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6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2화
1위와 2위 발표만 남았다.
이러다 ‘박문대’가 탈락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은 안 들었다.
‘후보가 없어.’
남은 사람 중에 1, 2위를 할 만한 얼굴 자체가 없었다.
아, 지난 순위 발표식에서 3위를 했던 아무개는 여자친구와 목격담이 떠서 민심이 폭락했다.
좀 안 됐다만… 아이돌 오디션에 참가하면서 촬영 쉴 때마다 여자친구를 만난 건 스스로 불러온 재앙 아닌가.
“1위 후보 참가자 두 분을 지금 공개합니다!”
MC가 쩌렁쩌렁 마이크에 대고 힌트를 몇 가지 외쳤다. 긴 진행으로 목이 좀 쉬어 있었다.
그리고 앞서 순위들처럼 약간 시간을 끈 뒤, 후보가 발표되었다.
“차유진!”
차유진이 씩 웃으며 앞으로 나왔다. 밑에서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다른 후보는…….”
나갈 준비 하자.
“박문대 참가자입니다!”
역시.
나는 안 친한 몇몇 참가자들에게 형식적인 축하를 받으며 앞으로 나왔다.
“형, 축하드려요.”
그나마 골드 2가 진심이었던 것 같으나, 이쪽은 슬슬 탈락을 실감하는지 억지로 씩씩한 척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냥 등을 몇 번 두드려주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이미 올라가 있던 차유진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합시다!”
굉장히 신나 보였다. 이 기세를 몰아 1위까지 가져가 줬으면 좋겠군.
나는 별말 하지 않고 순순히 악수를 받아줬다. 일시적으로 공연장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일단 이걸로 데뷔 확정인가.’
나는 혹시 상태창의 변화가 있나 살폈지만, 아까 뜬 ‘성공적 무대’ 팝업뿐이었다.
“두 분, 1등을 놓고 경쟁할 상대 후보를 보니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차유진이 곧바로 냉큼 마이크를 들었다.
“정말 멋집니다!”
“하하! 아주 명쾌한 답변입니다~”
MC는 하하 웃더니, 긴장감 조성용 낚시 질문을 던졌다.
“본인이 오늘 1위 하실 것 같나요?”
“모릅니다. 근데 1위 좋아요!”
차유진이 엄지를 척 들었다.
결승에서 장난친다고 반감 가진 사람들이 나올 정도는 아니고, 적당히 보는 사람이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여유였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박문대 참가자의 소감을 들어볼까요. 어떠십니까, 상대방을 보시면?”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워낙 잘하는 친구라… 저 친구랑 같이 거론된 게 실감은 안 납니다.”
“방금 참 겸손한 발언이었습니다~ 하지만, 1위는… 어떻게,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어떻게든 나한테도 이 질문 물어볼 줄 알았다.
생각해 보는 것처럼 답변을 한 템포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슬쩍 저으며 답했다.
“…힘들 것 같은데…… 음. 사실 2위도 제 목표보다 굉장히 높은 순위라, 감사할 뿐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힘들 것 같다’라고 대답할 때 무대 아래 방청객들 사이에서 작게 웃음이 터졌다.
‘너무 진심처럼 들렸나.’
“아, 2위를 해도 아쉽지 않다? 정말 아쉽지 않으시겠습니까?”
“…예. 물론 된다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오~ 알겠습니다. 여러분, 박문대 참가자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질긴 놈.’
MC가 겨우 질문을 멈추고 다시 뜸 들이기에 들어갔다.
의 화제성과 시청률, 각계의 반응, 데뷔하면 받게 될 (자칭) 최고의 대우까지 줄줄 다시 방송을 탔다.
그리고 한참 시간을 끈 뒤 발표 직전.
“대망의 1위는…… 광고 후에 공개됩니다!”
‘이럴 줄 알았다.’
원래 이러면 후보들이 긴장했다가 주저앉고, 뭐 그런 극적인 반응을 보여줘야 하는데 하필 후보가 나랑 차유진이라 그냥 박수와 웃음만 나왔다.
대신 무대 아래에서 원망의 신음과 몇 가지 욕이 튀어나왔다.
‘방금 쌍욕하신 것 같은데.’
‘문댕댕’ 슬로건 뒤에서 튀어나온 욕설을 들었다고 거의 확신했다.
“형! 데뷔! 저랑 재밌는 거 많이 해요!”
“…좋지.”
차유진은 중간광고 표시가 뜨자마자 말을 걸어왔다. 완전히 들뜬 게, 누가 보면 이미 데뷔해서 숙소라도 입성한 줄 알았을 것이다.
‘정말 1위 관심 없나.’
하기야 아직도 1위 혜택은 ‘어마어마한 혜택!’이라는 말로 대충 연명하는 중이다.
명예욕 없으면 ‘몰라~ 난 데뷔함~’ 같은 상태여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근데 1위 혜택이 뭔지 아는 입장에서는 쫄린단 말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 혜택은 사실상 벌칙이었다.
사실 원래도 차유진이 1위였고 직전 순위 발표식에서도 1위였으니 저쪽이 이길 확률이 더 높은 건 안다.
근데 사람이 예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어제 본 인터넷 반응을 보니 ‘박문대’가 1위를 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다.
‘…모르겠다. 그럼 욕 좀 먹지 뭐.’
나는 생각을 포기했다. 돌연사 피했으면 됐다.
차유진이 떠드는 걸 몇 마디 받아주고 나니 다시 생방송이 재개되었다.
“대망의 1위 발표를 앞둔 !”
MC는 아까 한 말을 또 한 바퀴 반복했다. 내가 외울 지경이다.
‘슬슬 좀 말해라.’
솔직히 이미 둘 다 붙은 판에 뭘 이렇게 시간을 끈단 말인가.
‘다들 채널 돌렸을 것 같은데.’
다행히 드디어 MC가 이름을 말했다.
대망의 1위는….
“…박문대!”
내가 기대한 이름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됐군.’
내가 1위를 했다는 거지.
나는 혹시 티가 날까 봐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가, 의외의 사실을 깨달았다.
기분이… 좋았다.
1위 벌칙이고 나발이고, 일단 내가 이겼다니까 이상하게 확 아드레날린이 정수리까지 치고 올라왔다.
달성의 맛이 짜릿했다.
나는 거의 소리 내며 웃을 뻔했다.
‘이거 대학 붙었을 때보다 센데.’
덕분에 나는 얼굴을 감출 것 없이 곧바로 소감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축하합니다~!”
차유진이 굉장히 의리 넘치게 포옹했다.
‘미국식이군.’
짧게 포옹을 돌려주고 마이크를 들었다.
MC와 똑같은 각도로 공연장을 보니, 정면 밑에 몇몇 제작진들이 ‘울 생각 없니?’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응. 없어.’
나는 그냥 웃었다.
뭐, 솔직히 반은 운빨에 상태창 덕이긴 했다만… 어쨌든 내 몫도 있지 않은가.
“박문대 참가자, 소감! 소감 부탁드립니다.”
“예.”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갑자기 아드레날린에 취해서 그랬나. 머리에서 별 계산이 안 들어가고 척수쯤에서 말이 나온 것 같다.
“솔직히 데뷔를 목표로 나왔습니다. 데뷔를 꼭 하고 싶었고, 해야 했고……. 그래서 1위는 생각도 안 해봤어요. 기대도 안 했고. 데뷔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친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숨을 골랐다.
“근데… 하니까 너무 좋네요.”
여기저기서 환성과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솔직히 이럴 줄 몰랐어요’라고 이은 내 말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MC가 ‘아직 시간을 끌라’는 제작진의 신호를 받고, 내게 다시 물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하고 싶은 분이 계신가요?”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다.
“음… 특별히 언급할 사람은 떠오르지 않네요. 그냥, ‘박문대’에게 투자해 주신 분께 감사합니다.”
무대 밑에서 비명이 터져서 잠시 멈췄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가 뭔가 보답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음, 제게 뭘 소비하셨든 간에, 그 소비가 동 가격대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끝마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환호와 박수 사이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문댕댕’ 슬로건은 들고 있는 분은 흐느끼느라 손에 너무 줬는지, 슬로건이 거의 우그러져서 ‘누댄내’ 비슷하게 보였다.
‘이 말에…?’
약간 당혹스러웠지만, 뭐 좋게 봐줬다면 다행인 일이다.
자기 일도 아닌데 같이 기뻐해 주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약간 아릿했다.
‘나쁘지 않네.’
이러면 1등 벌칙 정도야 받아도 상관없지 않나.
내가 마음을 정리했을 때, MC는 다음으로 2위한 차유진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차유진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영어로 어머니께 소감을 전하고, 방청객들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대놓고 즐겜러라 사람들이 왜 찍었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들한테 괜한 스트레스, 감정 소모 안 주는 타입이다.
“감사합니다~”
차유진이 쾌활하게 소감을 마무리했다. 제작진들이 단상 옆 데뷔조 자리로 합류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차유진이 신나게 뛰며 떠나고 나자, MC가 나를 돌아보았다.
긴장을 조성하는 배경음이 시작됐다.
“자,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습니다.”
왔다.
나는 정자세로 서서 두 손을 모았다.
“1등에게 주어지는 어마어마한 혜택, 그 정체를 지금! 공개합니다. 박문대 참가자!”
“예.”
“어떤 혜택이었으면 좋겠나요?”
“……글쎄요.”
1억쯤 받고 싶다.
“잘 모르겠습니다. …빠른 데뷔?”
“아~ 중요하죠!”
MC가 손을 펼쳤다.
“자, 혜택을 보여주세요!”
그러자 정면의 커다란 전광판과 그 옆 전광판들에 오프닝 효과가 나타나더니, 곧 글이 떴다.
[상금 5,000만 원!]“…!?”
왜 상금이 거기서 나와.
“네! 박문대 참가자는 1등 혜택으로 5,000만 원을 즉시! 이 생방송이 끝나자마자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
이럴 리가 없는데.
당황한 와중에도 머리는 열심히 실수령액을 뽑았다. 3,900만 원.
물론… 받으면 좋다.
하지만 역시 이대로 삼천만 원을 먹는 일은 없었다.
“혹은! 다른 선택지도 있습니다!”
MC의 말에 따라 전광판에 새로운 글이 나타났다.
[새로운 멤버 영입!]“박문대 참가자는 1등의 권한으로, 마지막 순위 발표식까지 함께 올라온 14명의 참가자 중 한 사람을 함께 데뷔할 팀원으로 지명할 수 있습니다!”
‘떴다.’
이 빌어먹을 선택지가 기어코 떴다.
바로 1등 더러 알아서 최종 탈락자 중 한 명을 선택해 데뷔조에 합류시키라는 막장 혜택!
혜택의 탈을 쓴 벌칙!
심지어 더 악랄해졌다.
‘상금하고 둘 중에 고르라는 거였냐…!’
이 상황에 어떻게 상금을 고르냐고!
여기서 상금 고르면 나머지 14명을 찍은 사람들을 그대로 적으로 돌리는 꼴인데 당연히 새로운 영입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벌써 뭐라고 욕할지 각이 잡힌다.
-오천만원 큰돈이긴 한데 다른 사람 인생만큼 큰돈은 아니지 않나.
-어차피 데뷔하면 많이 벌 거면서ㅋㅋ 돈 진짜 좋아한다~ 몇 년 뒤 둘기할 미래가 보이네ㅎ
-애들 고생하는 거 같이 봐놓고 상금 고를 줄 몰랐어… 좀 이미지 와장창 나긴 한 듯
아마 누가 서 있어도 상금을 고를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 제작진 놈들도 그걸 알고 이딴 짓을 저지른 것일 터다.
괜히 프로그램 마지막 화에 드라마 좀 넣어보겠다고 우승자 정신 고문하는 게 과연 마이너스 투표를 정식 룰로 넣은 놈들답다.
‘이거 열 받는데’
확 상금 먹고 욕이나 좀 먹을까.
“박문대 참가자?”
“…예.”
나는 간신히 늦지 않고 대답했다.
귀가 먹먹해질 만큼 온갖 괴성이 방청객 석에서 난무했다.
무대 아래 서 있는 사람들도 제각기 이름과 비명을 내지르는데, 머리가 안 돌아갔다.
“마음의 결정을 하셨나요?”
“…예.”
길게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