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8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86화
나는 팔짱을 꼈다.
“그러니까… 제 솔로 무대를 수정하는 게 좋겠다는 말씀이죠.”
“그래.”
류청우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콘서트 첫날을 잘 마친 것을 자축할 겸, 숙소에서 적당히 특식이나 시켜 먹는데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설마 나중에 이야기하자던 게 이거였나.’
장치 담당자를 잘라야지, 왜 애꿎은 내가 퍼포먼스를 포기해야 하냐.
그것도 혼자 하는 무대라 다른 누구한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닌데 이래라저래라하는 소리 듣는 것도 웃기는군.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냥 실수한 사람 색출해서 바꾸고 계속하면 될 텐데요. 그 무대에서 특별히 부담 느낀 적 없습니다.”
“넌 부담 안 느껴도, 네 손목이나 허리는 느낄 수 있어.”
나는 한숨을 참았다.
“…괜찮다니까요. 애초에 못 참겠으면 안 했을 겁니다.”
큰세진이 말을 물었다.
그렇다, 류청우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무슨 회의라도 하는 것처럼 각 잡고 듣는 중이다.
“박문대. 우리 투어 일정 당장 잡힌 것만 3달이 넘어. 공연 횟수는 서울 제외해도 12번이야.”
안다.
“너 그거 12번이나 할 수 있어? 매번 새 공연장에서 한 번도 실수 안 하고 할 수 있겠냐고.”
“그러니까 실수해도 괜찮았….”
“아, 안 괜찮았어.”
“…!”
…선아현이다.
“문대 너 기절했잖아… 자, 잘못하면, 정말 큰일 나. 소, 손목도 아직 아픈데…….”
“…….”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나는 어깨를 주물렀다.
“…어차피 해외 나갈 때까진 시간이 있어. 그때 쉬면 충분히 회복 가능해.”
“문대야.”
류청우가 머리를 짚었다.
“네가 의사야?”
“…!”
“무슨 부상이든… 뼈가 다친 순간부터 후유증이 없을 거라곤 장담할 수 없어.”
류청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장담해.”
“…….”
이 새끼 치트키 쓰네.
나는 부상 후유증으로 최전성기도 전에 은퇴한 전 국가대표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물론 항복 선언은 아니다.
‘감정부터 잡아야 하나.’
‘부상’ 같은 예민한 키워드가 들어간 이상, 논리로만 설득하는 게 들어먹을 상대는 아니다.
‘어느 쪽이든 그럴싸하게만 말하면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특성은 터질 수도 있다.’
확률은 절반 이상 아닌가.
나는 적절한 구조를 하나 짜냈다. 그리고 주저하는 것처럼 말했다.
이런 식으로 호소하는 거지.
“그렇지만… 이걸 보여드리려고 오래 연습했는데요.”
“…그건.”
“구상부터 많이 고민하다가 만들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해보니까, 정말 반응도 좋았고…….”
나는 진중하게 말을 마무리했다.
“딱 하루 하고 그만두긴 너무 아까워요. 힘닿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습니다. 부상 회복이 너무 더디면 나중에 양해 구하고 바꿀게요.”
류청우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됐나.’
그러나 큰세진이 기가 찬 얼굴로 끼어들었다.
“너 실제로 장치 타본 건 2주도 안 되면서 무슨 연습을 오래 해.”
이 새끼가.
“…그러니까, 구상을 오래 했다고.”
“아 그래요? 너 다친 거 변명 만들려고 이거 골랐지?”
“…!”
“하루 해서 먹혔을 테니까 이제 좀 대안으로 가자. 자제하다가 나중에 완전히 회복하면 해도 되잖아. 콘서트 앞으로도 계속할 텐데.”
큰세진이 정색한 채 계속 말을 이었다.
“장기적으로 좀 봐. 너 이번 투어 끝나면 은퇴할 거야?”
“…!”
“아니잖아.”
그거야… 모르지.
계속 못 할 수도 있지.
그때, 나는 뭐에 대가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깨달았다.
‘이걸 내가 신경 쓰고 있었나.’
이번 투어로 상태이상이 모두 끝나면, 내가 계속 박문대로 있을지 모르겠다는 점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할 수 있을 때 꼭 하고 싶었다고…?’
이건 너무 감상적이라 좀……. 무슨 애도 아니고.
나는 순간 떠오른 문장을 지우고 더 상식적인 뉘앙스를 잡았다.
‘그래. 하는 동안은 잘하자 싶었나 보군’
무대는 내 생각보다 재밌었고, 보람이 있는 작업이었다. 게다가 보수까지 좋으니 나무랄 곳이 없다.
그 감각에 몰입한 상태에서 장기적 확신이 없으니, 내 기준이 좀 흐트러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게 잠시 고민에 잠긴 사이, 큰세진이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부상 후유증 계속 남아서 퍼포먼스 방해받느니 지금 딱 회복하고 가.”
“…….”
그래, X발.
네 말도 맞다.
‘내 몸 아니라고 막 쓰는 느낌도 좀 그렇긴 하지.’
어쩌면, 박문대로 계속 살 수도 있고 말이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알았습니다.”
“…!”
“대안은 이미 있으니까, 내일 아침에 상태 보고 다시 생각해 볼게요.”
조용히 듣던 배세진이 갑자기 외쳤다.
“너, 너 혼자 보지 말고! 병원 가서!”
“…음, 그래요.”
어차피 내 솔로 무대이니 무시하고 강행할 수도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수용해 보자.
“잘 생각했어.”
“내일 병원 꼭 매니저 대동해서 가고.”
“그래야죠.”
‘이랬는데 의사가 괜찮다고 하면 재밌겠군.’
나는 답지 않게 희망찬 예측을 그리며, 내일 아침으로 결정을 유보했다.
참고로, 별 의미 없는 행보였다.
바로 그날 새벽에 콘서트 티켓 가진 사람들끼리 언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제법 크게.
* * *
처음 콘서트가 막 끝났을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끝내줬다.
-얘들아 사랑해 테스타 영원해
-정신 못 차리겠어 나 왜 올콘 아니야ㅠ 중콘 자리도 구했어야지 멍청아ㅠㅠ
-진심으로 모든 무대가 다 좋았다 자본 쏟은 게 철철 넘치는데 그것보다 퍼포먼스가 더 기억에 남아… 자세한 후기는 귀가 후 올릴 예정
-문댕댕 나의 자근 스윗사과떡 울보왕 또 갱신ㅠㅠ (사진)
-너무 울고 소리를 질러서 타자 치기도 힘겨움 하지만 주말에도 내 자리가 있다는 게 인생 최고의 순간
물밑에서만 슬쩍 올리는 한탄 글도, 아쉬움에 애매한 반응도 거의 없었다. 그냥 즐거움의 물결이었다.
게다가 트윈 홈마의 예상처럼, 테스타의 토크 즉석 무대는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제법 화제가 되었다.
그 무대를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들은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위튜브에 우수수 올라왔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장에서 봤으면 나 울었을 듯 너무 웃어서
-옷 벗어 던지는 거 너무 웃겨 미친 거 아니냐고ㅋㅋㅋㅋㅋ
-앞에서 잘생긴 애들 동요 흐뭇하게 보다가 ????됨
-아니 김래빈 원래 저런 이미지였어?ㅋㅋㅋ 상상도 못 함 개웃기네 진짜
-하필 찢고 나온 게 티슈 곽인 것도 웃음벨임
회사는 발 빠르게 SNS에 약간 위트 섞인 글을 남기며 대세에 탑승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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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테스타 모든 조합 다 소중해☆
투어에서의 모든 즉석 무대는 VOD 패키지에 특별 구성으로 포함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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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티원이 일을 빨리해?’라며 의구심 섞인 시선을 보냈으나, 그래도 즉석 무대를 정식으로도 다 모아볼 수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솔로곡들 쭉 이어보는 거 너무 좋았다 마지막에 청우 끝나면서 애들 단체로 나오는 거 소름ㅠㅠ
-아현이 컨디션 좋아 보였어 날아다니더라 앵콜 때 여기저기 인사도 잘하고… 다만 내일은 아현이가 벌칙 받으면 좋겠다 러뷰어 친구들아 제발 틀려줘 (선아현 인사 사진)
-차유진 댄스 브레이크 진짜 살면서 한 번쯤은 생눈으로 봐야 됨
귀가한 관객들에 의해 자세한 후기가 난무하고 내일의 콘서트를 기대하는 글이 쌓이는 밤.
당연하겠지만, 박문대에 대한 글도 수없이 많이 올라왔다.
-박문대는 천사야 오늘 깨닫고 말았다
-내가 이 돈으로 봐도 괜찮을 걸까 의문이 들 세기의 대천재 퍼포먼스 다들 문댕댕 하세요
-허공에 뜨는 순간, 천이 풀리는 순간의 타이밍과 색감이 딱 문대 취향이더라 분명 문대가 기획에 참여했다는 생각이 들었음.
다치기까지 하면서 이걸 보여주고 싶었구나, 많은 생각이 들어서 오는 길에 눈물이 줄줄 쏟아짐 광역버스 사연녀 됨
-솔직히 부상 남아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진짜 무섭게 잘했음 우리 댕댕쓰 회복 빨라서 다행이지만 무리하지 말자ㅠㅠ
박문대가 우아하게 늘어진 채 공중에 떠오르는 순간을 찍은 절묘한 샷들이 온갖 각도와 버전으로 공유를 타고 SNS를 채웠다.
부상에 대한 걱정도 간혹 나왔지만, 워낙 무대가 좋았고 박문대가 태연했던 탓에 ‘회복이 빨랐나 보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압도적이었다.
그렇게 믿는 쪽이 다음에도 그 무대를 실제로 볼 수 있으니, 더 편의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르륵 여론이 넘어가려던 순간.
글 하나가 발굴되었다.
[남돌 콘 스텝 중간 후기]바로 ‘혼자 공중에 올라가는 무대’를 한 아이돌의 졸도를 증언하는, 알바의 후기 글이었다.
제법 빠르게 삭제되었으나, 인증 사진까지 올라온 마당이니 진짜인 것 같은 느낌에 캡처한 사람은 당연히 있었다.
그리고 정황을 맞춰보면 당연히 박문대가 나왔다.
-산소 마스크 쓰고 졸도…?
-심장 떨어질 것 같다
-개싸해 진짜 문대라면 그랬을 것 같아서 더 미치겠어
-창피하다 창피해 이 새끼들은 진짜 머가리가 없나 저걸 믿고 공유를 태워ㅋㅋ
-돌들 콘서트 하면 산소마스크 다들 쓰지 않나 왜 저렇게 유난이지 열심히 하겠다는데 걍 즐겨 돈 내고 웬 시녀질임
-부상 회복 안 됐으면 진짜 아팠을 텐데 졸도할 정도였으면 상상이 안 돼 사진도 못 보겠음 어떡해 진짜…
-그냥 어그로 같은데 왤케 부화뇌동이지
-공식적으로 나온 이야기도 없는데 다들 좀 진정했으면… 혹시 일부러 이러나 곰머 대천재 솔로 무대 견제인가;
온갖 의견이 소용돌이치며 팬들이 요동쳤다.
가뜩이나 부상 후유증을 걱정하던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공식적인 것도 아닌 글 하나였기에 다양한 입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입장은 시간이 흐르며 더 심화되었다.
-이건 총공감이다
-당장 오늘도 콘서트잖아 또 하다가 부상 악화되면 어떡해 진짜 못 참겠음
-제발 앞서가지 말자 또 머글들한테 조롱거리 되고 싶나
-일단 맞는 말인지는 확인하는 게 좋을 듯
-긁어 부스럼… 어휴 돌이 잘하면 뭐 하냐 진짜 탈빠가 답인가
소속사에 압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과 회의적인 사람들의 의견이 교차하며 개판이었다.
조금 있으면 분열될 기세였다.
그리고 박문대는 아침에 일어나서 이 꼴을 확인했다.
“…….”
뒷골이 당겼다.
‘이게 풀리냐.’
그는 ‘졸도라고 표현하니 심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잠시 몽롱해졌던 것뿐’이라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 사태까지 오니 박문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관객들이 무대를 보면서 자신의 건강을 조마조마 걱정하는 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나는 아침밥을 먹으며 인정했다.
“…그만둬야겠네.”
“그, 그렇지!”
“잘 생각했어.”
나는 호응하는 멤버들을 보며 덤덤히 한마디 덧붙였다.
“어. 근데 서울은 끝내고.”
“…??”
속된 말로, 무슨 개소리냐는 시선이 쏟아지는군.
상관없다. 나는 꿋꿋이 말했다.
“관객들한테 설명하기 괜찮은 방법이 생각났거든. 이게 베스트야.”
“문대야.”
“서울 끝나면 진짜 다 회복할 때까지는 안 할게요.”
내 무대를 하겠다고 내가 설득하는 꼴이 웃기긴 하다만, 어쨌든 이놈들은 마지못해 납득은 했다.
‘이거 참.’
회사에 연락은 직후 바로 넣었다.
그리고 둘째 날 콘서트가 시작하기 전.
회사를 통해 공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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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금요일 테스타의 콘서트 중 ‘꽃 그믐’ 곡의 퍼포먼스에서 무대 장치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재설치의 위험성을 고려하여, 아티스트와의 상의 끝에 해당 곡의 퍼포먼스는 수정되었습니다.
다만 아티스트의 의사에 따라, 서울(Seoul)에서 진행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전문가의 입회하에 변경 없이 안전히 진행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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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박문대는 멀쩡해’를 길게 늘여 쓴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박문대 멀쩡한데 장치 오류가 있어서 그랬어, 앞으로는 뺄게’다.
소속사도 팬들의 공격이 상당히 의식했는지, 어차피 이야기 다 도는 마당이니 장치 오류를 공개하는 것에는 동의했다.
욕은 좀 먹겠지만, 어차피 퍼포먼스를 수정해야 한다면 내 부상을 부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예방’에 중점을 두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 듯했다.
‘이러나저러나 또 장치 오류냐, 일 개못한다고 욕먹을 것 같은데.’
내가 신경 써줄 바는 아니다. 어쨌든, 담당자가 더 전문적인 사람으로 바뀌었으니 이제 사고 날 일은 없겠지.
문제는 그다음에 회사에게 들은 말이었다.
-오늘 콘서트에 이번 아주사 파이널 멤버들이 보러 올 예정인데요. 카메라 들어올 예정인데, 아주 짧게 보고 가실 거라 편집 걱정 안 하셔도 괜찮고…….
바로 이번 시즌4 참가자들이 테스타 콘서트를 보러 온다는 말이다.
물론 방송 컨텐츠다. 아마 직후 방영될 결승전에 ‘성공적인 테스타 콘서트를 보고 꿈을 다짐하는 참가자들’을 몇 컷 따 넣을 생각인 듯싶었다.
어차피 데뷔하면 이 소속사로 오기도 하니, 간을 보는 느낌도 있고.
‘음, 회사의 자충수 같은데.’
사실 단순히 콘서트 참석뿐이라면 멤버가 거부하기도 애매한 건이다.
‘이미 회사가 준 초대권을 뺏으라고 하기도 웃기지.’
Tnet 쪽 감정도 상할 테니 말이다.
나는 약간 고민할 뻔했다.
그러나 직후, 굳이 내가 심력을 소모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일도 아닌데 뭐.
‘회사가 굳이 불바다를 보고 싶다면야….’
놔두자, 그냥.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