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226
225화. 기초군사훈련 (4)
강소는 산길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현재 지옥의 행군이라 부르는 활동 중이었고, 지금은 잠시 휴식 시간이었다.
“헉, 허억…….”
근처에 앉은 훈련병들이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다급하게 수통을 열었다.
“물을 마실 때 한 번에 많이 마시지 않습니다.”
조교 김충민의 말이 이어졌다.
“한 모금으로 입을 헹구고, 다시 한 모금을 천천히 목으로 넘기도록 합니다.”
훈련병들은 김충민의 조언대로 물을 마셨다.
강소는 이미 경험상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형, 형은…… 안…… 힘드세요?”
강소의 나이는 서른여섯,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그보다 나이가 한참 적었다.
강소를 제외한 열세 명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자가 스물여덟이었으니까.
그래서 첫날 통성명 때 모두의 형이 되었다.
“저는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진짜 F급 맞아요? 어떻게 D급인 저보다 더 팔팔해요?”
그 말에 강소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제로급이라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때 옆에 있던 훈련병이 머뭇거리더니, 결국 입을 열어 말했다.
“저기요. 형, 그냥 말 놔도 괜찮아요.”
“하지만 서로 간에 예의는 갖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 다른 훈련병이 말했다.
“형이 우리를 생각해 주는 건 고마운데요, 형이 존댓말을 하니까 우리가 불편해서 그래요.”
“맞아요.”
“말 놔요. 그냥.”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알겠다. 그럼 말 놓도록 하지.”
강소는 5일 만에 그들에게 말을 놓게 되었다.
그때 김충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휴식 종료 1분 전! 다시 행군할 준비를 합니다!”
“네!”
크게 대답은 했다.
대답이 크지 않으면 완전군장을 한 채 그 자리에서 얼차려를 받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대답과 마음은 별개였다.
그들은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행군을 시작한 지 12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 말은, 지금 한밤중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강소와 훈련병 일행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행군하고 있었다.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중간중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되었지만, 이젠 그것마저 불가능할 정도로 지쳐 가고 있었다.
솔직히 강소는 그들이 힘들지 않게 기운을 불어넣어 줄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기초군사훈련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재난 상황에서의 생존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서, 우선되어야 할 것은 바로 자신의 한계였다.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직시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강소의 경험상, 그랬다.
“으!”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훈련병들이 이를 악물고 억지로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지옥의 행군은 각 등급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졌다.
G등급, 즉 일반인은 3박 4일 동안 무박으로 행군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각성자 등급인 F등급부터는 그야말로 실전을 방불케 했다.
“상황 옐로우! 상황 옐로우!”
김충민의 말에 행군을 하던 이들은 재빨리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훈련병들은 지금부터 포복자세로 전진한다. 전진!”
“전진!”
이미 한 번 해 봤던 일이기에 훈련병들은 당황하지 않고 맨땅을 포복 자세로 기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행군을 시작한 지 세 시간이 지났을 때 갑자기 포복 자세로 기어서 이동하라는 명령에 얼마나 당황했던지!
당연히 훈련병들은 얼 탔고, 그 결과 삼십 분 동안 얼차려를 받았다.
그제야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깨달았다.
지난 5일 동안 많이 배웠고 이제 다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아니었다.
한편, 김충민은 능숙하게 포복 자세로 바닥을 기는 강소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정말 잘해! 진짜 잘해! 어디서 군인이라도 하다가 온 것 같은데?’
게다가 다른 이들을 배려해 그들의 속도에 맞춰 주고 있다는 게 김충민의 눈에 보였다.
‘아니면 전생에 바퀴벌레였나?’
그게 아니라면 강소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
.
.
어느덧, 날이 밝았다.
“정지!”
“정지!”
“지금부터 아침 식사를 합니다.”
어제 가지고 온 식량은 어제 다 먹었기에, 훈련병들은 식량이 보급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부터 식사는 재료만 제공합니다. 시간은 한 시간을 줍니다.”
그 말에 훈련병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서로를 쳐다봤다.
갑작스럽게 전투식량 대신 요리를 해서 먹으라는 것에 당황한 것이다.
그때 한 훈련병이 용기를 내어 질문했다.
“질문 있습니다.”
“뭡니까?”
“저희가 왜 요리까지 직접 해야 합니까?”
“훈련병은 기초군사훈련의 목적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까?”
“아, 알고 있습니다.”
“마수에게 쫓기는 와중에, 전투식량을 먹을 기회는 별로 없습니다. 구할 수 있는 건 재료들뿐입니다. 재료라도 구할 수 있다면 다행인 겁니다. 이해했으면 요리를 시작합니다.”
“네!”
물과 생쌀, 그리고 이런저런 재료와 조미료, 요리기구들이 들어 있는 상자가 그들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라면 정도를 끓여 본 게 다였고, 좀 나은 이들이라 해도 냄비에 밥을 지어 본 적은 없었다.
이 시대에는 압력밥솥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있었으니까.
“어서 움직이는 게 좋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까.”
그때 먼저 말을 꺼낸 건 강소였다.
“하지만 냄비로 밥을 지어 본 적이 없어서…….”
그 말에 강소가 말했다.
“내가 할 줄 안다.”
“정말요?”
“그래.”
강소가 있던 세상에는 압력밥솥 같은 것이 없었기에 밥은 무조건 솥에 불을 때서 해야 했다.
그러니 당연히 냄비에 밥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우선 땔감을 모아 오도록 하자.”
고체연료라든지 하는 것이 없었으니, 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나무가 필요했다.
강소는 훈련병들에게 업무 분담을 시켰고, 곧 훈련병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 그런데 불은 어떻게 피우죠?”
“저희 중에 발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
“라이터는……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조교가 압수했지.”
강소가 이 세계에 와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라이터였다.
불을 피우는데 무척 편리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뭐 하는가? 당장 가지고 있는 라이터가 없는데.
그제야 그들은 조교가 라이터를 압수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결국 생으로 먹으라는 뜻이네요.”
“불이 없으면 요리를 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강소가 있었다.
“할 수 없지.”
강소는 나무토막과 막대를 들었다.
“마찰로 불을 피울 수밖에.”
“네?”
“마찰열로 불을 피운다고요?”
“전에 책에서 보니, 원시시대 때 이런 방법으로 불을 피웠다고 하더군.”
사실 마음 같아서는 삼매진화로 불을 붙이고 싶었지만, 자신은 F급이었다.
표면적으로 각성한 능력은 ‘질주’.
자신은 보급된 식재료를 생으로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았지만, 다른 훈련병들은 아니었다.
그러니, 원시적인 방법이라도 사용해서 불을 피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강소는 자리를 잡고 나무토막을 막대로 비비기 시작했다.
슥슥슥.
그리고,
“어? 여, 연기가…….”
“되네?”
“그, 그러니까. 저게 되네?”
“불붙었다!”
“와! 역시 강소 형!”
강소는 낙엽으로 불길을 키웠고, 모닥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얼른 미리 씻어 놓은 쌀을 불 위에 올렸고, 또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시간관계상 반찬까지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밥 다 됐다.”
그 말에 훈련병들은 환호했다.
아직 3월 초라, 아침 공기가 무척 서늘했다.
그렇기에 따뜻한 밥에 뜨끈한 무국을 먹으니 속이 풀어지면서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정신없이 식사하고 있을 때, 김충민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불을 피운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분명 라이터는 다 수거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불을 피웠습니까?”
그 물음에 훈련병들 중 하나가 대답했다.
“301번 훈련병이 마찰열로 피웠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했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보여 줄 수 있습니까?”
김충민은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피우는 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렇게 단시간에는 불가능했으니까.
그러니, 틀림없이 라이터를 숨겨 놨을 거라 생각했다.
훈련병들 중에 발화 능력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 말에 강소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밥도 다 먹었으니까.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무토막을 나무막대로 비벼 마찰시켰다.
화르륵-!
3분도 안 되어 불이 붙은 그 모습에 김충민은 말을 잃었다.
‘뭐야? 족장 출신이야?’
사실 라이터가 없어도 불을 피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지만, 훈련병들이 고생을 해 봐야 기억에 남을 거라는 생각에 일부러 처음부터 방법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강소는 그런 김충민이 아닌 다른 어딘가를 보았다.
* * *
오늘도 양춘각은 짜장 볶는 냄새로 가득했다.
“존! 배달이에요!”
김지은의 말에 멜콤, 아니 존 밀러는 철가방에 음식을 넣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존은 양춘각을 나섰고, 그런 존을 보며 문득 든 생각에 김지은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존 밀러라는 이름이 낯이 익은데?’
김지은은 그 이름을 어디서 봤는지 생각했고, 곧 인터넷에서 봤던 기사를 떠올렸다.
하지만 김지은은 곧 피식 웃었다.
‘설마, 존 밀러가 그 존 밀러겠어. 세상에 동명이인이 얼마나 많은데!’
그때 한 손님이 단무지를 더 달라고 외쳤다.
“네! 갑니다!”
김지은이 사실을 사실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존은 배달을 마치고 양춘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의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순간이동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에 무리 없이 음식을 배달할 수 있었다.
강소 역시 존의 능력을 알기에 배달 단기 알바를 부탁한 것이기도 했다.
‘강소 님은 훈련을 잘 하고 계시려나?’
솔직히 존은 강소가 군에서 훈련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강소는 그런 존의 불만에 웃으며 말했다.
“평범하게 살고 싶기에, 가는 것이다. 평범한 이들이 겪는 것들을 나 역시 겪어야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 어떠냐? 너도 기초군사훈련에 참가 하는 것이?”
“네? 저는 현재 국적이 미국이라서…….”
“그래?”
다행히 대화는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군대는 아니지.’
보나마나 개고생을 해야 하는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러 가면서 좋아하는 사람은 강소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 배달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힘이 드는군.’
생각보다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이 배달이라는 것을 일 년 동안 해 왔다는 것에 왠지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 * *
대한민국의 국토는 70퍼센트 이상이 산이었기에, 행군은 그야말로 등산에 가까웠다.
그것도 3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빠른 속도로 말이다.
다행히, 총기류는 들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사격 각성자가 아닌 이상 총기를 들어 봤자, 마수에게 먹히지도 않으니까.
“아, 군장 인벤토리에 넣고 싶다.”
“내 말이…….”
“근데, 우리 어차피 자지도 못하는데 왜 군장에 모포와 텐트를 챙긴 거야?”
“내가 어떻게 아냐?”
솔직히 말하기도 힘들었지만, 그들이 그렇게 속삭이듯 대화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너무 졸렸기 때문이었다.
자지도 못하고 계속 걷고 있으니, 걸으면서 자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간간이 몸을 굴리고 있으니, 일반인이었다면 벌써 나가떨어졌어도 몇 번은 나가떨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각성자였다.
D, E, F급이라 해도, 각성자들의 신체는 일반인과 달랐다.
일반인과 비슷하다는 F급만 되어도 특전사에 비견될 만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10분간 휴식!”
그때 김충민의 목소리가 들렸고, 훈련병들은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볼일 볼 사람은 자리를 이탈해도 좋습니다.”
그 말에 강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다녀올게.”
사사삭-!
강소는 발을 굴러 순식간에 숲 안으로 들어갔다.
“헉!”
숲 안에 있던 누군가는 자신 앞에 나타난 강소의 모습에 놀랐고,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결국 입을 열었다.
“저, 형님. 그러니까 말입니다.”
강소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이신.”
무림에서 온 배달부 22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