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50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02화
여기 오래된 공중파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이미 고점을 지나 명맥만 이어오다가 초라하게 종영한 프로그램.
‘그렇지만, 전성기 덕에 이름은 유명하지.’
한 마디로 웬만한 국민 대다수들이 이 프로그램을 알긴 하지만 더 이상 볼 마음은 없었다, 이거다.
화제성과 재미 단물을 다 빨아먹고 끝장난 예능.
만일 이 프로그램이 인맥빨로 선심성 기회를 받아, 간신히 리뉴얼 시즌을 시작한다면… 과연 기대치가 있을까?
오래전 전성기에 얻은 이름값에 어울릴 만한 섭외가 가능할까?
답은 뻔하다.
‘안 되겠지.’
연예인과 소속사들이 바보도 아니고, 잘나가는 사람들은 요새 잘나가는 프로그램에 나갈 것이다. 안 그래도 섭외가 들어올 테니까.
‘뭐하러 위험하게 그런 걸 고르겠냐.’
더 좋은 대안이 있는 시점에서 탈락이다.
‘그리고… 프로그램 성격을 생각해도 무리지.’
이 예능은 순위가 매겨지는 경연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
혹시 이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당장 첫 회의 날, 서류를 다 읽은 김래빈도 손을 들고 외쳤기 때문이다.
“저희가 위시즈로 데뷔했을 때 나갔던 그 프로그램이로군요!”
“맞아.”
시스템이 만든 가상 세계에서, LeTi에서 데뷔한 테스타와 VTIC 합동 그룹이 나갔던 프로그램이다.
“오우, 저 기억 나요. 그 프로그램 유명했어요. 근데 지금 왜 망해요?”
“그게 벌써 몇 년 전 시점이니까.”
“Oh….”
거기서는 시즌 7까지도 성공하며 승승장구하는 경연 프로그램이었지만, 시간이 더 흐른 여기서는 좀 다른 현실을 맞았다.
시간이 더 흐르며, 시즌 15, 16까지 가면서 점점 화제성이 줄어들고 원조 PD도 다시 떠나면서 망한 것이다.
나는 덤덤히, 숙연한 사실을 선고했다.
“그리고 이번에 나오는 리뉴얼 판도 아마 망할 것 같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
‘어쩔 수 없지.’
기대치가 낮다는 게 이렇게까지 소문이 났으니, 유명한 출연진을 섭외하긴 힘들다.
하지만 이름값이 있으니, 유명한 출연진 섭외가 실패하면 반등이고 나발이고 꿈도 못 꾼다.
그냥… 관심 못 받고 나락행이다.
한마디로 실패가 예정된 망한 프로그램.
서류를 들추던 큰세진까지 혀를 찼다.
“와~ 심지어 서바이벌 룰까지 넣으셨네.”
“음, 섭외가 확실히 힘드시겠어.”
그 와중에 나름대로 좀 더 자극적으로 하겠답시고 아예 경연을 넘어 서바이벌 형식도 채용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네임드 섭외가 더 어렵다.
‘나와서 손해 볼 확률이 더 높은데 이미 뜬 사람이 뭐하러 나오냐.’
괜히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원래 데뷔 전인 아마추어들, 혹은 데뷔는 했으나 대중적으로 안 유명한 사람들을 데리고 하는 게 아니다.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이 많아야 탈락과 비웃음 같은 상황도 감수할 거 아닌가.
‘PD도 골 아프겠지.’
그래서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현실적으로 루트는 하나뿐이었다.
-하나라도 아주 이름값이 드높은 스타가 출연 확정되는 것.
거기서부터 섭외 물꼬를 틀 수 있다.
그걸 기초로 판을 키우고, 혹시 지더라도 ‘잘 싸웠다’, ‘어쩔 수 없지’라며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게 확정되는 순간.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출연하겠다는 네임드들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편성을 목전에 둔 시기까지도 그런 대스타 출연진을 (당연히) 구할 수 없었는데…….
“…그런데, 우리가 굳이 나가겠다는 거지.”
“예.”
배세진이 할 말이 굉장히 많다는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류청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제작진분들 반응은 괜찮더라.”
“당연히 그렇겠지!”
그래.
아니나 다를까, 프로그램 측에서 테스타가 미끼를 흔드니까 바로 물더라.
-타 방송사에서 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은데요…. 굉장히 적극적이십니다.
소속사 직원 말로도 공중파 제작진 측에서 이렇게까지 정중하고 간절한 미팅 요청을 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놈들, 잘 나가는 연예인 토템 하나가 간절했던 것이다.
이때 테스타가 바로 그 토템이 되어준다면?
“그만큼, 우리 덕에 프로그램 섭외 난항이 풀리면 편집을 잘해줄 것 같잖아요. 그리고….”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MBS에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리뉴얼판 개국 공신이 되는 거지.
때와 똑같은 포지션이 먹을 수 있었다.
비록 이젠 OTT 프로그램에게 화제성도 밀린다는 공중파지만, 그래도 연말 가요제부터 음악 방송, 주말 예능까지 빼먹을 구석은 많다.
‘그리고 우리를 데뷔시켜 줬다고 빚 지운 것처럼 부려 먹지도 못해.’
동등한 입장에서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말만 공중파의 아들이고, 실제로는 동맹쯤으로.
게다가 장점이 하나 더 있다.
“그리고 PD님 직급이 높으시더라고요. 효과가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오오… 그렇네.”
아무래도 갓 부임한 초짜보다는 연차도 묵고 인맥도 좋아서 승진한 사람이 더 사내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큰세진은 곧장 핵심을 찔렀다.
“그런데 직급보단 영향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 프로그램을 맡으신 걸 보니까, 출세보다 자기 개성대로 일하시는 타입이시지 않을까~해서.”
망할 프로그램 맡은 걸 보면 저거 사내 정치에서 팽 당하고 끝장난 깡통 직급 아니냐는 뜻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 프로그램을 맡으신 이유가 따로 있더라고.”
“그래?”
“어. 이 프로그램 시즌 3로 처음 방송사에서 PD 생활을 시작하셨대.”
“아.”
아마 그 미련 때문에 리뉴얼하겠다고 맡았지만, 그 직급으로도 예산을 많이 못 당겨올 만큼 방송국 사내에서 이 프로그램에 기대가 없다는 뜻이다.
이 PD가 그간 맡아온 프로그램들을 보면, 재미 타율이 상당했는데도 말이다.
“그럼 이번에 잘 되면… 오, 굉장히 방송국에서도 의외겠다. 그리고 그 PD님도 인정받으시고~”
“으응, 모두에게 좋은 결과네…!”
큰세진은 그 모든 게 시너지를 이루어 우리가 먹을 게 많겠다는 뜻이었겠지만, 어쨌든 선아현은 우리뿐만 아니라 제작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것에 좀 기쁜 모양이었다.
‘뭐, 둘 다 맞는 말이군.’
하지만 이런 것들이 다 이루어지려면 전제가 하나 있다.
“그러려면 무조건 우리가 이겨야 해요.”
시청자의 절대다수가 인정하는, 압도적인 승리.
무대.
그게 없다면 이 모든 짓은 모조리 마이너스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테스타가 지금까지 1군으로 쌓아온 이름값을 왕창 깎아 먹는 미친 짓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말이다.
“이기기만 한다면, 이게 최고고요.”
공중파를 한번 뚫어놓으면 다른 플랫폼과도 협상하기 쉬웠다. 허들이 내려가니까.
잘하면 T1도 계열사 예능 정도는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제 국내 프로모션 걱정은 끝인 것이다.
“음… 우리가 계속 한국에서 대중성과 화제성을 유지해야지, 해외를 겨냥해도 음원을 들어주시겠구나.”
“예.”
“잠깐만.”
배세진이 끼어들었다.
“좀 무모하지 않아? 이 제작진들이 꼭 그렇게 해줄 거란 보장도 없잖아. 우리가 잘해도, 다른 요인 때문에… 망할 수 있는 게 이쪽 일이야.”
“…….”
“…분위기 망치고 싶어서 한 소리는 아니야. 그냥…… 한번은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안다.
“네. 형 말씀도 맞죠.”
“…!”
“그리고 사실, 여기 안 나와도 저희가 갑자기 망하거나 하진 않을걸요.”
테스타가 이 정도 위치에 만족하고 완만한 하락세를 맞고 싶다면, 사실 이런 짓은 안 해도 괜찮다.
대상도 타봤고, 월드 투어도 해봤고, 적어도 2년은 너끈하게 테스타의 이름값이 생생할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연차가 더 차도 계속 올라가려면 어떻게든 플랫폼을 잡아야 해요.”
현재 VTIC처럼 말이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
배세진은 약간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녀석들의 얼굴에도 약간 비장한 기색이 스친다.
“OK, I’m totally ready for that! 우리 빨리 거기 나가요!”
저놈 빼고.
다른 녀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차유진의 외침을 무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수결로 하죠.”
“좋아.”
그리고 시작된 표결.
김래빈이 자신의 노트북을 가져와서, 익명 투표 프로그램을 돌렸다.
결과는….
“만장일치네.”
모조리 찬성표.
“이야, 익명 의미가 없는데요?”
“그러게.”
멤버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리스크를 짊어지고, 얼핏 보기엔 무모해 보이는 도약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MBS 측의 적극적 주도에 따라 엠바고가 풀렸다.
[‘돌아온 전설’ , 국민 아이돌 테스타 참전하나]그리고 팬들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 * *
처음엔 아무도 안 믿었다.
-???
-테스타가 여길 왜 나와
-굳이?; 절대 아닐 듯 바보도 아니고
1군 아이돌이 뜬금없이 다 망해서 리뉴얼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할 확률.
사실 없다고 봐야 했다. 자칫하면 손해만 왕창 볼 텐데, 차라리 그 시간에 투어를 돌지 뭐하러 그 위험성을 무릅쓰는가.
하지만 기사는 또 떴고, 기어코 테스타의 회사에 전화까지 건 기자들에 의해서 사실이 확인되었다.
[테스타 MBS 출연 확인… “강렬한 무대를 보여드리겠다”]그 순간 팬 반응은… 우선 인정사정없는 개인팬이 즐비한 물 밑으로 예시를 들어주겠다.
-또바이벌 장난하나
-읍슴댕 이 새끼 타그룹이랑 경연 무대 했다고 팼더니 애들 다 끌고 출연 실화냐
└ㅋㅋㅋㅋㅋㅋㅋ
└곰머야 미안하다 퇴물틱이랑 친목질 안 말릴게 ㅅㅂ 살려줘
……청려 놈에게 피처링했던 무대에 이어서 또 사람들 위통을 유발한 것 같긴 했지만.
‘이겨서 갚을게.’
이 상태에서 저 프로그램으로 테스타가 화려하게 이득 보면 오히려 뽕맛이 죽여줄 것이다. 기대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이 그룹 구성원으로 무대에서 진다고?
‘질 자신이 오히려 없다.’
사람들이 얼마나 높은 기대치를 가지든 간에, 단순히 무대만 꾸미는 거라면 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실 지금도 정보전만 어떻게 한다면 우리에게 약점은….
[설문조사 가능!] [도움말 : 설문조사를 통한 피드백으로 의 기능을 커스텀할 수 있습니다.]응, 안 써.
지금 그렇게 정보가 급한 상황으로 보이냐? 이게 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징글징글한 새끼.’
포기를 안 하는군.
뭐, 상관없다.
나는 팝업을 보며 내심 웃었다.
‘스페이서 이번 컴백도 성공했고, 곧 배세진이 출연한 드라마도 공개다.’
이제 이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제대로 활약한 뒤 컴백하면?
회사 등급이 올라가는 건 예정된 사항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난번 권희승 사례로 봤을 때, 회사 등급을 올리면 그놈의 ‘■■■ 파편’ 흡수가 추가로 가능하지.
‘그럼 청려가 가진 것도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야.’
이 ‘회사 System’이라는 것의 내부 알고리즘도 큰달이 열심히 뜯어봐 주는 중이다.
잘하면 청려가 군 복무하러 들어가기 전에 다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넌 필요 없어.’
나는 미련 없이 손짓도 하지 않고 팝업을 없앴다. 그리고 다시 무대 구상에 집중하려던 찰나였다.
“…?”
갑자기, 시야에 반투명한 푸른색이 씌었다.
선글라스라도 쓴 것처럼.
‘뭐?’
순간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눈의 초점을 그 푸른색에 맞추는 순간 그 정체를 알았다.
그건….
거대한 팝업이었다.
내 코앞에 뜬.
[소유자의 불만족 감지!]“…!”
시위하듯이.
그리고….
[[‘회사용 ’ 자동 재업데이트 시작]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