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1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19화
‘박문대’를 그냥 두자고?
그러니까… 놈이 이대로 사라지든 말든, 그냥 내가 대상 타던 시점으로 돌아가서 테스타로 계속 사는 것이다.
이제 굳이 시스템 원리를 알겠답시고 박문대와 더 대화할 필요도 없다. 아는 게 없어 보였으니까.
이 정도면 나는 할 만큼 했으니 신경 끄고 몇 년간 개발해 온 아이돌 삶이나 완전히 손에 넣는 거지.
“…….”
부정하진 않겠다.
무자비한 것과 별개로, 들었을 때 그럴싸하게 들리긴 했다. 나도 그 몸으로 살았던 삶도 내 것이라 인정하게 됐으니까.
‘하지만….’
나는 심호흡하고, 주먹에서 힘을 뺐다.
“안 그래.”
“…….”
청려가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물론 내가 박문대 몸으로 겪은 건 내 경험이 맞지. 내가 한 거니까.”
“그래요. 그럼….”
“그런데 몸은 별개야.”
나는 몸을 젖혔다.
“내가 몇 년 썼다고 무조건 내 거라고 볼 순 없지. 박문대의 성장배경은 전부 그놈이 겪어온 거니까.”
“…….”
“거기서 우연찮게 도움을 꽤 받기도 했고.”
‘박문대’가 바르게 살지 않았다면 그렇게 극적으로 1위 하긴 힘들었겠지. 그리고 데뷔하고 나서도 금방 과거사로 X 됐을 것이다.
청려가 나를 응시했다.
“원래 몸으로 했으면 더 빨리 성공했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해보지 않았는데 장담 못 하지. 그리고 애초에 이건 성취완 별 상관없는 문제기도 하고.”
나는 피식 웃었다.
“박문대는 박문대 몸으로 살 권리가 있다는 거야. 주제 흐리지 마라.”
“…….”
놈은 말없이 계속 이쪽을 쳐다보더니, 곧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게 원하면 후배님 커리어를 포기하겠다고?”
“포기하겠다고 한 적은 없는데.”
“그럼.”
나는 팔짱을 꼈다.
“합의를 봐야지.”
이제 그놈 상태이상도 끝났으니 놈이 뭘 원하는지 들어보고, 조율해 나갈 생각이다.
내가 그런 건 또… 못 하진 않지.
“그냥 입 닦고 등쳐 먹진 않겠다는 거야.”
“이해가 안 되네요. 그렇게까지 고려해줄 필요가 없을 텐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정이라도 들었나 보지.”
“…….”
근 몇 년 동안 ‘박문대’가 어떻게 지냈는지를 며칠 내내 연달아 공유하다 보니, 나도 인간인지라 그렇게 됐다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이 새끼가 포기하게 만들까가 아니라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생각하는 게 좀 웃기긴 한데.’
그 순간, 맞은편에 앉은 놈이 표정 없이 테이블에서 손을 거뒀다.
“정이 든다고요.”
“그래.”
“그게 네 성취랑 같은 무게일 줄은 몰랐는데.”
나는 안경을 도로 썼다.
“양자택일이 아닐 수 있는 걸 자꾸 재보려고 하는데… 단어를 네 개랑 커리어로 바꿔서 생각해 봐라.”
“…….”
“커리어 생각해서 한쪽을 포기했을 때보다 둘 다 있는 지금이 더 살기 편하지 않냐.”
멍!
때맞춰서 테이블 밑의 개가 짖었다. 청려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렸다.
개가 코끝을 비비는 게 보였다.
“나도 둘 다 괜찮게 가지는 걸 목표로 상황을 처리해 보겠다는 거야.”
“…….”
청려는 오묘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계산인지 생각인지 모를 것을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의외긴 하군.’
이 새끼, 잘 생각했다고 날 부추겨서 경쟁자 솎아내기나 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사고방식은 과하지만 솔직하게 충고했다 이건가.’
나는 결국 짧게 덧붙였다.
“어쨌든… 테스타 박문대가 나라고 인정해 준 건 고맙다.”
“…….”
이 지랄을 다 듣고 나온 첫 평가가 인정이라는 건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놈은 잠깐 멈칫하더니, 곧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뭐, 그렇다면야.”
아니, 취소하겠다. 뭐 대단한 허락이라도 해줬다는 투라 좀 열받는군.
청려는 자신의 개에게서 손을 뗐다.
“아쉽네요. 만일의 경우엔 도울 마음도 있었거든요.”
이 새끼 설마 박문대 본체를 매장해 버리는 걸 도와주려고 했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1군 아이돌 커리어가 얼마나 아까운 거냐.’
나는 놈의 쓸데없는 과몰입을 깨우기 위해 화제를 틀었다.
“그럼 내일 이 몸으로 전화나 한 통 주던가.”
“내일?”
“오늘이 지나면 이 몸에 누가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음.”
“쓸데없는 짓은 말고.”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박문대’에게 이 전화로 걸려오는 목소리를 잘 듣고 기억해서 앞으론 거르라고 쪽지를 남길 생각이었다.
청려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요. 다른 몸으로도 연락할 테니 기다려요.”
“그건 필요 없…….”
잠깐.
나는 11월 어느 날에 이놈에게 뜬금없이 걸려왔던 전화를 떠올렸다.
-음… 혹시 나한테 할 말 없나 해서.
그리고 다음 말.
-아직인가.
“…….”
기억을 돌려 날짜를 맞춰보니, 오늘이 바로 그 전날이다.
‘그랬군.’
이제 알겠다. 이 새끼 그때 이 상황을 아는 상태로 나와 연락한 것이다.
‘그런데 언급 한 번 안 하고 대상 탈 때까지 입 싹 닦았단 말이지.’
도움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하여간 종잡을 수 없는 새끼다. 나는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가게요?”
“그래.”
할 이야기도 끝났고, 딱히 건진 케이스도 없으니 박문대의 흔적을 물리적으로라도 더 찾아볼 생각이었다.
“음, 잘 가요. 내일 연락할 테니까.”
그 연락을 이미 내가 받았다는 건 좀 특이한 기분이긴 했다.
“그래.”
나는 그렇게 청려와 대담을 끝내고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도착하는 즉시 곧바로 수색을 시작했다.
‘뭐 없나.’
별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기숙학원에 처박혀 지냈는지 오피스텔엔 생활감이 크지 않았다. 다만 침실 하나만은 곳곳에 취미용 물건이 들어차 있었을 뿐이다.
테스타의 앨범과 MD들.
매번 놈과 떠들던 터라 굳이 열어볼 타이밍도 없었던 각종 서랍장 안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콘서트도 또 왔었냐.’
심지어 올해 초에 했던 월드투어의 MD까지 찾았다.
“알차게 잘 지냈나 본데.”
나는 피식 웃고는 그것들을 도로 정리했다. 그래도 이놈 수험생활에 스트레스 해소용이 됐다는 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박문대’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건 스마트폰 속 달력의 표기뿐이었다.
-형 만나는 날!
“…….”
그 외에는 특별히 일정도 없고, 로그인된 SNS 계정도 없다. 테스타를 찾아본 것 외에는 정말 공부만 하고 산 것 같다.
혹시 내가 놈의 상태창을 볼 수도 있지 않나 싶어서 몇 번 시도해 봤으나, 뜨는 건 없었다. 오로지 내 ‘보상 수령 중’뿐이다.
“후.”
일단 여기까진가.
결국 나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 소파에 앉아서 쪽지나 갈겨쓰기 시작했다.
-들어와 보니 네가 없어서 글로 남겨둔다. 우선 합격 축하하고, 고생했다.
…….
청려 전화는 녹음 설정해 놨으니 목소리만 숙지한 뒤 만나거나 추가 정보는 흘리지 말라는 것부터, 12월에 내게 연락할 방법까지 다시 한번 쭉 정리했다.
그러자 곧… 자정이 되었다.
댕-.
나는 소파에 누워 있다.
구석에서 작은 종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바꿨군.’
‘저것도 콘서트 MD였던 것 같은데’ 같은 짧은 생각을 끝으로, 또다시 무조건적인 잠이 밀려온다.
곧 감각과 생각이 사라졌다. 이 며칠간 늘 그랬듯이.
댕-.
그런데 종소리가 울린다.
‘잠깐.’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인지와 생각이다.
‘돌아오고 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잠에 완전히 빠져들려다가 방해를 받은 것 같은….
“형!”
“…!”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나는 여전히 오피스텔 안이었다. 그러나 낯선 것이 하나 있었다.
“진짜 반가워요, 형…!”
내가 누워 있는 소파 앞 바닥에 묘한 생김새의 소년이 앉아 있었다.
묘하게 날 닮은 것도 같은데,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박문대.”
이름이 불리자, 놈은 어색하게 웃었다.
“네… 그 이름으로 불려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저놈은 박문대 틀에 류건우를 일부 섞어서 20대 초반에 고정시켜 놓은 것 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설마 저걸 새 몸으로 받았냐.’
잠 탓인지 두통이 밀려온다.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네 이름은 그게 맞는데.”
“그… 형도 그 이름 쓰잖아요. 저도 형 이름을 썼으니까…… 아, 그럼 일단 ‘큰달’로 불러주세요!”
게임 정모에서나 나올 법한 호칭 같다만, 마음대로 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거지.”
돌발 사태인데, 이상하도록 태연한 것 같아서 말이다.
눈앞의 놈이 약간 긴장한 얼굴로 베란다의 블라인드를 향했다.
그리고 버튼을 조작했다.
“아, 우선… 이걸 봐주세요.”
위잉.
블라인드가 열리고, 보이는 것은….
“…!”
창밖에서는 석양이 지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색감은 아니다, 황금빛과 자줏빛, 붉은 햇살이 어지러이 부딪히고, 어딘가 오르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그 느낌.
내가 아는 것이었다.
“ 티저에 나오는 장면인데, 저랑 형 모두 굉장히 인상 깊었나 봐요. 이게 구현됐더라고요.”
“…구현?”
“네.”
놈은 어색하게 웃었다.
“저… 여긴 심상세계래요.”
“……!”
“그러니까, 실제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그….”
“뭔지 아니까 그만해라.”
“넵.”
그 혼수상태일 때 꿨던 백일몽이랑 비슷한 상태로 이해하면 되겠지.
그리고 나는 왜 저놈이 저 꼴을 하고 있는지도 깨달았다. ‘류건우’로 지내면서 자아 인식이 섞였나 보다.
‘별 경험을 다 해보는군.’
나는 한숨을 참았다.
놈은 어색하게 웃었다.
“형은 정말 뭐든지 다 아세요….”
모르는 게 많아서 돌아버릴 것 같으니까 그런 말은 됐다.
“그럴 리가. 그보다 넌 이 상황에 익숙한 것 같은데.”
“…….”
“혹시 오늘… 그러니까, 어제 계속 여기 있었냐?”
원래 박문대, ‘큰달’은 바닥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네.”
역시.
“그리고 어제만 그랬던 건 아니에요.”
“뭐?”
“형, 제가… 상태이상을 해결하면서 ‘동기화 수락’을 눌러왔잖아요.”
기억난다. 매번 ‘누적 완료’만 떠서 사람 찝찝하게 만들던 그것.
“그게 알고 보니까, 제가 형이랑 같이 있었던 시간과 동기화되는 거더라고요.”
“나랑 같이?”
“네.”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다른 모습이었거든요.”
큰달은 긴장한 얼굴로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렀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뜬금없는 화제를 불쑥.
“형, 그, 먼저 사과를 드리고 싶어요.”
“뭘.”
“형이 그렇게 고생하시게 된 건… 사실 제 탓이에요.”
“…….”
“그… 형이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제가 엉뚱한 생각을 했어요.”
놈은 천천히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형이 다신 못 깨어날 수도 있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형 집을 정리했는데. 그때, 알았거든요.”
그 말에 따라서, 놈이 겪었던 당시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공명처럼 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내가 쓰던 카메라.
그리고 거기서 굳이 지우지 않은 데이터 중엔, 내가 ‘gun1234’ 계정으로 업로드했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집을 정리하던 이놈은 그걸 단번에 알아봤던 모양이다.
그 정신적 타격이 아주 결정적이었다.
-어, 어떡해….
“그때… 제가 너무 상심했나 봐요. 형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를 도와주신 거나 다름없는데,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형은 곧 돌아가실 것 같아서….”
“…….”
“그래서 짐 정리하고 돌아가다가, 실수로 쓰레기를 든 채로 외곽 계단 난간에 기댔어요. 아무 생각 없이….”
워낙 싸구려 원룸 건물이라, 담배 피우러 나올 때면 난간이 위태로워 보인다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 그 난간이 무게를 못 이기고 쓰러져서….”
그리고 하필 이놈이 가장 정신없을 때, 그게 박살 난 것이다.
-핑!
최악의 타이밍으로.
“사실 지금까지는 그냥 적당히 다리나 부러지지 않았을까 했는데…… 걱정하실까 봐 이야기하지 않았거든요. 근데 아마… 아마 저는 그때 죽기 직전이었던 것 같아요.”
혀를 깨물뻔했다. 그러나 놈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시스템이 착각했나 봐요.”
“착각?”
“이 시스템은 죽기 바로 직전에 했던 생각을 바탕으로 소원을 들어주잖아요.”
큰달은 침을 삼켰다.
“그런데… 저는 형이 멀쩡히 살아서 행복하게 오래 살길 바랐는데, 마침 그때 형도 저처럼 죽기 직전의 혼수상태여서… 오류가 발생했어요. 대상을 착각한 거죠.”
“…!”
“저 대신 형이 과거로 돌아가서 제 몸으로 살게 된 거예요.”
-윽….
나는 내가 더러운 모텔방에서 깨어나는 장면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장면의 시점은… 나였다.
“저는, 그 과정에서 시스템에 융합됐던 것 같은데… 그래도 조금 자아가 남아 있었나 봐요. 뭔가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행동양식 같은 게요.”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놈은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나 혼자 정의 내린, 아무한테도 설명한 적 없던 단어의 용법 그대로.
나는 간신히 입을 뗐다.
“…상태창.”
놈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
“그러니까 형, 제가 바로… 형의 상태창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