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6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67화
사실 연차가 찬 아이돌 그룹에서 멤버가 개인 활동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룹은 전성기가 지나면 수익성이 떨어졌다. 그럼 각자 먹고 살길을 미리 탐색해 놓긴 해야 하지 않는가.
물론 요새는 예외도 많고, 테스타도 그 예외 중 하나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제대로 개인 활동을 해본 적이 거의 없긴 해.”
“그렇습니다.”
워낙 그룹이 계속 잘 됐던 것이다….
‘개인 활동이라고 해봤자 예능이나 화보 정도였지.’
가뜩이나 서바이벌 출신이라 팬덤의 융합을 위해서라도 개인 활동을 몇 년 자제하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왔다.
나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젠 슬슬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음.”
배세진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멤버들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배세진을 향했다.
차유진이 손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 회의 해요? 세진 형 연기해요?”
눈치 빠른 놈.
“……제안은, 받았는데.”
“…! 그러셨던 거군요!”
“추, 축하드려요…!”
일단 좋다고 반응하는, 착하지만 눈치 없는 놈들 사이에서 배세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아, 안 할 거라고…!”
“…!?”
“아까 박문대한테도 말했지만, 그러니까… 지금 우리 막 컴백했는데, 내가 연기하려고 빠지면 안 되잖아!”
“아…!”
선아현과 김래빈의 얼굴에 느낌표가 떴다.
그러나 곧 김래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스케줄상 병행이 불가능한 구조입니까?”
그러시구나! 그럼 둘 다 하시면 되겠지!
작곡 속도가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미친 효율 특성을 가진 놈다운 질문이다.
그러나 배세진은 양손을 움켜쥐었다.
“…그러다가 실수하면?”
“예?”
“나는… 솔직히 말할게. 내가 여기서 제일 무대 습득력이 느리잖아. 늦게 시작하기도 했고, 재능… 문제도 있을 거고.”
“…어, 어떤 기준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판단은 주관적…,”
“그런데 내가 전혀 다른 종류의, 그러니까 작품 배역까지 동시에 병행하면서, 무대에서 한 번도 실수를 안 할 수 있을 것 같아…?”
“…!!”
배세진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가뜩이나 개인 활동 첫 타 끊은 배세진이 욕을 집중포화로 먹겠지.
그러나 놀랍게도, 저 녀석은 그 지점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문제가 있구나, 배세진이 안 그러다가 갑자기 무리해서 그룹 활동과 연기를 병행할 정도로, 그룹 내부에서 말이 오간 거다…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
“나도 막 데뷔했을 때처럼 아이돌 활동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게 아니야, 나름대로… 이젠 상황을 알아.”
그래. 국뽕 위튜브 보는 거 안다.
‘그러면 보통 KPOP 리액션이나 대중 반응 위튜브들, 심지어 렉카들까지 연관 동영상에 뜨지.’
타이틀만 읽어도 대충 이 녀석도 그 정도로는 알게 되는 것이다.
루머가 만드는 2차 루머에 대해서.
그리고 어떤 루머가 화제가 되고 파장을 만드는지 말이다.
“우리가 지금 막 회사를 옮기고, 첫 컴백한 상황에서는… 안 돼.”
배세진은 제법 단단한 얼굴로 말을 마쳤다.
“그게 내 판단이야.”
“…….”
오.
나는 턱을 짚었다.
일단, 저 녀석이 내린 결론의 타당성을 떠나서 말이다.
‘제법 논리적이고 깊이 있게 결론까지 과정을 그렸는데.’
회피하려고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정면으로 상황에 머리를 들이밀고 면밀하게 분석해 내린 결론이었다.
‘많이 크긴 했군.’
그건 존중할 만한 태도였기에, 나는 일단 가볍게 부분 동의로 이야기를 시작할 생각이었으나….
“왜?”
“…?!”
이놈이 먼저 물음표를 갈긴다고?
류청우는 눈알이 커진 멤버들 사이에서 배세진을 응시한 채로 담담히 말을 이었다.
“세진아. 왜 네가 연기를 하면 무조건 무대 활동에 지장이 갈 거라고 생각해.”
“누가 무조건이래?”
배세진은 울컥한 것 같았으나, 곧 침착해졌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거잖아. 당장 상상도 할 수 있어. 그 상황을…!”
“상상이 꼭 현실이 되는 건 아니야.”
“…!”
“세진아.”
류청우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어쩐지 좀 엄격한 구석이 있는 투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너는 미래 일을 상상할 때, 그게 좋은 쪽일 가능성보다는 나쁜 쪽일 가능성을 더 크게 생각하는 것 같다.”
“…….”
“그게 꼭 맞으라는 법은 없는데 말이야.”
배세진은 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우리 이런 이야기 전에 했을 때도, 결국 네 걱정대로 가지 않고 잘 해결됐어. 기억하지?”
“…….”
무언의 긍정.
그리고 류청우가 일부러 모호하게 지칭하긴 했지만, 나는 ‘이전에 이 이야기를 한 상황’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배세진이 순간 큰세진을 봤거든.
‘둘이 개같이 싸웠을 때 말하는 것 같은데.’
그때 큰세진은 내가 맡아서 대화하고, 배세진은 류청우가 맡았었지.
아무래도 당시 둘이 저런 대화를 했었던 모양이다.
‘배세진은 아마 큰세진이 자길 X 나게 싫어하니 절대 먼저 사과 안 할 거라고 말했을 테고… 자기가 먼저 사과해도 화해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걸 류청우가 살살 달랜 모양이다.
그리고 뭐, 동명이인들은 화해하고 그럭저럭 계속 삐걱거리면서도 잘 지내고 있는 상태고 말이다.
한 마디로, 당시 배세진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생각한 건 맞다는 거지.
그러나 나는 배세진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는 이해했다.
둘이 워낙 안 맞고, 서로 꼴 받는 감정이 쌓이다가 갑자기 크게 싸운 것도 이유겠지만.
실은 배세진의 저 생각 방식 자체에도 경험적인 이유가 있지 않나 해서 말이다.
‘…아역 때부터의 경험 때문이겠지.’
X 같은 소속사로 한 번 망했다. 게다가 심지어 친부가 그 모양이어서 망할 뻔한 건 아예 우리도 라이브로 봤다.
저 녀석이 결정적인 선택지에서 최악의 결과를 고려하는 건 자연스러운 본능 같기도 하단 말이다.
문제는….
‘그리고 나도….’
내가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점이지.
유년기에 X 같은 경험으로 따지자면 나도 몇 가지 바로 튀어나오는 게 있거든.
설마설마했던 최악의 가정이 현실이 되는 상황 말이다.
그런 걸 겪어본 놈은 그 ‘최악의 상황’을 언제나 가정해서 미래 계획을 꾸리게 된다.
‘대비하는 거지.’
뭐, 손해 본 적은 없다고 생각해서 난 특별히 내 사고회로에 불만은 없다만…. 류청우는 배세진이 퍽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무대에서 실수한 적 거의 없잖아. 잠도 제대로 못 잘 때도 그랬어. 그런데 이번에만 갑자기 실수를 할까?”
“…….”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하더라도 별문제 없이 지나갈 가능성도 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 이유로는 포기하면 너무 아쉽지 않을까.”
배세진의 눈이 뿌옇게 변했다.
그리고 나는 류청우에게 경악에 가까운 감상을 느꼈다.
‘저 자식은 어떻게 저럴 수 있냐.’
기억도 안 나는 어릴 적 사고 후유증으로 전성기 목전에서 국가대표를 은퇴한 놈이, 어떻게 저런 사고방식으로 살 수 있냐는 말이다.
몇 년간 같이 산 데다가 사정까지 다 아는데도…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뭐, 인간이 어떻게 다 똑같겠냐만.’
이런 놈, 저런 놈 다 있어야 팀이 굴러가겠지.
그 증거로 배세진은 그 단호한 말에 약간 심정적으로 동요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 듯이 류청우가 말을 건넸다.
배세진이 아니라, 나에게.
“어떻게 생각해?”
“…….”
굳이?
‘회의 소집했으니, 백업해 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군.’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니 뭐… 형 말씀도 맞는데. 사실 세진 형 말씀도 맞는 것 같은데요. 가능성은 있죠.”
“……!”
“…그래?”
왜 류청우 너까지 시무룩한 얼굴을 하냐.
어쨌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이렇게 설득해도 세진 형은 계속 불안해하실 것 같아서요. 그렇게 개인 활동하실 필요는 없는 것 같고.”
“…….”
“그러니까 아예 세진 형의 추론을 반박해 보고 싶습니다.”
“…??”
“바, 반박…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애초에 형이 실수할까 봐 걱정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근본 원인?”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군.
들어봐라.
“활동기 스케줄이 빡빡하다는 거요.”
빡빡한 만큼 여유가 없으니, 무대를 위해 마음과 신체를 가다듬을 시간이 없다.
그 환경에서 본인의 실력으로는 필연적으로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 말이다.
“애초에 스케줄이 좀 여유가 있었으면 괜찮다고 하시지 않았을까요. 병행해도 연습할 시간이 있으니까.”
배세진이 얼빠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걱정하실 필요 없는데요.”
“…?? 왜…?”
“저희 전보다 스케줄 넉넉할걸요.”
“왜?!”
나는 양손으로 깍지를 꼈다.
“T1 계열 스케줄이 다 막혀서…….”
“…….”
“…….”
그렇다.
무심코 지난 앨범들과 비슷한 스케줄 강도를 예상한 배세진은, 이 허점을 놓친 것이다.
‘우리… 나갈 방송이 별로 없어.’
공중파 예능 한두 개 돌고 위튜브 몇 개 나가면 끝이다.
나머지는 오히려 그룹 이름값에 안 맞아서 본의 아니게 못 나간다.
‘하지만 화제성은 그 게임이 커버해 줬으니까….’
결국, 우리가 앨범 준비를 하면서 달린 미친 60일에 앨범 프로모션을 위한 활동도 당겨서 한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는지, 배세진의 눈알은 점이 되었다.
당황한 모양이다.
“그… 좀 생각을.”
“네. 그리고 생각하시는 동안 말할 다른 안건도 들고 왔는데요.”
“뭐, 뭐?”
왜. 네 연기 활동만 이야기하려고 회의를 연 건 아니었다.
“애초에 세진 형만 할 게 아니라, 이 활동기에는 저희도 좀 흩어져서 개인 출연을 각자 몇 번 하면 어떨까 해서요.”
“예??”
“우, 우리가…?”
“음, 앨범이 나왔는데 아예 전 멤버가 개인 활동을 하는 건…. 하고 싶은 사람은 물론 해도 되지만, 나는 다음에 해도 괜찮아.”
신중한 류청우의 반응은 기꺼웠으나, 오히려 그게 노림수다.
“아뇨, 오히려 앨범 때문인데요.”
“음?”
“그룹이 다 같이 출연할 수 있는 건 프로그램이든 행사든 한정되어 있으니까, 개인으로 쪼개서라도 몇 번은 더 얼굴을 비추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아.”
그러면 T1 계열이라 잘린 스케줄들을 약간이라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SNS, 커뮤니티, 위튜브 잘 안 하는 사람들에게도 테스타 앨범이 나왔다고 알려는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이 더 있는데, 그건 선아현이 눈치챈 모양이다.
“아…! 그, 그럼 세진 형 연기도, 그런 개인 출연의 일부로 보일 테니까… 다 같이 하는 것처럼 되겠구나!”
그렇다.
배세진이 유독 결이 다르고 본격적이긴 하지만, 사정 좀 흘려두면 혼자 집중포화 맞는 정도까진 가지 않겠지.
“…! 과연, 그렇군요! 거기까진 추론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저 여기 나가요!”
선아현에게 감탄하기 시작한 김래빈과 적극적인 프로그램 탐색에 나선 차유진으로 왁자지껄해진 회의실.
배세진은 고개를 푹 숙였다.
“…고마워. 정말.”
“…!”
“아닙니다! 앨범을 위해 포기까지 고려하신 의지에 감탄했습니다! 연기 응원하겠습니다…!”
“그래. 응원할게.”
“화, 화이팅…!”
나도 한 마디 덧붙일까.
“또 싸패 역이면 바꿔 달라고 하시고요.”
“…그래.”
배세진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든 배세진은 주먹을 쥐고 눈을 빛내고 있었다.
“잘할게.”
그래라.
“무대도… 꾸준히 연습할 거고.”
좋지.
“내가… 그, 촬영에서 앨범 홍보도 열심히 할 테니까…!”
“괜찮습니다.”
그건 아니다.
그쪽 판도 살벌해서 그러다 X 된다. 그냥 넌 작품이나 열심히 찍고 와라.
“큼, 아, 그래도…….”
배세진은 뭐라 더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으나, 갑자기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회의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사람이었다.
“…….”
큰세진.
녀석은 별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배세진을 보고 있었다.
배세진은 순간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려는 것 같았으나, 곧 그 기색은 사라졌다.
그 대신 큰세진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
“내가 활동 중에 연기하는 거.”
큰세진은 잠깐 탁자를 보더니, 곧 입을 열었다.
“뭐, 이런 상황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
힘을 뺀 어투였다.
그리고 완곡한 긍정이었다.
배세진은 의자에서 튀어나올 듯이 놀랐으나, 곧 헛기침을 했다.
“아니, 큼, 말을 안 하길래… 마음에 안 드는데 참고 있나 했지!”
“네 뭐…. 넵. 그런 식으로 제가 무슨 반응을 해도 안 좋은 쪽으로 해석하실 것 같아 가지고~”
“…….”
‘정곡이군.’
큰세진은 일부러 장난스러운 듯이 말끝을 올렸으나, 진담이 분명했다.
그리고 배세진도 찔린 것 같았다.
아마 개인 활동이 괜찮은 생각이라고 했어도 비꼬는 게 아닐까 의심했을 것이고, 반대했으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큰세진은 목 뒤를 문질렀다.
“저희가 연차도 있고… 슬슬 다들 개인 활동할 때가 되긴 했죠~ 그리고 형도 어차피 거절하실 생각이셨다고 하니까.”
“…….”
“다 같이 잘 되면 좋죠.”
큰세진은 그렇게 말을 끝냈다.
정말로, 빈말 같지는 않았다.
“…그래.”
그리고 배세진은, 이번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던 것 같다.
“좋아. 그럼… 정리해서 연출님께 연락드릴게!”
“Great!”
그렇게, 테스타는 본격적으로 앨범 활동기에 진입할 준비를 마쳤다.
이전과 다른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 * *
“저… 그런데 T1과 관련된 모든 관계사와 협력이 불가능하다면, 혹시 이번엔 그룹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제작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까?!”
“기다려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