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4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49화
불행히도 박문대에게 ‘주임님’이라는 호칭으로 기억된 7급.
이 사람은 류건우가 첫 발령이 났을 때를 기억했다.
-안녕하십니까!
대부분 시청 쪽으로 가서 구르는데, 이놈은 대체 무슨 복이 있는 건지 빽이 있는 건지 구청으로 빠졌다.
뭐, 잘 부탁한다는 전화 한 통 없는 걸 봐선 후자가 아니라는 게 금방 드러났지만 말이다.
‘저런 건 초장부터 기를 잡아놔야 돼.’
일단 만만했다.
뭐 아는 게 있어야 업무를 할 텐데 갓 시험에 붙은 초짜가 뭘 아는가.
-류 주임은 부모님이 여기 계시나? 고향이 어디야?
-어… 아뇨. 최근에 이사를 왔습니다!
이 동네에 별다른 연고도 없는 놈이라 구청에서 7급이 할 만한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 고생 좀 해봐야지.’
사회생활의 쓴맛을 좀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낯짝이 뺀질뺀질해서 고생 한 번 안 하고 자란 것 같아 가지고, 꿋꿋이 버티고 있는 척하는 게 더 열받긴 했다.
머리에 피도 안 바른 게 시험 잘 봤다는 자부심으로 버티는 것 같아서 더 꼴 보기 싫던 것이다.
다음 발령 때쯤에 어떻게든 시청 가겠다고 울고불고하며 도망갈 줄 알았는데 말이다.
‘허… 뭐 그래 봤자지.’
이미 작업은 다 끝났다.
그는 귀찮고 책임질 일 많으며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된 건은 류건우에게 다 떠넘기고, 인맥과 승진에 도움이 될 건은 싹 잡아 챙겼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일종의 수완이자, 류건우에게도 꽤 너그러운 처사라고 생각했다.
‘다른 구청 갔으면 벌써 퇴직하겠다고 난리였을 텐데 말이야.’
이 정도면 시청보다도 널널하게 일하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이제 여기서 저것이 기 펴고 사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눌러 놔야 저런 놈이 빨리 승진하는 꼴을 안 보는 것이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월요일.
“안녕하세요.”
출근한 류건우를 보았을 때, 순간 당황한다.
류건우가 탐색하는 듯한 시선으로 사무실을 쭉 훑었을 때였다.
“…….”
저렇게 차가운 인상이었나?
본래는 좀 유순하게까지 보이는 부드러운 표정이었는데, 어쩐지 인상이 변한 것 같았다.
일순 사람이 바뀐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주임님!”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류건우는 어느새 평소의 온순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신이 일부러 찾아가 은근히 한소리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부탁해요~”
“…예.”
거봐라. 대꾸도 못 하지 않는가.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넘어갔다.
‘기분 탓이겠지.’
그러나, 여기서 그는 낌새를 눈치챘어야 했던 것이다.
류건우가 컴퓨터로 시선을 돌리며 웃는 것을.
그날 오후.
그가 평소처럼 미팅 명목의 식사를 끝내고 오니, 묘하게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졌다.
“…?”
사무실 한편, 반쯤 열린 문 너머로 인영이 보였다.
팀장이 테이블에서 류건우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왜들 저래?’
한창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 두드리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런단 말인가.
일이 터져서 혼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하하!”
그때, 연신 미소 지은 채로 단정히 이야기하던 류건우가 이쪽을 발견했다.
“…!”
그리고 팀장이 류건우에게 뭐라 뭐라 말하자, 일어나서 문가로 다가와 이쪽 일행을 불렀다.
단, 자신이 아니었다.
“이 주임님.”
“넵.”
9급, 서울시의회 전 의장, 현재 이 지역구 시의원의 조카인 녀석을.
“팀장님이 부르세요.”
“아…….”
“어, 그래요. 여기 잠시만 와서 앉아 봐.”
“아, 옙!”
팀장이 손짓하자, 이 주임이 허겁지겁 자신의 뒤에서 걸어 나와서 문으로 들어갔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반응하지 못한 ‘주임님’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던 류건우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
류건우는 잠시 자신을 응시하는 것 같았으나….
달칵.
문을 닫아버렸다.
‘…저거 X발.’
기분 나쁘게 굴고 X랄이야.
괜히 찝찝해진 ‘주임님’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몇 번 내뱉고는 탕비실로 향했다.
이게 첫 번째 이상 현상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상 현상은 퇴근 두 시간 전에 목격하게 된다.
담배를 피우러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
비상계단 옆에서 류건우와 이 주임을 본 것이다.
둘은 꽤 진지한 얼굴로 대화하고 있었다.
‘하이고 지랄을 한다.’
자기들끼리 또 무슨 대단한 이야기할 게 있다고 업무 시간에 여기까지 나와서 저러고 있단 말인가.
그는 이번엔 참지 못하고, 담배를 즐긴 후 내려와서 아예 대놓고 이 주임에게 찾아가 물어봤다.
“이 주임, 무슨 대화를 그렇게 재밌게 하시나?”
이 주임이 움찔하더니, 말을 흐렸다.
“아… 그냥, 민원 관련해서 좀 도와주셔서요.”
“이야, 류 주임이 도움도 주고 그래? 대단한데?”
당연하지만, 칭찬이 아니라 비웃는 의도였다.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냐는 식이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소극적인 호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네. 류 주임님 친절하시고 좋은 분이잖아요.”
“…….”
어?
‘이 자식… 불편한 티를 내?’
평소에는 웃거나 고분고분 맞장구치던 놈이….
그는 순간 빈정이 상할 뻔했으나, 억지로 호탕한 미소를 지었다.
“뭐 류 주임이 저기 성격 빼면 시체지 시체. 사람은 좋아.”
“네….”
이번에도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으나, 그는 어쨌든 상대가 숙였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나 퇴근할 때쯤.
마지막 이변이 일어났다.
“이 주임~ 한잔하고 갈까?”
그가 밥과 술을 잘 사는 좋은 상사가 되기 위해 주에 한 번씩은 꼭 하던 권유다.
그러나 이 주임은 고개를 저었다.
“음… 제가 오늘 약속이 있어서요.”
“…!”
완곡하지만 거절은 거절이다.
첫 발령 후, 전혀 없던 일이었다.
“…그래?”
“네. 정말 죄송하지만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임님.”
그러고는 빠른 걸음으로 쓱쓱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 와중에 슬쩍 류건우를 돌아보더니 고개 인사를 하기까지!
“…….”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으나, 어딘가 속이 서늘해졌다.
‘이상한데.’
그는 정신없이 사무실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런데 거기엔 방금까지 사무실에 있던 여자 직원 둘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고 있었다.
뭔가 숙덕이면서.
“헐, 그렇네요.”
“아, 그럼 완전….”
하지만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움찔 놀라더니 자기들끼리 돌아본다. 그리고 난처한 듯 웃는 것이다.
“…??”
땡-.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둘은 얼른 문밖으로 나갔다.
굳이 질문도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생하셨습니다.”
“저희 들어가 볼게요~”
결국 ‘주임님’은 쓸쓸히 로비에 홀로 남겨졌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감도 잡지 못하고, 소외된 채.
“…….”
뭐야.
‘저것들 다 왜 저래.’
분명 오전까지만 해도 지난주와 다를 게 없는 하루였는데.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 * *
잔업하는 사람이 없어서 텅 빈 사무실.
“그러면은 건우 씨, 잘 들어가 봐.”
“넵. 감사합니다.”
나는 팀장을 배웅하며 홀로 사무실에 남았다. 챙겨갈 게 있어서였다.
[형,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예요?]뭐긴.
‘너답게 해결했다.’
팝업이 절규한다.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음, 이걸 제대로 설명해 주려면… 우선 이것부터인가.
나는 다짜고짜 물었다.
‘너, 이 주임이라는 녀석이 왜 외부 미팅을 따라다녔다고 생각하냐.’
[어…? 그거야, 일이니까 하셨겠죠?]그렇지.
좋아서겠냐? 절대 아니다.
‘쫄아서 무조건 한 거라고.’
[…!]첫 사회생활에서 상사한테 밉보이기 싫은 것이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데, 워라밸 때문에 공무원 온 것 같은 녀석이 외근에 회의, 접대 끌려다니는 게 좋을 리가 있겠는가.
그것도 저런 꼰대 같은 놈이랑 다니는데 불만이 안 쌓였을 리도 없다.
‘자기 딴에는 잘해준다고 한 것도 짜증 났을걸.’
밥 사준다면서 저녁에 붙잡는 행위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그냥… 손절 각을 만들어준 것뿐이다.
‘안 쫄 게 해주면 되는 거야.’
그래서 우선 가장 힘 있는 스피커부터 공략했다. 팀장.
-아, 팀장님. 그건 이 주임님이 하신 건데요…!
나는 일부러 팀장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에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다가 ‘이 주임’을 칭찬했다.
그리고 팀장 개인사를 살살 물어가며 대화를 쭉 끌고 가다가, 타이밍 맞춰서 이 주임을 끌어들이면… 판이 완성되는 것이다.
[무슨 판인데요….]이 주임에게 본인의 위치를 알려주는 판.
‘팀장’이라는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의 입을 빌리면 된다.
‘그쪽으로 대화를 살살 끌어가서….’
본인이 지역 유지의 혈연인 게 얼마나 근무하기 유리한 조건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 이 생각이 든다.
-어? 그럼 그 주임 새끼한테 좀 뻗대도 됐나?
원래는 한 일 년은 더 근무해야 들 생각을 미리 당겨오는 거지.
물론 여기서 끝나면 이 생각을 정말 실행에 옮기기까지 시일이 좀 소요될 것이다. 그러니 등을 떠밀어주기 위한 마지막은….
‘명분을 주는 거지.’
[…명분이요?]어.
‘저놈이 굳이 널 괴롭혔다는 걸 한 번 환기시켜 준 거다.’
-저, 류 주임님. 감사합니다. 좋게 말해주셔서….
-에이, 아뇨. 사실인데요! 그리고… 피차 고생하는 마당에 그 정도야 뭘요.
-…….
-저희 힘내요. 이 시기만 지나면 괜찮을 거예요.
자기가 좋은 일을 한다는 확신.
사람이 은근히 그게 중요하더라고. 시원하게 정의 구현하는 맛까지 더해지니 이제 거칠 게 없어진 것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일 벌어졌을 때 사무실 사람들 반응을 봐라.
이 뒤집힌 판국도 재밌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그만큼 평소 류건우가 제법 인상이 좋았다는 뜻이다.
‘네가 착하게 살아서 가능한 일이다.’
음, 인성을 칭찬한 건데 좀 더 기뻐해도 좋지 않나?
‘아무튼, 이제 다음부터는 저 ‘이 주임’이라는 녀석 데리고 회의에 가도 전처럼 완전히 협조적으로 안 나올걸.’
자기가 얼마나 유용한지 알았으니까.
이미 반감도 있고, 싫으면 싫은 티도 내고, 그러다가 뭐… 삐걱거리는 거지.
저 ‘주임님’이 개빡칠 때까지 말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류건우 데려가겠다고 말 바꾸긴 너무 멀리 왔으니….’
얼마 안 가서 그놈도 이 구청에서 인맥 관리하긴 텄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다음 발령을 노리지 않을까.”
‘그럼 그놈은 가고, 너는 여기서 계속 칼퇴근할 수 있는 거지.’
해피 엔딩이다.
[어허허허…….]음, 다시 생각해도 굉장히 온화한 해결책이었다.
이렇게 온순하게 남을 칭찬만 하면서 처리할 수 있을 줄이야. 누가 봐도 큰달의 평소 행동과 비슷하지 않은가.
[네?]그런데도 아무도 손해 본 사람 없고, 모두가 행복했다. 과연.
나는 짧게 감탄했다.
‘너처럼 사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 같다.’
[…예. 감사합니다…….]별말씀을.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내부망 시스템을 종료했다.
이걸로 공무원 삶 체험은 충분한 것 같군.
‘너는 저녁 스케줄 준비 괜찮게 돌아가고 있냐.’
이제 다시 내가 박문대를 조종하는 턴이 돌아오고 있으니까.
[앗… 넵! 준비 끝났어요.]‘좋아.’
지금부터 나도 출발한다.
[…예!]나는 출근하자마자 개인 캐비닛에 넣어둔 짐을 꺼냈다.
묵직한 가방 무게가 손을 눌렀다.
‘이것도 진짜 오랜만인데.’
나는 그것을 등에 걸친 채로,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로… 잠실실내체육관으로.
* * *
“와아아악!!”
“으아아!!”
비명과 불빛이 난무한다. 클럽이나 전쟁터는 아니다.
그 정도로 자리 경쟁이 살벌했긴 했지만.
‘후.’
나는 자리에 앉았다.
주로 1월 후반, 공신력 있는 시상식 중에 가장 마지막쯤 시상식, 바로 다.
그리고 바로 이 시상식에서 테스타가 컴백할 예정이다.
‘지금 몸이 바뀌었는데 무대 어쩌냐고?’
다행히 자정 너머까지 시상식이 이어진다. 테스타는 가장 마지막 직전에야 무대를 하니 그 시간 전에는 몸이 바뀔 것이다.
그때까지 큰달이 자연스럽게 가수석에서 상 받으며 버틸 수 있냐가 좀 문제긴 하지만.
‘그 와중에 류건우도 할 일이 있고.’
이놈의 퇴근 후 계획 말이다.
“…흠.”
나는 가방을 열고, 준비한 것을 꺼내 들었다. 검은 사각형의 물체.
바로 카메라다.
그리고… 백통. 긴 원통형 렌즈를 장착하고 나면, 준비가 완료된다.
‘스펙이 괜찮은데.’
얼마 주고 산 건지 궁금해지지만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그렇다.
오늘 류건우의 퇴근 계획이 바로 이것이었다.
음원차트 시상식에서, 테스타를 한번 카메라로 찍어보기.
-전에 형이 찍은 영상들 올려주시던 게 생각나서… 저도 한 번 해보려고 사봤어요!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잘 찍진 못하더라고요…….
본인은 그렇게 말하더라고.
솔직히 별로 추천해 주고 싶은 취미는 아니다만, 본인 관심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번 건드려보는 정도야 괜찮은 취미다.
…사람 찍기.
나는 초점을 맞추고 카메라를 들었다. 오랜만인데도 구도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럼 사이차트 뮤직 어워즈, 올해의 가수들을 만나보시겠습니다!]MC들의 소개와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프닝 VCR이 돌아가는 가운데, 관객석에서 다시 환호와 응원봉 불빛이 터진다.
물론 가수석에서도 박수가 나오고 있고.
‘이 타이밍에는 여길 찍는 게 국룰이지.’
나는 체크 겸, 시야를 당겨서 테이블을 찾았다. 테스타가… 그렇지.
“찾았다.”
나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웃고 있는 일곱 녀석을 뷰파인더로 보았다.
특히 박문대를.
‘음… 상태 괜찮군.’
간헐적으로 손을 떠는 것을 담요 아래로 감춘 건 훌륭한 선택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찰칵.
반사적으로 주변 멤버까지 몇 장 찍자 손에 잘 붙는 감촉이 느껴졌다. 괜찮은 샷을 건진 것 같다.
‘흠.’
이거 어쩐지 좀 재밌는데.
나는 다시 카메라를 돌렸다. 무대 시작 전까지 시간이 좀 있었다.
‘다른 놈들도 좀 찍어볼까.’
어디 보자, 우선 테스타 바로 옆자리에 앉은 것은….
“…….”
청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