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6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69화
“얘네야?”
“그래.”
개인 스케줄을 마치고 온 큰세진이 스마트폰 링크를 확인했다.
참고로, 퍼포먼스 경연부터 탐험 예능까지 다양한 개인 일감을 두고 고민했던 놈은 상당히 의외의 선택을 한 상태였다.
[호프 게임 ? 선택과 반전]바로 데스 게임 서바이벌 리얼리티다.
공중파 산하 위튜브에서 제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렇게까지 대중적이진 않았으나, 마니아층이 확고하고 인터넷 화제성이 좋았다.
-그리고 여기서도 은근히 주사위를 상징물로 쓰더라고~ 우리 앨범이 ‘Roll the Dice’니까 홍보 슬쩍하기 좋을 것 같아서?
-딱 내가 활약하면 편집 동영상에 우리 게임 영상도 써줄 것 같았거든.
그리고 워낙 처세술이 좋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답게, 감초처럼 호감형으로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 몇 번 딱 활약하는 정도로 이미지를 챙겨가는 중이더라.
오히려 무난하고 대중적인 예능에서보다도 이걸로 캐릭터 이미지가 또렷해지는 모양이다.
두 화씩 몰아 찍는데, 심지어 지금 찍고 있는 6화까지는 생존 중이라고 한다.
‘애초에 서바이벌 유경험자기도 하고.’
카메라 돌아가는 중이라는 걸 절대 잊지 않고 대처하고 있으리라.
어쨌든, 그래서 심력 소모가 상당할 놈이 합류하자마자 체크할 정도로 이 상황을 날카롭게 잡았다는 뜻이기도 했고.
“티홀릭 선배님들 후배…. 음, 원더홀 기획사.”
그룹명은 이테르.
그놈의 티저영상이 공개된 것이다.
나는 영상이 재생 중인 스마트폰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
아련한 색감의 배경.
살짝 들어간 세피아톤 필터와 필름 카메라 같은 감성.
잔디밭과 미소, 은은한 채도와 하이라이트가 강하지 않은 감성의 전망이 펼쳐진다.
그리고 소년들.
그들은 달리며 수없이 많은 공간을 뛰어넘는다.
낡은 학교 옥상, 버스 정류장, 폐차장, 야경이 반짝이는 다리 위, 잔디가 깔린 운동장….
지나간 풍경의 소품들이 따라붙듯 허공에 나타나거나 배치되는 것이 몽환적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없어 황량한 듯하지만, 청초한 필터를 깔아 아련한 사거리 도로까지 왔다.
몽환적이고 산뜻한 음악에 맞추어 댄스 컷이 몇 컷 감각적으로 지나간 후.
침묵 속에서 노랫소리만 울리는 것이다.
아직 보지 못한
너에게]
신호등 위에 서 있던 한 소년이, 아직 새벽빛으로 은은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듯 박차올랐다.
하얀 손이 하늘을 가리며 햇빛이 반짝 빛났다.
[Show the way– ?ter]
그 화면 위로 하얀 자막이 소리 없이 뜨며 끝.
“…….”
큰세진은 말없이 그것을 전부 확인했다. 그리고 조회수를 체크했다.
백만 단위.
“음.”
녀석이 눈썹을 찡그리며 웃었다.
“전문가 의견부터 들어볼까?”
“그래서, 우리 래빈이 느낌은 어때?”
“코드와 악기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이 합류한 테스타 중에 그 ‘전문가’가 티저에 대한 코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김래빈.
녀석은 재조명받는 무명 가수들에게 곡을 주는 프로그램에 홀로 나가는 중이다.
물론 처음에는 작곡자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오디션을 통해 올라온 가수들은 주어진 곡들을 30초만 들은 뒤 뺏고 뺏으며 선택하고 평가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곡이 되고 나서야, 작곡가의 정체를 보고 전곡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MC : 5번 곡, ‘선율’을 만드신 하얀토끼 작곡가님의 정체는 바로… 테스타 김래빈 씨였습니다!
-김래빈 :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
-참가자 : 으아아아아악!! 아!!
-참가자 : 감사합니다!
-김래빈 : …??
테스타의 이름값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자리였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은 하나도 즐기지 못하더라. 시청자만 즐기고 있더라고.
어쨌든, 녀석은 티저를 다 감상한 뒤 이런 평가를 내렸다.
“저와 멜로디 전개, 보조 악기 선택에 있어서의 기준점이 유사하신 듯합니다! 어떻게 이런 방식을 고르게 되신 건지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
조용히 참던 배세진이 더는 참지 못하고 외쳤다.
“따라 한 거잖아!”
“예?!”
그렇다.
나는 턱을 문질렀다.
“네 곡을 분석해서 레퍼런스로 삼은 거지.”
“…!”
“내가 듣기에는 ‘마법소년’이나 ‘Wheel’ 계통을 참고한 것 같은데.”
분명 당사자인 저놈은 부분부분 유사한 다른 곡들을 훨씬 더 많이 머릿속에서 찾아낸 상태일 것이다.
선아현이 당황스러운 듯이 눈을 감았다 떴다.
“으응, 그러고 보니, 이 티저 이미지도….”
“그래. 우리 데뷔 때 티저랑 좀 비슷한 느낌이지.”
하지만 완전히 ‘마법소년’ 티저만 참고했냐면, 또 그건 아니다.
가령 이 티저의 길이감, 그리고 편집과 구도는 차라리 ‘행차’ 때와 비슷하다.
컬러감은 ‘비행기’, 소품은 ‘Picnic’.
그런 식으로 테스타의 그간 활동에서 입맛에 맞게 여러 요소를 가져온 뒤, 다른 좋아 보이는 것들과 잘 섞어서 재정립해놓은 느낌이었다.
‘퍼즐 같군.’
“…! 얘네도 설마 세계관 같은 것도 만들었어?”
“당연히 그랬지 않을까요.”
요새 남자 아이돌판에 세계관 없는 그룹을 찾는 게 더 힘들 것이다.
나는 바로 검색을 통해 요약을 찾아냈다.
-가상현실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초능력 소년들.
꿈꾸는 영원의 길잡이.
각자의 청춘 속에서 방황하며 빛을 찾아 떠난다.
Show the way – ?ter
‘오.’
타임트립, 마법, 꿈까지.
배세진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건 우리 이전 컨셉이랑, 너무 비슷하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키워드만 비슷하죠.”
나는 냉정히 훑었다.
“키워드도 완전히 겹치는 게 아니고요.”
타임트립은 가상현실로, 마법은 초능력으로 바꿔서 묘하게 뒤틀어놨다.
‘좀 더 현대기술적이군.’
요새 플랫폼에서 엮어 쓰기 편하겠다.
“게다가 본인들 정체성도 딱 잡아놨어요.”
“어디!?”
“여기.”
나는 그룹명을 집었다.
-?ter
“라틴어로 길이라는 뜻이라는데. 그룹 컨셉을 ‘길잡이’로 잡아서 고유 이미지를 붙였죠.”
“…….”
애초에 그룹명이 ‘이테르’라는 순간부터 이런 컨셉추얼한 걸 예상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배세진은 좀 허망한 투로 중얼거렸다.
“그럼… 우릴 따라 한 게 아니라고?”
“따라 한 건 맞는데, 벤치마킹이란 거죠.”
엄밀히 말하자면, 표절은 아니라는 뜻이다.
“시장에서 요새 제일 잘 나가는 상품을 조사해서 자기들 버전으로 만들었다고 해야 하나.”
“…….”
찝찝하다는 얼굴로 배세진이 앉았다.
‘이해는 한다.’
나도 썩 기분이 좋진 않으니까.
보니까 다양한 레퍼런스에서 짜깁기하고, 이 소속사 고유점도 섞었기 때문에 확실히 표절은 아니었다.
그러나… 테스타가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그룹이라는 것도 맞다.
‘흠.’
그리고 그건 모두가 느끼는 모양이었다.
배세진은 결국 약간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만 이런 컨셉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런 걸 하는 건 우리뿐이었던 것 같은데.”
“…….”
큰세진은 약간 뜸을 들였으나, 곧 떨떠름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음~ 사실 전에도 이런 그룹 많았거든요?”
“어, 어어??”
배세진이 당황했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시장에서 당장 잘 먹히는 걸 내놓는 게 보통 후발주자들이 하는 거지.’
테스타의 컨셉추얼한 느낌을 벤치마킹 시도한 그룹이 지난 몇 년간 몇 팀이었던가.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냥 다들 반응이 그렇게 팍 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형이 모르고 지나간 거죠.”
“…….”
“이런 건 사실 멋지게 보이기 힘든 컨셉이잖아요.”
그렇다.
바로 기획력과 자본력.
얼마 안 되는 예산과 인력으로 단기간에 카피해서 내려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 게 바로 이런 컨셉추얼한 이미지였다.
“그럼 얘네들은….”
내가 대답했다.
“3년 동안 200억.”
“…!!”
“새로 프로젝트 기획팀도 신설해서 진행했다고 하니까…. 인력도 많이 투입됐겠죠.”
힌트에서 얻은 정보다.
그러니까… 기획, 자본, 인력.
세 요소를 다 갖추고 준비한 것이다.
3년이나 말이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가만히 듣고 있던 류청우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제대로 준비해 왔겠구나.”
그리고 얼마 후, 이놈들의 타이틀곡이 공개되었다.
* * *
[Ready and shut, go!]강렬한 뭄바톤 음악과 함께 레이저 불빛이 화면을 쪼갰다.
화려한 이펙트가 터지는 CG 화면과 휙휙 지나가는 코딩 화면, 그리고 고글을 쓴 초능력 소년들의 보스 레이드!
그리고 강렬하게 잡아먹을 듯이, 거대한 짐승을 형상화한 것 같은 댄스 브레이크 파트까지.
“와우.”
심드렁한 얼굴로 차유진이 팝콘을 씹었다.
“어때.”
“The typical nerdy things. [진지하게, 케이팝에 무슨 학원이라도 생긴 건 아니죠?]”
비디오 게임 덕후들이 열광하겠다며, 차유진은 쿨하게 소파에 앉았다. 본인이 지난 앨범에서 아예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은 까먹은 듯한 태도였다.
“너도 했잖아.”
“전 멋있어요. 저 뭐든 잘해요. 하지만 저 애들 그거 안 했어요. [몰입]?”
흠.
나는 다시 뮤직비디오를 돌렸다.
‘외모 스탯은 괜찮아 보이는데.’
그리고 카메라 워크도 현란한 데다가, 클로즈업샷과 역동적인 구도가 적절히 번갈아 나와서 액션 게임의 컷 같았다.
차유진의 말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색해 보이진 않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댓글에는 벌써 골수 KPOP 팬들이 붙었다.
-은발 머리의 소년은 완벽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저어엉말 완벽한 다섯의 별이야! 나는 그들의 음악방송 무대를 기대해 😀
-내 생각에 이테르는 가장 큰 케이팝 그룹 중 하나가 될 거야
그러나 TV로 모니터링을 끝낸 테스타는 냉정히 평가를 내렸다.
“이건 또 ‘Better me’나 ‘Drill’이 생각나는 것 같은데.”
“네넵. 댄스 브레이크는 행차 때 했던 스타일이네요.”
뭐, 그냥 봐도 구간 구간 비슷하니까.
오토바이 소품 구도나 의상이 Drill을 떠올리게 하고, 저 전투 구도나… 구현된 폐쇄 시설 분위기는 ‘Better me’를 떠올리게 하는 것까지 말이다.
물론 기본 컨셉이 다르니, 일반 대중들이 보기에 바로 생각이 날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 오면 알 사람은 대충 알았겠군.’
아무리 우리가 자체 프로듀싱까지 해가며 앨범을 만든 당사자들이라서 더 잘 느껴지는 거라지만, 우리만 이걸 느꼈을 리는 없다.
“이거… 팬분들한테도 이야기 나오지?”
“…….”
“박문대, 그냥 편하게 말해.”
나는 짧게 스마트폰을 쳐다보았다.
“나오긴 하죠.”
“…!”
당장 지금 영문 베스트 댓글로도 보인다.
-그저 또 다른 테스타 카피캣처럼 보이는 건 나뿐인가? 🙁
“…역시!”
“그런데 그게 꼭 좋은 일이라고는 보기 힘들어서요.”
“크흠.”
배세진은 금방이라도 ‘왜’라고 소리를 지를 것 같았지만, 다년간의 경험적 신뢰로 참은 것 같았다.
그리고 선아현은 약간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아, 그, 표절이라고는, 볼 수 없으니까?”
“맞아.”
도리어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테스타가 청량몽환 전세 내신?
-걍 퀄리티 좋으니까 꼬운가 봐ㅋㅋㅋ 우리 테스타만 이런 거 해야 하는데!
-아 마법소년이 몇 년 전인데 언제적 얘기야 심지어 이테르? 얘넨 교복도 안 입었잖아ㅋㅋ
-테스타 온갖 뮤직비디오 다 잘라서 ㅅㅂ이렇게 한 장면 한 장면 비교하는 거면 아이돌들 다 표절임 개뷰어야
담론이 부딪힌다.
싸울 만한 거리가 됐다.
‘안 좋아.’
이런 증명하기 애매한 것으로 여론을 한번 ‘따라했다, 카피캣이다’로 만들었어도, 언제든 다시 뒤집힐 수 있는 것이다.
‘상대가 인기만 생긴다면!’
나는 당장 연예 가쉽 게시판에 접속해 인기글을 훑었다.
신인을 맹렬히 욕하는 글과 외모를 칭찬하는 글, 그리고 곡에 대해 좋다 나쁘다 평가하거나 비꼬는 글이 쭉쭉 인기글로 올라와 있다.
“…….”
X발, 당했다.
“형, 표정이 안 좋은데.”
“…….”
류청우가 다독이듯이 말을 걸었다.
“역풍이라고 부르던 거. 그거 때문에 그래요?”
“…거기까지 갈 것도 없지.”
나는 어깨를 주물렀다.
“화제가 되고 있잖아. 이 그룹이.”
“……!”
“이런 논란은 시간이 지나서 팬이 붙으면 밀어버릴 수 있는 종류라서. 곡 좋고 안무 좋으면 무조건 클릭 한번 더 시키는 게 이득인데.”
“그러고 있다는 거구나.”
맞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이놈들 버즈량이 대폭 증가한 것이다.
바이럴 마케팅.
‘X발.’
동시에 나는 직감했다.
“분명 지금 이 시기도 노리고 나왔을 거야.”
“지금을?”
“…….”
나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친 큰세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T1과 사이가 제일 나쁠 때… 말이지?”
“…….”
“한참 우리 독립하려고 난리일 때 업계 사람들이 그 카더라를 몰랐을 리가 없긴 해. 그때 들었으면… 거의 무조건이긴 해?”
정답이다.
“……맞아.”
“……!”
그 말을 이해한 멤버들의 표정이 변했다.
“그럼, 우리가…, T1과 사이가 나빠질 때, 데뷔, 하려고…….”
“그래.”
제일 테스타가 약할 시점이다.
견고히 연결되어 있던 방송국 계열사에서 막 매몰차게 버림받으며, 대중과의 거리감이 생기기 쉽고 노출 빈도가 떨어졌을 때.
치고 올라오는 라이징 스타에게 대응하기 힘들 때.
“지금 우리는 T1과 관련된 스케줄은 못 하는 상태야. 방송이든 위튜브든.”
하지만.
이미 모든 방송사와 친한 티홀릭을 키운 대형 기획사, 원더홀 출신의 신인이라면.
“하지만 얘네는 어디든 나갈 수 있지.”
불공정 게임이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