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1화
“헐, 저기가 3위?”
“아니 그렇게 잘했는데?”
“애초에 등수도 제일 높고…….”
“반응도 장난 아니었잖아.”
우리가 3위를 하자, 주변의 다른 팀 참가자들이 도리어 수군거렸다.
고맙지만 사실 방청객이 인당 두 표 행사할 수 있다고 했을 때부터 이 사태는 예견된 일이었다.
‘다 견제 표로 넣었군.’
여기에 방청까지 올 정도면 대부분 미는 참가자가 있는 헤비 시청자라는 뜻이다.
그 방청객들은 일단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참가자가 있는 팀을 찍는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등수는 낮고 실력이 좋은’ 팀에 한 표를 넣었겠지.
자기가 주력으로 미는 참가자의 경쟁 상대가 될 만한 이 팀에게 표를 줄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솔직히 3위를 한 것도 선방이었다.
미는 참가자가 이 팀에 있는 방청객에 더해서, 그냥 보러온 몇몇 사람들 표는 다 쓸어 담았다는 소리니까.
그러나 팀원들은 제법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한 박자 늦게 대답한 류청우가 힘차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팀원들은 열심히 감사 인사를 따라 했지만, 담담하게 보이려 애쓰는 표정인 게 훤히 보였다.
“감사합니다.”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1, 2위 발표는 또 순위 발표식으로 미뤄졌다. 그중에는 최원길이 모은 ‘1차 팀과 비슷한’ 팀도 있었다.
“그럼 주주님! , 팀전 1위 소식과 함께 순위 발표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MC의 마무리 멘트 후에 어쩐지 최원길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쪽을 슬쩍 본 것 같다.
‘바본가…….’
쟤는 매번 저러네.
아직 편집의 매운맛을 보지 못해서인가?
어쨌든 이 팀은 그런 걸 눈치챌 정신머리가 없는 상태였다. 풀이 죽은 채로 박수를 보내는 팀원들을 류청우가 한 명씩 어깨를 토닥였다.
“고생했어. 우리 최선을 다해서 멋있었을 거야. 걱정하지 말자.”
“예…….”
“맞아요. 우리 잘했어요!”
뭐, 차유진 말대로 무대를 잘한 건 확실했다.
그러니 이걸로 동정표를 받으면 모를까, 욕을 먹지는 않겠지.
어차피 이 팀에는 당장 다음 순위 발표식에서 탈락할 것 같은 놈도 없겠다, 차라리 최상의 결과였다.
문제는 편집인데, 류청우만 살리고 다른 놈들 다 죽이는 편집이 또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평타는 칠 것이다. 무대가 잘 나왔으니까.
다들 벌써 팬덤이 붙은 놈들이니 어지간한 악편은 여론전에서 무마될 것이다.
1차 팀전 방송을 말아먹었지만, 팬들이 끈질긴 여론싸움을 통해 도로 순위권에 안착시킨 김래빈이 그 예시였다.
아, 마침 본인이 말을 거는군.
“저… 박문대 형.”
“어, 왜.”
김래빈이 고개를 꾸벅거렸다.
“여러모로 정말 감사했습니다. 연락처 좀 교환할 수 있을까요?”
“그래.”
나는 순순히 번호를 알려줬다.
친분이 있어서 나쁠 건 없는 참가자였다. 그놈의 개사기 작곡 특성 덕분에 편곡을 날로 먹기도 했고.
게다가 성격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는 큰세진 놈과는 달리, 필요할 때 용건만 빠르게 전화로 끝낼 것 같았다.
김래빈은 번호를 받고 고개를 다시 꾸벅 숙였다.
“가끔 안부 인사드리겠습니다.”
“……좋지.”
내가 아이돌 지망생하고 대화하는 건지 후임하고 대화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 그러고 보니…….’
이건 소위 말하는 ‘묶이는 참가자 무리’를 갈아탈 수 있는 기회인가.
이번 팀전도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다음 화 방영에 맞춰서 친분 목격담 몇 개만 흘리면 알아서 팬덤이 재편성될 가능성이 있었다.
‘박문대’와 초반에 묶인 놈들이 미래에 마약부터 최종 순위까지 위험요소가 많긴 했다. 게다가…….
‘기왕이면 최종 등수 더 높을 놈이랑 묶이는 게 생존율이 높지 않나?’
김래빈하고 묶이면 차유진 미는 쪽의 내 평판이 좀 덜 적대적이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거참.’
이딴 계산까지 하려니 현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돌연사당한다는데 체면 따지는 놈이 어딨겠는가.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퇴근 준비 겸 짐을 챙기면서도 간간이 머리를 굴리는데, 뒤에서 누군가 톡톡 등을 건드렸다.
“저, 저기.”
“음?”
고개를 돌리니, 선아현이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 일주일 바빠서 인사만 했던 놈이 갑자기 결심한 얼굴로 말을 걸러 온다?
‘뭐 나쁜 소문이라도 도나?’
선아현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며 속닥였다.
“최, 최원길 있잖아,”
“…? 어, 최원길이 왜.”
갑자기 최원길 이야기는 또 왜 나오냐.
‘또 파트 먹겠다고 지랄해서 욕하러 왔나?’
놀랍게도 이 막 던진 생각은 반쯤 맞았다.
“너, 너, 너무 못된 애야…!”
선아현은 거의 씩씩거리고 있었다.
“…….”
아니, 대체 무슨 인성질을 해야 이 호구를 이렇게까지 빡치게 만들 수 있지.
“왜, 무슨 일 있었어?”
“으, 응!!”
선아현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지난 팀전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 처음에는 막… 자, 자기 파트 달라고 하다가,”
오, 내 예측 샷이 완전히 맞았군.
“자, 자꾸 네 얘기 꺼내고! 막 비, 비꼬고…….”
최원길의 행적에 대해 이어진 설명을 정리하자면 대충 이랬다.
‘내가 1차 때 카메라 분량을 못 받았으니까 이번에는 좀 받아야 맞다. 팀도 내가 꾸렸는데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
‘왜 문대 형한테는 파트 몰아주더니 나도 메인보컬 됐는데 안 주냐. 친분으로 차별하는 것 같다.’
심지어 후자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울면서 이야기한 모양이다.
‘선빵이 승리한다는 걸 지난 팀전에서 배운 모양이군.’
아닌 밤중에 뒤통수 맞은 팀원들이 어버버 거릴 때, 큰세진이 눈치껏 최원길을 살살 달래서 상황을 정리했다고 한다.
‘방송을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이지.’
하지만 덕분에 제대로 말해보지 못한 팀원들의 빡침은 오갈 데 없어진 모양이다.
선아현의 조심스럽던 태도는 말이 끝날 때쯤에는 완전히 분기탱천한 상태로 변했다.
더듬는 게 열 받아서 더듬는 것 같이 보일 정도였다.
“조, 조심해야 돼…! 네, 네 이야기 이상하게 할까 봐…… 아, 알려주려고.”
볼이 시뻘게진 선아현은 그 와중에도 박문대를 신경 썼는지, 결국 걱정으로 말이 돌아왔다.
아마 본론은 이쪽이었나 보다.
상황이 웃기긴 한 데, 이거 참…… 그렇다.
‘좀 고맙기도 하네.’
자기 것 챙겨 먹기 바쁜 이 서바이벌 오디션 속에서, 나를 인맥 관리가 아니라 진짜 친구처럼 대우하려고 하는 놈이라니.
애들 데리고 그룹 서열 나누던 내가 얼간이처럼 느껴진다.
‘이게 무슨 중학교 반 배정도 아니고 말이지.’
이미 1차 팀전에서 내 팀이 떡상하면서 내 미래 지식은 싹 갈리는 중인데, 같잖게 편집증처럼 굴었나 싶기도 하고.
나는 피식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 그래. 고맙다.”
“아, 아니야…….”
선아현은 화들짝 놀라더니,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평소의 소심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틈을 치고 어느새 나타난 큰세진이 어깨동무를 해왔다.
정말 대화가 있는 곳은 어디든 낄 수 있는 이상한 능력이라도 가진 것 같은 놈이다.
“얍~ 친구들, 뭐 해?”
“그, 그… 알려주고 있었어.”
“뭐? 아… 걔.”
큰세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최원길은 이름 대신 대명사로 통할 만큼 트롤로 찍힌 모양이다.
“다음에는 같이 안 하면 되지 뭐~ 스트레스받는 쪽이 지는 거야. 이거 좀 봐봐. 좋은 거 보기도 바쁜 세상이다.”
“으, 으응?”
큰세진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넘겨버리더니, 스마트폰 화면에 뭔가를 띄워서 나와 선아현 쪽으로 돌렸다.
지하철역 광고판 사진들을 올린 SNS 글이었다.
아, 벌써 이럴 시기가 됐군.
대중시설에 광고를 걸어주는 것은 아이돌 팬들의 대표적인 서포트 중 하나다. 내가 찍은 사진도 몇 번 걸려봐서 기억한다.
‘물론 데이터 사간 팬 계정 이름으로 올라갔지만.’
어쨌든 큰세진 본인 광고판이 걸렸다고 보여주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짠! 이거 우리 셋이다?”
“음?”
다시 보니, 확실히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인근의 광고판 셋을 각각 찍은 사진이다.
사진 밑에는 같이 등록된 글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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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입구역인데 악토버 동갑즈 같이 걸렸어 존귀ㅠㅠ 포스트잇 붙이고 왔다!]========================
큰세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야, 진짜 신기하지 않아? 어떻게 이렇게 주르륵 광고 걸어주셨지? 상의하고 하셨나?”
“…….”
아니.
자리싸움 하셨을걸.
목 좋은 환승역 대형 광고판 잡으려고 얼마나 돈과 시간을 쓰셨을지 생각해 보면 미안할 지경이었다.
‘음, 박문대의 생존 가능성에… 투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데뷔해서 돌연사를 면해도 계약 기간은 성의껏 채워야 지옥행을 면할 것 같다는 점이다.
내가 기묘한 부채감에 혼란스러워할 때, 큰세진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이거 보러 갈래? 팬분들이 메시지도 붙이셨다는데 한번 가봐야 하는 게 도리 아니냐~”
“…….”
그 도리, 각자 지켜도 되지 않나?
그러나 선아현은 눈을 번쩍번쩍 빛내며 단번에 오케이를 외쳤다.
“조, 좋아!”
“굿굿. 문대도 가는 거지? 언제로 잡을까?”
같이 가는 걸 기정사실로 박고 시작하는 게, 어째 3화 단체 관람 때 낚였던 방식이랑 똑같았다.
그래도 뭐… 어차피 큰세진의 말대로, 광고판은 도리상 한번 보러 가긴 해야 했다. 사람들이 알아봐도 혼자보다는 대처하기 편하겠지.
나는 잠시 두 놈을 번갈아 살펴보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갈 거면 이번 주 내로 가는 게 낫겠는데.”
“빠를수록 좋지!”
“조, 좋아!”
희희낙락하는 두 사람이 열심히 날짜를 잡는 것을 들으며, 짐을 도로 챙겼다.
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 * *
그리고 이틀 뒤.
나는 지난번에 편의점에서 구매했던 검은 색 면마스크를 다시 꺼내썼다.
목적지는 홍대입구역.
촬영 시기가 아닐 때는 집에만 처박혀 있었기 때문에, 외출은 오랜만이었다.
[선아현 : 우리 광고판 보고 점심 먹지 않을래?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을 몇 곳 찾아뒀는데 혹시 너희만 괜찮으면… (더보기)]선아현에게 메시지톡이 왔다.
‘여전히 장문이군.’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큰세진의 반응을 확인하면서, 밖으로 나와서 버스를 탔다.
싼 맛에 계약한 방이라 도보 20분 거리 내에 지하철이 없었으니까.
‘이대로 홍대입구역 근처 정류장에서 조용히 이동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헉.”
“박문대 아냐?”
“헐……. 야, 야 저기!”
버스에서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이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약속 장소에 도착한 것도 아닌데 이미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날 바로 알아본 사람은 몇 사람 안 됐지만, 번화가라서 인파가 인파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야?”
“연예인이야? 아이돌?”
‘이거 안 되겠는데.’
나는 고민하다가,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뛰었다.
웬만하면 좀 더 반응을 해주고 싶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 시점에서 제일 흥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파급력은 놀라웠다.
하기야 연예 뉴스란을 켜면 랭킹에 무조건 관련 뉴스가 하나 이상 있는 시기다. 내가 밖에 안 나가서 안일했던 거지.
‘이렇게 된 이상, 광고판만 빠르게 보고 사라져야 한다.’
빠르게 지하철역 안으로 달려 내려가는 중에 스마트폰에 진동이 왔지만, 일단 인파를 따돌리고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세 명의 광고판이 걸린 위치에 도착하자마자 사태를 파악했다.
이미 광고판에 도착한 두 사람이 스마트폰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도착했는데 이 지경이라는 연락이었나 보군.’
이 바보들은 마스크도 안 쓰고 나왔다.
그 와중에 박문대를 알아본 사람들이 환호했다.
“문대야!”
“문대도 왔어!”
난감한데 고맙긴 했다. 이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