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5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57화
김래빈이 부상을 당한 건 무대 리허설 후 두 번째 녹화였다.
선아현 파트의 고난이도 단체 동작을 수행하던 중, 가장 가장자리에 누워서 일어나려 발을 뻗다가 구조물에 찍힌 것이다.
생각보다 무대가 좁았던 것이 사태의 원인이었다.
‘…고지해 줬던 것보다도 작았어.’
아무리 이런 영미권 토크쇼 사이드에 준비된 무대 세트가 여럿이 군무를 추기엔 크기가 작다고 해도, 우리도 거기에 맞춰서 안무 동선을 줄여왔단 말이다.
‘김래빈 동선이 튀어 나간 것도 아니야.’
즉, 이 새끼들이 뭘 잘못 알려준 덕에 애 발이 작살났다는 뜻이다.
‘X발.’
아니, 작살이라고 단정 짓지 말자. 타박상 때문에 피가 나서 그렇지, 생각보다 큰 상처는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래빈 씨, 발 움직일 수 있어요?? 움직이지는 말고, 느낌만!”
“…할 수는 있는데, 아픕, 아픕니다…….”
“지혈부터 할게요!”
김래빈은 응급조치 후에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도 간단하게 상황만 정리한 후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어차피 다시 무대 녹화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 첫 번째 녹화로 방영분이 반강제 픽스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결론이 브리핑되었다.
“2주요?”
“그것도 최소한이에요. 춤은 당연히 안 되고, 보호대 차고 가만히 있을 때 한정으로요.”
“…….”
김래빈의 병실에서 나온 회사 직원은 통역사를 끼고 바쁘게 설명했다.
진단명은 인대 손상. 그리고 금 간 뼈와 찢어진 피부.
‘…최악은 피했다.’
골절이나 파열까지 갔으면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게 몇 달 단위로 뛰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지금 행차 안무같이 격한 건, 한 달은 경과 보고 다시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다는데…….”
막 활동이 한창일 참에, 김래빈이 이번 활동 내내 안무를 못 한다는 것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퍼포먼스에 가장 중점을 둔 곡에 딱 맞는 악재였다.
‘이놈의 미국에 무슨 마라도 꼈나.’
지난번부터 돌아가면서 병원 신세를 지는 게 웃기지도 않았다.
나는 입을 다물었고, 류청우는 조심스럽게 회사 사람에게 물었다.
“후유증 이야기는 혹시 없었나요?”
“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후우.”
류청우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 보였다. 다른 놈들도 간신히 안도한 표정이다. 심지어 차유진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래, 래빈이, 지금 들어가서 봐도 괜찮을까요…?”
“네네. 지금 의사분 나가셨어요.”
병원까지 따라왔는데 얼굴도 안 보고 바로 이동하기도 웃긴 일이었다. 우리는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래빈아?”
김래빈은 좀 얼빠진 얼굴로 병상에 앉아있었다. 다친 발은 위로 고정된 채였다.
김래빈이 이쪽을 돌아보자마자, 큰세진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래빈아, 발 통증은 괜찮아?”
“예. 근데, 저 무대는…….”
“걱정 안 해도 괜찮겠는데? 지금 이야기하고 왔는데, 너 2주만 참으면 무대 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 큰일 아니야~”
그러나 큰세진의 말에도 김래빈은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챈 것 같았다.
이놈이 대인관계 눈치가 없는 거지, 일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김래빈은 울먹거리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이, 이 주나 빠지면…….”
“야, 무슨 소리야~ 2주 금방 가! 우리 이미 컴백 무대도 했는데 뭐가 걱정이야?”
“세진이 말이 맞아 래빈아. 애초에 네 잘못도 아니잖아. 몸 회복하는 것만 신경 써. 알겠지?”
“……예.”
크흥. 김래빈이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을 참으려 애썼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탁자의 티슈를 뽑아서 건넸다.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다른 생각 말고 쉬고 있어!”
“쉬어, 바보!”
김래빈은 어차피 미국 스케줄 중에 혼자 호텔에 있느니, 케어받을 수 있도록 병원에 이틀쯤 묵기로 했다.
멤버들은 떵떵 큰소리를 치며 김래빈의 병실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그제야 이야기가 현실로 돌아왔다.
“래빈이 파트 나눠야겠죠?”
“그래야지.”
류청우은 팔짱을 끼고 쓴웃음을 지었다.
“동선부터 새로 익혀야겠네.”
“어차피 시차 때문에 잠도 안 오는데, 해보는 거죠 뭐~”
“…….”
배세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것 같았으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발 다친 놈 두고 안무 연습 늘었다고 불평하긴 미안했나보다. 때와 비교하자면 장족의 발전이다.
‘서로 피곤하게 됐어.’
김래빈은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나머지는 육체적으로 피곤하게 생겼다.
솔직히 심정적으로는 이 토크쇼의 무성의한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다고 현지든 한국이든 어디 언론에라도 흘리고 싶다.
괘씸하니까.
‘하지만 함부로 그럴 수도 없지.’
영미권 토크쇼에 게임 콜라보 같은 소리 싹 빼고 출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잡음은 최대한 피하는 게 맞았다.
그래도 빡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무슨 민폐란 말인가.
‘더 떠야 하나.’
해외 토크쇼 출연 보이콧이 타격이 되려면 얼마나 더 떠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힌다는 게 문제긴 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잡생각을 지웠다.
‘연습이나 하자.’
남의 나라까지 와서 또 연습 지옥에 빠지게 생겼다.
* * *
테스타가 부상 이슈로 퍼포먼스를 재정비하던 이때.
한국에서는 기어코 골든에이지, 박문대가 골드 1이라고 부르는 하일준의 그룹의 신곡이 슬금슬금 아이돌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후렴 듣자마자 가슴이 뛰었다
-이런 게 나중에 숨은 명곡 취급 받으면 안 되지 가자ㅋㅋㅋ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음 수능금지곡까지 초읽기 들어감 (장소: 내 머릿속)
재밌는 것은, 이 소위 말하는 KPOP 리스너 네티즌들이 골든에이지의 신곡을 밀어주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골든에이지가 아직 확실히 자리 잡지 못한 약자에, 최원길과 골드 1 덕분에 고생을 많이 한 이미지가 붙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곡이 워낙 좋으니, 적당히 성적을 올려주는 것이 일종의 정의 구현 같아서 재미를 느꼈다.
물론 대부분 흥미본위의 말뿐인 이야기였으나, 골든에이지의 소속사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위튜브 프로모션과 각종 SNS 바이럴을 짜 맞추었다.
그리고 대중 노출도를 높이는 이 작업은 어색하지 않은 선에서 센스 있게 진행되어, 결국 성공했다.
[골든에이지 Hi Goody 챌린지]짧은 동영상을 올리는 모 플랫폼에서 해당 곡을 이용한 간단한 율동이 흐름을 탄 것이다.
덕분에 골든에이지의 음원은 빠른 속도로 음원 순위를 역주행했다.
-미친 지금 26위
-대박
-더 흥해라 ㅊㅋㅊㅋ~
-여기저기 바이럴 꾸역꾸역하더니 억주행 언플 성공했네 축하해~
└열폭 오졌다리
└그 팬인 듯
게다가 보통 때라면 이 여론을 견제했을 테스타의 팬덤 쪽은 다소 아수라장이었다.
-김래빈 발 어떡해 X발 안무 수정 안 하고 밀어붙인 회사 죽어 제발
-해외 무대 앞두고 하필ㅠㅠ 너무 아쉽고 걱정도 되고 오전 내내 넋부랑자로 지냄
-래빈이 우리 아기토끼 지금도 자책하고 있을까 봐 걱정이야 우리 걱정은 말고 발 낫는 것만 신경 썼으면ㅠㅠ
#래빈아_건강해
-그분도 안 다쳤는데 눈깔 혼자 다친 거 좀 웃기지 않냐 혹시 연애하느라 정신 팔렸나 합리적 의심되는 부분
-김래빈 파트 그냥 차유진 혼자서도 충분하지 않아? 왜 굳이 래퍼도 아닌 이세진까지 나눠줬는지 모를…
김래빈의 부상 소식 때문이었다.
테스타의 팬들은 부상에 대한 걱정과 완전체를 한동안 볼 수 없다는 아쉬움, 그리고 몇몇 어그로가 소용돌이치는 것을 신경 쓰기 바빴다.
사실, 그들의 입장에선 골든에이지 견제가 꼭 필요한 사항도 아니었다.
어차피 골든에이지의 한발 늦은 음원 역주행은 신인 남자 아이돌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음원차트의 최상위권 진입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적 색채를 내세운 테스타의 이번 앨범은 엄청난 호평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테스타의 팬들은 단지 ‘곡은 골든에이지가 더 좋지 않냐’는 식으로 살살 긁으려고 드는 놈들이 가끔 출몰하는 게 짜증 났을 뿐이다.
어느 방면으로 보나 급의 차이는 누가 봐도 분명했다.
다만, 2주간 활동이 중단된 채로 병실과 호텔에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누군가에게는 이 상황이 상당한 의미로 다가왔다.
* * *
“깁스 탈출 축하~”
“래빈이 고생했다.”
“아닙니다. 폐를 끼쳐 죄송할 뿐입니다.”
전보다 가벼워진 발 보호대를 한 김래빈이 씩씩하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안무 없이 무대 복귀를 의사에게 겨우 허락 받은 참이었다.
“에이, 폐는 아닌데~ 너 돌아온다니까 든든하긴 하지!”
“마, 맞아!”
“감사합니다.”
멤버들은 적당히 김래빈을 다독여주고, 자신들의 호텔 룸으로 흩어졌다. 얼른 자고 일어나서 다시 김래빈이 포함된 동선으로 무대를 수정해야했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까닥거렸다.
“너 이 방이야.”
“예!”
김래빈이 진료를 받으러 다녀오는 동안 임의로 나눴다.
‘어차피 오래 묵을 방도 아니고.’
일본 스케줄은 길지 않았다. 나는 김래빈이 들어올 때까지 방문을 잡아준 뒤 씻으러 들어갔다.
“먼저 샤워 좀.”
“예!”
요 며칠 쉬었다고 군기가 바짝 들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간단히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그러자 잔뜩 긴장한 김래빈과 눈이 마주쳤다.
“……?”
무슨 폭탄 발언이라도 할 기세다.
‘설마 부상이 덧나기라도 했나.’
여기서 안무 공백이 더 길어진다는 달갑잖은 소리가 나올까 봐 나도 침묵하고 있자니, 드디어 김래빈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형.”
“왜.”
“혹시 형이 들으시기에도… 골든에이지 분들의 이번 신곡이 제가 작업한 곡들보다 더 다수의 취향에 맞는 명곡입니까?”
“……??”
갑자기 이게 무슨 뜬금없는 화제냐.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니, 김래빈이 눈을 꾹 감고 줄줄 말을 읊었다.
“현재 퍼포먼스에 대한 제 기여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데 혹시 음원 측면에서도 제 개입이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면 앞으로는 작곡 및 편곡 활동을 자제….”
“잠깐, 잠깐. 무슨 소리야.”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흐르길래 끊었다.
‘앨범 잘 내놓고 무슨 헛소리냐고.’
물론 자체 프로듀싱 멤버가 양날의 검이긴 했다. 잘하면 시너지지만, 못하면 내부갈등의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음원성적이 나쁜 건 프로듀싱 멤버의 아집과 능력없음 때문이다’ 같은 프레임은 만들기 쉽지 않은가.
‘하지만 김래빈은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없어.’
골든에이지가 1위 후보쯤으로 대단히 치고 나온 것도 아니고, 김래빈의 폼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웬 뜬금없는 소리냔 말이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 음원에 대한 반응을 모니터링하던 도중에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우연히 골든에이지분들의 신곡 동영상을 보았습니다만, 그곳에서 다량의 추천을 받은 댓글이…….”
“줘봐. 보게.”
“예?”
나는 김래빈에게 해당 동영상 주소를 받아서 확인했다.
[골든에이지_Hi Goody_댓글모음]‘…댓글 반응 동영상이었군.’
무대영상과 함께 관련 베스트 댓글을 모아서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이런 건 애초에 곡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이라면, 긍정적이고 재밌는 댓글만 찾아서 보여준다.
당연히 골든에이지의 곡에 대한 칭찬만 가득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 제일 강한 놈하고 비교하는 것도 부지기수 아니겠는가.
-테스타 보려고 음방 틀었다가 정신 차리니 하이구디구디 거리고 있었음
-시끄럽고 가오잡는 남돌 곡 안 듣는데 하이갓디는 듣는다 올해 최고의 곡
영상에 나온 댓글이 아니라 이 동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더 원색적인 수준의 비교도 나왔다.
‘솔직히 곡은 골든에이지가 더 듣기 좋았는데’라는 게, 이 동영상만 보면 마치 대세 여론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흠.”
나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뗐다. 김래빈이 중얼거렸다.
“…그런 연유로, 객관적이며 냉정한 평가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나 원 참.
‘자책감 때문인가.’
김래빈은 원래 어지간해선 본인 능력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부류는 아니었다.
아마 발을 다쳐서 본인이 무대에 설 수 없으니, 다른 쪽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심해진 모양이었다.
그러니 자꾸 동발한 놈들 곡이랑 자기가 만든 타이틀곡을 비교하는 소리를 찾아보게 되고, 결국 저런 생각까지 든 거겠지.
“…….”
나는 김래빈의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말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