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6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67화
박문대와 선아현이 출연하는 방송, 는 대여섯 명 정도의 출연진이 함께 촬영을 진행했다.
그리고 안정된 진행을 위해, 일종의 MC 역할을 맡는 고정출연진이 당연히 있었다.
‘아, 딱 각 나오네.’
이번 게스트들의 면면을 확인한 예능계의 대선배 MC가 한 생각이었다.
‘잘나가는 아이돌에 명문대 출신 아이돌? 이 소재 못 놓치고 은근히 비교는 하겠어.’
스무 화가 넘게 진행해 본 그의 생각에는 벌써 편집이 어떻게 나올지 구성이 보였다.
물론 무작정 비교하면 저 잘나가는 아이돌, ‘테스타’의 팬들에게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교양 프로그램이니 너무 노골적이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다.
어떻게든 테스타 멤버의 활약 장면도 조금씩 살려주거나, 영 안 되면 귀엽게라도 편집해 줄 터다.
‘야~ 근데 한국대생에 중졸이면 힘들겠는데.’
제작진이 편집 훈훈하고 예쁘게 해주려고 고생 좀 하겠다며, MC는 속으로 킬킬거렸다.
그때, 사인이 왔다.
“아, 온다온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외치곤 빠르게 촬영장 구석에서 대기했다.
“이거 언제 내려요?”
“여기 어디예요?”
두건으로 얼굴 전체를 덮어쓴 6명의 출연진들이 안내를 따라 뒤뚱뒤뚱 이동했다.
MC는 카메라를 향해 엄지를 치켜든 뒤, 감정을 잡고 외쳤다.
“의복들이 그게 무어냐?”
“와악!”
“깜짝이야!”
“어서 그 해괴망측한 것을 벗거라!”
“어어…….”
출연진들은 혼란 속에서 꾸물거리며 자신의 두건들을 내렸다.
그리고 놀랐다.
“어어 여기 어디야??”
“한옥 같은데…?”
“일단 조선 시대 같지.”
출연진들은 친분 있거나 친분 있어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붙어서 속닥거렸다.
그리고 MC는 오늘의 요주의 인물, 별 동요 없이 선아현의 속삭임을 듣는 박문대를 주목했다.
‘거 침착하네~’
검은 머리에 준수하게 생긴, 침착한 얼굴이었다. 어째 가방끈 짧은 인상은 아니라며, MC는 편견 어린 생각을 무심코 했다.
‘요새 아이돌들도 참 인물이 좋아.’
그는 금발의 선아현을 보고 내심 고개를 끄덕이면서, 혼란스러워하던 출연진들이 자신에게 개그 분량용 말을 붙이기 전에 얼른 대사를 쳤다.
“오늘 큰 행사가 있을 터이니, 늦지 않게 의복을 갖추고 자리에 참석하도록 하여라! 그럼 난 이만.”
대충 현대어와 섞어서 말한 MC가 뒷짐을 지고 창호지를 바른 문밖으로 슬그머니 도망쳤다.
“아니, 어디 가세요??”
“형님! 형님!”
“와 이 프로 대책 없구만.”
당황한 출연진들을 뒤로하며 문은 굳게 닫혔다.
“아~ 오늘도 월척이여!”
MC는 능숙하게 멘트를 던진 뒤 히죽거리며 모니터링 룸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게스트들의 뻘쭘한 짓이나 활약을 보면서, 리액션을 하며 해설을 붙이는 게 바로 MC의 본분이었다.
‘보자~ 한 20분은 분량 뽑을 겸 감 못 잡고 헛소리들 하겠지.’
MC는 그동안의 경향성을 예측하며 모니터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예외를 보았다.
[MC님을 닮은 관리분이 남기신 말을 생각해 봤는데요. 이번 목표는 어떤 행사인지 알아내서, 의복을 갖추고, 늦지 않게 참석하는 세 단계 같습니다.] [그렇지, 그렇지.] [역시 스바이벌 출신이라 그런지 문대가 참~ 차분해,] [그럼 우선 이 방을 나가야 하는데… 방탈출 같네요. 이 문 옆에 잠금장치가 있어요.] [어? 그러게!]박문대가 순식간에 진도를 빼버린 것이다.
“이야~ 빠르네, 빨라!”
MC는 본분에 맞게 손바닥을 치며 감탄사를 뱉으면서도 당황했다.
‘쟤 뭐야?’
사람들이 헛소리하고 방 안을 탐색할 시간을 안 줬다. 속전속결이었다.
더 놀라운 건 다음 장면이었다.
[자자, 내가 읽어줄게. 들어봐라 얘들아.]경력 긴 개그맨이 문 옆에 달린 작은 상자에서 한지를 꺼내어, 그들의 첫 번째 퀴즈를 읊었다.
[흠흠, ‘이번 급제자 6인의 집현전 배속을 정하는데 이들은 을, 갑, 병, 무, 기, 정이라. 그 조건은 아래와 같다.’ ……뭐꼬 이게!]그 밑으로는 ‘을과 갑이 함께 집현전에 배속될 시 병도 집현전에 배속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서로 맞지 않는 조건문이 몇 줄이나 이어졌다.
실제 논리학에서 쓰이는 제법 복잡한 예제였다.
역사 교양 예능의 폭격이었다.
“으하하학! 아~ 다들 얼굴들이!”
그리고 MC가 기겁하는 출연진들의 반응을 막 즐기기 시작했을 때였다.
[‘갑’과 ‘기’가 집현전에서 근무하네요.] [……??] [그, 그래?] [예. 그리고 순서대로 다시 나열해 보면… 갑을병정무기니까.]박문대는 나무로 된 6단계의 잠금장치에서 첫 번째와 여섯 번째를 동시에 눌렀다.
잠금이 해제되었다.
[오오오??] [뭐야, 뭐야!]“아니??”
답까지 3초도 안 걸렸다. MC는 입을 떡 벌리고 모니터를 보았다.
하마터면 앞에 앉은 제작진에게 ‘저 친구가 명문대였나?’ 하고 물어볼 뻔했다.
“저거 원래 저렇게 듣자마자 풀 수 있는 거야?”
여기저기서 제작진이 고개를 흔들며 엑스자를 쳤다. MC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중졸이라며!’
심지어 모니터에 저기 한국대 출신이라는 놈도 박수만 치고 있다. 저 속도는 안 나온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었다.
[이 방에 뭐 다른 게 없을지 좀 살펴보고 나가는 건 어떨까요.]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야~] [이, 이거요…!]방을 한 차례 수색해서 숨겨진 상자와 문제를 발견한 선아현이 명문대생에게 보기를 읽는 역할을 넘겨줬다.
약간의 넌센스가 가미되어 센스가 필요한 논리 문제였는데, 이것도 문제를 다 듣자마자 박문대가 입을 열었다.
[음, 날짐승 세 번, 들짐승 한 번, 바다짐승 두 번, 날짐승 한 번… 같은데요. 그리고 짐승을 사방 신으로 생각하면… 각각 동서남북의 방위로 치환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사방 신? 청룡 이런 거 말하나?] [아아! 나 알겠다! 날짐승은 주작! 이렇게?] [예. 그런 느낌으로요.]위아래와 양옆으로 당길 수 있는 잠금장치는 감을 잡아 신난 출연진들에 의해 순식간에 풀렸다.
[와아아!!] [야 문대 니는 머리가 막 뺑글뺑글 도네! 미칬다 아이가!] [감사합니다.]“어어? 저거 저러면 안 되지 않나??”
모니터의 박문대가 출연진의 칭찬과 손바닥 세례에 꾸벅 고개를 숙였고, 제작진들이 MC의 말에 웅성거렸다.
“저거 원래 한 바퀴 돌고 와야 풀 수 있는 건데…….”
풍수지리 힌트와 장소 힌트 없이 그냥 본인의 센스와 논리로 풀어버렸다는 소리였다.
PD의 말에 MC가 일부러 역정을 냈다.
“어~ 저렇게 똑똑한 애를 섭외했으면 난이도를 대폭 올려서 아주 교양의 쓴맛을 보여줬어야지!”
PD가 침몰하는 장면을 카메라가 담았다. 웃기려는 의도는 충분히 통했으나, MC는 내심 감탄했다.
‘야~ 역시 이런 건 타고난 머리가 더 중요하구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였다.
사실 모니터 속 박문대는 약간 떨떠름했기 때문이다.
‘음, LEET랑 PSAT 기출 베꼈네.’
예습용으로 전 회차를 볼 때도 어딘가 익숙하다 했더니, 단어랑 단계만 좀 추가했을 뿐이지 똑같았다.
‘한 번 푼 건 어떻게든 머리에 남는단 말이지.’
그래서 속도가 훨씬 빨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어도, 솔직히 박문대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논리학 기호만 알면 한 줄로 정리가 끝나니까.’
막 학기에 PSAT 대비로 졸업반용 논리학을 수강해 나름 좋은 성적을 받았던 박문대에게는 민망할 정도의 일이었다.
‘새내기도 안 마치고 휴학한 놈과 비교하기도 그렇지.’
박문대는 한국대생을 약간 짠한 눈으로 보았으나, 곧 자신의 코가 석 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순조롭긴 하다.’
그럭저럭 만족하는 박문대의 주변에서는 상자 안 내용물 확인에 한창이었다.
[안에 뭐 들었어요??]비단에 싸인 내용물은… 막 만들어진 듯한 서적이었다.
그리고 그 표지와 안 모두가 한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오, 음…?] [모르겠다. 이거 무슨 한자뿐인데?] [그러게요.] [혹시, 모르니까… 가지고 갈까요?] [그래그래, 그럼 아현이가 챙기고… 이제 우리 밖으로 나가볼까?] [네!]그때, 박문대는 아현에게 말을 걸었다.
[나 잠깐만 그것 좀 봐도 될까.] [으응!]박문대는 건네어 받은 서적의 속을 빠르게 훑어본 후, 피식 웃었다.
[…?] [아, 고마워.] [자자, 얘들아. 우리 문 같이 열자!] [네!]선아현은 서적을 다시 품에 챙겼고, 출연진들은 방문에 붙어 카운트 다운을 한 끝에 문을 휙 열었다.
[3, 2, 1, 개봉!] […!?] […!!]그리고 굳었다.
문밖은… 오가는 궁인들로 바쁜 복도였다.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접어들 때였다.
“아~ 슬슬 재밌겠어~”
모니터를 보던 MC의 말대로, 본격적인 콩트가 이어졌다.
[괴상망측한 차림새를 한 무리가…!] [으아악!]방 밖으로 나온 멤버들은 궁인들의 질책을 받으며, 밀폐된 거대한 궁에서 우왕좌왕 숨어다니기 시작했다.
[와 미치겠다.] [쉬잇! 조용히 가자.] [아, 여, 여기 문 열렸어요…!] [잘했어 아현아!]잠겨 있지 않은 문을 찾아낸 그들은 방 안의 옷장에서 의복을 찾아냈다.
[오~ 관복인가?] [멋있는데요?]아니었다.
[그것은 성균관에서 입으시던 청금단령이 아니옵니까. 성균관에서 갓 급제하여 오셨다고 들었사옵니다.] [이 프로그램 진짜 백스토리에 목숨 거네요.] [예?] [아, 아니옵니다~]출연진은 자신들이 입은 것이 성균관 유생들이 입는 일종의 교복이라는 것을 궁인들과의 콩트를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의 성균관 스승을 자칭하는 웬 관리에 의해 자신들이 참석할 행사가 왕의 행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서 어전에 들어야 한다!] [어전?] [왕, 저희 왕 뵈러 가야 했던 거였어요!] [와씨, 그렇구나!] [하나,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으냐. 험험.] [네…?]성균관에서 등록금 대신 스승에게 올리는 속수례의 일종으로 작은 음식을 구해온 그들은, 겨우 진짜 관복을 구해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박문대 쟤는 요리도 잘한다 야.”
모니터를 보며 PPL 음료를 마시던 MC가 순 포기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저기서 제작진의 탄식이 울렸다.
이번 출연진의 행보는 그야말로 쾌속이 따로 없었다. 단순히 문제 풀이만 보자면, 분량이 약간 걱정될 정도였다.
물론 전적으로 박문대 탓이었으나 더 기가 막힌 점은 이게 아니었다.
문제가 빨리 풀리는 만큼, 그 타임을 채워줄 수 있게 상황극을 충실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균관에서 가장 즐겨 하시던 놀이가 무엇이옵니까.] [무엇이옵니까.] [무, 문대야…?]박문대의 회피에 선아현이 당황하면서도 열심히 대답하는 것은 꽤 귀여웠다.
‘저놈 저거 개그 분량은 동생들 챙겨주네.’
선아현이 동생이라고 오해한 MC는, 선아현과 골든에이지의 메인보컬에게 콩트를 양보하거나 은근히 종용해 주는 박문대의 모습에 약간 훈훈함과 질림을 느꼈다.
‘오디션 1등 괜히 한 게 아니야~’
딱 봐도 눈치가 귀신 같은 놈이었다.
[음… 어떻게 생각해?] [어, 음. 잠시만요. 계산해 보겠습니다!]심지어 일부 퀴즈에서는 뒤로 물러나서 명문대생에게 기회를 주기도 했는데, 쾌속 정확 박문대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야, 저거 편집이 어떠려나~’
은근히 혀를 차던 MC는 직후, 깨달았다.
‘이거 완전 상황이 반전됐는데…?’
제작진은 원래는 명문대생의 퀴즈 선전을 예상하고 테스타에게 훈훈하고 귀여운 분량을 챙겨줄 생각이었는데, 순 반대가 된 것이다.
게다가 명문대생 쪽은 자기도 이름만 얼추 들어본 그룹이었으니, 이젠 제작진이 굳이 챙겨줄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테스타의 다른 멤버인 선아현이 워낙 마스크가 좋고 반응이 우아해서 훨씬 진짜 유생 같았다.
‘야, 무섭네. 무서워.’
MC는 혀를 내둘렀다.
박문대는 후배인 명문대생을 분명 챙겨줬지만, 명문대생이 받아먹지 못하는 그림이 된 것이다.
그 와중에도 모니터 속 출연진들의 스토리는 쾌속 전진하여, 마지막 관문에 도달했다.
그런데 관문이 이미 열려 있었다.
[그대들이 속히 전달할 것이 있… 어, 어, 가지고 왔구나…?!] [예…?]자신을 집현전의 관료로 소개한 사람이 찾아오라고 요구하려던 물건이, 바로 그들이 첫 번째 방에서 즉시 찾아낸 서적이던 것이다.
[대박!] [문대야! 고맙드아!!] [다 같이 풀었는…, 윽, 감사합니다.]박문대는 출연진들의 손바닥 세례를 다시 한번 감내했다.
[우리 이거 최단 속도 아닌가?] [해 떴을 때 촬영이 끝난다!! 야호!]출연진들은 신이 나서 발걸음을 옮겼고, 드디어 어전에 당도했다.
그리고 감춰진 퀴즈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용무로 어전에 들러 하십니까?] [그것도 알아야 됐어요…?] [으으음…! 얘들아, 후퇴다!]출연진들이 동공을 떨며 작전상 후퇴를 기획할 때였다.
[저, 제가 생각을 해봤습니다.]박문대가 출연진들에게 속삭였다.
“또 너야!”
MC가 즐겁게 외치는 동안, 모니터링실의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박문대의 말을 기다렸다.
[지금 왕은… 세종대왕님이 아닐까 하는데요.] […!] [왜, 왜??] [이 서적이요.]박문대는 전달하라는 미션을 받았던 서적을 들어서 속 내용을 넘겼다. 수많은 한자가 펼쳐졌다.
그리고 박문대의 손은 한 곳에 멈춰서 상단을 가리켰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 장의 첫 문자는… ‘ㄱ’과 똑 닮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어어?] [잠깐만!]출연진들은 해당 서적을 자세히 장마다 확인해 봤다.
확실히 모양새가 현대와 달라 조금 낯설어서 그렇지, 잘 보니 한글의 모음과 자음처럼 보이는 것들이 상단 곳곳에서 보였다.
[헐, 잠깐. 그럼 이게 훈민정음인가?? 그래서 세종대왕님?]]박문대는 애매하게 고갯짓 표현을 흐렸다.
[음. 근데 훈민정음은 대왕님이 직접 만드셨다고 하시니까요. 집현전 학자들이 대왕님께 전달하는 건 이상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남은 건….] [남은 건?] [이 아닐까 하는데요.]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와 사용법을 풀어 적은 서적이었다.
왠지 느낌상 한글로 적혔을 것 같다고 무심코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 한문으로 적혀있던 것이다.
한자를 쓰던 이들에게 ‘한글’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니까.
박문대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건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고 배웠어요. 그러니까 저희는 들어가서, 세종대왕님께 이 서적이 이라고 말씀드린 뒤에 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정답이었다.
“우오아!”
MC가 감탄했다. 앞에서 제작진도 비슷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 안 출연진도 흥분했다.
[이야 문대 씨 그런 것까지 알고 있어?] [와!! 맞는 것 같은데??] [정황이 아주 딱 맞네요! 어쩐지 집현전 등장할 때 느낌이 왔지!]하지만 박문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할 사람이 둘 있는 것 같습니다.] [어?] [아까… 갑을병정무기 중에 ‘갑’과 ‘기’가 집현전에 배속된 문제 기억나세요?] [어, 기억나지!]박문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에는 그게 저희가 아닐까 합니다.] […!] [명수도 일치하고, 막 급제한 것도 똑같잖아요.]생각지도 못하게, 백스토리가 맞물렸다.
[그래서 집현전에서 근무하는 두 사람이 이 해례본을 올리면 될 것 같은데, 나이순으로 따지면…….]박문대는 정중히 손을 들었다.
[그게 형님과… 이 동생인 거죠.] […!!]박문대는 희미하게 웃으며, 제일 나이 많은 출연진과 제일 어린 출연진, 그러니까 명문대생을 가리켰다.
모니터링실에서는 이제 그냥 감탄만 나왔다.
“대단하다 진짜.”
출연진의 말대로, 맞았다.
‘저건 한 번 깨진 뒤에 힌트 많이 받고 간신히 알아내는 그림이었지? 몰라도 그냥 넘어가고.’
“한국사도 다 알아? 어휴.”
MC는 최우의 진땀 나는 문답까지 피해간 박문대에게 질렸으나, 어쨌든 얼른 옷을 주워입었다.
시간이 됐다.
“자, 내려갑시다~”
그는 의관 행렬 비슷하게 차려입은 스탭들을 데리고, 어전으로 갔다.
마침, 출연진들도 마음을 굳히고 어전 앞을 통과하고 있었다.
“집현전의 ‘갑’과 ‘기’가 전하께 을 올리기 위하여 왔습니다.”
“…어서 오시오.”
“예스!”
출연진들은 환호를 지르며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았다.
용상에 앉은 MC를.
“왔는가.”
“어어억!!”
MC는 의기양양하게 을 가지고 등장한 출연진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형님! 아니, 세종대왕님!”
그리고 당황한 출연진 맏형이 그를 세종대왕이라고 불렀다가 ‘※세종은 묘호(廟號)라 사후에 정해집니다.’, ‘극도의 미리니름’이라는 자막이 붙었다는 개그를 끝으로, 촬영은 마무리되었다.
“훌륭하도다!”
박문대의 풀이가 정답으로 밝혀진 채로 말이다.
“이야~ 대단했어!”
MC는 촬영을 끝마치며 인사를 하면서, 박문대의 어깨를 두드렸다.
“감사합니다.”
박문대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MC는 명문대생과 박문대를 슬쩍 돌아보았다.
‘비교가 안 되겠네.’
박문대의 문답 분량 폭주와, 엄청난 활약이 그대로 방송을 타는 것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박문대는 여기에 따른 부작용도 이미 고려하고 있었다.
* * *
“촤, 촬영 재밌었어!”
“그러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알찬 시간이었다.
선아현은 헤헤 웃었다.
“무, 문대는… 한국사도 잘 아는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예습했어.”
“어, 어?”
말 그대로의 뜻이다. 예습했다.
“그 방송 이전 회차들을 좀 봐뒀거든.”
정식으로 본 건 5편 정도다. 나머지는 좀 다르게 했다.
우선 의 전 회차 25화 정도를 제목과 줄거리로 표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을 제외한 뒤 비슷한 출제 경향성에서 한국사에 남은 인상적인 사건 중, 최신 3회차와 겹치지 않은 시대에 일어난 것을 선정하는 것이다.
‘한글 창제와 6월 항쟁이 제일 유력했어.’
그 후엔 그쯤 일어난 업적과 사건을 지엽적인 것까지 다 외우면 된다.
‘범위가 그 정도로 줄면, 이런 것도 할 만하지.’
공무원 준비하면서 워낙 지식을 지엽적으로 외운 경험이 많아서 말이다.
게다가 한국사는 기존에 공부한 가닥도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고, 고생했어…. 지, 진짜 멋있었어!”
“고맙다. 너도 잘하더라. 물건도 잘 찾고. 콩트도 잘하고.”
“아, 아니…, 그건 네가!”
“내가 뭘.”
나는 차 안에서 이동하며 선아현과 적당히 계속 잡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다음 촬영장에 도착해서 그룹과 합류하기 직전, 슬쩍 화장실로 빠졌다.
“잠깐만 들렀다 갈게요.”
“그래 오케이~”
“아, 알았어!”
하지만 화장실에 가는 대신, 주차장 뒤편의 밀폐공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때가 됐다.’
오늘 촬영은 바로 이번 주말 심야 방영 예정이다. 그 전에 처리해 버릴 생각이었다.
쥐새끼를 말이다.
“예, 예 안녕하세요.”
혹시 운영팀에 전화 중이냐고? 아니다.
“매니지먼트실 맞죠?”
매니지먼트실. 운영팀을 하위조직으로 두고 있는 실이다.
“저 실장님과 면담 가능할까요.”
원래 이런 건 관련인 중에 가장 높은 사람에게 다이렉트로 꽂는 게 제일 효과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