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04
103화. 파전과 막걸리 (2)
유순태의 제안을 윤한종은 받아들였다.
거절하기에는 오늘 점심이 너무 부실했다. H그룹 총수와의 오찬은 말만 점심이었으니까.
그리고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지금까지 결재 문서와 씨름을 했으니 무척 허기가 져 있었다.
게다가 메뉴가 파전에 막걸리였다.
그들은 자리를 옮겼고, 식탁 여러 개를 붙여 놓고 파전을 여러 접시에 나누어 놓았다.
“자자, 막걸리 갑니다!”
유순태는 씩 웃으며 미리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막걸리와 양은 주전자를 꺼냈다.
그러고는 막걸리를 양은 주전자에 꼴꼴꼴 쏟아부었다.
그걸 본 윤한종이 감탄했다.
“젊은 사람이 막걸리를 먹을 줄 아는구먼!”
“예전에 짐꾼으로 일할 때 배웠습니다.”
“오! 짐꾼 출신이었나?”
“한 10년 일했죠.”
양은 대접에 막걸리를 따르고, 그걸 본 유하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거 우유예요?”
그 물음에 강소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건 막걸리라고 하는 술이야.”
“술?”
그 말에 유하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는 먹으면 안 돼! 아가가 술 마시면 바보가 된다고 했어.”
“그래, 어른이 되기 전에는 먹지 않는 게 좋아. 대신 하영이는 사과 주스를 마시자.”
“응.”
강소는 냉장고에서 사과 주스를 꺼내서 컵에 따라 유하영 앞에 놔주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윤한종은 웃으며 막걸리로 입을 축였다.
그리고 유순태에게 말했다.
“그런데 자네는 혹시 내가 누군지 아는가?”
“하하하. 잘 모릅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 합석하자고 한 건가? 내가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 말에 유순태는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제가 사람을 좋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합석을 청했을 때 매몰차게 거절당한 적도 있습니다.”
유순태는 뺨을 긁적였다.
“그러면 그냥 놔두는 거죠. 합석을 요구했을 때 허락하면 즐겁게 마시고 노는 거고요. 술 먹고 진상 부리면 달래서 보내고요.”
“낙천적이군.”
“낙천적으로 살아도 짧은 인생인데 뭐 하러 비관적으로 삽니까? 저는 그거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윤한종은 그런 유순태를 보며, 왜인지 바위가 생각났다. 비바람이 쳐도 끄떡없는 바위가 말이다.
‘그만큼 살아온 세월은 고생이었다는 이야기겠지.’
10년 동안 짐꾼으로 일했었다고 했다.
대부분이 한 번 들어가면 두 번 다시는 안 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 게이트에 짐꾼으로 10년 동안 일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슬쩍 임소영을 보며 말했다.
“다행히 제 와이프가 이런 제 성격을 이해해 주어서 말입니다.”
“참 좋은 부인이군.”
“제 복 중 가장 큰 복입니다.”
“암, 자고로 배우자 복이 가장 큰 복이라고 했지.”
어느덧 밤 9시가 되었다.
임소영은 유하영을 재워야 한다고 2층으로 올라갔고, 식탁 앞에는 강소와 유순태, 그리고 윤한종과 경호원만이 남았다.
아직 막걸리는 충분했고, 파전도 많이 남았다.
“사실 나는 격변의 시대 이전에도 잘살았었네. 지금도 부족함 없이 잘살고 있지만 말이야.”
윤한종은 왜인지 자신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비가 오는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막걸리에 취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한 회사의 회장이었네. 제법 돈을 많이 벌었어. 그래서 원하는 술과 안주는 그 어떤 것이라도 드실 수 있으셨는데…… 유독 파전과 막걸리를 좋아하셨지.”
윤한종은 미소 지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 아버지께 술을 배웠을 때도 파전과 막걸리였다네.”
“그러셨군요. 저는 소주로 배웠습니다. 저도 아버지께 배웠죠.”
유순태의 말에 강소가 말을 이었다.
“저는 선배들에게 배웠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살수 조직의 교관들에게 배운 것이었다.
배웠다고는 하지만 그것 또한 훈련의 일환이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완벽하게 살행을 완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한 화주 열 병을 마시고도 정확하게 암기를 던져 나뭇가지의 솔방울을 떨어트릴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굳이 그건 말하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술을 배웠다고? 저런…… 아버지가 서운해하셨겠군.”
윤한종의 말에 강소는 쓰게 웃었다.
“고아였습니다. 그래서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를 알려 주실 분이 없었죠.”
“그랬군. 미안하네.”
“아닙니다.”
강소는 고개를 저었다.
“저 때문에 분위기가 상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니네.”
그때 가만히 있던 경호원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저도 선배들에게 배웠습니다.”
“……?”
경호원이 씩 웃었다.
“사실 좀 놀아서…….”
“아.”
“철없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윤한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파전에 막걸리 이게 제일 좋단 말이지.”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편하게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싶어도 못 하니 말이야.”
그는 투덜대었다.
“젊은 녀석들은 바쁘고 또 내가 부담스러우니 이 노인네에게 어울려 줄 녀석이 없고, 또 한 녀석은 자신은 맥주파라나?”
“하하하.”
유순태와 강소는 웃었고, 옆의 경호원은 뭔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가끔 생각나면 들르십시오.”
“내가 자주 오면 자네에게 피해만 끼칠 것 같아서 말이지.”
그 말에 강소가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도 감당 못 하면 이 녀석이 오라고 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윤한종은 강소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윤한종은 강소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윤한종의 위치에서 대한민국에 가장 큰 전력이 될 강소를 모른 척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사실 윤한종이 강소를 모른 척하는 것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그런 건 강소가 알 바는 아니었다.
강소는 그저 자신의 정체에 대해 침묵해 주는 것 자체가 고마울 뿐이었다.
“앞으로 자주 찾아온다고 귀찮아할까 봐 걱정이네.”
“상관없습니다. 저희 양춘각은 매월 첫째 주 월요일에 정기휴일입니다.”
“그날만 오지 말라는 거지?”
“하하하하.”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파전을 전부 해치웠을 때, 밤은 깊어졌다.
“이제 돌아가 봐야겠군.”
윤한종의 말에 유순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가시는 길이 걱정입니다.”
경호원이 말했다.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윤한종은 짬뽕값을 계산했다. 내야 할 건 내야 하니까.
그러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음…….”
윤한종의 뒷모습을 보던 강소는 유순태에게 말했다.
“잠시 다녀올게.”
“어?”
“손님을 배웅해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그 말에 유순태는 고개를 끄덕였고, 강소는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유순태는 앞문을 잠그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방금 오셨던 노인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 * *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윤한종과 경호원은 그 비를 뚫고 차를 세워 둔 곳으로 향했다.
“나 때문에 기사와 다른 경호원들이 고생이야.”
“아닙니다.”
경호원은 고개를 저었다.
“협회장님께서 그렇게 즐거워하시는 표정은 처음 봅니다.”
“그런가?”
“네. 그리고 협회장님을 위해 일하는 저희들입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네.”
윤한종은 미소 지었다.
오늘 양춘각에 들른 것은 강소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계획과 달리, 정말 먹고 싶었던 파전과 막걸리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참 좋은 가게야. 직원들 몇이 단골이라 하던데 그 이유가 있었군.’
그때였다.
털썩.
그들 앞으로 누군가 달려왔고, 윤한종 앞에 넙죽 엎드렸다.
“살려.”
“주세요!”
“자수.”
“합니다.”
묘하게 말을 주고받는 남매의 모습에서 윤한종은 그들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청홍 남매군!”
A급 각성자이자 쌍둥이인 그들의 합격술에 S급도 버거워한다는 실력자 블랙맨이었다.
그리고 저번에 윤한종의 암살을 시도했다가 도주한 전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몰골이 엉망이었다.
흙탕물에 굴렀는지 옷은 온통 흙탕물투성이였다.
겉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윤한종은 그들의 오러가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경호원의 물음에 그들은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무슨 짓.”
“안 합니다.”
“원래 하려고.”
“했습니다.”
“미행해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안 합니다.”
“무섭습니다.”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자가.”
“말했습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가서 용서를 빌라고.”
“죄에 대해서.”
“처벌을 받으라고.”
그들의 말에서 윤한종은 그들이 자신을 미행해서 암살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누군가에게 잡혀서 호되게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런! 방심했다가 큰일 날 뻔했어. 그런데 대체 누가……?’
그때 윤한종은 골목길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노란색 우산을 쓰고 있었다.
분홍색 토끼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 우산이 살짝 들리며 그 얼굴이 보였다.
윤한종은 중얼거렸다.
“이 늙은이가 걱정되어서 배웅까지 해 주다니, 참 고마운 분이군.”
“네?”
경호원의 반문에 윤한종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네.”
윤한종은 사람을 불러 청홍 남매를 체포하게 하였고, 경호원은 무전기로 경호 인력을 불렀다.
그리고 윤한종은 저 멀리서 자신을 보고 있는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 순간, 그 노란 우산을 쓴 자는 그곳에서 사라졌다.
윤한종은 미소 지었다.
‘생각해 보니, 저곳에서는 마음 놓고 마실 수 있겠군.’
* * *
다음 날이었다.
[드디어 여러분께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오전에 남쪽부터 서서히 개기 시작하여 오늘 점심쯤에는 장마가 완전히 끝나겠습니다. 그래서 수생마수 주의보도 오늘이면 해제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지역별 날씨 보시겠습니다.]강소는 일기예보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참 피곤하게 사시는 분이야.’
어제 강소는 윤한종을 노리는 암살자를 잡아서 족친 후 윤한종 앞으로 보냈다.
사실 강소는 윤한종을 미행하고 있는 자들이 있음을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청홍 남매라고 했나?’
그들도 운이 좋은 것이, 만약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와중에 공격을 했으면 그들을 살려 두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술자리를 파장한 후 윤한종이 귀가하는 도중에 공격하려 했기에 살려 준 것이었다.
그는 윤한종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맙습니다.”
윤한종이 양춘각에 온 진짜 이유는 바로 그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신 동생의 말대로야. 참 좋은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위에 있어야 세상이 편했다.
“오늘 유치원에 가서 윤주랑 정훈이랑 놀 거야. 그리고 그네도 탈 거고. 음…… 시소도 탈 거야!”
2층에서 유하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강소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유하영은 드디어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있었다.
딸랑.
그때 문이 열리고 김지은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오랜만이에요! 사장님.”
유순태가 그녀를 맞아 주었다. 그런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김지은의 살이 쏙 빠져 있었다.
“드디어 오빠를 볼 수 있다니! 제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그렇습니까?”
“네!”
김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를 볼 수 없는 매일이 정말 힘들었어요!”
그 말에 강소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유순태는 또 시작이군 하는 표정이었다.
단지 강소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식탁은 제가 다 닦아 놓았습니다. 그릇을 정리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오빠!”
여전히 발랄한 김지은을 보며 강소는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서히 구름이 걷히며 햇빛이 나오고 있었다.
장마가 끝났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10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