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9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91화
LeTi 서바이벌이 ‘예술’을 주제로 하는 야심 찬 퍼포먼스 무대를 구현하는 날.
무대 백스테이지.
“저희 구호 한번 외치고 갈까요?”
“넵!”
크게 대답하며 손을 내미는 팀원을 따라, 류청우도 한 손을 내밀었다.
“다 잘하는 D팀, 잘하자!”
웃으며 구호 선창을 요구한 것은 참가자 신재현이다. 그가 알기로는 청려.
VTIC의 리더지만 지금은 이 이상한 상황에 같이 빠진 사람이기도 했다.
‘이렇게 같이 무대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류청우로서는 뜻밖의 일이었다. 애초에 과거로 돌아와 류건우와 함께 대학에 다니는 상황 자체부터가 그렇지만.
‘공상 같은 환상이야.’
이런 초현실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일종의 다른 삶 체험처럼 그럭저럭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VTIC 리더와의 무대 준비가 지극히 순조롭기도 했고 말이다.
‘굉장히… 모든 걸 적재적소에 잘 쓰네.’
참가자부터 트레이너까지.
놀라울 정도였다. 이미 머릿속에 다 있는 그림을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은 소름 돋을 만큼 견고했다.
좀 기계적이긴 했지만… 자신보다 무대 통솔에서 능력 있는 리더는 맞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잘하는 점을 더 단련해야겠지.’
류청우는 호승심에 쓴웃음을 짓는 대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제 대기하시면 돼요.”
“네!”
구호를 찍은 유인 카메라는 다음 타자를 찾아 빠지고 설치 카메라만 백스테이지에 남는다.
그들의 무대는 제일 마지막이기에, 류청우는 지금까지 아래 대기실에서 무대를 쭉 보았다.
‘다 잘했어.’
차유진과 김래빈이 찢어져서 다른 조로 하나씩 들어가며 각자 대단한 기여도를 보여줬다.
-Yeah!
그는 액션 페인트 퍼포먼스의 센터였던 차유진과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신나서 대화하며 거의 홀로 편곡을 끌고 간 김래빈을 떠올렸다.
‘특히 래빈이는 진짜 대단한데.’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기억이 없어도 저렇다니, 때도 느꼈지만 천재는 확실한 것 같았다.
“음.”
그리고 바로 그들 직전, 3번째 무대가 이제 눈앞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다.
박문대와 VTIC 멤버들의 무대.
현실에서라면 사람들이 졸도했을 조합이었으나,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괜찮겠지.’
그는 연습실에서 그 팀의 첫 안무를 보자마자 차유진이 속삭인 말을 떠올렸다.
-저거 그 무대예요! ‘October 31’!
차유진이 팀명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던 첫 팀의 무대.
‘내가 사정없이 박살 났었잖아.’
류청우의 팀과 붙었던, 운이 좋았다면 같은 팀이 될 수도 있었지만 버튼 한 번으로 갈라진 그 팀 말이다.
‘그땐 아닌 척했지만, 실은 꽤 아쉬웠는데.’
류청우는 이제는 추억처럼 느껴지는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어렴풋이 미소 지을 뻔했으나, 그대로 멈췄다.
그 무대와 똑 닮은 이번 무대를 연습하는 도중 박문대의 상태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완전히 죽은 듯이 가라앉아 보였다.
-괜찮아요?
-그래. 괜찮아.
-형 아파요?? 어느 곳 아파요?
-아니. 아픈 건 아니고.
안색이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오죽하면 다른 팀인데도 자신이나 다른 테스타 멤버들이 몇 번 기웃거렸을 정도다.
하지만 (김래빈을 제외한) 다들 이유를 짐작하다 보니 뭐라 말하기도 어렵긴 했다.
자기 것이 아닌 무대에 대해 함부로 ‘해라, 말아라’ 말할 수는 없으니까.
그것도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 중에, ‘반드시 대상을 타서 여기서 빠져나가겠다’라고 다짐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래도 며칠 더 그랬다면 어떻게든 더 말을 해봤겠지만.’
중간 평가를 기점으로 상황이 좀 달라졌다.
박문대는 무대 구성을 바꿔 버렸다.
-시간이 없을 텐데….
-그래도 저희는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박문대는 눈에 빛이 돌아와 있었고, 평소 같은 단단함을 회복한 것 같았다.
흔들리지 않았다.
차유진은 깔끔히 입장을 정리했다.
-문대 형 너무 많이 생각해요. 이번에 좀 덜 하는 연습 해야 해요. 우리는 지켜보는 거예요.
차유진은 가장 어린 멤버 중 하나였지만, 의외성 있게 핵심을 찌를 줄 아는 멤버기도 했다.
그래서 류청우는 이번엔 박문대에게 따로 참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저 무대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다.
그는 세트가 전부 설치된 스테이지를 상반신을 살짝 빼고 좀 더 가까이서 볼 생각이었으나….
“형은 언제나 무대에서 잘하죠.”
“…! 네. 그렇죠.”
옆에서 VTIC의 리더가 말을 걸었다.
지금은 그보다 연하지만 차마 말을 놓지 못한 상대는 꽤 즐거운 눈으로 무대를 보고 있었다.
“이런 걸 준비했구나.”
“…….”
류청우는 고개를 돌렸다.
시작된 무대는 어느새 눈 내리는 자작나무 숲을 투영하고 있었다.
-…….
천천히 어두워지는 무대에 종이 울리며, 노란 달이 뜬다.
그리고 울리는 여성 코러스.
-Ah- ha ha Ah- ha ha
아름다운 단조의 하모니.
그리고 그 불온한 화음에 맞춰서 나무 사이로 인영이 드러난다.
검은 후드를 쓴 훌쩍한 실루엣 셋.
그 사이로 사지가 빠져나온다. 린넨 천을 걸친 하얀 팔들이 겹치는 짧고 강렬한 인트로 퍼포먼스.
-Woo! oooo oo, oo-
그리고 마지막 코러스 음에 맞춰서, 셋은 다시 우뚝 선다.
대형을 맞춘 채 차례대로 넘기는 후드.
드러나는 하얀 얼굴과 함께 화음을 맞춘 보컬이 물줄기처럼 스테이지를 울린다.
-It’s cold outside
come here, come in!
Let’s drink with us, tonight
“…!”
캐롤이었다.
작년 LeTi 소속사의 합동 윈터 스페셜 앨범의 영어 타이틀.
19세기가 생각나는 레트로한 그 캐롤은 대중적으로 엄청난 성적을 거두진 못했으나, 인터넷에서 컬트적인 마니아층을 만들기도 했었다.
그 고전적이고 따듯한 멜로디는 과장된 오케스트라 반주와 만나 우아하고 은밀한 느낌으로 변해 있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반주는 야.’
그렇다.
선곡을 하나만 해야 한다는 제한은 없었다.
박문대는 때처럼 ‘새로운 세상으로’를 완전히 뒤틀어 파격적으로 편곡하는 대신, 도리어 원곡의 반주를 빌려온 것이다.
단조로 바뀐 어두운 멜로디가 꽃의 요정을 표방한 우아한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만나 분위기를 살린다.
그리고 곡은 무용에 적합한 리듬으로 바뀐다.
-이 밤
창밖에 들리는 종소리
Ding-dong Ding-dong
발라드 같은 1절의 벌스.
두 멤버가 채율의 허리를 잡고 누인 채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를 한다.
눈을 확 사로잡는 큰 동작.
채율의 보컬을 받친 류건우의 저음 화음은 물방울처럼 동그랗게 견고하다.
-Ding-dong Ding-dong
그렇게 시작하는 1절은 스토리텔링과 아이돌다운 안무를 적절히 섞었다.
참가자들은 흡혈귀를 연기하는 것답게 분위기를 위해 웃지 않았으나, 그 외의 모든 표정 연기를 제스처와 함께 훌륭히 해낸다.
송곳니나 피 분장으로 ‘내가 흡혈귀’라고 소리를 지르는 대신, 의상 양식과 안무, 제스처로 유추하게 만드는 간접적인 방식.
후드 로브가 망토처럼 휘날리며 그 안의 화려한 체인이 달린 의상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겨울의 소리
Ding-dong Ding-dong
The voice of winter
로브 안 붉은 안감이 물결친다.
양손으로 자신의 목을 잡고 상체를 돌리는 프리코러스의 안무 다음으로, 강약을 조절한 군무가 절묘하게 펼쳐지는 후렴까지.
어둡고 오밀조밀한 오케스트라는 후렴을 지나며 다시 웅장해진다.
-Tonight!
In the middle of winter
Lal lalalalala!
세 명의 인원이 전신을 젖히는 인상적인 포징과 함께 일제히 사방으로 동선을 분산하며 1절이 끝나는 순간.
잦아든 반주 위.
빈 무대 중앙으로 피아노 멜로디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 ♪♪♩- ♬♬♪- ♩
그리고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의 벌스 멜로디다.
여기서 새로운 인물이 무대에 등장한다.
음악에 맞추어 나무 뒤에서 등장하는, 흰 손.
그리고 곧 팔을 뻗으며 전신이 무대 위로 드러난다.
-♩♬
실루엣이 드러나는 흰 의상을 입은 검은 머리의 발레리노 멘토다.
가벼운 턴. 그리고 그랑 주테.
허공을 뛰는 동작은 과하지 않게 조절되어, 마치 스노우볼 속 인형처럼 배경과 균형미를 이룬다.
그리고 오르골 같은 목소리.
-Can’t you feel me.
무대 왼쪽 사이드에서 다시 후드 쓴 인영이 돌아선다.
“…!”
류건우.
그는 양손으로 헤드 마이크를 쥐고 부드럽고 나직하게 가사를 불렀다.
-따듯한 네 손길이
날 일으키네 아름다워
봄의 정원
조명이 베이지 빛으로 따스해지며, 잠시 겨울의 분위기가 사라진다.
힘이 있어 아름다워 보이는 완벽한 발레리노의 동작이 이어진다.
아라베스크.
-Umuum, Umuum….
하지만 순간이다.
브릿지 마디의 끝, 다시 곡에 오케스트라가 몰아치는 순간.
발레리노는 도망치듯이 무대 밖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순식간에 다시 세 명의 인영들이 낚아챈다.
후드를 던지며 밀어닥치는 화려한 차림새의 퍼포머들.
차가운 조명이 다시 터지듯 무대를 채운다.
-Woo! oooo oo, oo-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후렴의 안무.
다만 이번에는 동선에 새로운 동작이 섞였다.
바로 직전에 발레리노가 했던 것 같은 턴과 점프.
다만 영리하게 구성했다.
‘느낌이 달라.’
마치 그것을 흉내 내는 듯하지만, 발레와는 확연히 다른 장르의 댄스팝적인 동작이다.
질을 직접 비교할 수 없이, 그저 몰아치는 무대의 퀄리티만 하나로서 느낄 수 있도록.
-In the snowy garden
in a teacup, in a sugar bowl
자극적인 아이돌의 군무와 클로즈업용 제스처가 꽉 채운다.
그리고 힘이 넘치는 엔딩.
-The bell rings
ring ri-ring
ring-ring-ring
고개를 유연히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정적인 구성의 끝.
찢어지는 편곡과 뒤섞이며 고음의 애드리브 보컬과 함께 모든 음이 하나로 모인다.
그리고 마침내 웃으며 정면을 보는 인영들이 팔을 들어 올린다.
-The winter is… in!!
음악이 끝났다.
그리고 모든 동작이 멈춘 무대 위.
와아아악!!!
박수와 환호가 굳이 빼는 것 없이 쏟아진다. 심지어 비명 같은 응원까지.
잘했어!
로브를 걸친 인영들이 자세를 다듬고 꾸벅꾸벅 인사를 하며 미소를 가다듬는다.
아찔하고, 격렬하고, 어두운 무대.
일부러인 듯 다소 난해했다.
다른 무대였다면 대중성을 무시해 너무 시험적이라며 혹평을 받을 위험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키워드는 ‘예술’.
관객도 심사위원도 기대하는 것이 좀 다를 것이다.
“음.”
류청우는 살짝 고개를 돌려 관객석 바로 앞을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엄지를 슬쩍 들어 올리는 것이 여기서도 살짝 보인다.
아주 좋았다는 듯이.
‘와.’
재밌네!
류청우는 다음이 자신의 차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웃으면서 큰 박수를 보냈다.
* * *
무대가 끝났다.
“후욱.”
나는 후드를 벗어 손에 움켜쥐었다.
빌어먹게도 시원했다.
‘뭐지.’
해방감이 어마어마하다. 누가 보면 벌써 대상이라도 탄 줄 알겠다.
나는 후드를 접어서 스탭에게 보냈다.
‘넘겼다.’
점수까지 안 봐도 안다. 이건 먹혔다.
미적거리며 늪에 빠진 듯이 질척거렸던 대가리가 거짓말처럼 팽팽 돌아간다.
‘직통이군.’
무대 아드레날린은 통하기만 하면 이만한 게 없단 말이지.
나는 이마를 쓸어넘겼다.
“형!”
그때, 페인트 범벅인 의상을 벗은 놈이 달려와 팔을 건다.
차유진.
“형 훌륭해요. 완전 멋있어요!”
“억.”
아니, 잠깐… 이 새끼 남의 목에 팔 걸고 힘을 줘?
이 미식축구 하던 미친놈이 내 대가리를 터뜨리려고 하나. 나는 부러질 뻔한 목을 수습하고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러자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제가 미리 말해요.”
뭘.
“원래 저랑 했던 무대 마음대로 써도 돼요. 신경 쓰지 마요!”
“…!”
그리고 놈은 아까 내 목을 부러트릴 뻔한 팔로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번갈아 가리킨다.
“우리 무대 여기에 있어요. 그리고 현실에 있어요. 멀티버스에서 써도 안 없어져요!”
“…….”
“우리는 그걸 잊으면 안 돼요. 알았죠?”
이 말을 며칠 전에 들었으면 도리어 ‘그러니 제대로 해라’라는 말로 알아듣고 이 악물고 벽에 대가리나 박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끝난 다음에, 머리 깨끗해진 다음에 들어보니… 이렇게 맞는 소리도 없군.
‘매몰된 건 나였나.’
이 괴상한 상황에 맛이 제일 먼저 가는 게 나였을 줄이야. 나는 피식 웃으면서 놈의 어깨를 쳤다.
“알았어.”
“그럼 됐어요!”
놈은 씩 웃었다.
“그리고 저도 제 마음대로 써요. 구경할 준비 해요!”
“어, 그래라.”
나는 놈이 인터뷰를 위해 잡혀가는 것을 보며, 의상을 마저 환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의 무대를 끝내고 내려온 놈도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말을 건다.
류청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