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5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59화
밤 연습은 계획대로 빠르게 끝났다. 나는 숙소로 복귀한 뒤, 씻으면서 큰세진과의 대화를 복기했다.
놈의 말은 결국 그것 아닌가.
‘선아현의 자존심이 상한다… 라.’
친한 또래에게 텃세에 당하는 쪽팔린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 이거지.
“음.”
부정하진 않겠다. 고려한 적 없는 관점이다.
처음 에서 만났을 때부터 졸졸 따라다니던 놈이라 그런가, 동갑이란 느낌이 별로 안 들어서 말이다.
‘솔직히 또래란 것도 외관뿐이고.’
양심이 있으면 내가 그놈이랑 또래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나. 내가 회사원까진 모르겠어도 일단 29살까지의 기억은 확실해서 말이다.
애초에 또래라고 쳐도 애매했다.
‘선아현이 그런 걸 신경 쓰는 놈인지도 모르겠고.’
다른 놈들이면 모를까, 선아현은 그냥 속없어 보일 만큼 착한 놈이라 고맙게나 받아들일 것 같은데.
다만 하나는 인정한다.
‘매번 해결해 줄 순 없지.’
아무리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라지만, 내가 그간 놈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뭘 많이 지시하긴 했다.
이제 선아현도 직접 해볼 시점인가.
“근성은 확실한 놈이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시상식에서 그 잠깐을 제외하면 특별히 안색이 어두워 보이지도 않았으니, 놔둬 보자.
무리하고 있는 것 같은 낌새만 확인하도록 조사 정도만 해두면 되겠지.
달칵.
나는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냉장고로 향했다. 감량 중이니 이 밤에 우유는 좀 그렇고, 얼음물이라도 마실 생각이었다.
선아현은 방에 없었다.
‘거실에 있겠지.’
그리고 내가 복도의 코너를 돌기 전, 말소리를 들었다.
“그, 그러니까… 마, 마음에 안 들어서 칭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어떻게 생각해?”
“나 안 좋아하는데 칭찬해요?”
“으, 으응. 비슷해.”
차유진과 선아현의 대화였다.
차유진이 거침없이 대답하는 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왜 마음에 안 드는데 칭찬해요?”
“모, 모르겠어…. 화낼 수 없어서일까?”
“OK, OK.”
놈이 해맑게 대답했다.
“그럼 저는 ‘I know~’ 해요! 저 잘하는 거 나도 알아요!”
“그, 그래…?”
“네. 칭찬 좋아요!”
상대가 무슨 마음이든 칭찬은 칭찬으로 소화해 버리겠다는 기가 막힌 정신 승리 법이었다.
다만 선아현이 저걸 속 편히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드는데.
‘왜 굳이 차유진에게 조언을….’
희한한 발상이다.
나는 잠시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줄까 생각하다가, 그게 더 웃긴 것을 깨닫고 그냥 걸어 나왔다.
눈이 마주치자 선아현이 벌떡 일어났다.
“무, 문대야. 물 마셔?”
“어.”
“여기…!”
물잔이 대령 되었다.
“…고맙다.”
‘이놈이 내 도움을 받는다고 자존심이 상해?’
이런 건 여전히 자발적 꼬붕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만… 어쨌든 고맙게 잘 마시마.
나는 물을 들이켜며, 놈이 차유진과 대화를 재개하는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선아현이 허둥거리다가 내게 되물었을 뿐이다.
“왜, 왜…?”
아. 내가 너무 둘을 쳐다봤나.
“음, 아니. 내일 연습이 7시 맞았나 해서.”
“아, 응. 7시 맞아…!”
“그래, 고맙다.”
나는 떨떠름하게 말을 마무리했다.
특별한 이상 행동은 없다. 좀 기합이 들어간 것 같긴 하다만….
“굿~”
그때, 거실에서 걸어 나온 큰세진이 실실 웃으며 등을 툭 치고 지나갔다.
…어쩐지 저 새끼가 날 놀려먹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모르겠다, X발.’
다들 알아서 해라.
컴백까지 할 건 더럽게 많았다. 내 일이나 하자.
“7시 너무 빨라요….”
“얼른 자라.”
나는 방에 들어가서 모니터링과 무대구성 점검을 다시 한번 수행한 뒤,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선아현은 제법 늦게 들어와서 취침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거의 기어가는데.’
안 잔다고 한마디 해줄까 하다가, 기겁할 것 같아서 그냥 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연습이 끝난 뒤, 점심 식사 때 즈음에 선아현은 예의 콜라보 연습을 하러 단독 이동했다.
앞으로 일이 주간 몰아서 이삼일 간격으로 짧게 짧게 맞추고 온다고 한다.
“괜찮겠어? 식사하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다, 다녀와서 먹어도 괜찮아요…! 금방이니까요.”
“음, 그렇다면야.”
“잠시만요.”
나는 포도당 캔디나 선아현에게 하나 던져줬다. 이건 트레이너와 합의하에 비상 복용 중이니 좀 뿌려도 되겠지.
“고, 고마워….”
“잘 다녀오고.”
“아현이 화이팅~”
“보람찬 연습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선아현은 허둥지둥 캔디를 챙기더니, 고개를 꾸벅거리며 문을 나섰다.
“…….”
저거… 들어올 때 질질 짜면서 오는 건 아니겠지.
“형! 저도 캔디 주세요!”
“자.”
“야호!”
나는 남은 캔디를 다 털고 팔짱을 꼈다.
‘역시 내가 좀 알아보는 편이….’
그때, 갑자기 큰세진이 손으로 쓸데없는 부채질을 시작했다.
“아~ 저희 연습하느라 더운데 아이스크림 살짝 먹을까요? 이 밑에 건강식 파는 데서 팔던데!”
“좋아요!!”
“아, 그 집. 그건 가벼워서 괜찮겠다.”
“오케이~ 그럼 이거 한 번만 더 돌고 문대랑 사 올게요!”
“…?”
여기서 내가 왜 나오냐.
일단 무슨 꿍꿍인가 싶어서 따라 나가는 줬다.
그리고 큰세진은 문밖에 나가자마자 폭소했다.
“야, 박문대! 그렇게 신경 쓰이냐?”
“무슨 소리야.”
“너 아현이 우리 스케줄 타임마다 감시 중인 거 알아? 차라리 말을 거는 게 자연스럽겠다!”
“…….”
아니, 그냥 콜라보 연습 전후 몰골 좀 확인하려는 거잖아 새끼야.
그러나 큰세진은 폭소에 이어 실실거렸다.
“아~ 문대문대 어쩌면 좋냐, 진짜 어? 세상 모든 걸 다 알고 주물럭대야 성이 풀리는구만?”
“조용히 해라.”
“그 멋진 능력은 앨범에만 써주면 되겠습니다, 유능한 문대 씨~”
“…….”
“맞다, 아이스크림 고르는 데도 써주시면… 으차차차!”
“어딜.”
나는 도망가는 놈을 붙잡기 위해 전력 질주했고, 나머지 놈들은 의문의 아이스크림 총알 배달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연습실 바닥에 앉아 짧게 고민했다.
내가 그렇게 통제에 맛 들렸다고?
‘아니, 살려고 하는 거지 무슨.’
당장 내 생존에 관한 일이니, 주변 집단 내 문제 소지를 신경 쓰게 된 거다. 일종의 생물적 본능 아닌가.
‘그리고 이젠 그 정도도 아니야.’
상태창 날아간다고 죽는 것도 아닐 테니, 대상은 어디까지나 위험부담이 큰 목표에 불과했다.
‘필요 없는 일에 시간 낭비는 안 한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빨아 먹고 오후 연습에나 집중했다.
그러나 이 집중도 곧 방해받았다.
돌아온 선아현이 얼굴에 고민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다, 다녀왔습니다.”
“…….”
저거… 잘 안 됐나 본데.
* * *
돌아온 선아현은 금방 안색을 회복하고 연습에 합류했지만, 이젠 다른 놈들도 슬슬 분위기를 눈치챘다.
“콜라보 준비하면서 무슨 일 있던 거 아니야?”
“준비가 생각보다 복잡하신가 봅니다.”
그러나 선아현에게 특별히 무리하고 있다는 시그널은 보이지 않았다. 큰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덕분에 선아현이 빠르게 아이스크림이나 할당받으며 이 화제는 잦아들었다.
보통 이런 건 쉴 때 한번 타이밍 봐서 물어보는 정도가 맞으니까.
그리고 보통 그건 룸메이트나 리더 몫인데… 하필 내가 룸메이트군.
‘도리상 물어는 봐야 하나.’
하지만 특별히 내가 말을 걸 것도 없었다.
연습을 끝낸 뒤, 나는 방에 앉아 아까 찍은 내 안무 연습 영상을 돌려 보는 중이었다.
거기서 선아현이 먼저 말을 건 것이다.
“저기… 무, 문대야. 나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그래. 뭔데.”
설마?
그리고 설마가 맞았다.
“호, 혹시 문대는… 잠깐 같이 일하는 분들이, 대하기 조금 어려우면… 어, 어떻게 하는 편이야?”
“…….”
직접적인 조언 요청이었다.
“어느 상황이냐에 따라 다르지. 대하기 어렵다는 게 어떤 의미인데, 윗사람이야?”
“아, 아니, 그건 아닌데. 부, 불편하게… 진심이 아닌 걸 일부러 드러내는 느낌이야.”
예상대로군.
“음, 그럼 같이 비꼬거나 예의에 안 어긋나는 선에서 무시해도 괜찮아. 더 잘나가면 숙이고 들어올 놈들이니까.”
“그, 그렇구나.”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X발, 속 시원하네.’
아무래도 난 모든 걸 다 알고 제어할 수 있어야 속 편한 스타일이 맞는 것 같다. 망할.
나는 큰세진에게 1승을 내준 것에 황망함을 느끼며, 일단 선아현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더 자세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런데 선아현은… 좀, 창피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 많이.
“미, 미안. 나만 혼자 잘하지 못해서… 계, 계속 도움만 받는 것 같아.”
“…?”
“다, 다른 멤버들은, 다들 잘하는데… 나, 나는 뭔가 문제가 있나 봐. 상담도 하고, 연습해도 잘 안 돼….”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냐.
“너 문제 없는데. 왜 그래.”
“매, 매번, 또래 사람들 만날 때마다 이러니까…. 처음부터 그랬고….”
“…….”
많이 당황했는지, 선아현은 제3자 문제처럼 조언 구한 것도 깜박했다.
“처음 언제.”
“중학교 때… 그, 발레할 때도.”
선아현은 머뭇거리다가 짧게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발목을… 다쳤는데, 다들 너무 좋아했어…….”
소름이 쭉 올라왔다.
“모, 못된 애들이 아니었는데, 그, 그때부터 내가 뭔가 그, 또래 그룹에 가, 같이 있으면 싫은 느낌이 들었나 봐….”
“…….”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일단, 너랑 같이 있으면서 싫었다는 놈은 멤버 중엔 못 봤어.”
“다, 다들 착하니까….”
“이 그룹에서 인성 제일 좋은 건 너야. 그리고 너 중학교도 예중이었지.”
“응? 으응.”
“너 수석이었지.”
“그, 며, 몇 번 정도는….”
선아현이 저렇게 말하는 건 줄줄 해 먹었다는 뜻이다.
나는 팔짱을 꼈다.
교양 있어 보이던 선아현 부모님이나, 전문 상담에서는 이런 식으로는 이야기를 안 했을 테니, 그냥 내가 해야겠다.
“들어. 네가 지금까지 겪은 건 다 부러워서 눈깔 돌아간 새끼들이 한 짓이야.”
“어어?”
“잘생긴 놈이 춤도 X나 잘 추니까 열받아서 한 거라고. 알았냐?”
“하, 하지만… 아, 알았어.”
선아현은 힘에 밀려서 일단 고개를 끄덕인 것 같았다. 잘됐다.
“그러니까 매일 거울 보면서 ‘나는 정말 잘난 놈이다’ 열 번 외치고 시기 질투에 눈 돌아간 새끼들은 신경 쓰지 말아라. 알겠냐?”
“그, 그거, 상담 초기에만 했는데….”
“다시 해.”
선아현은 방금과는 다른 의미로 창피하다는 게 얼굴에 역력해졌으나, 결국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문득, 놈의 말에서 하나를 집어냈다.
“잠깐, 그럼 너 전과한 게….”
발레에서 현대무용으로 바꾼 게 괴롭힘 때문이었나?
그러나 선아현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냐…! 그, 발레는… 체형이 아깝다고 하셔서.”
“체형?”
“으응, 발레는 고, 그러니까… 발등이 동그래야 좋거든. 나, 나는 그렇진 않아서… 골반도 작고. 그래서 더 잘할 수 있는 길로 가보는 걸, 추천해 주셨어.”
대충 알겠다.
선아현이 춤에 재능이 있는데 체형상 발레보다 다른 쪽이 더 최정상급이 되는 데 유리했다 이거군.
그래서 본격적인 대학 입시 준비 전에 얼른 바꿔줬다… 그건가 보다.
결국 돌고 돌아 이놈은 무용이 아니라 아이돌 업계에 오긴 했다만, 잘나가면서 돈 잘 버니 좋은 게 좋은 것이다.
“그리고 현대무용 배운 걸 지금 잘 써먹고 있으니 됐네.”
“그, 그렇지…?”
선아현이 빙긋 웃었다. 하지만 곧 약간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사, 사실, 오늘… 현대무용 이야기가 나왔어.”
“콜라보 연습에서?”
“으응.”
선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약간 억울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려운 동작 하니까, 우리는 하나도 안 나오고 정말 아현 씨만 나오겠다고. 부럽고 축하한다고….”
정말 자본주의 사회인들답게 말 X같이 돌려 하는 재주가 있는 놈들이다.
“…그래서 대답 못 했고?”
“아, 아니. 대답은 했는데….”
선아현이 얼굴을 붉혔다.
“자, 잘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하겠습니다’ 하고 했는데….”
“…….”
“유진이가, 칭찬은 그냥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괜찮다고 해서… 괘, 괜찮을까? 다들 대답이 없으셨는데….”
나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어. 잘했다.”
선아현은 의외로… 악의 없이 잘 멕이는 스타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큰세진의 말이 또 한 번 맞았군.
…그래도 아까의 대화는 한 번쯤 해볼 만한 일이었지만.
“그대로 해. 잘했으니까.”
“으, 응.”
선아현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리고 나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앨범이나 잘 준비하자.’
그리고 2주 후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장식하는 MBS의 가요 프로그램 방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테스타 멤버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무대는, 선아현이 참가하는 콜라보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