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4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41화
“흡.”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비친 허여멀건 류건우의 얼굴이 따라서 움직였다.
…침착할 수 없는 상황이다만, 최대한 침착하게 정리해 보자.
1. 박문대(나)와 류건우(큰달)는 몸이 바뀌었다.
2. 박문대는 1군 아이돌 그룹의 메인보컬이며, 컴백 직전이다.
하지만.
3. 박문대의 몸에 들어간 류건우(큰달)는 컴백이고 나발이고 아이돌 경험이 없다.
그리고 여기서 화룡점정이 나온다.
4. 박문대의 라디오 생방송이 10분 후다.
“…….”
돌았군. 제정신 아닌 상황을 한두 번 겪어보는 것도 아니지만 이건 진짜 미친 상황이다.
‘생방 스탠바이 10분 전 실화냐.’
그나마 큰달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박문대 시야를 공유받을 수 있다는 게 유일한 희망인 수준이다.
일단 상태이상이고 나발이고 이걸로 생방부터 어떻게든 해야… 잠깐.
‘……박문대 시야가 흐려지는데?’
라디오 대기실이 뿌옇다.
느낌이 안 좋다. 혹시 원래 상태창이었던 큰달이 아니라 문외한인 내가 연결해서 문제가 생긴 거라면?
‘X발.’
생방송 나락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황급히 채팅을 띄웠다.
“너 괜찮냐? 시야에 연결 문제…….”
[누, 눈물입니다…….]“…….”
[죄송해요.]이해한다.
그러나 그놈의 눈물이 차올라서 뿌연 시야를 뚫고, 저기 라디오 부스 앞에서부터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몇 사람이 등장했다.
……작가진이다!
[형!! 형! 사람들이 저 들어오래요!]“잠깐.”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너 스마트폰 잠금 패턴 불러!”
[어어어, 데뷔일! 테스타 데뷔일!]남돌 데뷔일로 패턴? 더럽게 비직관적인 걸로도 해놨군!
어쨌든 재빨리 머리를 굴린다.
‘키패드에는 ‘0’ 표기가 없으니 제외. 하지만 패턴이 겨우 세 자리면 너무 적으니 연도까지 추가하면….’
다섯 자리!
다섯 숫자의 점 위치를 연결 후 손가락을 떼자, 쓱 화면이 열렸다.
‘그래야지!’
나는 즉시 방송사 라디오 어플부터 다운로드받기 시작했다. 이걸로 박문대의 청각을 대체할 생각이었다.
‘박문대 몸이랑 청각까지 공유 시도하다가 생방 중에 실수하느니 이게 났지.’
솔직히 시각 공유도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당장 작업 들어가자.
나는 다운로드가 완료된 라디오 어플을 열었다. 그 짧은 수초 간, 계획을 세우고 폐기하고 검토하는 것을 동시 진행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잘 들어.”
[예!]“컴백 직전 깜짝 라디오 출연이야. 대본은 기껏해야 대여섯 줄 정도고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해. 인원이 많으니까 박문대한테 직접 질문이 들어올 때만 대답하면 돼.”
그 외에는 다 같이 대답할 때만 입을 열고, 되도록 내가 채팅으로 신호를 줄 때만 천천히 말을 한다.
그때는 내가 대답을 보내주는 동안 감탄사를 섞으며 살짝 시간을 끌어서 공백을 메꾸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가 중요하다.
“대답 전 감탄사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뉘앙스는 담으면 안 돼. 그건 신경 써서 조절해야 해.”
자칫 비꼬거나 부적절한 느낌으로 실수하는 순간 X 된다.
방송은 한번 송출되는 순간 끝이다. 긴장감은 필수다.
[으으흐윽….]큰달이 단말마 같은 걸 채팅 팝업에 띄웠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너무 조여도 안 되겠지.’
지나치게 부담을 줘도 망할 것이다.
“반사적인 리액션 정도는 너무 고민 안 해도 괜찮을 거다. 네가 성격이 공격적인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채팅이 울부짖었다.
[제발! 그냥 절 조종해 주세요! 리액션도 그냥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그냥 형이 적어주는 대로요! 네!?]그렇게 필사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그 건을 채용해 줄 수가 없다.
“그렇게는 안 돼.”
[예…?]나는 소파에 걸터앉아서 머리를 숙였다.
“그거 보이는 라디오야.”
[…….]안면근육도 제어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리액션을 포함해서.
[살려주세요.]살려주려고 이 짓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정 못하겠으면 방송 자체를 피할 방법이 있긴 한데,”
[뭔가요!?]“그냥 지금 바닥에 쓰러져라.”
스케줄이 취소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엠뷸런스에 실려 가기.
“…….”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죄송합니다, 못하겠어요…….]그래, 그럴 줄 알았다.
벌써 테스타는 부스 문 앞에서 마지막 브리핑을 듣는 중이다. 이 와중에 맨정신으로 쓰러질 만큼 뻔뻔한 놈이었으면 날 살리겠답시고 여기까지 안 왔지.
“죄송할 건 없고. 아무튼, 지금 네가 혼자 감당하기 힘들겠지.”
“좋아.”
안 그래도 생각은 했다.
방송해 본 적 없는 아마추어가 다짜고짜 생방송에 투입된다? 혼자 부자연스럽게 템포가 튀면서 도드라질 것이다.
‘원래 내가 보여줬던 방송용 박문대랑 비교될 테니 더 문제고.’
저 녀석을 보조해 줄 사람, 현장에서 맞장구쳐줄 놈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장 7명에게 전부 공유했다가는 대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까… 답은 결국 하나다.
나는 볼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딱 한 놈한테만 말하는 거야.”
* * *
부스 앞은 과하지 않은 적당한 긴장감으로 쫀쫀했다. 테스타가 방송 활동을 시작한 지도 벌써 5년이 훌쩍 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예능에 자주 출연하는 멤버라고 해서 특별히 더 풀어지진 않았다.
가령…… 이세진같이.
그는 이미 머릿속으로 대본을 반복 리딩한 뒤 본인의 파트를 체크했다.
그리고 다음 순서도 중요하다.
‘음, 여기도 괜찮겠네.’
그는 자신이 명시적으로 배당받지는 않았지만 ‘얻어갈 수 있는’ 파트를 기억해 두었다.
데뷔 서바이벌부터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은 버릇이다.
자신의 몫을 챙기기.
테스타는 이미 그룹으로서 논쟁의 여지가 없을 만큼 컸다. 그러나 서바이벌 출신답게 그룹 안 개개인을 비교하고 줄 세우는 풍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굳이 안 할 필요는 없진 않나?’
무대, 화보, 프로듀싱, 인터뷰… 어디서든 두각을 나타내는 멤버는 있었다. 단언컨대 이 팀에선 무슨 활동을 하든 ‘점수를 따는’ 멤버가 있다.
그런데 남들이 뛸 때 걷는다? 그건 쉬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세진은 자신이 포인트를 가져갈 수 있는 지점을 놓치는 한심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은퇴할 때까지 영원히.
“혹시 따로 더 필요하신 건?”
“아이, 괜찮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이세진 외의 다른 멤버들도 제법 이런 토크형 방송에 익숙한 상태다. 더 잘해야 했다.
‘뭐, 멤버들이 든든한 건 좋아.’
이세진은 직전의 대기실을 회상했다. 다들 알아서 긴장감을 관리하며 능숙히 대기하고 있…….
그때, 이세진의 귓가에 기어가는 듯이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저, 저기.”
어딘지 울음기가 있는, 필사적인 소리.
참고로 두 수식어가 절대로 안 어울릴만한 인물에게서였다.
덕분에 이세진은 거의 척수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거의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대와 마주쳤다.
박문대였다.
이세진은 소름이 끼쳐서 자리에서 뛰어오를 뻔했다가 참았다. 그리고 다음 말에는 정말 그럴 뻔했다.
“저, 문대 형 아닌데요…….”
“…!?”
“갑자기 몸이 바뀌었어요. 저 그, 큰달이에요.”
“…….”
예?
“그 있잖아요. 건우 형 몸에 있는…….”
그는 박문대가 생방송을 4분 50초 앞두고 이런 장난을 칠 가능성에 대해서 짧게 고민을 시작하자마자 즉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 와중에도 박문대-의 몸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는 열심히 사정을 떠들었다.
그 말은 자신이 무슨 마법 같은 방법으로 ‘문대 형’과 지금 소통 중이라는 설명으로 끝났다.
“어, 어떻게 라디오에서 말하는지는, 그러니까 문대 형이 알려주신다고는 하는데요….”
‘텔레파시…….’
몇 가지 유치한 영화나 드라마가 빠르게 두뇌를 치고 지나갔다.
그래도 지난 몇 번의 비현실적인 경험이 충격 흡수에 도움이 되긴 했는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의문보다 먼저 치고 나온 게 있다.
걱정이었다.
지난번 ‘말도 안 되는 사건’은 건물 붕괴였단 말이다.
등골이 서늘해진 이세진이 입을 열었다.
“걔 상태는 괜찮아요?”
“네 그럴 거예요! 저는 자려고 침대에 있었거든요….”
짧은 안도가 스치고 지나갈 무렵.
“그리고… 아, 이렇게 전해달라고 하시는데요…….”
“…?”
국어책 읽는 듯한 문장이 따라붙었다.
“일단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너만 알아라. 생방 망하면 무슨 꼴 날지 알지…?”
“…….”
멀쩡하네.
‘저거 박문대 맞네.’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리고 큰달의 간절한 모기 소리 스피치는 이렇게 끝났다.
“살려주세요. 문대 형이 라디오에서 세진 님만 믿으면 된다고…….”
……박문대!!
이세진이 표정 변화 없이 내적 고함을 질렀다.
그때, 저 앞문에서 류청우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있어?”
이세진은 짧게 갈등했다. 그러나…….
“…아~ 아니요! 들어가야죠! 자자, 우리 라디오도 제대로 가봅시다~”
박문대가 옳았다. 이건… 공유해서 대화 템포 꼬이는 순간 지옥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웃었다. 그리고 박문대 몸의 뒷덜미를 잡은 후, 쾌활히 부스에 입장했다.
다만 이세진과 박문대가 모두 놓친 점이 있었다.
그들 옆자리에 선아현이 대기 중이었다는 것이다. …대화 내용을 얼추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꽤 가까이.
생방송과 괴현상이 맞물려 만든 빈틈이었다.
“…….”
“아현 형? 부스 입장 시간입니다.”
“으응!”
선아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새하얀 안색을 한 채, 그렇지만 단호한 걸음으로 부스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리하여, 1월 9일 월요일 23시 47분.
사람들이 정신없이 새해와 한 주의 시작을 갈무리하며 현실을 사느라 바쁜 그 밤.
“쏭DJ의 한밤의 라디오. 월요일의 명물이죠. 코너로 돌아왔습니다.”
는 이제 막 마지막 월요일 코너로 들어갔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초대 손님들을 모셨는데요.”
장년의 라디오 진행자는 우르르 들어오는 7명의 훤칠한 아이돌을 보며 미소 지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근차근 하루를 위로해 주는 것으로 호평 난 그녀의 라디오에 이런 소란스러움은 오랜만이었다.
‘젊구나.’
테스타는 부스 밖 연출들의 인사에 적극적으로 살갑게 화답해 주며 들어오는 중이었다.
그래도 몇 년째 잘나가는 톱스타들답게, 다들 능숙하고 자연스레 자리를 찾아 앉으며 기분 좋게 웃는다.
“아마 청취자분들께서 많이 놀라실 것 같습니다.”
그녀는 찬찬히 테이블을 보며 얼굴을 확인했다.
물론 게스트의 이름은 다 숙지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7명 모두 그녀가 따로 익히지 않아도 될 만큼 명성이 있었지만 말이다.
‘저기 금발 청년이 차유진 씨, 꽁지 머리를 한 삐쭉한 청년이 김래빈 씨, 후드를 쓴 예쁜 청년이 배세진 씨….’
그리고 자신의 바로 오른쪽 옆에 앉은 이 귀여운 친구는, 평정심 좋기로 유명한 박문대…인데.
왠지 손이 모터보트처럼 떨리고 있다.
‘…??’
진행자는 순간 눈을 비빌 뻔했다. 하지만 숙달된 입은 예정된 소개말을 했다.
“며칠 전 골드디스크 어워즈에서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한, 명실상부 케이팝의 왕입니다, 테스타!”
그리고 다시 본 손은 어느새 테이블 아래로 사라져 있었다.
‘잘못 본 걸까?’
당연하지만 이세진이 팔꿈치로 밀어냈다.
그렇게 살 떨리는 라디오 생방송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