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3
12화. 고립인 교육 (3)
‘어?’
박수은은 커피를 보았다.
‘내가 원래 카페인이 잘 받는 체질이었나?’
미칠 듯이 졸렸던 것이 거짓말 인 듯, 졸음이 싹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건 강소가 손을 쓴 덕이었다.
커피를 타면서 회복에 좋은 기운을 커피에 담은 것.
아주 은밀하게 기운을 사용했기에, 박수은은 그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강소의 기운은 각성자들이 사용하는 오러라는 것과는 성질이 달라 더 알아채기 힘들었다.
커피를 다 마신 박수은이 말했다.
“오늘 아침 식사는 함께 급식이라는 것을 체험해 보겠습니다.”
지하 1층에 있는 구내 식당으로 가면서 박수은은 강소에게 급식에 대해 설명하였다.
“각자 원하는 만큼 음식을 자신의 식판에 던 다음, 빈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뒤처리를 하면 됩니다.”
식당에 도착한 강소는 식당 안의 모습에 살짝 멍해졌다.
백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는 모습과 차례로 줄을 서서 음식을 자신의 식판에 담는 모습 등등은 예전에 봤던 어떤 모습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헙…… 저 산을 이루고 있는 많은 음식들과 웃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전쟁통의 배식소로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겠군.’
박수은이 식단표를 보며 혀를 찼다.
“오늘 아침 메뉴 좀 신경 써 달라고 했는데 된장국에 소시지 볶음하고 시금치나물이네. 에휴, 어서 우리도 줄을 섭시다.”
강소는 줄을 서서 박수은이 하는 대로 식판과 수저와 젓가락을 들었고, 음식을 자신의 식판에 담았다.
식탁에 앉은 박수은은 강소의 식판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보통은 급식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게 되면, 고립인이든 아니든 음식을 수북하게 담아 오는데…… 원래 조금 드십니까?”
강소의 식판에는 소량의 음식만이 담겨 있었다.
“먹기는 많이 먹습니다. 그런데 식당 입구에 모자라면 더 가져다 먹어도 되니 적당량의 음식만 가져가라고 적혀 있더군요. 그래서 굳이 처음부터 많은 음식을 담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남기면 벌 받습니다.”
박수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어떠십니까? 이 급식이라는 것은?”
“잘은 모르겠으나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이가 식사하기에는 말입니다.”
“그걸 눈치채셨습니까? 사실, 저는 이 급식이라는 것만큼 지금의 우리 사회를 잘 보여 주는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통제와 질서 속, 자유와 책임이라는 겁니까?”
“……!”
박수은은 깜짝 놀랐다.
교육 중에 가끔 예리한 말을 하곤 해서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정곡을 찌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무서워졌다.
그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 어째서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강소는 역시 미소 지었다.
“이건 무엇입니까?”
그는 식판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소시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소시지라고 합니다. 사실 소시지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것처럼 생긴 건 줄줄이 소시지라고 하지요.”
그 모습은 강소가 예전에 어느 고산지대에 갔을 때 본 염장 고기와 비슷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하지만, 맛은 훨씬 좋았다.
이빨로 소시지를 씹는 순간 얇은 막이 톡 터지면서 풍부한 돼지고기의 맛이 혀를 감쌌다.
거기에 짜지도 않고 오히려 단맛이 느껴졌다.
곁들여진 볶은 야채들은 소시지의 맛이 너무 두드러지지 않게 잡아 주는 역할을 했다.
“오! 이거 맛있습니다!”
“많은 버전으로 응용이 가능한 국민 반찬 중 하나죠.”
“이건 더 가져다 먹어야겠습니다.”
강소는 소시지만 추가로 세 번이나 더 가져다 먹었다.
아침을 먹은 후, 두 번째 날의 오전 수업이 시작되었다.
“문서상으로는 각성자라서 오후까지 교육을 받으셔야 하는데, F급이라서 실전 훈련은 제외하고 이론 교육만 받으시면 됩니다.”
“그럼 교육은 언제 끝나는 겁니까?”
“오늘 저녁 먹기 전에 끝납니다. 보증인에게 연락해서 이 점에 대해 미리 알려 드렸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강소는 각성자 이론 교육을 통해 상당히 많은 정보를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유순태에게 설명을 들어 대충 짐작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자신이 저지른 일의 여파가 컸다.
강소는 의문이 생겼다.
각성자 중에서도 마수를 사냥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들을 헌터라 부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각성자이기는 하지만 헌터가 아닌데 마수를 사냥한 것이었다.
“만약…… 헌터가 아닌 각성자가 마수를 죽이면 불이익이 있습니까?”
“불이익이요?”
강소의 질문에 박수은은 씨익 웃었다.
“애초에 마수를 죽일 수 있는 존재가 각성자인데, 불이익이 있을 리가 없지요. 유일한 불이익이라면…… 죽는 겁니다.”
“그런데 왜 자격 운운하는 것입니까?”
“그야…… 마수를 죽일 수 있는 실력 자체가 자격이기 때문입니다. 각성자라고 아무나 마수를 죽일 수 있는 거 아닙니다. 실력이 되어야 죽이죠. 실력도 안 되는 자가 괜히 각성자랍시고 마수 앞에서 설쳤다가는 인생 종 칩니다. 그리고 그걸 잘 알기에 각성자들은 헌터 훈련소에 입소하는 거고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강소가 걱정할 건 없었다.
“어차피 뒤에 배울 내용이니 지금 설명하겠습니다.”
박수은은 설명을 이어 갔다.
“헌터가 되기를 원하는 각성자는, 각성자 협회와 정부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헌터 훈련소에 입소하여 3년의 훈련을 마친 후 졸업장을 손에 넣어야만 비로소 마수를 죽일 수 있는 실력, 즉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후후후.”
갑자기 자조적으로 웃는 박수은의 모습에 강소는 흠칫했다.
“말이 3년이지 수업 과정이 얼마나 지독한지 경험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열 명 중 세 명은 자진 퇴소해 버릴 정도로 말입니다. 거기에다가 각 연차별 진급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유급당합니다.”
“그, 그럼…… 유급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뭐, 될 때까지 훈련소에 남아 있든지 아니면 퇴소하든지 해야지요.”
하지만 박수은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경험했던 그 어떤 훈련도, 강소가 납치당해 살수 조직에서 받았던 훈련과 비교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제 생각에 그게 각성자들을 괴롭히려고 그러는 건 아닌 듯합니다. 혹시 각성자들의 수가 적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고자 그런 제도를 만든 것입니까?”
“……!”
박수은은 흠칫했다.
강소가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 뭐야? 무섭게…….’
그런 박수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소는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균형이 잡혀 있는 것 같군.’
그러나 그건 아주 약간이었다.
여전히 강소의 눈에는 불안하고 연약한 세상이었다.
사실, 박수은이 설명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헌터 훈련소를 졸업하지 않아도 헌터 자격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 말이다.
그건 바로 특별 헌터 자격증이었다.
S급 이상의 능력이 있거나 그에 준하는 활약을 했을 경우 각성자 협회에서는 특별 헌터 자격증을 부여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특별 헌터 자격증을 지닌 헌터가 딱 두 명 있었다.
어느덧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각성자 협회에 있는 수련실을 견학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각성자 수련실은 제법 깊은 지하에 있었기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라는 것은 참 신묘한 물건이군. 내가 직접 허공답보라든지 어검비행을 하지 않아도 위아래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니! 기계와 과학이 발달한 세계라는 건가?’
잠시 강소가 생각에 빠진 사이, 띵동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지하 6층에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박수은이 강소에게 말했다.
“이곳이 수련실입니다. 이곳 지하 6층 수련장은 각성자 자격증만 있다면 누구나 들어와 수련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만, 이 아래 7층은 직원 전용입니다.”
강소는 수련실이라는 곳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처음 보는 여러 가지 기구들을 이용하여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규모는 상당히 컸다.
“이곳에서 수련을 하는 사람은 소속이 없는 각성자들이 대부분입니다. 헌터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각성자들, 그러니까 헌터들은 보통 길드 내의 시설에서 훈련을 합니다.”
강소는 박수은의 설명을 들으며 시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강소가 보는 건 기구가 아닌, 사람이었다.
‘오? 저자는 더 높은 경지까지 바라볼 수 있겠군. 그 옆의 남자는 글렀지만 말이지. 쯧쯧, 저 여자는 왜 저런 식으로 훈련할까? 그런 식으로 훈련하면 어느 세월에 강해지겠어.’
강소 역시 F급이었지만 각성자 자격증이 있었다.
그 말은 즉, 이곳에 출입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뜻.
“혹시, 이곳에 방문하여 훈련할 계획이시라면 그 절차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강소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곳에서 훈련할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습니까?”
“별것 아닙니다. 친우의 식당을 돕기로 하였습니다.”
강소의 대답에 박수은이 미소 지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솔직히 F급 자격증을 가지고 헌터 자격증을 얻어도 마수를 상대하다 다칠 뿐이죠. 괜히 시간만 버리는 일입니다.”
* * *
그렇게 모든 교육을 마치고 오후 3시쯤 은탑의 로비로 나온 강소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강소야, 여기!”
유순태였다.
강소는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마중 나와 줘서 고맙다.”
“고맙기는…… 보증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그나저나 신분증은?”
“여기 있다.”
강소는 플라스틱으로 된 손바닥만 한 네모 납작한 신분증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강소의 사진과 함께 이름과 인적사항 그리고 맨 아래에 각성 등급 F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걸 본 유순태가 말했다.
“F급이네?”
“내공을 제때 통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반인 등급을 받지 못했다.”
유순태가 말했다.
“나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네 행동은 일반인이라기에는 좀 이상한 데가 있거든. 누가 양파망을 한 번에 여섯 개씩 들고 다니냐!”
“……그게 이상한 건가?”
“보통 그 정도면 무거워서 휘청거리거나 아예 들지도 못한다고! 그러니까 앞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F급 각성자라고 말해. 그러면 대부분 이해하고 넘어갈 테니까.”
“알겠다.”
“아무튼, 축하한다.”
“고맙다.”
그렇게, 강소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 * *
박수은은 업무보고를 하기 위해 지원 2과장의 책상 앞에 섰다.
“방금 고립인 교육을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수고했다. 특이 사항은?”
“확실히…… 눈치가 빨랐습니다.”
“어제도 그렇게 말했었지?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뭔가?”
박수은은 오늘 식당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쯧쯧, 아쉽군. 하다못해 C급 각성자만 되었어도 제법 도움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고립인 교육을 지원 2과에서 맡는 진짜 이유는, 인재를 협회에서 먼저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친구, 정말 F급 맞는 거야? 아까 식당에서 집행 1과 직원이, 그 친구가 젓가락으로 소시지를 찌르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기운을 끌어내 방어할 뻔했다고 대체 어떤 친구냐고 물어보던데.”
“네?”
과장이 말을 이었다.
“너도 알잖아? 집행 2과와 달리 1과 애들은 거물들만 상대하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반응도 안 하는 거. 그런데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나?”
“하지만 과장님, 그자는 이미 각성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재각성의 기회가 열려 있다지만 F등급은 재각성해 봤자 아닙니까.”
“알지. 아니까 내가 아쉬워하는 거 아니야? 그나저나 그 친구는 앞으로 뭐 하고 지낸대?”
“친구의 식당을 도와주기로 했다더군요.”
무림에서 온 배달부 1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