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화
3차 팀전이 진행될 MusicBomb의 스테이지 밖은 인산인해였다.
그리고 인파의 대다수가 방청객이 아니라 밖에서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인파 틈을 비집고 입장 줄에 들어가던 어느 대학생은 그 점이 불만이었다.
‘들어오지도 못하면서 왜 바글바글 모여서는.’
진짜 볼 수도 없으면서 자기들끼리 신나서 저러는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난번 2차 때도 그러더니, 규모가 더 늘었네.’
그녀는 진절머리를 내며 입장 줄에 섰다. 길이를 보니 입장하려면 한세월은 걸릴 것 같았다.
‘짜증 나.’
그녀의 앞뒤는 나눔받은 슬로건이나 간식을 든 사람들이었다. 마침 그 슬로건들에 적힌 이름이 똑같았다.
‘…쟤 진짜 인기 많아졌어.’
그녀는 지난 2차 팀전 때를 떠올리며 입을 삐죽거렸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박문대 팬이어서 기분이 나빴는데, 하필 그녀가 좋아하는 김래빈이 박문대와 같은 팀이기까지 했었다.
‘그 컨셉충 같은 걸 왜 좋아한대?’
그녀는 투덜거렸다.
그러나 막상 지난번 팀전에서 무대가 끝나자마자 미친 듯이 열광했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부정 중이다.
그래도 인터넷에서 박문대를 비웃는 짓은 하지 못하게 됐지만 말이다.
‘…뭐, 무대에서는 괜찮았으니까, 봐주는 거야.’
그녀는 애써 부정하면서 박문대의 슬로건에서 시선을 뗐다. 누가 뽑았는진 모르겠지만 예뻐서 더 짜증 났다.
“질서 지켜주세요!”
“밀지 마세요!”
사전에 받은 번호대로 줄을 서서 안에 입장했지만, 중간부터는 달리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앉는 좌석 없이 일괄 스탠딩이었기에 먼저 설수록 유리했던 것이다.
그녀는 무대 바로 앞 펜스를 잡았다.
‘됐다!!’
무려 18번째로 방청 신청에 성공한 자신을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방청 신청자가 폭주하며, 제작진이 신청을 선착순으로 다시 바꾼 덕에 가능했던 쾌거였다.
‘완전 코앞에서 보겠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그 기대가 불편함으로 변하기 직전까지 시간이 흐른 후에야 겨우 MC가 입장했다.
“, 3차 팀전 무대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드디어 시작한다는 안도감과 기쁨, 짜증이 섞여서 폭발적인 환호성이 울렸다.
‘빨리 시작이나 좀 해!!’
그녀는 속으로 외치며, 펜스를 꾹 잡았다.
“이번 팀전의 주제는 ! 선곡부터 무대장치까지, 공연의 모든 요소를 참가자들이 직접 선택하여 만들었습니다!”
‘이건 김래빈 무조건 잘했겠다!’
못하는 건 정치질뿐인 자신의 주식을 떠올리며. 그녀는 흥분감에 다른 방청객들처럼 환호를 보냈다.
“또한 주주님들의 지난 매수 경향성을 빅데이터 알고리즘으로 분석하여, 주주님들께서 함께 좋아하시는 참가자들이 한 팀이 된 상태입니다!”
MC의 말에 방청객들은 여기저기서 무슨 개소리냐며 수군거렸다.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냥 따로 투표를 받지 뭐하러 저런 헛짓을 했는지가 요지였다.
어쨌든 MC는 천연덕스럽게 오프닝 진행을 마쳤다.
“여러분의 기대가 크신 것 같은데요, 그럼 지금 바로! 오프닝 무대가 공개됩니다!”
“와아아악!!”
“참가자들이 고른 곡은… 감성돌 맥시마이트의 입니다!”
방청객들은 즉시 무대로 집중을 돌렸다.
혹시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참가자가 지금 등장할까, 기대에 찬 눈동자가 어두운 무대로 향했다.
‘좀 나중에 나오는 게 좋지만… 아, 모르겠다! 당장 나와줘!!’
그 생각에 보답하듯이, 무대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피이이잉.
‘헉!’
그러나 완전히 밝아진 것은 아니었다.
가닥 굵은 노란색 빔라이트들이 무대 아래에서 솟구친 것이다. 빛줄기들은 여전히 어두운 무대 위를 어지럽게 비추었다.
언뜻 보이는 무대엔 거대한 나무그루터기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울리는 관악기 소리.
우웅-. 우우우웅-. 우우- 우우우-.
국악 수연장지곡의 초반부 대금 소리였다. 우아하고 구슬픈 음이 홀로 무대를 배회했다.
그리고 한 인영이 무대 왼 구석에서 튀어나왔다.
선뜩하리만치 깔끔한 공중제비였다.
목각으로 된 토끼탈을 쓴 장신의 남자는 달려 나와서 허공을 가르며 뒤로 돌았다.
“…!!”
대금 소리가 끝났다.
한 다리로 착지한 인영의 움직임에 따라, 몸에 걸친 두루마기가 펄럭거리며 안에 입은 양장 차림이 드러났다.
그 순간, 무대를 가르던 빔라이트가 완전히 사라졌다.
완전히 깜깜해진 무대에서, 대금 소리 대신 목소리가 울렸다.
-내 기다림은 길고
언제나 즐거우니까
반주가 없는데도 음정 하나 나가지 않은, 녹음 작업이라도 한 것처럼 완벽한 소리였다.
그리고 이제 방청객들은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았다.
‘박문대….’
깊은 북소리와 함께 무대에 빛이 돌아왔다.
둥- 둥둥둥! 둥- 둥둥둥!
무대 위에는 어느새 목각 토끼 탈을 다섯 명의 인영이 원을 그리고 서 있었다.
그들의 뒤로 검은 무대배경에 쏟아질 듯 찬란한 은하수가 드러났다.
그리고 군무.
스르륵.
느리고 감각적으로 시작한 동작은 박자를 쪼개며 점점 복잡하고 빨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자연현상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속도가 연속적으로 변하며 타이밍이 맞지 않을 법도 하건만, 누구 하나 박자나 동작이 맞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 춤사위에 따라 무겁던 북소리의 윤곽이 날카로워지며, 그 뒤로 현대적인 베이스라인이 묵직하게 균형을 맞췄다.
그리고 대금과 보정된 피아노 음이 층계 위에서 놀기 시작했다.
Uhwi- Wiwiwi-?
Uhwiuhwi? Wi~~
북소리가 완전히 음 구성의 일부분으로 숨을 죽인 순간, 다섯 명은 안무에 맞추어 일제히 토끼 탈을 머리 옆으로 올렸다.
동시에 가장 오른쪽의 사람이 노래를 시작했다. 박문대였다.
-널 기다리는 길목마다
언제나 설레는 내가 있어
안무와 함께 가장 왼쪽에서 무대를 향해 완전히 몸을 돌린 큰세진이 빙그레 웃었다.
-불안이 다가올 틈은 없어
이미 알고 있으니까 넌 꼭
무술처럼 대형이 갈라지며 김래빈이 뒤에서 튀어나왔다.
-이곳에 나타날 거란 걸
우리가 만나게 될걸
확신하는 내 맘이
자리마다 넘쳐흘러 이렇게 아!
‘래빈아!!’
펜스를 잡고 있던 대학생이 속으로 울부짖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어떻게든 참아냈다.
그리고 이 랩 파트까지 와서 그녀뿐만 아니라 관객 대다수가 확실히 알아차린 점이 있었다.
‘가사를 다 한국어로 바꿨네…….’
그렇다. 몇 단어 섞여 있던 영어를 다 한국어로 바꾸어 무대 분위기와 맞춘 것이다.
‘역시 우리 애는 천재야!’
찰떡같이도 바꿨다며 그녀가 속으로 광광 울었다. 다른 팀원이 바꿨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무대에 빨려드느라 그 감상 역시 순식간에 머리 뒤로 사라졌다.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
난 널 알아
넌 날 알게 될 거야
골드 1, 하일준의 목소리를 받아서 큰세진이 프리코러스를 완성했다.
-벌써 답은 정해졌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다가올 테니~
선아현이 센터로 나왔다. 토끼 탈이 살짝 어설프게 돌아가서 관자놀이를 덮고 있었다.
그런데도 얼굴이 반짝거렸다.
‘…잘생기긴 했네.’
대학생은 근거리에서 선아현을 보고 차마 부정적인 감상을 할 수 없어서 분해졌다.
선아현은 곧고 우아하게 선 채로 노래를 시작했다.
-난 기다림이 좋아
내 기다림은 길고
언제나 즐거우니까
‘어?’
바로 그 후렴에서, 익숙한 동작이 섞이기 시작했다.
원곡의 포인트 안무인 손동작이었다.
그러나 그 손동작에 새로운 발동작을 엇박으로 넣어 강렬한 느낌을 살렸다.
휘익!
원곡보다 훨씬 몸을 크게 쓰는 안무는, 휘날리는 두루마기와 어울려서 엄청나게 인상적이었다.
‘아…….’
감성적이고 담백한 원곡보다, 낭만적이고 벅찬 느낌의 사극풍으로 무대는 완성되고 있었다.
-이 기다림이 끝나면
마주칠 너를 알아
벌써 내 맘이 밝아
박문대가 후렴 뒷부분의 고음을 불렀다.
촬영 중에 물이 빠졌는지, 어느새 금발에 더 가까워진 머리가 탈을 쓸어넘기며 같이 넘어간 상태였다.
‘…머리 깐 것도 뭐……. 괜찮네.’
그녀는 오늘 스타일리스트가 인생 역작급 무대화장을 해줬기 때문일 것이라고 애써 감흥을 감췄다.
그리고 음이 끝나는 순간, 박문대는 완전히 뒤로 몸을 돌렸다.
‘뭐야?’
참가자의 움직임과 표정에 집중하던 관객들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뒤로 돌렸다.
무대 뒤에서 흐르던 별빛 위로 거대한 검푸른 궤적이 그려지고 있었다.
“…!”
어느새 소리는 현악기와 관악기만 남았다.
그것을 배경음으로, 그 검푸른 궤적은 거대한 원을 그렸다.
마치 먹물로 그리는 듯 수묵화 같은 흔적으로 완성된 원은 이윽고 푸르게 빛났다.
별빛 사이의 동그란 푸른 광원. 달에서 보는 지구였다.
Uhuuu- Uhuuu- Uhu, Uuu–
참가자들은 음률에 맞춰 한번 바닥에 부드럽게 쓰러졌다 일어나며, 자연스럽게 두루마기를 벗어 멀리 흘렸다.
-꿈꾸듯 가벼운 백일몽
널 만나러 떠나가는 길
참가자들은 어느새, 완전한 양장 차림으로 섰다.
그 몸이 짧고 강렬한 군무를 만들었다.
거의 무용에 가까운 선의 전신 동작으로, 세차고 부드럽게 몸이 곡선을 그렸다. 느낌이 아주 묘했다.
타악기 없는 반주는 어느덧 다소 관능적으로 들렸다.
‘김래빈 미친…….’
“어억….”
“…!”
대학생은 설마 자신이 낸 소린가 해서 화들짝 놀랐으나, 사방에서 그 소리가 들리는 것을 깨달았다.
-너도 날 기다려왔다고
말하는, 선명한 기시감
가사 ‘데자뷔’를 ‘기시감’으로 바꾸며, 소리가 삼키는 듯이 더 묘해졌다.
-운명의 순간을 마주해
절대 망설이지 않도록!
탕!
그 순간, 반주에 타악기가 다시 들어왔다.
살짝 노골적이던 관능은 삽시간에 자취를 감췄다.
-난 기다림이 좋아
내 기다림은 길고
언제나 즐거우니까
다시 돌아온 후렴구, 큰세진이 센터로 나오며 복잡한 군무의 중심을 잡았다.
안무는 더 화려해졌다.
-이 기다림이 끝나면
마주칠 너를 알아
벌써 내 맘이 밝아
그리고 나직한 허밍이 이어졌다.
-Hum hu hu hum- huhu
DDu-ru Du-ru Du Du
후렴의 멜로디였다.
발을 움직이는 안무와 함께하니,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며 설렘에 부르는 것 같았다.
반주의 북소리가 마치 심장 고동처럼 들렸다.
대학생은 이 허밍 위로 박문대가 혼자 한 옥타브 높게 음을 넣어주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소름이 돋았다.
‘…악긴 줄 알았네.’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무대 위에서는 도입부 안무가 다시 한번 변주되고 있었다.
대형이 쉴새 없이 바뀌며, 자연스럽게 다섯 명은 무대 위 단 하나의 소품 주변으로 섰다.
‘어?’
거대한 나무그루터기.
바로 계수나무의 그루터기였다.
자연스럽게 그루터기에 둘러앉은 그들은 곧바로 위에 입은 양장 블레이저를 벗어 아래로 던졌다.
“…!”
셔츠처럼 디자인된 남성 저고리를 드러낸 채, 큰세진이 정면을 보고 미소 지었다.
그는 토끼탈을 다시 얼굴로 돌리며, 마지막 소절을 불렀다.
-기다려줘.
계수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서로에게 기댄 채 잠이 든 달토끼들의 위로 지구의 푸른빛이 내리며, 무대는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촬영장 지붕을 박살 낼 만큼 커다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악!!!”
“꺄으아악악!!”
“으아으!!”
무대 아래에서는 온갖 괴성과 입을 틀어막는 반응까지 온갖 리액션이 넘쳤다.
오프닝부터 예상도 못 했던 등수 높은 참가자들의 조합에, 끝내주게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본 탓에 다들 흥분한 탓이었다.
게다가 무지막지하게 컨셉추얼한 이 무대는 덕후의 마음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해석할 수 없었기에, 더 여러 번 보고 숨은 요소를 찾아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들었다.
분명 벌써 방송까지 남은 날짜를 세보고 애가 타는 방청객도 많을 것이다.
‘다 끝났구만.’
펜스에서 손을 놓은 대학생은 괜히 뿌듯하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괴성을 지르다가 무대 불이 꺼지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오프닝을 이렇게 끊어놨으니 다음 놈들은 자동으로 무대를 조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결국 설레는 마음을 인정했다.
‘…뭐, 악토버 애들도 잘하긴 하네.’
‘저기에 류청우 차유진 껴서 데뷔해도 되겠다’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입장 때의 짜증은 온데간데없어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