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4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49화
의 준결승전과 결승전이 펼쳐질 다음 화가 방영되기 전주.
오랜만에 등장한 인상적인 홀로그램 캐릭터 덕분에, 인터넷상에서는 가볍게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요새 쓸만한 캐릭터 소재 다 떨어졌는지 온갖 운동선수 뇌절이나 보다가 간만에 신박한 거 보니 재밌네요
-이번 주에 프로필이랑 컨셉 아트 나오지? 기대된다 나 공중파 보고 가슴 뛰는 거 너무 오랜만이야 당혹스럽다…
-음색 너무 좋아서 놀랐는데 그다음 무대는 아예 찢어발겨 놓더라 부케 머리에 두근거릴 일인가
-봄날 신랑을 그대로 상징화해놓은 듯한 첫 무대와 비극의 미가 살아 있는 다음 무대까지. 모두 좋았습니다. (링크)
-노래 진짜 잘한다 이건 무조건 우승이지ㅋㅋㅋㅋ
아쉬운 부분 없이 전방위로 퀄리티가 좋았기 때문에 당연히 호평이 대세였다.
그리고 물론, 박문대의 팬들은 대부분 짐작했다.
‘5월의 신랑’이 박문대일 것이라고 말이다.
-솔직히 빼박이다
-빠인데 모르면 고막이 없는 거임
-아니 실력 더 늘었더라 그 미국 프로 때부터 확 목소리 질 좋아진 티 났는데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천재라는 게 학계의 정론
-솔직히 캐릭터도 누가 봐도… 그 취향임 보자마자 혹시 했는데 목소리 들으니 역시나ㅋㅋㅋ
└ㅇㄱㄹㅇ 마법소년 만든 짬 어디 안 갔다고 진짴ㅋㅋㅋ
하지만 수면 위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도 지랄 맞은 여러 견제를 겪어본 덕에, 일단 여론과 다르면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기조가 잡혔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체가 드러나면 끝날 일, 팬들은 그 후 반응을 기대하며 자기들끼리도 발언을 삼갔다. 간혹 캡처해서 조롱하려 드는 미친놈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대망의 후반부 방영일.
‘5월의 신랑’을 기대하는 이 사람들은 오랜만에 해당 예능 프로그램의 본방송을 기다렸다가 시청하기도 했다.
그중에 이 남매도 있었다.
“봐라. 박문대다.”
“응 망상 오졌죠~”
바로 김래빈의 팬인 대학생과 그녀의 남동생이었다.
남동생은 깐족거리자마자 누나의 욕설이 날아올 것을 각오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
대학생은 한번 참더니, 그냥 비웃음으로 넘겼다.
결과를 아는 자의 자신감이었다.
“너 뭐냐?”
“어 됐어. 방송이나 봐.”
괜히 열받은 고등학생은 씩씩거리며 TV로 얼굴을 돌렸다.
그래도 방송이 시작되는 순간, 남매는 싸움을 잊었다.
남은 출연진 3명과, 지난 회차 우승자 1명이 치르는 준결승전의 첫 경기부터 ‘5월의 신랑’이 나왔기 때문이다.
[웅성거리는 관객들] [야~ 기대되는데?]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모르겠어요!]지난 두 무대로 상황을 학습한 관객들과 심사위원들의 기대 어린 리액션이었다.
자막과 멘트가 교차하는 가운데, 무대 위에 드디어 ‘5월의 신랑’이 모습을 드러났다.
“헐.”
“나왔다.”
날아가는 나비들, 그리고 면사포와 장갑의 무늬가 더 정교하고 자연스러워진 것이 대학생의 눈에 포착되었다.
홀로그램을 약간 보강한 듯싶었다.
‘반응 오니까 돈 좀 써줬나 보지?’
1군 아이돌 메인보컬이 나왔는데 당연한 거 아니냐며, 대학생은 코웃음을 쳤다.
“야, 한다, 한다!”
“조용히 해!”
어두운 무대 위, 홀로그램만 홀로 빛났다.
그리고 반주가 흘렀다.
달콤하고 맑은 바이올린과 오보에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무대는 밝고 화사한 빛으로 가득 찼다. 꽃들이 흔들리며, 신랑은 오른손을 들어 마이크 위에 부드럽게 올려놓았다.
-나의 세상은
슬픔이 없는 곳
오롯한 기쁨만
그대와 나눠요
“어? 저거….”
“쉿!”
감미로운 한 소절 뒤로, 좀 더 낮고 간절한 한 소절이 붙었다.
-나의 세계에는
어둠이 없어요
밝은 별빛이
당신을 비추리
“와…….”
이번에는 방해가 된다며 서로 말릴 생각도 잊은 채, 남매는 입을 벌리고 화면을 봤다.
‘5월의 신랑’은 남녀가 함께 부르는 듀엣곡을 혼자 부르고 있었다.
동화적인 노랫말과 서정적인 멜로디로 유명한 곡으로, 대단히 낭만적인 곡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면, 결혼 축가로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때론 슬픈 날도
우릴 찾아오겠지만
이 세상에 머물러줘요
-나의 사랑이
당신의 세상을
따스히 안아서
지킬 수 있도록
본래 원곡은 두 사람이 서로 멜로디를 주고받으며 가사가 쌓이고 견고해졌다.
하지만 ‘5월의 신랑’이 혼자 부르는 이 축가는 완전한 구애의 뉘앙스로 변해 있었다.
단아했던 예선 무대의 청혼곡과 달리, 구애하는 공작새 꽁지깃처럼 화려하게 남녀의 키를 넘나드는 구성이 귀를 홀렸다.
‘진짜 듣기 좋다.’
‘개촌스러운 곡인데 왜 좋냐.’
남매는 곡에 완전히 몰입해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남은 곡을 감상했다.
자막도 난리였다.
[5월의 신랑이 전하는 사랑] [달콤한 목소리에 빠져든다…….]눈을 감은 심사위원과 눈을 크게 뜨고 무대를 뚫어지게 보는 심사위원의 얼굴이 교차 되었다.
“결승 각이지?”
“무조건이다.”
노래를 마친 ‘5월의 신랑’이 또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스르륵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남매는 오랜만에 같은 의견을 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5월의 신랑’은 결승에 진출한다.
[두 번째 결승 진출자는… ‘5월의 신랑’!]“예에쓰!”
“야 안 가면 조작이지.”
무슨 스포츠 경기 보는 것처럼 남매는 신나서 TV에 리모컨을 휘둘렀다.
그리고 준결승 진출자들의 프로필이 조금 길게 소개되었다.
시간 채우기용 컨텐츠였으나, 잘 만든 캐릭터 프로필은 그것만으로도 제법 재밌는 경우가 있었다.
‘5월의 신랑’이 그러했다.
-미친… 신부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랑 노래만 부를 수 있대;; 컨셉 뭐야
-그럼 본선 때 부른 겨울밤은 신부 만나고 사별한 시점이라 드디어 이별 노래를 부를 수 있던 건가
└헐
└이런 해석 개조아
-부케 헤드에는 다 5월에 피는 꽃들만 있단다… 5월의 신랑이라… 다른 달에 결혼하면 꽃이 바뀐데
└제발 6월의 신랑까지는 뇌절해주라 마침 지금 6월이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혼하면 꽃 대가리가 신부 이상형으로 바뀐답니다 설정 과다인데 맛있긴 하네
대학생은 프로필이 뜨자마자 SNS를 훑으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문대가 이런 거 진짜 잘한단 말이야!’
그리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이건 박문대가 아닐 수 없다!
“너 박문대 맞으면 어쩔래?”
“계속 이러다 개쪽당해도 난 모른다.”
“야 진 쪽이 10만 원 콜?”
“와 용돈 감사.”
남매는 결승 무대 직전, 고액의 내기까지 체결해 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두 사람은 진중한 얼굴로 TV를 응시했다.
“여기서 어지간히 망해도 우승이겠지?”
“내가 보는 견지에선 그럼.”
둘은 대충 결승전 첫 무대를 흘려보냈다. 은박지 리본을 곱게 단 옛날 통닭이 신나는 삼바를 불렀으나 큰 감흥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차례가 왔다.
‘5월의 신랑’이 다시 스테이지로 등장했다.
[와아아아!!]붉은 나비가 날아가며, 하얀 면사포 너머로 꽃다발이 비쳤다.
‘5월의 신랑’은 자신의 스탠딩 마이크를 하얀 장갑을 낀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무대가 어두워졌다.
철컹.
사방에서 가는 조명 불빛 여러 개가 홀로그램으로 쏘아져 내려왔다.
어두운 붉은빛이었다.
“……!”
불빛들은 일그러지듯이 흔들렸다.
그리고, 불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쉬이이잇-
바람처럼 새는 소금(小?) 소리가 정신없이 음을 오가는 피리 소리와 섞여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느릿한 북소리가 울렸다.
둥…. 둥…. 둥….
싸늘했다.
그 섬뜩한 기운 속에서, ‘5월의 신랑’이 노래를 시작했다.
흰 정장이 얼룩덜룩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월 그믐날
달도 보이지 않는다
님은 오지 않고
사랑은 썩어 간다
약간 쉰 듯, 긁는 소리가 느리게 무대를 울렸다.
조명이 떨리기 때문인지, ‘5월의 신랑’은 꽃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금방 시들 것처럼.
-연모는 이리 긴데
삶은 마땅치 않고
문득 창을 여니
길도 자국만 남았다
불안한 단조 위로 숨 쉴 틈 없이 노래가 달려 나갔다.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처럼 가파르게, 음이 올라갔다.
그리고, 떨어졌다.
-그래도 기다리리
그 저음에 맞춰, 반주가 폭발했다.
“……!!”
폭주하는 단조의 국악기들 속에서, ‘5월의 신랑’은 고개를 숙인 채, 스탠드 마이크에 꽃을 파묻었다.
-마음이 다 썩어
앙상한 연심 녹을 때까지
땅 아래 묻혀
기억 다 문드러질 때까지
그래도 기다리리
우울한 멜로디가 지극히 저음으로 시작하여 미친 듯이 음을 타고 높아졌다.
반복되는 가사 속에서, 수 없는 비유의 끝은 모두 하나의 단어로 끝났다.
‘기다림’.
화면에서는 관객들의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오로지 붉게 질척한 무대 위 ‘5월의 신랑’만을 비추었다.
보일 리 없는, 그 면사포와 부케 너머의 눈빛이 보이는 듯했다.
스크린 너머로도 압도당할 것 같은 처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도착한 마지막.
부르짖는 것 같은 고음이 마지막 후렴 가사를 올렸다.
-마침내 오신 날
참 어여쁘다 하실 날까지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마지막 음이 이어졌다.
그것을 쫓아 음울한 반주가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뚝, 멈추었다.
-기다리리
“…….”
가냘픈 소금 소리 한 줄기가 곡을 마무리했다.
공포와 광기가 떠난 자리에, 아릿하고 애절한 여운이 남았다.
멈춰선 ‘5월의 신랑’은 스탠딩 마이크에 부케를 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완전히 반주가 끊긴 순간.
무대에서 꺼지듯이 사라졌다.
[허어어어!] [와……!]그제야 박수와 감탄으로 관객석이 가득 찼다.
입을 가리고 있는 심사위원이나 관객들의 유난스러운 모습을 잡는 카메라가 드디어 전면에 등장했다.
[압도된 관객석] [입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그리고 TV 앞에 굳어 있던 남매도 정신을 차렸다.
“……미쳤다 진짜.”
“X나 소름 끼침.”
“문대 우승이네.”
“또 선 넘네.”
돌아오지 않는 신부를 기다리다가 돌아버린 것 같은 ‘5월의 신랑’의 무대는 엄청난 여운을 남겼다.
자칫하면 과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무대를 섬뜩할 정도로 딱 맞는 가창으로 끌고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다다음 주도 무조건 본방 본다.’
‘5월의 신랑’의 우승을 확신한 고등학생이 내심 결심했다.
이런 건 봐줘야 했다.
심지어 정체가 공개되면 앨범도 사서 들어볼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까지 각 보니까 밴드 보컬이다. 개마이너한 곡 쓸 듯.’
그래서 직후 ‘5월의 신랑’이 정체를 공개했을 때, 그 충격에 완전히 굳어버렸다.
[‘5월의 신랑’, 이 홀로그램 캐릭터를 만든 사람의 정체를…… 지금 공개합니다!]우승자를 발표하기 직전, 출연진이 직접 무대에서 홀로그램과 함께 발표를 기다리는 그림을 위해 출연진의 정체가 선공개되었다.
모션 링크가 풀린 ‘5월의 신랑’의 홀로그램은 무대 위에 얌전히 서 있었다. 방금 전 그토록 처참한 곡을 불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다소곳함이었다.
우렁찬 MC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등장해 주세요!]그 순간, 무대 아래가 열리며 사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상한 감탄사를 내기 시작했다.
“……!?”
올라오는 것은… ‘5월의 신랑’이었기 때문이다.
“뭐야?”
끝까지 다 올라온 실물 ‘5월의 신랑’은 부케를 갸웃거렸다.
홀로그램이랑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으헉.”
지금까지 동물이나 음식을 장난스럽게 인형옷으로 재현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똑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보통 자기가 못하는 걸 캐릭터로 만드니까!
‘뭐 하는 새끼야 대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 관객과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MC만 쾌활하게 외쳤다.
[이분은… 바로!]새로 올라온 ‘5월의 신랑’은, 오른손으로 머리의 부케를 뜯어냈다.
“……!”
꽃으로 뒤덮인 두터운 망사 복면이 목으로 흘러내리며, 땀에 젖은 얼굴과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대세 아이돌, 테스타의 박문대입니다!] [!!!!]비명을 지르는 관객들과 일부러 더 놀란 척하는 심사위원들의 모습이 화면에 계속 리플레이되며 잡혔다.
그리고 고등학생도 넋을 놨다.
“…….”
“야, 야.”
대학생은 툭툭 자신의 동생을 발로 건드렸다.
“10만 원 내놔.”
“…….”
참고로, 비슷한 상황이 인터넷에서도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