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2화
큰세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 소속사… 해피프렌드잖아.”
“아.”
그 순간 아이돌 지망생들은 대충 분위기를 파악했다.
그리고 왕년의 데이터 팔이였던 나도 눈치챘다.
‘거긴… 논란 초기대응 못 하기로 유명한 곳이군.’
그러고 보니 이 사달이 나는 중인데도 소속사에서 연락이 안 온다
글이 올라온 지 벌써 한 시간이 넘었고, 이제 온갖 SNS에서 난리였다. 규모 좀 있고 발 빠른 소속사였다면 이미 눈치껏 큰세진과 접촉했을 것이다.
“뭐……. 그래도 앨범은 잘 내주는 곳이라 들어온 거였는데. 하하.”
큰세진은 형식적으로 몇 번 웃더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그럼 친구한테 올려달라고 부탁하는 건 어, 어떨까? 치, 친구들 많잖아.”
“음…. 우리 규정상 촬영 중에는 공식적인 인터넷 활동은 금지니까, 아는 애들한테 부탁해 볼까. 사진 보내주고 올려달라고 하면 신나서 할 애들은 좀 알아.”
“…….”
‘그냥 놔둘까.’
지금도 너무 과하게 참견했다 싶어서 후회하기 직전이다. 그러나 기왕 입 뗀 거 끝까지 손대자는 생각에 결국 조언했다.
“직접 섭외하면 그것도 기록이 남잖아. 차라리 제작진한테 말해서 직접 올리겠다고 해.”
‘지금 네 지인 중에 범인이 있는 것 같은데 조심 좀 해라’는 말을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큰세진은 대번에 눈치챈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겠다. 어디 보자…….”
큰세진은 스마트폰으로 메모장 어플을 켜다가, 아직도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나머지 팀원들을 보고 씩 웃었다.
“다들 피곤할 텐데, 신경 써줘서 고맙습니다. 저 조용히 혼자 작성해 볼게요. 여러분은 이제 취침하셔요.”
“야, 이런 상황에 널 놔두고 우리만 홀랑 자기는 좀 그런데.”
골드 1의 걱정에 큰세진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다 같이 못 자면 내일 정말 지옥을 보지 않을까요…….”
“…….”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끔찍하게 많긴 하지.
굉장히 설득력 넘치는 말이었다.
결국, 나머지 팀원들은 모두 해쓱한 얼굴을 한 채 본인의 침대로 복귀했다.
나도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벽에 도로 잠에서 깼다. 목이 말라서였다.
‘자기 전에 너무 많이 떠들긴 했군.’
조용히 일어나서 싱크대로 향하자, 탁자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큰세진이 반응했다.
“어. 문대 안 자?”
“목말라서.”
“그렇구만.”
아직 못 자는 걸 보면 큰세진은 아직도 해명문 작업을 끝마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아직도 인터넷 여론을 뒤적거리고 있거나.
둘 다 그다지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다 적었어?”
“음……. 적긴 했는데.”
큰세진은 갈등하는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다가, 약간 시간을 두고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올리면 그걸로 또 다른 소리가 나올 것 같았거든.”
“어떤 소리?”
“음, 우선 촬영 중에 직접 SNS로 소통하는 건 특혜라는 말은 나올 거고……. 내 해명문이 단호하면 ‘성격이 저럴 줄 몰랐다’ 같은 반응, 반대로 온정적이면 ‘찔려서 저런다’, 뭐 그런 소리를 할 것 같단 말이지.”
있을 법한 시나리오였다.
“그래서 그냥 익명의 지인인 척하고 적어보려고 했는데, 한번 볼래?”
큰세진이 스마트폰을 건넸다.
========================
[큰세진의 친구입니다.]: 오늘 올라온 고발 글의 사진은 합성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사진 중에 원본 사진이 있었습니다.
(원본 사진) (합성 사진)
첫 번째 사진을 잘라서 만든 것이 두 번째 사진입니다.
========================
….
“…….”
“어때?”
이걸 어떡하냐.
이게 일반적인 학과 생활이었으면 괜찮은 해명이다. 해야 할 말 다 들어가고 두괄식이라 보기 편하고.
문제는 인터넷 익명 사이트에 적합한 글은 아니었단 점이다.
나는 무심코 뒤를 바라보았다. 침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올리라고 말하면 자정에 내가 한 짓이 다 헛수고가 될 확률이 너무 높다.
‘하…….’
잠은… 내일 자자.
“…이건 아니다.”
“뭐?”
“아니라고.”
나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내 스마트폰을 가져왔다.
결국 내가 하는구나, X이이발.
* * *
새벽 3시 반.
웬만한 사람들은 다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었다. 골수 인터넷 유저들만이 날밤을 새우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무렵.
큰세진의 학교폭력 논란도 한번 휩쓸고 지나가서 간헐적인 잡담으로만 올라올 타이밍이었다.
그때, 한 아이돌 관련 익명 사이트에 글이 올라왔다.
========================
[엥 나 큰세진 사진 찾은 듯.]: (합성 사진) 이거 원본이 이거 아냐? (원본 사진)
========================
글에 첨부된 것은 큰세진과 얼굴이 대충 검게 지워진 다른 학생들의 단체 사진이었다.
흔한 통신사 아이피로 작성된 가벼운 글이었으나, 그 내용을 확인한 새벽 이용자들의 댓글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헐
-뭐야
-어디서 났어?
-야 이거 찐 같은데;;;
-성지순례 각임?
-저 사진 잘라서 쓴 건가
-어케 알았누
└친구 비계에 큰세진 과사 있어서 뒤지다가 발견했음
└이거 스토커 새끼 아니냐;;
└왱 니들도 있으면 할 거면서
└ㅋㅋㅋ팩트로 때리네
└와 이 새끼 갓반인 얼굴은 다 가렸어 고소는 무서운가ㅋㅋㅋ
글쓴이의 피드백에 댓글 분위기는 더 불타올랐고, 이윽고 글을 확인한 누군가가 정확한 비교 샷까지 만들어왔다.
-크롭해왔다 똑같음 (사진)
└히익
└ㄷㄷㄷ
└미친
-ㅋㅋㅋㅋ진짜 합성이었냐고 개웃겨 뭐 하는 찐따새끼길래 주작을 이렇게까지?
-와 큰세진 상장폐진 줄 알았는데 작전세력이었네
└미친ㅋㅋㅋㅋ
└지금이라도 풀매수ㄱㄱ
댓글은 점점 더 빠르게 늘어났다.
심지어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원본사진이 찍힌 시점이 큰세진의 학생회장 선거 출마 때라는 것도 찾아냈다.
-청솔고등학교 홈페이지 뒤지니까 비슷한 홍보사진 찾음. 선거 활동 때인 듯? (링크)
└와 진짜 열폭이었네
└주작글에서 선거 어쩌구 할 때부터 싸했다ㅋㅋ
└와 주작한 애 진짜 이 악물고 썼나벼
└지금 들켜서 부득부득 가느라 이빨 없을 듯ㅋㅋㅋ
여기까지 오니, 슬슬 SNS나 커뮤니티 등지에 이 글의 캡처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의문의 정의구현.jpg (feat. 큰세진 학폭 아님)] [큰세진 학폭 사진조작 떴다.] [누가 큰세진 원본사진 찾아냄]첫 글이 올라왔을 때처럼,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우연히 찾아낸 듯한 뉘앙스가 더해진 탓에 이 글은 더 진실해 보였다. 여론은 금방 학폭 고발글을 비웃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잠 못 이루고 있던 큰세진의 팬들은 캡처본을 올리는 일에 얼른 가세했다.
그들은 전투적으로 댓글을 올리며, ‘사진은 조작이지만 내용은 사실일 수도 있다’ 따위의 분탕질을 개소리하지 말라며 쫓아냈다.
그렇게 고발글이 조작됐다는 정보는 삽시간에 인터넷 여론을 점령했다.
당일 출근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이뤄진 일이었다.
* * *
“삭제했네.”
큰세진이 중얼거렸다.
사진이 조작이었다는 점이 들통나고 여론이 완전히 기울자, 고발 글을 적었던 놈은 소리소문없이 글을 삭제하고 사라졌다.
더 지저분하게 물고 늘어지면 힘들 뻔했는데, 아무래도 여론이 너무 뒤집혀서 포기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정말.”
큰세진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긴장이 풀리자 피로에 짓눌린 모양이었다.
“고마워. 내가 진짜… 면목이 없다.”
고마울 만도 했다. 초안을 그대로 올렸으면 이렇게는 안 됐을 테니까.
‘데이터팔이 1승…….’
가격 흐름 좀 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짬을 이렇게 또 써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고생은… 그 업보를 청산하는 셈 치자.
“애초에… 담배에 손도 안 댔으면 이 난리도 안 났지.”
큰세진이 자괴감 묻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기도 멍청한 짓이었다는 건 아는 모양이다.
“왜 피웠는데?”
“……아, 그때…. 데뷔조에서 밀렸어. 데모까지 녹음했는데…… 나 빼고 다른 놈 넣어서 데뷔 잘하고, 앨범도 잘 팔고.”
“……‘해피프렌드’에서?”
거기 근 5년간 성적 괜찮은 남자 아이돌 뽑은 적 없지 않나?
“아니, 다른 곳. ……근데 한동안 다른 팀 낼 생각 없다고, 지금 여기하고 연결해 준 거야.”
“그래.”
이 시점에서 삼사 년 전에 데뷔해서 첫 앨범부터 잘된 남자 아이돌은 한두 팀뿐이었다.
그리고 둘 다 대형 소속사다.
‘…좀 늦더라도 존버하는 편이 낫지 않았나?’
17살 때부터 5년 지나도 22살. 팀에서 연장자로 데뷔하기 괜찮은 나이다. 해피프렌드 가느니 일단 대형에 붙어 있는 편이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그때 올해 내로 신인 낼 거라고 하도 호언장담을 해서 계약했는데……. 안 내주고 벌써 4년째네. 하하.”
“…….”
그랬군.
원래 구두계약은 믿으면 안 되는데, 고1이 멘탈까지 뭉개졌으니 그런 걸 챙길 여력은 없었나 보다.
“너도 봐서 알겠지만, 여기 나온 해피프렌드 소속사 연습생 중에 당장 데뷔할 만한 애는 없어. 그러니까 내가 이 프로에서 데뷔를 꼭 해야 하거든…….”
“…….”
“그래서 하는 얘긴데, 하차 막아줘서 다시 한번 고맙다. 박문대.”
이놈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누굴 품평하면서 자기 속마음을 까발리는 건 처음이다.
‘나름대로 성의라는 건가.’
“그래. 많이 고마워해라.”
“…뭐? 하하!”
큰세진이 웃다가 탁자에 도로 머리를 박았다. 웃고 싶은데 피곤에 절어서 힘든가 보다.
나는 떨떠름하게 고민했다.
‘…너무 스스럼없어졌나.’
약쟁이 위험군이라 거리 좀 두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흐지부지되다 못해 과하게 친해진 것 같다.
‘어차피 지금까지 행적을 보면 확률이 낮아 보이긴 하지.’
큰세진은 아마 학폭 터졌을 때 사퇴해서 데뷔를 못 했을 확률이 높았다.
혹시 사퇴를 안 했어도 지금처럼 여론을 뒤집기는 쉽지 않았을 테니 데뷔는 힘들었을 테고.
‘음, 근데 아역배우 이세진 쪽도 지금은 그다지 데뷔각이 잡히진 않는군.’
그래도 이세진의 방송 분량과 이미지는 ‘박문대’라는 변수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기에, 차라리 이쪽이 가능성이 있었다.
‘어쨌든 이게 당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슈뢰딩거의 약쟁이는 그냥 상자에 처박아두자. 지금 시급한 건 이틀 뒤의 팀전 무대였다.
빠바밤바밤빰빰!
“흐어어어!!”
“으으…….”
마침 아침 기상 경보와 함께 침대에서 꿈틀꿈틀 팀원들이 일어났다.
‘또 휴식 없는 하루가 시작됐군…….’
퀭한 눈으로 서 있자, 큰세진이 다시 말을 걸었다. 아까 대화의 연속인 것 같다.
“아니, 진짜…, 내가 이거 끝나면 밥이라도 살게. 뭐 먹을래?”
“소고기.”
“……국산 아니어도 되지?”
“맛있으면.”
팀전 리허설까지 딱 50시간 남은 시점이었다.
* * *
3차 팀전 무대는 Tnet의 간판 음악 프로인 ‘MusicBomb’의 세트장 중 하나인 대형 스테이지에서 진행되었다.
실제 선배 아이돌들이 서는 스테이지에 서서 멋진 무대를 보여달라는 의미였는데, 사실 리액션 컷을 뽑기 좋아서인 것 같았다.
“이 스테이지에서 바로 사흘 전에! VTIC이 사전녹화를 진행했었습니다!”
“우아아아!!!”
MC의 말에 참가자들이 환호했다.
사실 무대 세트가 완전히 달라서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별 공통점도 없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정상급 아이돌과 같은 공간을 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들뜬 것 같았다.
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VTIC… 괜찮은 놈들이긴 했지.’
단가가 비싸서 찍는 보람이 있었다.
“선배 아이돌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MC가 대본의 문구를 마무리한 뒤 들어가자 리허설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러분! 본방이랑 순서 똑같이 가는 거예요!”
“네!”
순식간에 지시사항과 음악 소리로 무대 현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순서상 참가자들은 아직 약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팀은 일단 구석에 모였다.
“우리 화이팅이나 한번 하고 갈까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는데, 고생한 만큼 멋진 무대 보여주고 옵시다.”
“아, 좋지.”
“그, 그럽시다.”
팀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긴장감은 불안이 아니라, 기대감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선명히 보였다.
“ 팀,”
팀원들이 한 손을 우르르 모았다.
“화이팅!!”
함성은 거의 전투적이었다.
‘맙소사.’
주변에 가깝게 따라붙은 카메라가 없었는데도, 내가 선뜻 이 짓에 참여했다는 게 생소했다.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럼 갑시다!”
정말로, 무대가 코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