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4화
지난 이틀 중 가장 정신없고 희망찬 토의 시간이 끝난 후, 짧은 휴식 타임에 선아현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피곤해?”
“아, 아니…….”
선아현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자기 생각에도 본인 상태가 영 별로였는지, 한 소리 들을까 봐 긴장한 눈치였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되나. 나는 최대한 온화하게 화제를 텄다.
“그럼 아까 안무 점검 때 피드백이 신경 쓰여서 그래?”
대뜸 사과가 돌아왔다.
“……미, 미, 미안…. 여, 열심히 할게…….”
정말 개복치 같은 놈이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나한테 미안할 건 아니야. 그리고 이건 오해하지 말라고 하는 소린데.”
‘안무가 인성에 문제가 있어서 동기부여를 인신공격으로 한 거다’는 말을 부드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보자.
“댄스 트레이너 선생님은 진짜 내가 너보다 잘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하신 건 아니야. 널 자극하려고 하신 말씀일걸.”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말을 이으며 선아현 근처에 앉았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아쉬워서 그러셨겠지. 원래 말을 강하게 하시는 분이니까.”
“…….”
차마 ‘아니다 네가 더 잘한다’는 개소리는 못 하겠는지 선아현이 차마 대답을 못 한다. 네가 생각해도 내 말이 그럴싸하지?
“지, 진짜 내가 자,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음?”
나한테 묻는 건가?
여기서 ‘안무가는 안무가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리가 없다는 것까지 계산하고 물어본… 건 아니겠군.
나는 팔짱을 끼고 담담하게 대꾸했다.
“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지?”
“……!”
선아현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약간 기대에 찬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그, 그럼… 어떻게 하면, 자, 잘할 수 있을지…….”
“…내 의견을 묻는 건가?”
“으, 응!”
선아현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디션으로 경력 시작한 초짜한테 조언까지 바라냐.’
나는 짜게 식은 기분을 애써 숨기며, 선아현의 상태창을 기반으로 정론을 내놨다.
“내 생각엔, 넌 쓸데없이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선아현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쓰, 쓸, 쓸데없이…….”
“네 생각이 쓸모없다는 게 아니라. 굳이 할 필요 없는 생각까지 너무 하는 것 같단 말이야. 머리를 비워보는 거 어때.”
좀 구체적인 예시를 덧붙여보자.
“그냥 ‘이걸 해내겠다’ 정도만 생각해.”
“…….”
선아현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방금 생각을 버리라는 조언을 들은 사람치고는 참 모순적인 반응이군.
어쨌든, 직후에 나온 말은 긍정적이었다.
“조, 좋아. 해… 해볼게.”
얼굴에도 의지가 보이니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근데 기댓값 이상으로 열정에 불타고 있는데? 어깨에도 힘이 들어갔다.
게다가 뭐라뭐라 중얼거리기까지 하는데… 아마 ‘이걸 해낸다’ 따위의 말인 것 같았다.
“…….”
흠, 내가 이 정도까지 조언에 재능이 있었나?
의구심이 들 찰나에 상태창 팝업이 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C)’ 발동!]-대상 : 선아현
-효과 : 설득 성공에 의한 특성 활성화
그랬군. 이 35% 따리 확률이 터졌던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 프로 특성상 제법 유용해 보였다. 물론 35%를 뚫는다는 가정하에.
일단 정확한 변동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선아현의 상태창도 켰다.
[이름 : 선아현]가창 : B- (A)
춤 : A (EX)
외모 : A+ (S+)
끼 : B (A+)
특성 : 근성(A)
!상태이상 : 자아존중감 결핍 비활성화
상태이상이 비활성화됐다?
아까 팝업에서 무슨 특성이 활성화됐다고 했는데, 혹시 그 영향인가?
특성을 확인해 보자.
[근성(A) : 자신의 마음가짐은 스스로 만드는 것. 집중력을 불태워 부정적인 상태를 누른다.]-활성화 시 상태이상 한 가지(최우선순위) 상쇄.
개사기 특성 아니냐.
나도 이 특성 있었으면 벌써 이 데뷔 못 하면 뒤지는 상태이상 비활성화하고 오디션 때려쳤지.
열 받아서 머리가 안 돌아갔다.
나는 시간이 좀 지나고 보컬 연습이 다시 시작된 후에야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제 선아현은 저 상태창 그대로 실력을 써먹을 수 있는 건가?
마침 뮤디가 선아현의 목소리를 칭찬했다.
“아현이 방금 소리 제대로 냈다!”
“가, 감사합니다…!”
내가 그냥 듣기에도 연습 때보다 나았다. 아마 점점 B-인 스탯에 맞는 소리를 낼 것 같다.
‘흠.’
선아현이 정신 차려서 무대 질이 높아진 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혼자 너무 치고 나오게 둬도 안 된다.
‘아무리 포지션이 안 겹쳐도 저놈이 혼자 버즈량 다 먹으면 곤란하지.’
아무래도 나 개인을 어필할 수 있는 무대 분량을 만들어야겠다.
무대 질에 기여하는 동시에 나 혼자만 임팩트 다 처먹을 수 있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호러? 너희가 잘하면, 내가 볼 때도 그 방향 좋을 것 같아. 어떻게 하려는데?”
나는 뮤디의 질문에 신나서 편곡 방향을 떠들어대는 팀원들을 따라 손을 들었다.
“제 파트 편곡 의견 있는데, 말해도 괜찮을까요.”
“오, 문대~ 어디?”
“이 부분.”
나는 가사지에 손가락을 댔다.
“브릿지요.”
옆에 있던 최원길이 입을 떡 벌리는 게 보였다.
파트 고맙다 원길아. 잘 쓰마.
* * *
시즌 3는 망할 것이라는 조롱과 비판을 땔감으로 삼아 인터넷에서 불타고 있었다.
참가자들 프로필과 첫 무대만 공개된 이 시점. 아직 제작발표회도 진행되지 않았지만, 벌써 첫 팀전의 방청객을 모집하는 공모가 Tnet 방송사 홈페이지에 떴다.
촬영 순서상의 문제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넘치는 버즈량에 힘입어 방청 신청자를 뽑는 것에도 제법 경쟁률이 붙었다.
그리고 여기, 그 경쟁률(27:1)을 뚫고 당당히 방청을 하러 온 사람이 있었다!
‘안 들키겠지?’
이제 보니 그다지 당당한 것 같지는 않다.
침을 삼키는 그녀의 백팩 속에는 그나마 휴대가 용이한 소형 백통과 카메라가 연막용으로 덮어둔 카디건 아래에 감춰져 있었다.
그녀가 굳이 방청을 오며 카메라를 숨겨온 것에는 모종의 이유가 있었다.
아주사 이번 시즌의 첫무대, 를 보는 순간, 직감했던 것이다.
이건 될지도 모른다!
‘이 분위기……, 분명 지금은 욕먹고 있지만, 방송 시작되면 이게 다 관심으로 들어갈 수도 있어. 나오는 애들이 괜찮기만 하면!’
그럼 지금 찍는 사진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다!
반쯤은 도박이었다. 그러나 원래 급등주는 도박이라는 말이 그녀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게다가…….
‘…진짜 괜찮은 놈 있으면 초기에 홈마로 눌러앉는 것도 좋고.’
마침 그녀의 (전)아이돌이 사회면에 더럽게 진출하며 오만 정을 떨어트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기회를 노려서 계정을 세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최대한 많이 찍어봐야 했다. 어느 참가자가 어느 무대에서 터질지 몰랐다.
그녀는 침착하게 촬영이 시작되는 것을 기다렸다.
공중파 아나운서에서 탤런트로 전직한 MC가 무대에 나와서 몇 마디 당부의 말을 전달한 후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이번 무대는 같은 기획사의 선배 아이돌 분들의 곡을 커버한 두 팀이 맞붙습니다. 승리 팀에게는 어마어마한 특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특전은… 방송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사람들이 방영까지 스포일러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동의하긴 했다.
그래도 인터넷에 떠드는 사람들은 넘쳐났기 때문에 무대 외에는 최대한 공개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아이돌 주식회사 시즌3, 대망의 첫 팀전을 지금 시작합니다! Shine Your Star!”
투표방식이 고지된 후에, 무대 세팅 점검 후 바로 첫 무대가 시작되었다.
첫 무대는 대중적인 아이돌을 내기로 유명한 QuZ 기획사의 아이돌 곡을 커버한 두 팀이었다.
‘좀 지루한걸?’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원곡보다 못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몇 컷을 몰래 찍으면서도 별 기대는 가지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인터넷에서 언급이 좀 되는 참가자들이 있는 팀이었다.
두 번째 팀매치도 싱겁게 넘어간 뒤에야 좀 볼 만한 팀이 나왔다.
무대에서 제일 컷이 많이 잡힌 차유진이 있는 매치가 나온 것이다.
“헐, 차유진!”
“애들 괜찮다~”
눈에 익은 참가자가 많은 팀이었던 만큼, 초반 등장 함성에도 차이가 있었다. 벌써부터 플래카드를 든 사람도 보였다.
무엇보다 무대를 잘했다.
‘와, 쟤네는 진짜 잘하는데?’
이미 데뷔했다고 해도 믿을 수준의 실력에, 편곡도 좋았다.
과한 섹시 컨셉으로 인터넷에서 탑골 밈처럼 소비되는 옛날 곡을 세련되고 귀엽게 소화했던 것이다.
게다가 차유진뿐만 아니라 같은 소속사의 랩 담당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저 둘은 되겠네.’
그녀는 열심히 둘을 중심으로 데이터를 남겼다. 중간중간 돌아다니는 시큐의 시선을 교묘하게 피하면서.
이 팀과 대결한 다음 팀도 인지도 있는 참가자가 다수였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흥미로웠다.
‘아마 방송에서는 여기가 제일 마지막으로 편성되지 않을까?’
그녀는 약간 흥미진진하게 생각하면서도 아쉬워했다.
이제 다음 팀부터는 영 재미없을 것 같았으니까.
직전 팀매치에 볼 만한 참가자들이 반 이상 몰빵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시시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다음 무대는 별 재미가 없었다.
아마 선택받지 못하고 남은 팀원들로 짠 건지 한 팀만 절대평가 방식으로 평가를 받았는데, 솔직히 왜 선택 못 받은 건지 알겠다.
지금까지 중에 제일 형편없는 무대였다.
“뭐야.”
“다리 아퍼.”
이제 뒤쪽에서는 슬금슬금 나가려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지겹고 다리도 아프니 굳이 뒷무대까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MC가 외쳤다.
“점점 열기를 더해가는 1차 팀전, 이번 순서는…… 최근 대상을 수상한 글로벌 대세 그룹, VTIC의 소속사인 LeTi의 곡을 커버한 참가자들입니다!”
MC는 ‘말랑달콤’은 입에도 올리지 않았다.
방청객 낚시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VTIC?”
방청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VTIC은 현재 가장 핫한 남자 아이돌이었다.
초동으로 120만 장을 팔아치우는 명실상부 대상 아이돌의 곡을 커버했다는 말에 나가려던 사람도 잠시 멈췄다.
약간의 기대가 회복된 그 분위기에서 MC가 쾌활하게 외쳤다.
“그럼 먼저 무대에 오를 팀입니다, 악토버31!”
아이스크림 전문점 이름이 떠오르는 팀 이름이었다.
한 번에 귀에 붙는 이름도 아니었고 말이다.
원래 참가자들의 자체 센스가 별로인 경우가 흔했기 때문에 다들 별 감흥 없이 팀명을 흘려들었다.
‘그런 건 됐고, VTIC 무슨 곡을 커버했는데?’
“참가자들이 커버한 곡은…… 아, 이분들 꽃의 요정으로 데뷔했었죠? 국민 걸그룹으로 활약했던 걸그룹, ‘말랑달콤’의 입니다!”
“…!?”
사람들은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