 책정되었다는 소식을 알음알음 들었다.
‘…유산소를 더 열심히 해야겠군.’
실무진의 반응을 보니, 콘서트가 죽도록 힘들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든다.
그리고 새 앨범 타이틀과 컨셉을 정하며 며칠을 보낸 뒤.
오랜만에 숙소에 카메라가 들어왔다.
콘서트 무대용 유닛을 나누는 장면을 촬영하려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 방식이 독특했다.
“오늘은 무슨 날?”
“룸메이트 바꾸는 날~”
룸메이트 바꿔서 매칭되는 놈들끼리 무대를 해버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거 완전 아주사 팀전 느낌인데.’
심연을 너무 들여다보면 심연도 본인을 들여다본다더니, 다들 그 방식에 물들어버린 모양이다.
뭐, 사실 의외성 강하고 재밌는 건 맞았다. 누구랑 해도 잘할 수 있다는 이놈들의 자신감도 느껴지고.
“그동안 정들었던 룸메이트들과 작별 인사를 합시다! 아이고 형님 동생~”
큐카드를 든 큰세진은 진행을 하다가, 뻔뻔하게 흐느끼는 척하면서 차유진, 류청우와 포옹했다.
다분한 콩트 분위기였다.
휩쓸린 김래빈이 선아현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동안 제 소음과 작업에 언제나 너그럽고 온화한 태도로 응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함께 방을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 나야말로 고마웠어! 그, 그리고, 작업하는 소리 듣기 좋았어. 곡 좋더라…!”
화목한데 극한으로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둘이 잘 지내고 감정도 좋은 것 같은데, 터놓고 친해지는 것에는 실패한 모양이다.
나도 배세진에게 인사를 했다.
“저희 생활 스타일이 비슷해서 좋은 룸메이트였던 것 같은데, 아쉽네요.”
“……그러게. 그대로 가면 좋았을 텐데.”
말을 하는 배세진의 시선이 은근히 차유진을 향해 있었다. 혹시라도 저놈과 같은 방이 될까 봐 위가 쓰리는 모양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니어야 한다.
나는 배세진의 생각에 동화된 채로 악수하며 대화를 끝냈다.
“자, 그럼 새로운 룸메이트를 만나봅시다!”
“와아아!”
상투적인 박수 소리가 지나간 뒤, 큰세진이 웃으며 등 뒤에서 준비된 소품을 꺼냈다.
“이번 룸메이트 방식은… 카드 뒤집기입니다!”
“오!”
“이 뒤에 번호가 보이시죠? 바로 방 번호입니다! 같은 번호 걸린 사람들끼리 같이 쓰는 거예요~”
큰세진은 쓱쓱 카드를 섞었다. 이런 게임도 제법 해봤는지 아주 익숙한 동작이었다.
그리고 바닥에 일곱 장을 뒤집어서 깔았다.
“자, 여기서 각자 자기가 원하는 카드를 고르는 겁니다~”
“OK!”
“알겠습니다!”
누가 먼저 카드를 고르는지는 가볍게 노래방 점수 게임으로 정했다.
“예엡!!”
사실 카드 고르는 순서야 아무래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게임보다는 다들 그냥 컨텐츠용 분량 뽑는 데 치중했다.
그리고 점수도 완전히 의미 없었다.
“1등은… 100점을 맞은 차유진!”
“오우!!”
실수로 모르는 곡을 선곡해서 그냥 지어내 부른 놈이 1등을 했기 때문이다.
“자, 카드 뽑으세요!”
“예!”
“자… 오! 1번입니다~”
어쨌든, 차유진부터 시작해서 한 명씩 나가 카드를 뽑았다.
그리고 나는… 놀랍게도, 배세진과 또 같은 방이 되었다.
“오, 배세진 형님의 방 번호는… 3번! 문대와 또 같은 방이네요~”
“……!!”
배세진이 두 손을 불끈 쥐었다가,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그럼요.”
사실 나도 차유진 피하고 저런 심정이었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3번이라는 점이다. 예전에 리얼리티에서 처음 룸메이트를 정할 때와 똑같이, 3번은 3명이 쓰는 방이었다.
그리고 현재 남은 라인업은… 큰세진과 선아현이었다.
“아~ 저희만 남았네요!”
“그, 그러게요.”
“자, 그러면 제가 먼저 고르겠습니다~”
순서상 먼저였던 큰세진이 고민하는 것처럼 남은 카드 한 장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슬쩍 미끄러뜨리고는, 다른 카드에 손을 얹었다.
“……!”
잠깐, 저 새끼 지금…….
“저는 이걸로 하겠습니다! 아현 씨, 그럼 같이 뒤집을까요?”
“조, 좋습니다!”
“그럼… 하나, 둘, 셋!”
휙. 큰세진과 선아현이 카드를 뒤집었다.
결과는…….
“오오오!!”
“이야! 유진아! 또 잘 부탁한다!”
큰세진은 1번, 차유진의 방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남은 3번은… 선아현이었다.
선아현이 활짝 웃으며 카드를 보여줬다.
“…! 자, 잘 부탁해! 잘 부탁합니다!”
“그래. 잘 지내자.”
배세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편안해졌다. 이번 방 배정이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오랜만에 같은 방 쓰네.”
“으, 응!”
선아현은 카드를 꽉 쥔 채 후다닥 3번 방 인원에 합류했다.
“자, 그럼 러뷰어분들께 깜짝 발표가 있겠습니다! 과연?”
멤버들이 웃으며 드럼 롤을 넣었다.
“두구두구두구!”
큰세진이 큐카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저희 이번 룸메이트끼리 유닛 무대합니다!”
“기대 많이 해주세요!”
준비된 대로, 멤버들은 카메라를 향해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그렇게 거실 촬영이 일단락되었다.
“후!”
“그럼 우리 짐부터 옮깁시다~”
멤버들은 바뀐 방으로 자신의 짐을 옮기기 위해 당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일 먼저 달려갈 것 같은 놈이 다른 행동을 했다.
거실 바닥에 있던 카드를 챙긴 것이다.
“아! 여기요.”
“네. 고마워요~”
큰세진은 카드를 잘 정리해서 원래 박스 속에 정리한 뒤에 스탭에게 넘겼다.
그리고 아직 거실에 남은 나를 보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문대, 짐 안 옮겨?”
“……가야지.”
나는 큰세진을 따라 복도로 이동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거 뭐 해놨던 거네.’
저놈, 일부러 3번을 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