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2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2화
테스타의 휴가 3일이 결정된 것은 꽤 전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아티스트의 컨디션이 잘 관리되어야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본부장의 발언이 놀랍게도 철회되지 않고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치고는 매니지먼트실에 투자 안 하는 놈이지만.’
사실 소속 가수를 신경 썼다기보단 본인 경영철학적 아집에 가까운 것 같다만… 어쨌든 나야 이득이니 반대할 마음은 전혀 없다.
덕분에 사흘간 혼자 조용히 보낼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약간 기대도 있다.
‘그때는 모니터링 좀 할 수 있겠어.’
최근에 액정으로 본 게 털 달린 사족 짐승뿐이라 떨떠름하다.
“……음.”
내가 사용량을 조절하겠다고 말하긴 했는데, 비활동기 내내 인터넷 검색 여부를 감시당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단 말이지.
직무유기도 이 정도 되면 꿀이 아니라 액상과당이다.
그러니 저놈들이 집에 돌아간 시간을 이용해 나도 할 일을 할 예정이다.
그리고 혼자서 조용히 쉬는 거지.
…물론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하고 제대로 휴가를 즐긴 적이 한 번도 없긴 하다만.
‘애초에 휴가를 몇 번 받은 적도 없으니까.’
이번에는 모든 변수를 차단한 뒤 기필코 혼자 있겠다. 그런 구상을 했다만….
뜬금없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좋은 쪽으로.
“형들, 혹시 MT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래빈이 휴가 바로 전주에 이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MT?”
“멤버십 트레이닝의 약자로서, 동료 간 화합과 팀워크를 돈독히 하는 짧은 여행 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에이 래빈아, 그건 알지~ MT 가고 싶다는 뜻이냐고 물어본 거야!”
“아, 예!”
큰세진의 타이름에 김래빈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웃긴 건 옆에서 차유진도 똑같이 그러고 있었다는 점이다.
‘둘이 작당했냐.’
다음 말을 들으니 맞는 것 같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일 외에 화제는 거의 공유하지 못하는 아쉬운 점을 보완했으면 합니다!”
“놀러 가요, 저 한국 바다 갈래요!”
지원사격 한번 적극적이군.
류청우는 약간 난감한 얼굴로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래? 휴가인데 집에 안 가봐도 괜찮겠어?”
“3일? 어허, 저 미국 못 가요! 부모님 바빠요!”
차유진이 냉큼 대답했다.
‘음,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겠군.’
사흘 가지곤 차유진은 미국에 못 간다. 그리고 휴가철이 아닌 시기상 부모님이 오시기도 애매할 것이다.
‘본인이 집 못 가서 심심할 테니 멤버들과라도 놀아야겠다 이건가.’
계산 한번 확실하구만.
나는 떨떠름하게 입을 다물었다가, 갑자기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설마 이거 무산되면 차유진이 휴가 내내 숙소에 있나.’
야 설마.
“휴가를 완전히 사용하자는 주장은 아닙니다. 단지 휴가 전날부터 1박 2일 동안 외딴곳에서 MT를 진행한 뒤 휴가 첫날 오전에 집으로 복귀하는 계획입니다!”
“오, 좋은데? 다들 어떠세요?”
“나, 나도 좋을 것 같아…!”
“…하루쯤은 괜찮겠지.”
여기저기서 찬성표가 쏟아진다. 휴가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짧게 여행을 가자는 김래빈의 의견이 제법 그럴싸했나 보다.
“…….”
“문대 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냉큼 대답했다.
“좋지. 가자.”
“…! 네!”
딴소리 못 하게 ‘가자’로 방점을 찍어버리려고 마지막까지 기다렸지.
다 생각이 있었다.
‘누군가 차유진을 데리고 가게 만들어야 한다.’
MT 동안 어떻게든 상황을 몰아서 휴가 동안 차유진을 저놈들 집 중 하나로 보내 버린다.
“오~ 문대 적극적인데!”
“그래, 한번 가는 것도 좋지. 혹시 래빈이가 생각해 둔 곳 있어?”
“저 있어요! 강하도 바다 가요!”
“강화도야! …예, 형. 묵었으면 하는 곳을 몇 군데 봐두었습니다.”
나는 턱을 만지면 심사숙고했다.
‘음, 류청우, 큰세진, 김래빈 정도가 후보인가.’
나머지 둘은 차유진과 코드가 안 맞거나 상대를 부담스러워하니 가능성이 극히 낮다.
‘흠.’
나는 목적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놈들을 보며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잠시 뒤.
“그럼 위치랑 내부 고려해서 강화도 여길 예약할게. 다들 괜찮다는 거지?”
“네넵~”
“회사에는 제가 얘기해 둘까요.”
“그럼 고맙지.”
내가 회사에 양해를 구하며 비상 연락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준비가 끝났다.
며칠 내로 당장 승부 볼 일이라 유출 걱정은 크지 않았다.
차 역시 매니저 쪽으로 렌트 해서 운전자만 류청우도 함께 등록할 예정이라 추적될 염려도 덜하다.
‘그리고 여차하면 매니저가 올 수 있도록 대기하겠다고 했고.’
매니저가 최근 눈에 띄게 협조적으로 변했다. 아무래도 전담팀 구성 계획이 본격화되니 위기감에 약발이 잘 먹힌 것 같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후보 펜션 예약까지 수월히 마무리되었다. 아무래도 보안과 시설 탓에 비수기에도 가격이 센 덕인 것 같았다.
“자, 예약 완료. 재밌게 갔다 오자!”
“와아아!”
“래, 래빈아, 좋은 제안해 줘서 고마워…!”
“과분한 말씀입니다. 흔쾌히 동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신났군.
나는 소파에 팔을 젖혀 누웠다.
‘…컨텐츠도 아닌데 이 인원으로 어디 가는 건 처음이긴 하지.’
일이 아닌 여행이 신선하긴 했다.
사실 직장 동료끼리 가는 시점에서 워크샵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든다만… 특별히 불편해하는 놈도 없으니 굳이 꺼낼 말은 아니다.
심지어 배세진마저도 은근히 기대하는 기색이다.
오죽했으면, 이놈은 당일 렌트 카 안에서 이런 말까지 꺼냈으니까.
“…이런 걸 가보는 건 처음이야.”
내 옆자리의 배세진은 본인이 꺼내고도 왜 말했는지 후회하는 눈초리였으나, 이미 리액션은 터진 후였다.
“진짜요?”
“수학여행 등 여러 행사에 참여해 보신 적 없습니까?”
“…그런 건 별로 안 좋아해서, 안 갔어.”
“그러시군요! 확실히 수십 명이 함께 이동하는 여행은 선택의 폭이 좁고 불편한 경우가 잦습니다.”
김래빈은 솔직한 호불호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는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 오묘한 뉘앙스를 다른 놈들은 다 눈치챈 기색이었다.
‘학교 단체 생활에 잘 못 섞였나 보군.’
특별히 놀랍진 않다.
그때, 선아현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 저도 많이 가본 적 없어요…!”
쓸데없는 소리를 한 자신에 대한 현타가 가득하던 배세진의 얼굴이 조금 나아졌다.
“…그래?”
“네!”
좀 거들어줄까.
“저도 별로 안 가봤어요. 그냥 갈 때 재밌게 다녀오면 되죠.”
“…! 마, 맞아. 오늘 여행이 즐거울 것 같아서, 기대가 돼요…!”
“…나도.”
배세진이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묘하게 아련하다.
‘분위기 왜 이러냐.’
다행히 이 오그라드는 분위기는 다음 순간에 작살났다.
“저도 기대가 큽니다. 옵션이 완벽했습니다!”
“바다 좋아요!”
“하하, 분위기 막 훈훈한데요? 여기서 딱 선곡 들어가야죠~”
아무 생각 없는 놈들의 해맑은 발언 뒤로 큰세진이 노래를 틀었기 때문이다.
두둥둥두둥 두둥두둥둥둥둥!
이건… 마법소년 EDM 버전이군.
‘언제 김래빈한테 받았냐.’
“아, 오늘~ 일 생각 버리고, 그냥 우리끼리 재밌게 놀고 오는 겁니다~ 테스타 가자!”
“하하!”
운전석의 류청우가 웃었다.
‘강화도까지 한 시간 반 걸리나.’
그 정도면 앞자리에 큰세진이 앉았으니 전담으로 류청우 말 상대를 해주겠군.
‘알아서 잘 굴러가겠어.’
나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놈들 사이에서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이놈들 분명 도착해서 게임부터 달리기까지 별짓을 다 할 테니, 지금이라도 육체의 평화를 즐기려는 생각이었다.
“내일 만난 너를! 너너너 너를!”
“으하하하!”
그리고 이 판단이 맞았다.
* * *
그날 자정 넘은 시각.
“차유진!!”
“와하하하!”
제일 어린 두 놈이 해변을 질주하고 있다.
‘안 지치나.’
일이 아니라 그런지 이놈들 지치지를 않는다.
-바베큐! 바베큐!
-여기 노래방 기계도 있는데요?
펜션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러더니, 고기 굽기부터 온수 풀장까지 다 알차게 써먹고도 힘이 펄펄 넘친다.
‘이쯤 되면 다 뻗을 줄 알았는데.’
잘하면 밤새 저러겠군.
더 웃기건 그나마 지금 제일 정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불꽃놀이다.
“예, 예쁘다.”
“그러게.”
물론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막대형 몇 개 들고 펜션 앞 온수 풀장 근처에서 흔드는 것이다.
‘해변에서 하면 쓸데없이 불법 시비 걸릴 수도 있으니까.’
해수욕장에서는 이거 불법이거든.
그리고 방금 차유진이 해변을 배경으로 불꽃놀이 사진을 찍으려다가 김래빈에게 적발당해 쫓기는 중이다.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린다.
“물을 끼얹는 건 비상식적… 어프후!”
음, 잘 놀고 있군.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다 탄 막대형 폭죽을 뽑아 정리하려 했다.
그때였다.
“문대문대~ 맥주?”
“…!”
말을 거는 큰세진의 손에는… 살얼음 낀 수입 맥주 캔이 들려 있었다.
…도수가 낮은 과일맥주 종류다.
“놀러 온 거잖아. 너 금주도 몇 달째인데, 기분 좋을 때니까 한 잔 마셔도 되지 않나 해서~”
“…….”
그렇긴 하지.
나는 말없이 캔을 받아서 땄다.
탁.
그러자 옆에서 피식피식 웃는 소리가 들린다.
“웃기냐.”
“야, 그럴 리가~ 그냥 훈훈해서 그렇지.”
큰세진이 킬킬 웃으며 옆 선베드에 드러누웠다.
“아, 분위기 좋다~”
이놈도 좀 마셨나 보군. 나는 천천히 맥주를 들이켜며 밤바람을 쐬었다.
…확실히, 기분은 괜찮았다.
그래도 특별히 술을 미친 듯이 들이키고 싶거나, 간절히 더 마시고 싶진 않았다.
담담했다.
“…….”
이 몇 달의 금주가 효과가 있었다는 확실한 증명이었다.
습관적 연결고리가 끊겼다.
‘고맙다고 해야겠군.’
나는 저쪽에서 두 번째 막대형 폭죽을 고르던 배세진을 짧게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큰세진이 갑자기 툭 말을 던졌다.
“우리 이대로 잘 가겠지?”
“…….”
“야, 진짜… 당장 삼 년 전으로 돌아가서 나한테 앨범 100만 장 판다고 하면 안 믿을 거야.”
“다들 그렇지.”
“그럴까? 그렇지!”
큰세진이 웃었다. 보고 있던 선아현이 따라서 웃는 게 보였다.
“아무튼~ 나 이 팀 참… 마음에 든다. 우리 친구들 내가 많이 사랑해~ 올해도 잘하자고!”
“으응! 자, 잘하자!”
일단 어깨동무는 놔라. 셋이나 이러니까 선베드에서 굴러떨어지겠다.
그래도 이 정도 말은 해도 괜찮겠지.
“열심히 가자.”
“좋아!”
등을 격려하듯 때린 손이 떨어졌다. …뭐, 기분이 나쁘진 않다.
나는 웃고 말기로 했다.
“아, 문대야. 근데 사실 그거 무알콜이다?”
“……!”
“패키지 똑같더라고. 어, 근데 문대 괜찮은 것 같은데~ 무알콜인 것도 모르고. 앞으로는 한두 캔 마셔도 되겠는데?”
“마, 많이 좋아진 것 같아…!”
이건 웃고 말기엔 좀 선 넘은 것 같기도 하군.
흠, 그래도 결과가 좋은 점과 잠시 후 차유진 넘기기 작업의 수월함을 위해 넘어가 줄까.
판결을 고민하던 때였다.
따당- 따다다당-!
갑자기 웬 희한한 벨소리가 울렸다.
“어, 내 건 아닌데.”
“나, 나도.”
나는 근처 선베드에서 해당 스마트폰을 바로 확인했다.
[누나]이건 김래빈이다.
“래빈이. 가져다주고 온다.”
“오케이~”
“내, 내가 갔다 올까?”
“괜찮아.”
나는 해변으로 발을 옮겼다. 다행히 쫓고 쫓기던 두 놈은 펜션 근처로 돌아와 있었다.
“차유진 너는 너무 사회적 양식이 부족…!”
“래빈아, 너 전화.”
“아, 감사합니다!”
김래빈은 바닷물에 젖은 채로 씩씩대다가도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직 울리고 있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받았다.
“누나. 응, 나는 잘…….”
그렇게 목적을 완수한 내가 도로 펜션 앞으로 돌아가 보려던 참이었다.
낌새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어?”
“…!”
김래빈의 되물음에는 갑자기 이상한 기색이 섞였다.
내가 바로 알아차릴 만한 투의.
그러니까… 굉장히 충격적인 소리 들었을 때 사람이 내는 얼빠진 소리 같은 것.
반사적으로 발이 멈췄다.
고개를 돌아보았다.
“어…, 아니, 무, 무슨….”
“…….”
“김래빈?”
차유진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지, 김래빈은 어두운 해변가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그저 서 있었다.
안 떨리는 것이 없었다.
“모, 모르겠…. 왜?”
“래빈아?”
“…!”
류청우가 근처에서 이상한 분위기를 보고 끼어들어 김래빈의 팔을 잡았다.
그때야 전화를 내린 김래빈이, 손을 벌벌 떨며 대단했다.
“하, 할머니… 도, 돌아가실 것 같다고…….”
“…!!”
그 순간, 해변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잠깐, 누나분 맞으셔?”
“네, 네….”
“어디서 전화 왔는데.”
“벼, 병원…? 그러니까… 집에….”
“집 근처 큰 병원이야?”
“네, 네….”
김래빈은 울지도 못하는 얼굴이었다.
하필 또 여행지에서.
마치 지난 상황이 똑같이 반복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뭐야.”
“래빈이 왜 그래?”
주변에서 다른 멤버들이 뛰어왔다.
류청우가 당장 김래빈의 등을 두드렸다.
“래빈아, 심호흡하고.”
“예, 예….”
“일단, 옷 갈아입고….”
나는 당장 펜션으로 달려갔다.
“문대야?”
그리고 바로 현관에서 차 키를 챙겨서 해변으로 다시 달려 나와 김래빈에게 말했다.
“차 타.”
저럴 때가 아니다. 옷이고 심호흡이고 가면서 해도 되니까 당장….
“…박문대, 너 면허 없어. 진정해.”
맞다.
나는 작게 속삭인 큰세진의 말에, 차 키를 류청우에게 넘겼다.
“…그래, 래빈아. 지금 바로 이동하는 게 낫겠다. 옷은 차 안에서 갈아입자.”
“…….”
김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해변을 가로질러 바로 주차장소로 가서, 차를 탔다.
나는 차 뒷자리 구석에 처박혔다.
“다들 탔지? 움직인다.”
“네.”
차는 바로 출발했다.
…그렇게, 휴가 첫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