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6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61화
야밤에 시골 논두렁을 걷는 건 제법 오싹할 수도 있다. 도시처럼 불빛이 수두룩하지 않고 가로등이나 간간이 깜박거리고 있으니까.
그래도 애초부터 이게 익숙한 사람에겐 별 영향이 없는 것 같다만.
나는 삽을 들고 터벅터벅 따라오는 놈에게 물었다.
“안 무섭냐?”
“…! 혹시 제가 무서워할 이유가 있을지….”
됐다. 할 일이나 계속하자.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동영상 촬영 모드나 틀었다.
“카메라입니까?”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는 촬영을 해둬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셀프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김래빈도 얼결에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지금 시각은 새벽 3시 반. 저희는 무사히 집을 나섰습니다.”
“그, 그렇습니다.”
“나온 이유를 설명 드릴게요.”
나는 덤덤히 선언했다.
“더 이상의 당근 경제 사기는 그만… 저희는 혁명을 일으키기로 했습니다.”
“예??”
“혁명.”
김래빈은 동공을 떨기 시작했다.
“저… 형. 물론 당근 코인을 얻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타인의 소유인 밭을 함부로 파헤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 아닐지….”
“그건 당연히 무례한 행동이지.”
“예?”
나는 논두렁 끝, 시내가 시작되는 애매한 부근에서 발을 멈췄다.
이쯤 왔으니 됐겠지.
“여기다가 삽 두고 가자.”
“삽을…?”
김래빈이 잠시 멍한 표정이 됐다가 도로 영민함을 되찾는다.
“저, 그래도 당근을 뽑으신다면 삽을 가져가는 편이 용이하지 않습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목적지는 당근밭이 아니야.”
“…!”
“이러면 다른 사람들은 당근밭 가는 줄 알 테니까 들고나온 거야.”
집에 무인 카메라가 널려 있다. 당연히 당번으로 막내 중 누군가가 관찰 중이겠지.
그렇다면 분명 우리의 돌발 행동도 보고되었을 것이다.
‘당근밭으로 향하고 있다’라고.
‘애초에 예측도 했을걸.’
일대일로 교환비가 성립되는 코인과 당근.
그러면 밤중에 실물 당근을 서리하러 가는 놈들도 나올 법하지 않은가.
당장 김래빈만 해도 봐라.
“남의 당근밭에서 농작물 훔치러 가는 걸까 봐 걱정했어?”
“결코 형의 도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예능이니 그런 행동 양식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여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그래. 고민하느라 고생 많았다. 더 걱정은 하지 말고.”
그걸 역으로 노린 낚시니까.
‘어디 당근밭에서 죽치고 있어 봐라.’
못 따라붙을 너희를 위해 이렇게 레코딩도 따로 해주고 있지 않은가.
나는 플래시 라이트와 호미도 삽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버, 버리는 겁니까?”
“아니. 잠깐 두고 다시 와서 가져갈 거야. 가게에 삽 들고 들어가긴 좀 그렇잖아.”
“그건 그렇지만… 이 새벽에 여는 가게가 있습니까?”
“있지.”
나는 손가락을 들어, 먼 곳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간판을 가리켰다.
“24시 출장 영업하는 곳.”
“…?”
김래빈은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린다. 나는 그것을 카메라로 찍었다.
의아한 얼굴이 화면에 찬다.
“왜… 여길?”
“너도 이런 곳 방문해서 의뢰해 본 적 있다며.”
지난번에 어린 시절 이야기할 때 들었었다.
“네. 그렇긴 합니다만….”
“좋아, 너만 믿는다.”
“…?? 아, 알겠습니다!”
김래빈은 더 혼란스러운 얼굴이 됐으나, 일단 빠릿하게 대답했다. 과연 토 안 다는 놈이라 일하기 편하다.
“좋아. 들어가자.”
우리는 아직도 불이 들어온 낡은 건물 한 칸으로 들어갔다.
불법 도로 광고물에서 빨간 글씨가 바람에 휘날린다.
[우리종합철물점] [긴급 출장공사 가능 ?24시 영업]* * *
그리고 날이 밝은 아침.
“다들 일어나셨나요.”
“좋은 아침입니다….”
“…너희 왜 방이 아니라 현관에서 나와…?”
우리는 7시가 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손에 든 건 딱히 없다. 나갈 때 가져갔던 연장들뿐이다.
마당에 진을 치고 있던 PD가 당황한 목소리로 묻는다.
“두 분 어디 갔다 오신 건가요?”
그래도 간밤에 제작진에게 ‘모험 중’이라고 문자를 보내뒀으니 실종 신고 같은 건 안 했겠지.
나는 삽을 마당에 도로 세워두며 대답했다.
“당근밭에 가보려고 했는데 길을 잃었어요.”
“으하하하!”
기쁘냐?
많이 기뻐해라. 그래야 더 재밌지.
그리고 제작진의 심문 다음으로는 동료의 질문이 쏟아진다.
“형 뭐 했어요? 김래빈이랑 맛있는 거 먹었어요? 재밌는 거 했어요?”
“아니. 굶었어.”
“오우… 알았어요. 힘내요.”
차유진은 통과.
그리고 아직 취침 중이거나 막 일어난 녀석들을 지나자 한 놈이 헤드록을 건다.
당연히 큰세진이다.
“아니~ 문대 섭섭하네. 어떻게 세진이를 두고 이렇게 야밤에 분량을… 흑흑.”
놔라, 이놈아.
“분량이랄 것도 없어. 카메라가 없어서 스마트폰 썼으니까.”
“박문대 촬영 솜씨면 완전 전문가처럼 찍은 거 아니야? 막 중요한 장면이겠어, 나 더 서운해~”
나 참.
“사람 많으면 들킬 것 같아서 그랬다, 됐냐? 래빈이는 할 역할이 있어서 데려간 거야.”
“오….”
큰세진이 우는 소리를 관두고 씩 웃는다.
“점점 더 궁금한데?”
“아침 먹기 전에 전달할 테니까 애들 좀 모아 봐.”
“음?”
나는 피식 웃었다.
“좋은 일 해놨으니까. 공유해야지.”
그리고 잠시 후.
제작진은 테스타의 갑작스러운 외출 선언을 듣는다.
“여러분, 코인이 4개밖에 없는데 정말 장 보러 가실 거예요?”
“네. 그래도 가보려고요.”
“아 저희야 좋죠~ 뭐든 테스타 손자분들 마음이죠!”
기름칠한 것처럼 혓바닥 한번 잘 쓴다. 우리가 뭐라도 사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재밌게 뽑을 생각에 신났나 보군.
어쨌든, 우리는 다시 제작진을 대동해서 아침부터 마트로 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류청우가 친절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얘들아, 그럼 먹고 싶은 거 다 고를까?”
“Yeaaah! 좋아요!”
“그, 그럼… 과일을 좀, 가져올게요…!”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멤버들을 보고, 제작진이 당황했다.
“어어?”
“뭐지?”
그리고 PD가 은근한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당근밭에서 서리하시면 도둑질인 거 아시죠? 패널티로 두 배 차감입니다?”
“안 했다니까요.”
어디 감시망이 안 닿는 밭 구석에서 당근을 캐어내고 숨겨둔 건 아닌지 의심하는 것 같군.
안타깝지만 그건 아니다.
“오케이~ 그럼 이게 끝이지?”
“잠깐.”
“와 문대 통 크다, 1인 1오리?”
산더미처럼 고른 마트의 물건들을 가지고 계산대로 가자, 이번에도 마트 점장이 반겨준다.
다만 하는 말은 다르다.
“음~ 다 해서 동전… 그거 하나만 주소.”
“…!!”
“감사합니다~”
냉큼 계산을 마치려는 큰세진에게 제작진의 당황한 아우성이 붙는다.
“하, 하나?”
“잠깐만요.”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어어? 이럴 리가 없다니요, 점장님이 말씀하신 건데~ 청우 형 계산 좀요!”
“하하, 그래.”
류청우는 코인을 내밀고 계산을 마쳤다.
찰캉!
옆에 뜬 금액을 보니 30만 원어치는 산 것 같다. 제작비 달달하군.
PD가 가까스로 물었다.
“……뭐 했죠?”
“뭐가요.”
“아니, 분명 뭐 했는데??”
“자꾸 왜 그러세요. 원래 자발적으로 주민분들이 원하시는 가격을 받는 거잖아요. 그렇죠?”
“…….”
입을 쩍 벌린 PD 주변으로 다른 스텝들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듣는다.
나는 김래빈에게 아무 말 하지 말라고 눈짓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싸게 주셔서 좋네요.”
“그러게.”
우선 1절 완료.
아침 식사를 거창하게 차려서 먹고 난 다음에는 어르신들을 돕기 위해 다시 달구지를 몰았다.
“이야호!”
“차유진 너 속도 좀! 속도!”
그리고 이번에도 열광적이고 후한 코인이 쏟아진다.
“이거 받아가~ 어제 마당 쓸어 준 거 서비스여~”
“가, 감사합니다…!”
“아이고 청년들 고생하네~ 여기! 내가 딱! 다섯 개 넣었지.”
“우와! 아버님 정말… 크, 역시 잘생긴 사람은 마음 쓰는 게 다르다, 그죠?”
그렇게 번 코인만 3시간 만에 36개.
첫날보다도 많다.
멤버들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오~ 우리 당근 농장 일당만큼 벌었는데요.”
“됐네. 가자.”
이쯤 되자 PD가 자폭했다.
“어르신 안마의자… 필요 없으세요?”
“필요하지~ 그거 있으면 너무 좋겠어~”
“으으어!”
PD는 참지 못해 감탄사로 이루어진 외계어를 뱉기 시작한다.
번역하자면 ‘게임 더럽게 하네 이 자식들’쯤 되겠군. 과분한 칭찬이다.
나는 낮게 멤버들과 하이파이브했다.
2절 성공.
그리고 새참을 먹을 때쯤.
나는 뇌절이 되기 전에 마지막 폭로전을 준비했다.
“설거지 끝~”
“좀 쉬자.”
툇마루에 누운 녀석들 사이로 류청우가 편하게 눕기 위함인 것처럼, 슬쩍 복주머니를 풀어서 앞에 둔다.
그리고 혼란에 빠져서 마을 소식을 묻고 다니던 제작진은 냉큼 그 떡밥을 물었다.
“대체 무슨….”
그렇게 혹시 싶어 복주머니를 살피던 작가는, 곧 뭔가를 발견해 버린다.
“어어?”
“왜?”
그리고 PD를 격하게 부르며 동전 하나를 내민다.
“이, 이거 다른데요??”
“…!!”
제작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친 듯이 전화를 돌리고 뛰어다니기도 잠시.
마침 제대로 된 소식이 전해진다.
“누가 아침에 집집마다 몇십 개씩 당근 코인을 뿌렸대요! 특별히 드리는 거라면서….”
“…!”
오, 들켰네.
이미 늦었지만 말이다.
“…테스타 손자분들.”
“네.”
“지금… 이 동네에 풀린 당근 코인이 천 개가 넘는다고 하거든요?”
“그래요?”
그래.
본인의 코인 보유량이 TOP10 안정권 수준으로 많다고 생각하시면 인심이 돌아오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마트에도… 오백 개쯤 있다고요?”
“그래요.”
그래. 그쪽에도 대신 협상했다.
-앞으로 카메라 오면 일단 코인 하나로 모두 살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물건값은 제작진에게 청구하니 손해 볼 것도 없지 않은가.
“여러분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우리도 모르죠. 그렇지?”
“그럼 그럼.”
PD가 부르짖는다.
“문대 씨! 래빈 씨! 새벽에 나갔을 때 뭐 하셨어요?”
뭐 하긴, 당근 캤지.
새벽에 밭에 간 건 아니지만, 코인을 채굴하긴 했다.
‘채굴 방법이 남달라서 그렇지.’
그러게 누가 애들 사은품 장난감처럼 엉성하게 코인을 만들래.
복제하기 쉽게.
“아니, 이거…! 이게! 가짜잖아요.”
“뭐 문제 있나요.”
철물점에서 똑같이 찍어낸 노란 당근 무늬 동전을 들고 경악하는 제작진을 보며, 나는 고개를 기우뚱 숙였다.
“전 잘 모르겠는데요… 모양도 똑같고, 다 똑같지 않나.”
“어, 완전 똑같은데?”
“…나도 차이점은 잘 모르겠어.”
천연덕스럽게도 동조하는 동명이인 멤버들의 보조에 제작진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래.
원래 잘나가는 놈들이 예상외의 사태로 고통받는 예능은 재밌지.
근데 꼭 그게 테스타일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서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계속 대박 행진 길만 걸어온, 출연진에게 사기 치는 모 예능 제작군단은 어떤가.
지금 저놈들 말이다.
“아무튼! 문대 씨, 래빈 씨 철물점 가서 뭐 주문한 건 확실하잖아요!”
그건 이제 알아냈나 보군.
“네.”
“지금 테스타 손자분들은 당근 코인만 쓸 수 있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PD는 마침내 잡아낸 꼬리에 흥분해서 외쳤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 제 팬이라고 공짜로 해주셨어요.”
“…!!”
“누가! 팬심으로 일을 해요! 돈 준 거 맞잖아!”
어. 당연히 외상으로 달아놨지.
얼굴 알려진 연예인이 이래서 편하다.
야간에 실시간 특급으로 처리해서 몇 배는 요금이 더 붙었다만, 하나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증거 있나요.”
“어억!”
저거 잘하면 뒷목 잡겠다.
그리고 곧 PD는 타겟을 바꿨다.
“래빈 씨!”
“예, 예?”
“래빈 씨 선량한 사람이잖아요, 아니 이런 거짓말을 용납하시는 건가요?”
“그, 그건….”
오오. 괜찮은 접근이군.
그러나 네가 그럴 줄은 나도 예상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예…?”
김래빈은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그리고 당근 코인은… 모두에게 많이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흐름입니다.”
“…!!”
“문제 발생 시 제가 사비로 안마의자를 드리겠습니다!”
“예??”
이미 내가 2시간 세뇌… 아니, 잘 설명해서 설득해 놨거든.
“…….”
그렇게 제작진은 침몰했다.
“문대문대, 우리 마트 물건 다 사자. 코인 하나래.”
“잠깐만요.”
“왜요, 주민분들의 자발적 가격 책정으로 하나 받으시겠다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작가진까지 황급히 적은 스케치북을 들어 올린다.
[저희에게 토끼 같은 제작비와 PPL이 있어요! 살려주세요!]무조건 항복이군.
“힐링! 힐링 드릴게요!”
“이번만요?”
“다음에도! 다음에 저희 아주 힐링 풀코스로 저기 온천 보내드릴게요, 온천!”
그렇게 당근 코인계의 경제 교란은 무분별한 양산으로 인한 떡락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딱 그 시점에서, 1화 예고가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