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95
194화. 송구영신 (2)
강소는 유순태를 보았다.
그가 이 세상에 와서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유하영을 구한 일과, 자신을 보증하겠다는 유순태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로 인해 자신 역시 많은 인연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유순태의 조언으로 꼬롱이를 도와주고, 그로 인해 인연이 생겼다.
‘아, 전에 마약범 소탕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뽀뽀를 키우게 됐었지.’
생각하다 보니, 제법 많은 일이 있었다.
‘구상옥이라는 자도 있었지.’
감히 유순태를 이용하려던 그자는 나름대로 잘 처리했고, 그가 강제로 이끌던 패거리들은 지금 해체되어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와 도순이로부터 시작된 인연은 이혁과 백현미와의 인연으로까지 이어졌다.
지금 도순이는 겨울잠을 자고 있었지만, 이제 봄이 되면 다시 깨어날 터.
유순태와 유하영의 생일파티 역시 즐거운 기억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일은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다.
사실 10월 5일은 그가 정한 생일이었지 진짜 생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 주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동했고, 이미 알고 있어 무덤덤할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그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웠지만, 오히려 좋은 기억이다.
그때의 기억에 민망해진 강소는 TV로 시선을 돌렸다.
진행자의 테이블에 놓인 붉은 꽃을 보자 카네이션이 떠올랐다.
유하영이 새침한 표정으로 준 카네이션 꽃잎은 강소의 인벤토리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하영이 친구인 송정훈, 그 아이의 이모에게 카네이션을 배달해 줬었구나.’
어린 나이에 벌써 체념을 배운 그 표정이 마음에 안 들어서 충동적으로 한 일이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그때 강소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형님! 올해 마무리 잘하시고, 복된 신년이 되셨으면 합니다. – 이신]자신이 동생 삼은 이신의 메시지였다.
아스모데라는 어둠의 족속이 등장하고, 명산 아트홀에서의 사건을 막기 위해 이신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인연이 생겼다.
그 전에 양춘각에 짜장면을 먹으러 오면서 이미 생겼을 수도 있고.
사실 강소가 알 수는 없었겠지만, 그가 만든 명정심법이 각성자 협회장을 통해서 이신에게 넘겨진 것이 그 인연의 진정한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하영의 데뷔 계기가 되는 발레 공연이 있었다.
그 공연 때문에 발레 교습소에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서 스카웃되어 모델 데뷔를 했고 그로 인해 영화를 찍었으며 앨범까지 내게 되었지.
‘그나저나 조셉이라는 자는 잘 있나 모르겠군.’
이신에게 듣기로, 요즘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낸다고 했다.
곧이어 강소의 핸드폰에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신에게 온 두 번째 메시지였다.
[그리고, 조셉 화이트 헌터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즐거운 새해가 되라는 내용입니다.]격변의 시대가 오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 각성자 협회나 연구소 등에서 외국과 인터넷망을 통한 교류는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마수들은 인공위성이 있는 곳까지는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소는 TV 속 행사에 참여해 있는 내빈들을 보았다.
각성자 협회의 협회장 윤한종과 헌터총회의 총장, 각 헌터길드의 길드장 및 대통령과 각 장관들 그 밖의 중요 내빈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김지은도 있었다.
비록 진한 화장을 해서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흑장미 헌터 봐요.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임소영의 말에 유순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아버지를 닮은 것 같지?”
“네. 저런 딸을 둔 길드장은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게 말이야. 아, 물론 우리에게는 하영이가 있으니까 부럽다는 건 아니야.”
“호호호. 알아요.”
……진짜로 알아보지 못했다.
4월부터 시작된 김지은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언제나 상큼발랄한 미소로 양춘각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양춘각의 가족들을 위해 알게 모르게 애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 덕분에 적룡 길드의 프라이빗 리조트로 휴가를 다녀올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강소는 김지은에게 고마웠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
문밖에 서 있는 빨간색 경차.
올해 운전면허도 따고, 또 경품으로 경차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유하영은 편하게 스케줄을 다닐 수 있었고, 강소도 그때 그 장애물 경기에 도전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TV에서 비추어지는 다른 내빈들로 시선을 옮겼다.
각성자 협회의 윤한종과 그 옆에 도깨비 부족의 족장 휘.
강소는 양춘각에 방문했었던 윤한종을 기억하고 있었다.
함께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며 즐거워하던 윤한종은 강소가 보기에도 훌륭한 리더였다.
그리고 족장 휘 역시 그러했다.
‘족장이 가져왔던 홍풍주라는 술이 참 맛있었지.’
다시 온다고 했으니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곧 다시 방문할 것 같았다.
그사이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하태복]유하영의 열렬한 팬인 하태복은 강소 덕분에 절맥을 고치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최애의 경호를 하면서 말이다.
강소는 자신 때문에 하태복이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살 팔자였으니, 살아난 거겠지.’
만약 강소의 눈에 띄지 않았다거나, 강소의 말을 무시했다면 살지 못했을 테니까.
그때 TV에서 사회자가 멘트를 했다.
[그럼 이제 내빈들께서 나오셔서 제야의 종을 타종하겠습니다.]사회자의 말에 각성자 협회장 윤한종과 대통령을 비롯한 일곱 명의 내빈들이 나왔다.
그들은 보신각 옆에서 목봉의 줄을 잡았다.
[여러분, 올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0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10! 9……!]유순태와 임소영 그리고 강소도 함께 카운트다운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1까지 셌을 때!
[대앵-!]보신각종이 울렸다.
[대앵-!]새해를 맞이하는 종소리를 들으며 유순태가 강소를 불렀다.
“강소야.”
“왜?”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그 말에 강소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고맙다.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그리고 안주인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고마워요. 강소 삼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침내 서른세 번의 종이 울리고.
화려한 불꽃이 터졌다.
그렇게 해가 바뀌었다.
[다음 순서는, 새해맞이를 축하하는 유하영 어린이와 노민아 어린이의 축하 공연입니다. 이번 공연은 VCR로 준비했습니다.]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유하영과 노민아의 공연.
하지만 밤 10시 이후에는 미성년자의 방송 녹화가 금지되어 있었기에, 그 전에 미리 녹화해 놓은 VCR이 송출되었다.
지금까지 유순태와 임소영, 그리고 강소가 TV를 열심히 보고 있던 이유가 바로 이 공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하영이 덕분에 참 많은 경험을 했구나.’
밀키웨이 걸즈라는 걸그룹의 뮤직비디오에 출연도 했고, 기차 여행도 해 봤다.
동요 대회 방청도 해 보고 박물관에도 다녀왔다.
문득 강소는 박물관에서 보았던 마패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보여 준 집안의 가보가 어째서 이곳의 마패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안달하지는 않았다.
‘언젠간 그 이유를 알게 되겠지.’
곧 VCR이 전체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눈밭이 배경이었지만, 사실 진짜 눈밭이 아니라 마정석을 활용한 AR이었다.
[우리가 들려드릴 노래는 ‘우리의 꿈’ 이에요!] [그럼 노래 들려드릴게요!]유하영과 노민아의 멘트가 이어졌고, 곧 반주가 나오며 노래가 이어졌다.
어깨가 무거워 보여요.
얼굴에도 미소가 보이지 않아요.
우리는 당신이 힘들다는 건 알지만.
얼마나 힘든지는 몰라요.
우리는 당신이 아니기에, 그게 당연하죠.
하지만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꿈으로 당신을 초대할게요.
저 검은 구름 뒤에 찬란한 해님이 있는
밤안개 뒤에 반짝이는 달님과 별님이 있는
그런 우리의 꿈으로 당신을 초대할게요.
내일이라는 이름의 꿈으로 당신을 초대할게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요.
보이나요?
당신을 비추고 있는 해님과 달님과 별님이.
내일이라는 우리의 꿈은 당신을 위한 것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눈물을 닦고 하늘을 봐요.
‘좋네.’
강소는 눈을 감고 그 가사를 음미했다.
‘황태준 작곡가가 작곡 및 작사를 했다고 했지.’
참 좋은 노래였다.
이번 무지개 꿈이라는 앨범의 타이틀 곡이기도 했는데,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소가 알려 준 음공 때문인지, 아니면 노래에 담긴 유하영의 진심 때문인지 더욱 깊이 와닿았다.
유순태와 임소영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아, 누구 딸인지 노래 진짜 잘 부른다.”
휴지를 빼서 눈물을 닦으며 유순태가 말했고, 그 말에 임소영 역시 휴지로 눈가를 콕콕 찍었다.
“우리 딸이잖아요.”
“하하하. 그렇지.”
임소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올라가 볼게요.”
“그래.”
강소는 얼른 임소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네.”
임소영은 그의 말에 대답하고는, 유순태에게 추가로 당부했다.
“새해니까 술 조금만 마셔요.”
“알았어.”
그녀가 2층으로 올라가자 유순태는 강소에게 맥주 캔을 내밀었다.
“한잔하자.”
“그래.”
1월 1일은 양춘각이 쉬는 날이었기에 그들은 부담 없이 한잔할 수 있었다.
유하영의 노래가 끝나고 다른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생방송이라는데 상당히 피곤할 것 같았다.
하지만 프로정신이라는 것 때문인지, 그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1월 1일인데, 뭐 할 거야?”
“글쎄다.”
강소는 안주로 내놓은 과자를 먹으며 대답했다.
“우선은 인벤토리를 좀 정리해 볼까 한다.”
“그렇구나.”
“너는 뭘 할 거냐?”
“나야, 모처럼의 휴일이니까 집에서 푹 쉴 예정이다. 그리고 하영이와 놀아 주고.”
“좋은 아버지구나.”
“좋기는, 매일 바쁜 아빠지.”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들어가서 잘 때가 되지 않았어?”
“아, 더 늦게 들어가면 혼나겠지.”
“응.”
강소의 단답에 유순태를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치울 테니까 어서 올라가서 자라.”
“어? 네가 치운다고?”
유순태의 물음에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고맙지만.”
“잘 자라.”
강소는 강제로 유순태의 등을 밀어 위로 올려 보내곤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마신 맥주 캔과 소주병을 치우고, 널브러진 과자 봉지도 치웠다.
그리고 술잔과 접시를 깨끗이 설거지해서 물기까지 싹 말린 후 그릇 보관대에 놓았다.
강소는 양춘각의 홀 안 탁자 중 한 곳으로 다가갔다.
드륵.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났다.
강소는 의자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두운 하늘.
강소는 지금까지 그가 마주했고, 또 처리했던 어둠의 족속들을 떠올렸다.
자기 배에 칼을 꽂고 도망간 자도 있었고, 늑대처럼 생긴 자도 있었으며, 물고기처럼 생긴 자도 있었다.
그리고 이상한 꼬리를 휘두르던 자도 있었지만 모두 강소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이상한 자들이 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윗선이 있다.
‘언젠가 그들도 모습을 드러내겠지.’
뭐가 어찌 되었든, 강소는 어둠의 족속이라 불리는 자들이 강소와 인연을 맺은 자들에게 해를 입히도록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음?’
그때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일출.
올해의 첫 일출이었다.
강소는 떠오르는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전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하여 싫었던 일출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름답구나.’
강소는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일출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태양은 완전히 떠올랐다.
‘운기조식하러 가야겠군.’
자리에서 일어난 강소는 자신의 방으로 향하다 옆에 놓인 달력을 들었다.
“아, 이거 새로 걸라고 했었지.”
강소는 지난 달력을 떼고 새로운 달력을 걸었다.
그는 씩 웃었다.
새해의 시작이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19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