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6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68화
서울. 조용한 사무실 안.
“얼른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배세진은 최대한 침착하게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진짜… 왔구나.’
정말로, 오랜만에 해보는 작품 미팅이었다.
괴상한 가상 세계에서 몇 년간 배우로 활동한 기억이 있지만, 그때의 경험은 최근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이전의 일이나 생생한 꿈처럼 살짝 모호했다.
그래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며, 배세진은 짧게 심호흡을 했다.
곧 기다리던 사람이 황급히 등장했다.
“세진이 왔구나!”
“…! 안녕하세요.”
서류를 들고 있는 연출. 그에게 배역 제안을 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을 대동한 채였다.
“연출님, 감독님.”
“그래~ 쎄진이 많이 컸네.”
호방한 인상의 감독이 씩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이분이셨구나…!’
그가 아역일 당시, 납치된 아동을 연기했던 작품의 감독이었다.
성적은… 한 번 걸러 한 번꼴로 흥행에 성공하는 사람.
‘…좋아.’
이 정도면 걸어볼 만했다.
배세진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후 다시 착석했다.
“애가 진짜 억수로 똑같네. 침착한 게 그대로 컸어.”
“그렇죠? 여전히 딱 바른 생활하는 그 느낌이더라고요.”
‘큼.’
그 정도는 아닌데.
자신도 그간 제법(?) 탈선해 봤다고 생각하던 배세진의 앞으로 드디어 문제의 제안이 왔다.
팔랑.
테이블 앞으로 서류가 넘어가며, 작품이 가볍게 설명된다.
‘현대 미스터리 호러….’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살짝 기괴하고 싸늘한 21세기 대한민국 현대 세계관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그 내용을 훑는 배세진에게 친절한 설명도 이어진다.
“넷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야.”
“아.”
그렇다면, 확실히 제작 스튜디오만 연관이 없다면 T1과 동떨어진 자본이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할 수 있어.’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라면 촬영 기간이 더 걸리겠지만, 그럼 다음 앨범을 홍보하면 괜찮지 않을까?
배세진이 열심히 생각을 짜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사실… 꽤 많이 찍어둔 상태거든?”
“…!”
잠시만.
“…지금 절 캐스팅하시면서요?”
혹시 시즌제인가?
그래서 시즌 2에 자신이 등장하는 걸지도….
“사실 신인이 하나가 싹수 있어서 써봤는데… 그 미친 새끼가 뭐 동영상을 찍어서 기사가 떴어요. 지역 발언인가 뭔가 해서!”
“……큼.”
“우리 세진이는 데뷔한 지 20년이 다 돼가는 데도 깨끗하지? 그런데 어디 신인이 정신머리가 빠져 가지고!”
요새 것들은 대가리에 위튜브, 인하트, 틱택톡만 찼다며 감독이 개거품을 물려고 했다.
연출이 황급히 설탕 폭탄 커피를 권하며 이야기를 우회했다.
“아무튼 그래서 분량을 아예 덜어내 버리느라… 일정 밀리고 딱 스케줄 비었거든? 세진이가 그때 딱 연락 줘서 오랜만에 같이 일할 수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뭘. 또 이렇게 인연이 닿았구나 싶지!”
“참말로 그렇네~ 고마워 우리 이 연출~”
“에이 세진이가 오케이 해줘서 하는 거죠~”
감독과 연출이 히죽히죽 웃었다. 그리고 배세진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면 저한테 주시려는 게 그 신인분이 맡았던 역할인가요?”
“…! 아, 그런데 비중은 확실하거든!”
황급히 설명이 이어졌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고 오디션도 천지삐까리로 봤는데 도저히 이거다 싶은 그림이 안 나오는 거야.”
그래서 용케 찾아낸 게 바로 저 신인이었다는데, 도저히 대체자가 없으니 한번 써보겠다고 투자자를 설득했다고 한다.
“넷플러스가 이런데 좀 너그럽거든? 그런데도 좀 더 인지도 있는 사람 쓰면 안 되겠냐고 할 정도로 정말 좋은 역할이었어!”
“그리고 어차피 홍보 효과도 없는 신인이라서 거 기사도 안 떴어! 뭐 대체니 뭐니 이런 소리 나올 일도 없다니까?”
“아, 네.”
배세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연출과 감독은 혹시 배세진이 ‘땜빵’ 취급을 당했다고 오해해 기분이 상했을까 기색을 살폈다.
하지만 배세진이 고민하던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촬영 기간이 짧아지니까 공개일이 내 생각보다 빠를 것 같잖아.’
결과물을 빨리 볼 수 있다는 건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가 물 건너갔다.
‘앨범 홍보가… 애매해.’
넷플러스는 드라마 시즌 전 화수를 한꺼번에, 많아 봤자 두 번에 거처 공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편집 시간을 확보해야 하기에, 공개가 미묘하게 늦어졌다.
즉, 이번 앨범 활동 끄트머리 즈음에야 이 드라마는 공개될 것이다.
‘…한두 달 정도일까.’
그렇다면 앨범 홍보에는 정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
배세진은 표정을 관리하며, 스스로 물었다.
과연 이걸 몰랐을까?
자신보다 훨씬 아이돌 활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멤버들이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라는, 언제 작품이 공개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일을 ‘앨범 홍보의 일환’이랍시고 다 같이 묻어가게 해준 건….
‘…그냥 응원해 준 거야.’
그룹 활동에 도움이 되든 안 되든, 그냥 멤버인 배세진을 위해서 말이다.
배세진은 다시 울컥하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그러면 배역부터 좀 볼게요.”
“그래, 그래!”
“와, 세진이 진짜 쪼그마할 때랑 똑같이 말하네.”
배세진은 서류를 옆으로 치우고 그 밑에 있는 것을 집어 들었다.
이미 깔끔히 완성된 새 대본이었다.
그는 그것을 전투적으로 넘겼다.
‘잘할 거야.’
어떤 역이든, 어떻게 해서든 잘 소화하고 마리라.
그것이 응원에 대한 보답….
“…….”
“어때 세진아?”
보, 보답.
“아무래도 아이돌들이 무난한 서브 역할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진이는 그 연기력으로 비슷한 노선 취급받으면 안 되지!”
“…….”
“이런 싸이코패스로 강력하게 연기자 이미지 각인하면 진짜 좋을 것 같지 않아?”
“그,”
배세진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 * *
한편, 테스타는 첫 공중파 음악방송을 시작으로 3주간의 앨범 홍보 활동을 예정 중이었다.
그리고 팬들은 슬슬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기는 했다.
-애들 딩동댕 노래방 안 나오네 담 컴백에도 오겠다고 손도장도 찍고 가지 않았음?
-와 쎄하다 어떻게든 모셔보겠다고 X나 친한 척하던 예능 계정들 갑자기 언급도 없어짐ㅋㅋㅋ
-애들 예능… SBC MBS… 음…
그리고 다들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티원이 티원함
-아 ㅅㅂㅋㅋㅋㅋㅋㅋ역시
-와 진짜 치졸하다 뮤직밤 막은 것만으로도 부족했나
-진짜 어떻게든 테스타 죽이고 팬 뺏고 싶은 듯 응 이제 니들 서바 안 봐
누가 봐도 악질적인 T1의 행동에 팬들은 SNS를 주어 없는 욕으로 가득 채웠고, 그것은 좋은 인기글감이 되었다.
[출신 방송국에게 경제보복 당하는 중인 테스타] [테스타 티원한테 손절 당한 듯?]팬들의 반응과 테스타의 공개된 스케줄을 잘 배치해 보기 좋게 정리하거나 충격적으로 뽑은 글들이 전하는 소식은 결국 하나였다.
‘테스타는 T1에게 찍혔다! 선 그은 정도가 아니다! 둘은 완전히 갈라섰다!’
T1 이사진이 구속된 기사를 본 순간부터 박문대가 예감했던 그 상황은, 뒤늦게 대중들에게도 소문 형태의 정보로 공유되었다.
-헐….
-대박 ㅋㅋㅋ
사실 자칫하면 그룹 이미지가 손상될 수도 있었다.
연예인이 플랫폼으로부터 ‘손절’ 당했다. 어쩐지 화제성이 떨어지고, 출연이 줄어들고 시들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하지만 거기까지 가진 않았다.
-티원 앨범차트 음원차트 보면서 이 갈고 있을 듯ㅋㅋㅋㅋ
-테스타 자유생활ㅊㅋㅊㅋ
-오 이제 티넷 노비 아니구나
-억측 아님? 테스타가 질려서 걍 안 나가는 걸지도
테스타의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급’에 대한 공격은 수치와 화제성으로 방어가 되는 것이 연예계였고, 박문대는 그 논리를 신뢰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는 특별한 방어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ㅉㅉ밀어주던 대기업이 손절… 오래 못 가겠다 얘네도
└어그로 개애잔하네
└야 테스타 초동 벌써 170만 넘기고 커리어하이 찍었던데 어떻게 생각함ㅋㅋㅋ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손절이 개이득!
└혹시 대기업 테스타에게 손절 당한 티원이 오래 못 간다는 뜻 아니었을까 (고민하는 이모티콘)
네티즌도 테스타에 몰입하는 편이 더 재밌기 때문이다!
얼마나 통쾌한가!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와서 더 성공하는 이 느낌!
다만 모든 팬이 이 반응을 보면서도 대단히 즐거워 한 건 아니었다.
-진짜 다 우리 애들이 좋아서 저러는 겠냐고 그냥.. 성적충들임…ㅠㅠ
-당장 현실은 애들이 얼굴 비출 곳이 반토막났다는 거잖아 애들이 얼마나 고민했을지… 아 속탐
플랫폼과 척을 진다는 건 가벼운 의미가 아니었으니까.
-앨범에 게임 왜 넣었나 했더니 이래서였나봐… 방송에 별로 못 나올 것 같으니까 이렇게라도 컨텐츠 채워주려고ㅠㅠ
└ㅜㅜㅜㅜ
└아 진짜 눈물나네 아 한 장 더 사고 와야겠음
그리고 그 상황에서 멤버들의 개인 출연 스케줄이 한두 건 발표되자, 다들 이해가 간다는 분위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 얘들아 애쓴다…
-이렇게 개인 출연하는 테스타 많은 거 처음이다… 그래도 다른 팀들은 원래 이러는 경우도 많으니까
-다 챙겨 볼 거야 화이팅!
게다가 아예 대놓고 W앱에서 멤버들이 말하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좀 더 여러 스케줄에서 저희 모습을 보여드려 보려고… 각자 찍어보기도 했어요.] [맞아.] [저희가 이렇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아주 완곡히, 부드럽게 돌려 말했지만 사실 ‘저희가 이번에 개인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가 절대 아닌 건 모두가 알 수 있는 투였다.
그룹으로 못 나가는 시간을 채워봤다는 뜻이다.
-역시
-그래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즐기자 이러고 또 애들끼리 노는 거 보면 얼마나 좋겠어ㅠㅠ
그룹 팬들은 마음 아파하고 개인팬들은 개이득을 부르짖는 그 타이밍이었다.
배세진의 기사가 뜬 것은.
[테스타 배세진, ‘천만 아역 배우’의 복귀작은 넷플러스 기대작 ]-????
자기 혼자 예능이든 행사든 개인 일정이 없던 배세진이, 드디어 스케줄을 공개한 것이다
-미친
-슬슬 연기할 때 되긴 했지ㅋㅋㅋ
-나 너무 기대됨 어떡해bbb
-음 이 작품 꽤 오래 드라마화 기다렸는데 배세진 연기력 어때?
└개쩜
└애초에 배우 출신이야
대중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연기력 논란이 없는 용모 좋은 연예인이니까.
그리고 그간의 밑밥 덕분에 테스타 팬들도 그럭저럭 온건했다.
-그래 배세는… 예능보다는 연기하는 게 낫긴 하다
-아이고 우리 햄찌 예능 혼자 나가서 호달달 떠는 것도 보고 싶긴 했는데ㅋㅋㅋㅋㅋ
-ㅠㅠㅠ테스타 모두 홧팅!
그래도 연기는 워낙 ‘제대로 된’ 개인 활동이었다.
조금만 배세진의 그룹 활동 태도에서 허점이 보이면 트집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대기 중인 악성 팬들은 있을 것이다.
“세진아, 오늘 조금 피곤하더라도 여기 꼭 보고.”
“알았어.”
그래서 테스타는 더욱 라이브나 스케줄에서 서로를 신경 쓰며, 열심히 활동을 수행 중이었다.
다만, 멤버 중 한 사람은 이것 외에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슬슬 시기가 되긴 했는데.’
바로 박문대였다.
며칠 후가 테스타의 데뷔 기념일이니, 벌써 6월 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에 맞추어 여름 날씨도 부쩍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올여름’과 관련된 특이한 정보를… 하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체크를 반복하던 어느 날.
[티홀릭 후배 그룹 온다… 원더홀, “신인 보이그룹, 출격”]기사가 떴다.
‘역시.’
박문대는 당장 상태창을 불러와서 확인했다.
자신이 뽑았던, ‘힌트’를.
[원더홀의 신인(B)]-202X년. 올여름 원더홀에서 드디어 남자 아이돌 신인이 데뷔할 예정이다.
3년간 200억을 투자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신생팀의 파격적인 기획은 사내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힌트는 맞았다.
‘역시 쓸 만해.’
그리고 주목할 점은 하나 더. 이 힌트는 황금빛 ‘B’일 정도로 등급이 높았다.
구체적일수록 등급이 높은 것도 맞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유용하기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박문대는 생각했다.
‘이 신인이 꽤 뜰 것 같은데.’
당장 커뮤니티 댓글 반응들도 제법 화력이 괜찮았다.
물론 이유는 원더홀과 티홀릭의 이름값이다.
-헐 드디어 티홀릭 후배
-원더홀은 순두부부터 쾌남까지 다 호감상만 뽑아놔서 진짜 좋음 제발 이번에도 그렇게 가자
-진짜 궁금하다 티홀릭만큼 대중적으로 뜰 수 있을까
└그때랑은 판이 바뀌어서 힘들 듯?
└그래도 원더홀이라 왠지 될 것 같기도ㅋㅋㅋ
티홀릭이 가진 털털하고 편안한, 멋진 동급생이나 선배 같은 컨셉. 그것을 그리워하던 수요는 여전했다.
아무리 테스타가 개개인의 이름을 알린 대중성 있는 아이돌이라고 해도, 그건 예능과 곡으로 만든 것이지 컨셉으로 만든 것이 아니니까.
박문대는 냉정히 판단 내렸다.
‘꾸준히 동향을 체크해야겠어.’
하지만 다음 주.
그들의 데뷔 티저가 공개됐을 때.
-???????
-미친
-이게 티홀릭 후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상상도 못했네
이 반응이 나올 줄은, 박문대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
국민 아이돌, 티홀릭의 후배는… 완전히 컨셉추얼한 노선을 택했다.
테스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