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2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28화
확실히 나는 류건우의 몸으로 배세진과 마주친 적이 있다.
‘기껏해야 세면대 앞에서 상황 모면하려고 응원한 게 전부지만.’
혹시라도 배세진이 그 경험을 인상 깊게 기억하나 의심한 적도 있고.
그러나 류건우 생김새를 기억할 거란 의심은 안 해봤단 말이다.
이놈이 얼굴을 본 팬만 지금까지 수만 명은 될 텐데 딱 한 번 본 팬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한다고? 그것도 모자까지 눌러 쓴 놈을?
그러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감탄사를 외친다면 누가 봐도 ‘나 너 알아’라는 뜻이다. 의심할 것도 없다. 안면 있다 이거지.
‘후.’
그래도 이어폰을 껴서 ‘류건우’가 날 형이라고 부른 괴상한 정황은 안 들렸겠군. 좋아.
나는 상황을 추측하자마자 바로 입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속 놈에게 말한다.
“형,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어어…? 어….
배세진이 흐름 타게 두면 안 되지. 일단 한번 끊고 무마한다.
그러나 배세진이 먼저 움직였다. 놈은 내 팔을 잡더니 숙덕였다.
“너… 너 찾았구나!”
“…!”
“그… 비디오에서 봤던 그 사람 맞지?”
그 순간 상황을 바르게 이해했다.
‘아. 그쪽이었나.’
맞다. 이제 기억이 나는군. 내가 류청우의 홈비디오를 확인할 때 배세진도 동행했었다.
그때 여러 번 유심히 본 게 기억에 남아 있었나 보다.
…혹은 내가 명절 밤에 직장 동료 본가에 쳐들어가서 가족 비디오를 뒤지는 미친 짓을 해서 기억하고 있거나.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예. 그 형이죠.”
“역시!”
배세진은 알겠다는 눈으로 화면 속 ‘류건우’ 쳐다본다.
‘그렇다 쳐도 눈썰미가 좋은데.’
홈비디오에 찍힌 건 제법 어릴 적인 데다가 안에 들어간 내용물도 바뀌어서 인상이 다를 텐데 용케 알았다 싶다.
-저기… 저 인사할까요?
아니, 일단 가만히 있어라.
나는 화면에 살짝 눈짓하면서 배세진의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찾았어?”
“청우 형 가족분 중에 연락이 닿은 분이 계셔서요.”
괜히 더 질의 문답이 오가다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인 정황도 설명해 줬다.
이걸로 끝내자.
“며칠 전에 저희 둘이 잠깐 짬 내서 외출했을 때 있잖아요. 그때 만나서 연락처 교환했습니다.”
“…흠, 그래.”
저건… 그날 나랑 류청우가 나갔는지도 몰랐다는 얼굴이군.
‘하긴 저놈이 큰세진도 아니고.’
차유진이 룸메이트인데도 방에서 잘 안 나오는 놈이니까.
어쨌든 상황은 이대로 진정 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형이 그때 청우 형네 홈비디오 확인하려 같이 가주셔서 소식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감사합니다.”
“그… 아냐. 내가 뭘 했다고. 아무튼 잘됐고, 어… 나도 뭐, 도울 일 있으면 말하고….”
배세진은 횡설수설하더니, 곧 대단히 사회성 있는 행동을 했다.
화면 속 류건우와 얼결에 눈이 마주치자마자 인사를 한 것이다.
“그래서 이분이 너…… 크흠, 안녕하세요.”
-네? 네…!
저놈은 대답해도 내 이어폰에나 들리는데 뭘 같이 인사를 하고 있냐.
-아, 이거 제가 말해도 저쪽엔 안 들리시는 거죠?
이제야 알았나 보군.
“…뭐라고 하시는 거지?”
“잠시만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짧게 인사 주고받게 하고 끊으면 깔끔하겠지.
나는 일부러 화면을 보고 분명하게 말했다.
“형. 대화 전달이 안 돼서… 괜찮으시면 지금 이어폰 연결 뺄게요.”
대비하란 뜻이다.
-…알았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겠다는 생각인지 놈의 말투가 변했다. 그리고 표정도 변했… 설마 저거 날 따라 하는 건가?
놈은 얼굴에서 힘을 쭉 빼더니, 단단한 목소리로 말한다.
-안녕하세요. 류건우입니다.
안 어울린다.
“…예. 음, 문대랑 같은 팀인 배세진입니다.”
소통이 시작되자 먼저 인사하던 게 거짓말처럼 배세진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지간히도 낯을 가리는군.
그래도 분위기가 침착해진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화면의 놈도 덩달아 과도할 만큼 정중하게 인사했기 때문이다.
좋은 거리감이다. 이대로 가자.
-예. 테스타 많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대상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배세진은 한 박자 늦게 대답하더니, 묘한 표정으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벗어나 다시 내게 숙덕거렸다.
“…그, 저분 혹시 방송 쪽에서 일하시나?”
“……?”
무슨 뜬금없는 소리지.
“아뇨. 왜요?”
“그냥… 어쩐지 얼굴이 낯이 익… ….”
배세진은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그리고 화면 속에서 여전히 나를 따라 하는 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상당히 의미심장한 징존데.
나는 당장 입을 열었다.
“형, 그러면 다음에 또 뵐…….”
“잠깐.”
배세진이 손을 들더니, 긴가민가 싶다는 투로 말을 꺼낸다.
“혹시 저랑 몇 년 전에 만난 적… 공연장이었는데요, 세면대 앞에서 사인 이야기하고….”
“…!”
아니, 놀랄 것 없다. 진정하자.
‘확신한 게 아니야.’
상황이 겹치면서 반짝 생각이 난 건지, 한번 확인이나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화면 속 저놈이 한 것도 아니지 않나. 별 양심의 가책 없이 ‘무슨 소리신지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 있을…….
-어어…! 그 화장실에서…….
“…….”
거기서 왜 반색하냐고.
‘너도 공명으로 같이 경험하긴 했다 이거냐.’
나는 흥분한 두 놈의 꼴을 식은 눈으로 보았다.
화면 속 ‘류건우’는 지나치도록 반갑게 반응했고, 덕분에 배세진도 곧바로 확신했다.
“…!! 역시!”
-와, 혹시 기억하실까 했는데….
“…당연히 기억하죠.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배세진은 약간 갈등하는 것 같았으나, 결국 말 한마디를 더 붙였다.
“많이… 힘이 됐습니다. 덕분에 좋은 이야기도 많이 찾아봤고요.”
-흠흠, 그렇군요.
넌 뭘 뿌듯하게 눈을 찡긋거리고 있어.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놈은 약간 들뜬 투로 말을 이었다.
-그때의 제가 들으면 굉장히 기뻐했을 것 같습니다…!
“…….”
그때의 류건우?
설마 이놈 얼결에 맞장구친 게 아니라….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나.’
나는 할 말을 잃고 놈의 화면을 쳐다보았다.
큰달은 표정을 관리하던 것도 잊은 건지 흐뭇한 얼굴로 입꼬리를 실룩거리고 있다. 배세진이 쑥스러운지 헛기침하는 소리가 옆에서 들린다.
“크흠, 네. 저도 이렇게 인사드리게 돼서 기쁩니다. 그때 사인도 못 드려서….”
“…….”
그래, 뭐… 그 별것 아닌 일이 그간 배세진에게 도움이 됐다니, 그건 좋은 일이다.
큰일도 아니고 작은 미담이니 여기서 정리하고 넘어가는 편이 차라리 나중에 깨닫고 호들갑 떠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겠지.
나는 픽 웃었다.
“안 그래도 다음 앨범 나올 때 사인 앨범 드리기로 했어요.”
“아, 흠, 그러면 되겠네.”
-진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입니다.”
분위기가 살짝 풀어진다. 정확히는 배세진 혼자 낯가림을 풀기 시작했다.
‘이러다 잡담이라도 하게 생겼군.’
더 이상은 대화에 허점이 생길지도 모르니, 나는 이번에야말로 대화를 정리했다.
“형, 내일도 연수라면서요. 제가 시간을 너무 뺏은 것 같은데요.”
-…! 그, 그렇지. 죄송해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예. 그… 네. 감사합니다.”
큰달은 이번엔 빠르게 신호를 알아들었고 그렇게 통화는 마무리되었다.
띠리링.
연결이 끊긴 화면을 쳐다보며, 배세진은 오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진짜 우리 그룹 팬이셨구나.”
“…….”
여기서 안 물어보면 더 이상하겠지?
“두 분 안면이 있나요.”
“만난 것까진 아니고… 팬분으로서 응원을 받…… 아니, 몇 초 잠깐 봐서 지금까지 네가 찾던 사람인 줄은 몰랐어! 너 찾는 거 뻔히 아는데 일부러 말 안 해준 건 아니고…….”
“그렇겠죠.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을 기억하고 있진 않으니까요.”
“그, 그래.”
배세진은 좀 안심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신기하네. 너랑 나 모두 같은 사람한테 도움을 얻었다니까… 이런 식으로 공통점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사람 인연이라는 게 진짜 있구나 싶기도 하고.”
“그러게요.”
“크흠… 그렇게 초기에 좋은 말씀 해주신 분이 아직까지도 응원하고 계신다니까 좀 이상하기도 해서….”
“형이 그동안 잘 활동했으니까 그렇겠죠.”
“그, 그래? 흠흠, 그 정도는 아니지만… 고마워.”
“뭘요.”
배세진은 이제 순 들뜬 것 같다.
“그, 이런 걸 예능에서 말하면 좋지 않나? 아닌가?”
“…….”
거기까지 하자.
“저희끼리 추억으로 간직하는 방법도 있고요. 그것보다 형, 저 부르신 이유가….”
“아아!”
그때야 놈의 안색이 변하더니, 본론으로 들어간다.
“맞아,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
흠.
‘배세진이 뛰어서 날 찾아올 류의 연락?’
항복 선언을 번복하려는 건 아니겠지. 나는 팔짱을 꼈다.
“소속사요?”
“그 회사가 아니라… 그 위 회사!”
배세진은 좀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
“T1 엔터에서 직접 연락이 왔어!”
“…!!”
모기업의 출두였다.
나는 배세진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차유진에게도 시켰는지 놈을 따라 몇 놈이 미리 방에 모여 있었다.
“귀가했습니다!! 주의 주셨던 대로 AR팀의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용히 빠져나왔습니다!”
“그, 그래.”
마지막으로 작업실에 갔던 김래빈까지 합류하자, 드디어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다른 건 아니고, 제안이 왔어.”
“제안이요?”
류청우가 간단히 설명했다.
T1 엔터에서 소속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메일을 보냈다. 지난번 전담팀 문제로 이야기를 나눈 담당자 편으로, 이사진의 의견이 직송되었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턱을 문지르다가, 가볍게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그러니까… 우리를 아예 직속 레이블로 빼내겠다는 말이네요.”
“그렇지.”
자기들 자회사인 T1 Stars 소속사 산하가 아니라, 진짜 T1 ENT의 직속 계열사로 말이다.
‘미쳤군.’
말도 안 되게 후한 제안이었다. 심지어 정산 구조 개편안까지 보내서 우리가 얼마나 이득인지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럼 지금 소속사는요?”
“거기에 대해선 따로 언급 없었어.”
그럴 만도 했다.
‘걔넨 그냥 X 되는 거라 직접 적긴 그렇지.’
원래라면 레이블을 세워도 어차피 기획과 활동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것이지, 매출 처리 등 회계 구조는 T1 Stars에 귀속될 예정이었다.
‘우리 매출은 계속 이 소속사 걸로 잡혔을 거란 뜻이야.’
산하 레이블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되면 소속사와 그냥 깔끔히 연이 끝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적.
심지어 우린 전담팀을 다 들고 나를 것이니 회사는 비상이 걸리다 못해 상당히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런데 모기업이 뒤에서 주먹 들고 있으니 보복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되면… 그 소속사에서 아예 나오는 거야!”
“오우~”
꿈에나 그릴 법한 완벽한 탈주 타이밍.
속 시원한 상황이긴 했는지, 벌써 박수 치는 놈들도 있지만….
‘음. 안 좋은데.’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건 누가 봐도 파격적인 대우고, 연예계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테스타를 T1의 적장자로 판단하게 될 빅딜, 소속 변동이다.
그래서 문제다.
‘T1 이미지와 너무 엮이면 안 돼.’
T1은 문어발식 사업을 하는 대기업답게 이미지가 개쓰레기란 말이다.
심지어 문화사업 쪽은 Tnet 채널로 대표되는 어그로성 KPOP 빨아먹기 전략으로 ‘업계 생태계 망친다’라며 말이 많다.
그런데 그런 T1이 각 잡고 밀어주는 사업 간판 이미지?
붙으면 최악이다.
‘그냥 대기업 수혜 입는 정도가 아니라 T1 엔터 사업 메인이 되는 거잖아.’
신인상 때도 대기업 방송사의 횡포라며 그 지랄이 났는데, 사사건건 T1이 헛짓거리할 때마다 우리를 붙일 확률이 높다.
앞으로 무슨 일이 났을 때 강자, 가해자의 포지션으로 프레이밍 당하기 딱이란 말이지.
‘그것뿐만 아니야.’
가장 결정적인 이유도 하나 있다.
‘…회사가 전적으로 우리 편인 것처럼 이미지 잡히면 안 돼.’
사업하면서 모든 게 다 모든 사람의 구미에 맞을 순 없다.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
그건 아이돌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소재도 생기는데… 회사가 우릴 위하고 존중하는 걸로 이렇게 선방 먹이고 시작하면 도리어 그 어그로를 우리가 다 처먹는단 말이다.
-티원이 티원했네
-아 ㅅㅂ 우리 애들 놔줘
이렇게 말하는 대신,
-ㅋㅋ.ㅋㅋ..얘들아 제발 제대로 좀 하자
-이번에 활동안 낸 멤은 머가리가 없다 생각하고 다음부터 손 떼라 알겠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절대 안 된다.
‘T1은 우리와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이미지여야 해.’
이게 깨지는 순간 회사가 잘못해도 아이돌과 동일하게 생각해서 도리어 정도 이상으로 감싸주려거나, 아이돌까지 하나로 묶어서 탓하는 미친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장기적 안목에선 악수다.
“…….”
“다들 어떻게 생각해?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저, 저도요.”
문제는,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이미 신난 이놈들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단 말이지.
‘솔직히 이유가 좀 더러워서.’
사람들이 우리 보고 X 같은 건 다 회사 탓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어렵게 만들면 안 된다고 말하긴 그렇지 않나.
이런 말에 설득 안 될 놈들이 적어도 셋은 보인다.
‘…감정적인 명분이 있으면 딱 좋겠는데.’
그때, 옆에서 김래빈이 축 처진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면, AR팀 중 일부 분과는 소속이 완전히 바뀌며 헤어지게 되는 거군요…….”
“…!”
이 새끼… 말 잘했다.
이거다.
“음, 그냥 전부 모셔오면 되지 않을까?”
“그건 힘들 겁니다. 소속사도 그 정도로 호락호락하게 나오시진 않을 것 같아요.”
나는 일부러 단정 짓듯이 대답했다.
“우리가 전담팀을 데리고 나가는 것도 소속사에 엄청난 타격이 될 텐데, 다른 사람들을 빼내긴 힘들겠죠.”
“으으음….”
“그, 그럼… 같이 가지 못하는 분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전보다 힘든 환경에서 일하게 되시겠지.”
김래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는 팔짱을 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억지로 남을 필요는 없지. 각자 인생을 사는 거니까.”
“예…….”
그때였다. 선아현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저기….”
“응.”
“그러면, 그냥 여기 있으면서 못된 사람들을 다 쫓아내면 안 될까? 부, 불가능한가….”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쫓아내는 건 힘들지.”
“으, 으응. 역시 그렇지….”
그때였다. 류청우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앞으로 못된 짓 못 하게 만들 수는 있지 않아?”
“…!”
“맞지?”
이쪽도 의외로 백업 좀 하는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되죠.”
“오~ 전 그거 좋아요. 싸워요!”
차유진이 곧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놈다웠다. 그리고 배세진은 말을 우물거렸다.
“나쁘진 않은데….”
그래. 이쪽도 네 취향일 줄 알았지.
“그럼 이쪽도 고려해보는 걸로 할까요.”
꽤 괜찮은 호응이 돌아왔다.
‘됐군.’
나는 양손을 깍지꼈다.
“그럼 다들 한쪽으로 완전히 마음 굳힐 때까지… 시기를 기다려보죠.”
“시기?”
“이젠 이야기도 다 진행됐으니까 그래도 될 것 같아서요.”
나는 내 옆에 앉은 놈을 돌아보았다.
큰세진.
“지난번에 얘 말처럼, 대상 다 타고나면 우리 발언권이 더 커지겠죠.”
“…!”
다시 말하자면, 다른 놈들이 가장 안절부절못할 시점까지 말이다.
큰세진은 눈을 크게 뜨더니, 곧 씩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때까지 기다립시다.”
테스타는 그 후, 연말 연초의 시상식 시즌에 총 32점의 수상 트로피를 받았다.
그리고 그중 5점은 대상 트로피였다.
우리가 내밀 딜은 그 시점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