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0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06화
비행기에 같이 타고 있었을 시스템 보유자가 내 머릿속에서 증발했다.
없던 것처럼.
그런데 눈앞의 청려, 이놈은 기억하고 있었다면.
‘내가 모른다는 걸 이 새끼가 눈치를 못 챘을 리가 없다.’
반년이 넘게 떠들어대는 동안 위화감 한번 못 느꼈을 리가 있냐.
이건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이다. 당장 이놈 반응도 그렇다고 말하고 있지.
나는 악문 이사이로 말했다.
“왜 말 안 했냐.”
청려는 웃으며 대꾸했다.
“후배님이 그렇게 반응할 것 같아서.”
“…….”
뭐?
“지금 후배님은 여러 생각이 들겠지만… 음, 나에 대한 분노나 짜증을 제외하면 남는 건 하나일 텐데.”
청려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신경 쓰이죠?”
“……!”
“누군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어떤 처지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걱정하잖아요. 아니에요?”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있냐?”
X발 사람이 증발했는데 당연히….
아니, 잠깐.
나는 지난번, 부모님에 대한 기억 오류로 이야기를 꺼냈을 때의 이놈 반응을 떠올렸다.
‘기억이란 건 원래 오류가 있으니, 진행에 필요한 정보만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면 괜찮다….’
왜냐하면,
-경계해야 할 건… 기억 때문에 생기는 부가적 효과죠.
-감정.
그리고 깨달았다.
“…그놈이 없어지든 말든 목표 달성과는 관계없으니까?”
“그래요.”
놈이 눈을 가늘게 뜬다.
“후배님은 신경 쓰이는 게 생기면 효율을 자꾸 합리화하는 편이라.”
뭐라고.
“음, 예시를 들까요? 이미 그룹이 결성된 상태에서도 후배님이 테스타 멤버를 계속 찾으려는 건 대상에 도움이 돼서가 아닐 텐데.”
“…!”
청려가 나를 쳐다본다.
“오늘은 화제성 없는 시상식에서 별 의미 없는 기념 무대도 했고.”
“…….”
“지금도 그렇게 곁가지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후배님이 끌어들인 사람의 안위는 얼마나 신경 쓰겠어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 짓는다.
“설명은 충분한 것 같은데, 화가 난 건 지금이라도 나한테….”
“시스템 가지고 있던 놈이 지금 상태가 안 좋은가 보지?”
“…!”
이거다.
나는 놈을 쳐다보았다.
“나는 기억 못 하고 너는 기억하는 정도의 차이면 굳이 이 상황까지 올 필요도 없었어.”
그냥 네가 기억 못 하니 내가 전담해서 찾아보겠다는 수준으로 설득도 가능할 것이다. 그 말대로 어차피 난 기억 못 하니까.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사실을 알면 너는 신경 쓰여서 일을 못 할 것이다’ 수준의 과한 대답이 나온다고?
“넌 그 자식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아는 것 외엔 설명이 안 돼.”
그것도 상당히… 나쁜 쪽으로 말이다.
내가 동요할 만큼.
나는 팔짱을 끼고 놈을 노려보았다.
“…….”
청려는 동요하지 않았다.
“후배님은 지금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일에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캘 필요가 있을까요? 원래도 별로 안 친했어요. 둘.”
“알 바냐? X발 네가 지금 사람을 속이려 든다는 게 문제지.”
“속이지 않았는데.”
놈은 혀를 찼다. 이 새끼가.
“후배님, 후배님도 나한테 굳이 말하지 않은 정보가 있잖아요. 안 그래요? 상대가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해서.”
“…….”
나는 동료의 현 상태를 알려주는 상태창의 이모티콘 목록을 반사적으로 떠올렸다가, 입을 다물었다.
놈이 웃었다.
“마찬가지예요. 나도 후배님이 알지도 못하는 상대에게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지 않길 바랐던 거죠.”
궤변 한번 X 같이 잘 말하네.
“내가 그놈이 누군지 알면 불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기억을 못 할 뿐이지 아는 사이는 맞잖아.”
“음?”
놈이 고개를 옆으로 까닥인다.
“지금은 모르잖아.”
나는 이를 악물었다.
화를 내거나 때리는 건 멍청한 짓이다. 이 새끼는 좋든 싫든 지금 내 그룹이고, 폭력 사태가 언론에 걸리는 순간 스캔들이다.
‘그렇다면, 이성적으로 접근하자.’
나한테도 대가리가 있다. 굴려라.
시스템이 폭주한 상태에서, 사라진 시스템 보유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
그때였다.
[이이이 사람 뭐 이렇게 뻔뻔해요? 형, 진짜 제가 몸만 있었으면 때렸어요!]상태창.
나는 큰달의 팝업을 보다가 무심코 입 밖으로 정답을 냈다.
“그놈, 시스템한테 먹혔구나.”
“…….”
큰달이 저 꼴이 된 것처럼 말이다.
“맞지?”
청려는 대꾸하지 않았다. 사실상의 긍정이었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그렇다면.
‘분명 단서가 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그놈이 정말 시스템에 흡수되었다면 지금 시스템을 이용 중인 나는 알아차릴 수도 있다.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대목을.
큰달이 에러를 일으켜 코인을 줬던 것처럼, 뜬금없고 전과 다른 규칙성을 가진 것.
예외적이거나, 시스템 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 것.
“…….”
그건.
-이건 쓸데도 없는데 왜 나오는 거냐 대체.
코인처럼 동그란 금색 형태의… 하지만 문자로만 표시되는 것.
[실패 위로금이 왔다….]+ 10G
+ 10G
골드.
이건 대체 왜 있는 건지 몰라서 포맷이 적용되며 튀어나온 더미 데이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만약… 일종의 신호라면.
시스템 안에서 줄 수 있는, 간신히 용납된 편법이나 버그라면.
‘골드를 생각하면 나는 누가 떠오르지?’
즉각 떠오르는 것이 있다.
-대충… 골드 1과 골드 2로 부를까.
에서 지었던 호칭.
최근까지 나와 인연이 있던 둘.
‘골든에이지의 하일준, 그리고 스페이서의 권희승.’
“…!”
나는 욕설 섞인 감탄사를 참았다.
자, 침착하자.
둘 중에 미래를 알고 있는다는 것이 더 잘 어울리는 행보는?
‘이건 너무 뻔하지.’
나는 입을 열었다.
“권희승이군.”
“…….”
갑자기 새 시즌에서 우승한 놈. 그리고 같은 기획사라 나와 접촉할 시간이 더 많은 놈은 결국 그놈이다.
청려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으나, 눈을 가늘게 떴다 펴는 것을 보았다.
‘맞았다.’
나는 주먹을 쥐고 놈이 선 책상 앞까지 걸어갔다.
“이제 아니까 대답해라.”
“…….”
“그 새끼가 정확히 어떻게 됐는지.”
그리고 그걸 넌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말이다.
청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기다려 볼 생각은?”
“없어.”
“음.”
놈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그놈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
[ II ]————————
갑자기 세상이 멈췄다.
‘아.’
나는 주변을 보았다.
이미 충분히 조용하며 움직임 없는 방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움직이는 것들이 있다.
방 밖 거실에서 들리는 TV 소리,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 미세한 명암 같은 것들이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추고 납작해진 듯이 굳었다.
동작이 다 사라지고 멈춘 세계.
그리고 그사이.
“아, 놀랐어요? 이걸 완전히 가시화하려면 잠시 진행을 멈춰야 한다고 해서.”
한 놈만이 생동감을 가지고 움직인다.
청려.
“…멈춘다고.”
“네. 음, 보통 게임이라면 흔한 일인 것 같던데.”
놈이 손을 든다.
“설정창을 불러올 때는, 플레이를 멈춘다면서요.”
그리고 눈앞에 수많은 홀로그램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지이이이잉-
작고 큰 박스로 가득 차는 굳은 세상.
하지만 글의 방향은 반대다.
그러니까… 내가 보라고 뜨는 게 아니라, 반대 방향에 선 놈이 보라고 뜨는 것이다.
청려.
[업무 : 캐릭터의 원활한 게임 활동을 돕자!] [▶퀘스트 진행 중] [환경 설정]그 홀로그램창들 너머, 나는 상상도 못 했던 글도 거꾸로 확인했다.
내가 가진 것과 유사한 Ul.
[캐릭터 목록] [류건우 (박문대) : 당신에게 경악하는 중 (∑//ㅁㅍ;)]X발.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게 뭐야.”
“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지.”
놈이 턱에 손가락을 부딪친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듯 초점을 흐린다.
* * *
몇 달 전.
태평양을 가로지르던 청려의 전용기 안.
[형, 이거 이상….]신재현은 비행기에서 의식이 잠기기 전에 보았다.
‘상태창’이라고 하는 것의 실물을.
‘저렇게 생겼었나.’
엄청난 감흥은 없었지만, 다음에 본 것은 좀 문제였다.
그 수많은 홀로그램이 깨진 것처럼 뜨는 가운데, 권희승이 그래픽 분해되듯 그 창들 사이로 흡수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흠.’
저건… 좀 곤란할 수도 있겠어.
그 생각을 끝으로 다시 사고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류건우와 함께 연습실 안에 있었다.
-망할!
-하하.
그리고 한동안은 이것이 결국 돌아온 ‘재시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민하면서 계획을 다각화했다.
하지만 결국 류건우, 그러니까 박문대에게 설득된 것이다.
-그래.
-너희 개, 콩이한테 돌아가자고.
동맹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상대였다. 박문대의 동료 선택에 불만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감안할 수 있었다.
다만, 그전에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가 이곳에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귀가했을 때.
수많은 재시작 중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업무가 도착했습니다!]“…?”
상태창이 뜬 것이다.
그러나 그가 플레이어는 아니다.
Server : 권희승 (안정)
GM : 신재현
플레이어 : ■■■
“이런.”
신재현은 희미하게 웃었다.
‘변수다.’
그리고 패가 늘었다.
* * *
“그래요. 권희승은 현재 서버에 표시되는 상태고.”
“…….”
“나에게 특별한 이득은 없었어요. 그냥 후배님의 진행 상황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정도.”
나는 미간을 눌렀다.
청려는 회상하듯이 고개를 옆으로 숙이더니, 웃는다.
“그리고… 약간의 보조 능력 정도?”
“너.”
스치는 기억에 입을 열었다.
“설마 김래빈이 바로 동료 뽑기에서 나온 것도.”
“음, 경험치가 쌓이면 확률 조정이 잠깐 가능하던데요.”
망할.
나는 혀를 깨물었다.
‘의심해 볼 법했는데.’
게임 튜토리얼에서 맨 처음 주는 친구는 진짜 살아 있는 계정이 아니지 않은가.
보통 GM.
게임마스터의 계정이다.
“이걸… 숨겨?”
나는 놈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옷이 뜯어질 것처럼 쥐어진다.
“마찬가지의 대답을 줄 수밖에 없는데요.”
“뭐?”
그러나 놈이 미동도 하지 않고 내려다보았다.
“네가 이럴까 봐 알려주지 않았다고 이미 말했을 텐데.”
“…!”
“이 홀로그램으로 서버 교체 따위의 일은 불가능했거든.”
“그럼,”
“그럼 남은 효과는 뻔하지. 넌 서버의 의미를 신경 쓰느라 효율이 떨어지고….”
청려는 무덤덤하게 중얼거렸다.
“진행하는 내내 내가 뭘 할까 불안해하고, 의심하고.”
“…….”
“그러느니 입 다물고 대상 받을 때까지 있는 게 낫지. 끝나고 돌아가서 말해도 안 늦을 텐데.”
“그래서 저 말을 따랐다고.”
“그렇다기보다는 후배님의 말에 설득됐다고 하죠.”
놈이 실소를 흘렸다.
“대상을 타면 엔딩을 보고, 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길 거라는 말에.”
“…….”
“아, 전부 말하라고 했지.”
나는 청려를 쳐다보았다. 놈이 찡그리는 것처럼 웃는다.
“맞아요. 뭐가 더 있긴 했네. 이게 나에게는 봉급 형태로 뭘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놈이 홀로그램 하나를 앞으로 보내, 내 앞까지 친히 대령한다.
[GM 엔딩 보상 : 동료 선택권]“…!”
잠깐, 이거, 이렇게 되면….
“그래서, 그동안 계속 생각해 봤는데요.”
나는 다음 말이 뭔지 직감했다.
“혹시 이곳에서 콩이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 선택권으로 고를 수 있다면….”
놈이 눈을 가늘게 뜬다.
“나는 아쉬울 게 없지 않나. 좀 돌아가는 일이지만.”
망할.
“후배님도 생각해 봐요. 가치 있는 모든 걸 계승할 수 있다면, 여기가 더 좋지 않아요?”
놈이 내 손을 부드럽게 자신의 목에서 땠다.
“원래는 후배님 의견에 그냥 따라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후배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네.”
놈이 자리에 앉더니, 턱을 괴며 진지하게 묻는다.
“이 가능성은 어떻게 생각해요?”
“……넌,”
“아, 스케줄은 괜찮아요. 계속 멈춰두면 되죠. 나도 거의 처음 써보는데… 딱히 제한 시간은 표기 안 되네요.”
놈이 웃으며 상태창에서 시선을 뗀다.
“그러니까 말해봐요. 우리 둘 다 하나의 결론에 완전히 승복할 때까지, 계속.”
“…….”
“남은 시간은 무한하니까, 하하!”
X발.
지뢰를 밟은 것 같은 긴장감이 깃든다. 생물학적인 반응으로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그래도.’
나는 입을 열었다.
* * *
‘어쩌지?!’
박문대 본체, 상태창이 된 큰달은 비명을 지르며 의식 세계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저 미친놈이 멈춘 이곳은 완전히 생동감을 잃었다.
그리고 납치극 시즌 2가 방영되기 직전이었다!
‘으아아악 뭐 안 되는…??’
그러다가 깨달았다.
어라?
류건우와 시야를 공유하던 자신이 어느새 유체이탈을 하듯이 바깥으로 나왔다는 것을.
‘어어어?’
그는 쑤욱 위시즈의 숙소 천장을 뚫고 나와, 서울 상공으로 치솟았다.
‘이, 이게 뭐야?’
왜 이게 되는 거지? 아니, 그보다 돌아가야 했다! 형을 혼자 둘 수는 없었다.
그가 마음을 먹고 다시 어떻게든 의식을 구겨 넣으려던 순간이었다.
반짝임이 보였다.
‘…어?’
금색 동그라미들.
마치 도로시의 노란 길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허공에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것은…, 상태창인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에러 표시다.
‘와.’
‘진행 일시 멈춤’ 상태라서 이런 것도 보이나 보다.
강렬해 보이는 에러의 반짝임에 잠시 그가 넋을 놓을 뻔했으나, 곧 뭔가를 눈치챘다.
여기서 에러라고 부를 만한 건, 시스템에 안 잡히게 변칙적으로 기억을 되찾은….
‘선아현!’
그것을 깨닫자, 또 다른 가능성도 불쑥 그의 머리에 떠오른다.
자신의 능력이 확장된 상태에다가 저 사람은 에러니까, 설마?
‘몰라! 해보자!’
그는 자유로워진 의식으로 선아현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일단 시도했다!
[우리 형 좀 도와주세요!]“어, 어어…?!”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던 길.
갑자기 멈춘 세상에 당황해서 자동차에서 내리던 선아현은, 갑자기 뜬 홀로그램에 기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