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29
28화.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 (2)
강소는 고개를 저었다.
꼬롱이가 강소의 방에 들락거리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고, 또 꼬롱이 혼자 냉장고 문을 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 참! 어떻게 의심할 게 없어서 꼬롱이를 의심하냐?’
만약 꼬롱이가 어찌어찌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해도 자신이 그 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을 것이었다.
거기에 롤 케이크의 포장지에 꼬롱이의 기운이 남아 있었을 터!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어 강소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날 오후.
강소는 세 시가 되자마자 부리나케 이혁 베이커리로 향했다.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를 사기 위해서였다.
“어서 오세…… 아! 양춘각 총각!”
이혁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 아직 남아 있습니까?”
“아, 그거라면 아직 하나 남아 있지.”
“다행입니다!”
강소는 얼른 그 롤 케이크를 집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계산하던 이혁이 머뭇거리더니 그에게 물었다.
“총각, 혹시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해 봤나?”
강소는 자신이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신 것이 맞으십니까?”
“맞아.”
이혁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가만 보니 그의 얼굴은 어제보다 더 수척해져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통통하고 둥근 얼굴이기는 했지만.
이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 미안하군. 내가 괜한 말을 했어.”
“괜찮습니다. 매번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는데, 그런 고민 정도는 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
“아니면, 양춘각에 오셔서 순태에게 말해 보든지요. 생각보다 능력 있는 남자니까요.”
“생각…… 해 보지.”
강소는 계산을 하고 이혁 베이커리에서 나왔다. 그리고 힐끔 이혁을 보았다.
생각보다 소극적인 남자인 것 같았다.
‘소극적인 건지 아니면 답답한 건지 모르겠지만…….’
강소가 양춘각에 돌아오자 유순태는 의자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왔냐?”
“TV 보고 있었냐?”
“내가 이 나이에 취미라고 할 게 TV보기밖에 더 있겠냐?”
“아직 서른다섯 살밖에 안 되었는데 꼭 아저씨 같은 소리 한다?”
“애도 있는데 그럼 아저씨지 총각이냐?”
“그런가?”
강소는 웃으며 롤 케이크를 내밀었다.
“같이 먹자.”
이에 유순태는 손을 저었다.
“됐다. 너 먹어라. 네가 그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데 그걸 뺏어 먹겠냐?”
“그럼 나야 고맙지.”
강소는 얼른 롤 케이크를 자신의 방 안 냉장고 안에 넣어 두었다.
“아, 그런데 순태야. 이혁 베이커리의 사장님 말이야.”
“……?”
“나에게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시던데?”
“뭐? 그 형님이?”
“그래서 혹시 뭐 아는 거 있나 싶어서.”
“글쎄다.”
유순태는 턱을 긁적였다.
“그보다 별일이네? 여자에 관심 없다고 하시더니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시고…… 대체 어떤 여자인데 그 형님의 마음을 흔들어 놨는지 궁금하네.”
강소는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여자에 관심이 없다 했다고?”
“이 마을 상가번영회 모임이 있거든. 그때 슬쩍 물어봤었지. 어떤 타입의 여자가 이상형이냐고.”
“그랬군.”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데 베이커리의 사장님, 대체 몇 살이냐? 네가 형님이라 하는 것을 보니 나이가 꽤 많은 것 같은데?”
“아, 서른일곱이다.”
“……우리보다 두 살이 더 많은 거냐?”
“응.”
“……마흔 살 중반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형님이 살이 쪄서 그런지 좀 노안이기는 하지. 그나저나 봄은 사랑의 계절이라더니, 봄은 봄인가 보네.”
그날 저녁, 이혁은 양춘각을 찾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밤 8시.
저녁 장사를 마감하려 할 시간에 찾아온 것이었다.
“형님! 어서 오십시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유순태가 맞아 주었고, 이혁은 유순태가 빼어 준 의자에 앉았다.
“소주랑 짬뽕 한 그릇 부탁해.”
“알겠습니다.”
유순태는 주방으로 들어가 짬뽕 한 그릇을 만들어왔고, 강소는 얼른 이혁 앞 식탁에 기본 세팅을 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오고 이혁은 아무 말 없이 짬뽕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술병을 따려는데, 유순태가 얼른 소주병을 잡았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래, 유 사장의 술 한 잔 받아 보자!”
꼴꼴꼴.
소주가 소주잔에 채워졌다.
이혁은 소주를 들이켜고, 또 들이켜 병이 다 비었을 즈음에 드디어 입을 열었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입을 열 수 없어 그리한 듯했다.
“유 사장은 제수씨에게 어떻게 고백했나?”
“네?”
살짝 놀란 눈을 한 유순태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알고 지내던 동료 일꾼의 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소개로 몇 번 만나다 보니 괜찮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어느 눈 오는 밤…… 라면 먹고 가라고 했습니다.”
“부럽네…… 그렇게 고백할 용기도 있고.”
강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라면 먹고 가라는 말이 고백이 될 수가 있는 거냐?”
“음…… 그건 말이지…….”
유순태가 설명했다.
“상상을 해 봐라. 두 청춘 남녀가 눈 오는 길을 걸어가고 있어. 날씨는 춥고 눈은 오고…… 그 상황에서 라면 먹고 가자면 당연히 그 둘은 집 안으로 들어갈 테고…… 아, 설명은 거기까지만 하자.”
유순태는 붉어진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무슨 설명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했다.”
다행히 강소는 그리 세상 물정에 어둡거나 눈치가 느리지 않았기에 유순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너라면 아무에게나 라면 먹고 가라고는 안 하겠지.”
“그거야 당연하지! 이래 봬도 난 순정파니까.”
유순태는 헛기침을 하며 살짝 대화에서 소외된 이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험, 험험. 그나저나 궁금합니다. 형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여자가 누군지 말입니다.”
“어?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은 어찌 알았어?”
모르면 바보였다. 유순태가 웃었다.
“그래서 누굽니까?”
“사실…… 내 베이커리의 단골 아가씨인데, 예쁘고 품성도 곱고…… 귀엽게 웃는 것이 딱 내 이상형이지.”
“이름은 아십니까?”
“알아. 백현미…… 라고. 좋아하게 된 지는 삼 개월이 넘었어.”
“그런데 왜 아직 고백하지 않으신 건데요?”
유순태의 물음에 이혁은 한숨을 쉬며 술병의 남은 술을 술잔에 탁탁 털어 원샷했다.
“솔직히 나는 내가 어떤 모습인지 알아. 고도비만에 숫기도 없지, 거기에 그렇다고 얼굴이 잘생겼기를 하나…… 가게도 전세고, 있는 건 제빵 기술 하나뿐인데.”
“형님…….”
“만약 고백했다가 차이면 현미 씨는 민망해서 더는 내 베이커리에 오지 않을 것 아니야?”
그러니까, 자신은 못난 남자이기 때문에 고백해 봤자 차일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좋아하는 여자를 더는 볼 수 없어지니 그게 무서워서 고백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강소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지간히도 소심한 남자군.’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내가 볼 때 괜찮아 보이는 남자인데, 어째서 저렇게까지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것이지?’
그때 유순태가 말했다.
“이럴 게 아니라! 저희도 한잔해야겠습니다! 탕수육이라도 좀 튀겨 오죠!”
유순태는 일어나 안주로 탕수육을 튀겼고, 강소는 문 앞에 ‘영업 종료’ 팻말을 달고 왔다.
유순태는 탕수육을 놓고, 소주 세 병을 꺼내 놓았고, 강소는 재빨리 젓가락과 술잔을 세팅했다.
본격적으로 세 남자의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그 셋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혁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 시작했다.
“사실 말이쥐! 내가 원래 이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내가 고등학생 때 말이쥐.”
취중진담이라고, 이혁의 입에서는 당시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진짜 진짜 이뻤던 여자가 있었어! 그래서 내가 고백한 거 아니야!”
“그래서요? 형님? 어떻게 됐습니까?”
“나보고, 고백한 용기는 가상한데, 내가 자신과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냐고…….”
“그럼 차인 겁니까? 형님?”
“그래! 차인 거쥐!”
이혁은 꼬부라진 혀로 계속해서 하소연을 했다.
“근데 말이쥐! 그 애가 다른 애들하고 내 이야기를 하더라?”
“뭐라고 했습니까?”
강소의 물음에 이혁은 피식 웃었다.
“짜증 난대! 잘생긴 남자들은 다 어디 가고 왜 못생긴 돼지 새끼 한 마리가 얼쩡거리냐고!”
“뭐라고요? 그런!”
“진짜 못된 여자입니다!”
“내가 고백해서 끔찍하다고…… 젠장!”
이혁은 다시 술잔을 들이켰다.
“끔찍…… 하다고…….”
강소는 이혁의 자존감이 바닥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때 들었던 여학생의 말은 이혁의 뇌리에 박혔고, 상처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않는 깊은 상처가 말이다.
강소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처음 고백한 여자가 그런 여자였는지…….’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도 쭉 그 트라우마에 갇혀 살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현미 씨한테 고백할 수 있겠어? 젠장! 젠장! 젠…….”
쿵.
이혁의 이마가 탁자에 처박혔다.
결국 술을 이기지 못한 것.
“형님! 형님! 벌써 취하시면 어찌합니까?”
아무리 흔들어 봐도 미동도 없었다. 유순태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 어떻게 하지?”
“걱정 마라. 내 방에서 재우면 된다.”
“불편하지 않겠어?”
“괜찮다.”
“그나저나…… 형님께 그런 과거가 있었다니! 그래서 형님이 그렇게 소극적인 성격이 되었구나! 와! 그 여자 진짜 나쁜 여자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강소는 이혁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상사병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있던 곳의 사천에서 만났던 한 남자가 상사병으로 죽은 것을 보고 그때 상사병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더 이상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를 먹을 수 없게 된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슬픈 일이니까.’
강소가 매월 두 번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를 사러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의 몫을 남겨 두는 그게 이혁에게는 별것 아닌 것이라 해도 강소에게는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었다.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는 그 정도로 강소에게 큰 의미였다.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강소는 이혁을 위해 움직이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냐? 고백하는 것을 도울 생각이냐?”
“물론이지. 형님이 저렇게 괴로워하는데…….”
“그래서 방법은 있고?”
강소의 말에 고민하던 유순태가 말했다.
“연예상담에 대해서는 사실 안사람이 전문이거든, 자세한 건 내일 안사람하고 상의하자.”
“알겠다.”
강소는 이혁을 들어 어깨에 메었다. 거구의 이혁이었지만 강소는 거뜬하게 들어 방 안에 눕혔다.
다음 날.
이혁이 잠에서 깼을 때 그는 낯선 천장을 마주했다.
“헉!”
놀라 몸을 일으킨 그는 간밤의 일이 떠올랐다.
‘유 사장에게 고민 상담을 했었지?’
그 와중에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그럼 여기는…… 양춘각?’
그런데 그의 눈앞에 뭔가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강소가 냉장고 문을 연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얼굴이 너무 허망해 보여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총각? 아침부터 왜 그런 표정이야?”
“또 없어졌습니다.”
“뭐가 말인가?”
“냉장고 안에 두었던……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가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 안에는 롤 케이크의 포장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강소는 분에 못 이겨 주먹을 쥐었다.
으드득-!
“반드시 범인을 찾아낼 겁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2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