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407
406화. 기다림 (1)
11월도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조만간 첫눈이 오겠군.”
저번 집들이 때 왔던 이혁과 백현미는 요즘 도순이가 퍽 기운이 없다면서 걱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곧 첫눈이 오면 도순이는 겨울잠을 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그 둘은 도순이와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그는 새싹 유치원에 도착했다.
그곳이 오늘 그의 목적지였다.
새싹 유치원에서는 매년 12월 초에 학업의 성취를 외부에 공개하는 새싹들의 날을 진행했다.
그리고 저번 연도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강소가 연극의 지도를 맡게 되었다.
아니, 이번에는 연극이 아니었다.
‘인어 전사 라진과 앤 공주님의 모험’이라는 긴 제목의 뮤지컬이었다.
인어 전사 라진은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하늘을 찔렀는데, 그건 인어 전사 라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인어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계획을 세운 각성자 협회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인기였다.
아이들에서부터 시작된 인기는 어른으로까지 이어졌는데, 그 결과가 이번에 개봉한 ‘인어 전사 라진 : 영웅의 탄생’이었다.
아무튼, 새싹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여러 후보들을 보여 주며 어떤 뮤지컬을 할지 고르라 했고, 아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작품은 ‘인어 전사 라진’으로 결정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임시 출입증을 발급받은 강소가 유치원으로 들어갔고,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의 인사에 선생님들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도 참 멋지시네요. 호호호.”
유치원 선생님들은 감정에 솔직했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지금 간식 시간이에요. 한 10분 정도 뒤에 시작하시면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간식을 먹던 아이들은 강소를 보았다. 하지만 그에게 달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크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래. 간식 맛있게 먹고 이따가 재미있게 연습하자.”
“네!”
그 모습을 보며 선생님들은 몰래 엄지를 치켜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강소를 보자마자 달려왔고 그 덕분에 그 자리는 난장판이 되었다.
이에 강소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내가 반가운 건 알겠지만, 간식을 먹는 도중에 일어나면 치우는 선생님들이 어떠실까?”
“힘들어요.”
“맞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식 먹는 동안은 일어나지 않아요.”
“잘 아는구나. 그럼 실천을 해야겠지?”
“네!”
강소의 말에는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카리스마가 실려 있었고, 덕분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강소 선생님 말 잘 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간식을 다 먹은 후, 뮤지컬 연습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연극보다 뮤지컬이 더 쉽게 느껴졌다.
뮤지컬은 노래로 내용을 표현했는데, 대사를 외우는 것보다 노래를 외우는 게 더 쉬웠기 때문이다.
그건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면 잘 외워지지만, 이상하게 그냥 가사를 외우려면 잘 외워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대사는 별로 없고 노래와 율동이 많으니 아이들은 신나게 뮤지컬 연습을 했다.
“그럼 라진과 앤 공주님의 듀엣을 먼저 연습해 볼까?”
강소의 말에 두 남녀 아이들이 앞으로 나왔다.
라진을 맡은 아이는 7살 김영태라는 남자아이였고, 앤 공주님을 맡은 아이는 유하영의 단짝 이윤주였다.
역할 선정을 할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인어 전사 라진 역할에 모든 유치원 아이들이 유하영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이에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애들아, 인어 전사 라진은 말이지 멋있는…….”
“하영이 멋있는데?”
“맞아요! 하영이는 멋있어요!”
“하하하.”
유하영은 유치원에서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있는 아이였고, 그게 이번 배역 선정에서도 드러난 것.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은 라진이 남자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뮤지컬의 남녀 주인공 역할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오디션을 봐서 결정했다.
그런데 유하영은 중요한 역할을 다른 친구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엑스트라 급인 문어 박사를 맡았다.
그날, 집에 돌아온 강소는 유하영에게 물었다.
“주인공 역할 오디션을 봤으면 확실하게 여자 주인공이 되었을 텐데, 왜 문어 박사를 맡은 거니?”
그 물음에 유하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노래 연습하느라 유치원 많이 못 가서 연습 많이 못 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앤 공주님을 하는 건 그냥 욕심일 뿐이야.”
“개인적으로 연습해도 되지 않니?”
“아니야. 연극이나 뮤지컬이나 연습에 빠지면 안 돼. 그건 다른 친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했어.”
“그렇구나.”
그렇게 대답하는 유하영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아이들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내 이름은 라진! 씩씩하고 용감한 바다의 전사!”
“내 이름은 앤, 이 아름다운 나라 크리스탈 왕국의 공주랍니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강소는 미소 지었다.
* * *
그날 밤.
강소는 미리내 공원으로 향했다.
그때 메시지가 도착했고, 강소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집들이 음식,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존 밀러의 메시지였다.
이번에 강소는 존 밀러도 초대하고 싶었다. 하지만 천해진, 아니 네르갈이 있다는 말에 존 밀러는 기겁했다.
어둠의 족속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그를 부르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기에 강소는 집들이 음식만 챙겨서 조셉 화이트를 통해서 보내 주었다.
강소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곧 미리내 공원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그곳은 고요한 것을 넘어서서 적막했다.
강소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달이 보이지 않아, 사방이 캄캄했다.
그는 오늘을 기다렸다.
일전에 게이트에서 만난 아스모데는 강소에게 중요한 것을 알려 주었다.
그건 바로 ‘공간을 가르는 검’을 뺏는 방법이었다.
먼 옛날, 인간이 만들었다는 공간을 다루는 힘이 담긴 아티펙트.
그 힘에 주목한 아스모데 가문의 가주는 그 검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을 때를 대비하여 그 검에 주술을 걸었다고 했다.
그 주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에 해는 물론 달도 보이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강소는 그 방법에 대해 들었음에도 곧바로 공간을 가르는 검을 빼앗지 못한 것이다.
그믐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
“이쯤이 좋겠군.”
강소는 미리내 공원의 가운데에 섰다.
그리고 근처의 나뭇가지를 들어 땅에 공간을 가르는 검을 그렸다.
최대한 비슷하게 그려야 했지만, 그리는 재료는 아무거나 상관없었다.
땅에 나뭇가지로 그리든, 종이에 피로 그리든.
강소는 전에 공간을 가르는 검을 본 적이 있었기에 제법 그럴 듯하게 그릴 수 있었다.
공간을 가르는 검을 그린 강소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대충 만든 목검을 꺼냈다.
그걸 땅에 그린 그림 위에 올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이것도 참 악취미지.”
이 주술은, 나무로 만든 검과 진짜 공간을 가르는 검을 바꿔치기하는 주술이기도 했다.
즉, 공간을 가르는 검을 가지고 있던 자를 조롱하는 것.
마지막으로 강소는 인벤토리에서 마정석을 꺼냈다. 그건 전에 아스모데에게서 얻은 것이다.
이 마정석은 달이 없는 밤에 행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가주만이 행할 수 있다는 것.
아스모데는 말했다.
“내 몸에서 나온 마정석이 있다면 반드시 챙겨. 그걸 지니고 있으면 주술을 속일 수 있을 거야.”
사실 그녀가 그리 말하지 않았어도 챙겨야 할 것이기도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강소는 아스모데가 알려 준 주술의 주문을 읊었다.
“먼 옛날 너를 속박했던 자를 기억해라. 나는 너를 손에 넣은 자. 너는 언제까지나 나의 것. 네가 다른 곳에 있어도…….”
강소는 주문을 읊으면서도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았다.
‘대체 이 부끄러운 주문을 만든 사람이 누구야? 윽! 손발이 없어지는 기분이군.’
다행히도 주문은 길지 않았다.
“……하니,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와라.”
그 순간,
빛이 번쩍였고, 빛이 사라지며 그곳에는 대충 만든 목검 대신 진짜 공간을 가르는 검이 나타났다.
‘아스모데가 거짓말은 하지 않았군.’
그는 손을 뻗어 공간을 가르는 검을 들었다.
아스모데는 말했다.
“공간의 열쇠와 공간을 가르는 검. 그 두 개가 왕의 손에 들어가면 안 돼. 왕은 이 두 번째 인간계를 전부 삼켜 버릴 거야.”
강소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공간의 열쇠와 공간을 가르는 검.
그 두 개가 전부 강소의 손에 있었다.
이 사실을 왕이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 * *
그 시각.
어비스의 왕의 시종 샤모스는 두 번째 인간계에 있었다.
왕의 명령을 받아 콜렉터들에게 더 열심히 절망의 구슬을 모으라는 명령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콜렉터들을 갈군 샤모스는 어비스로 돌아가기 위해 공간을 가르는 검을 꺼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허리에 차고 있던 공간을 가르는 검이…… 어느새 허접한 목검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해졌다.
왕이 하사한 검을 잃어버렸다는 건 둘째 문제였다.
왕이 자신의 권능을 막아 버린 지금, 어비스로 돌아갈 방법은 공간을 가르는 검뿐이었다.
그 말은 즉, 자신은 이 두 번째 인간계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젠장! 가지고 있는 돈이 없다!’
두 번째 인간계에 있는 어둠의 족속들은, 콜렉터의 역할을 맡은 이들.
왕이 자신을 소환하기 위해 공간을 열 때까지 자신이 열심히 갈군 이들에게 몸을 의탁해야 할 상황인 것.
게다가 그게 언제인지 기약할 수 없었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절규했다.
“으아아악!”
한마디로 ×된 상황이었다.
* * *
며칠이 지났다.
강소는 오늘도 새싹 유치원으로 향했다.
뮤지컬 연습은 매일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은 합창곡을 연습해 볼까?”
“네!”
아이들을 지도하던 강소는 며칠 전부터 한 아이가 영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율동과 노래를 틀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 아이의 이름은 박소은.
유하영과 같은 나이인 6살 여자아이였다.
‘이따가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겠군.’
유치원의 모든 일과가 끝났다.
강소는 보호자를 기다리고 있는 박소은을 보았다.
뮤지컬 연습에 영 집중하지 못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지만, 그가 묻는다고 해서 그녀가 제대로 대답할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어떻게 할까?’
그때 유하영이 다가왔다.
“집에 가자!”
“알았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영아. 나를 좀 도와주겠니?”
“응! 도와줄게.”
“뭘 도와달라고 할 줄 알고 그렇게 얼른 대답하는 거냐?”
“나도 몰라. 근데 오빠는 하영이 오빠잖아.”
그녀의 믿음이 담긴 말에 강소는 미소 지었다.
뭔가 뿌듯했기 때문이다.
“소은이와 이야기를 좀 해 다오. 무슨 고민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알았어.”
유하영은 박소은에게 다가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얼마 후 박소은의 어머니가 왔고 둘은 헤어졌다.
유하영은 다시 강소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나 왔어! 소은이랑 이야기했어.”
“잘했다.”
“소은이 아빠가 헌터인데, 게이트에 들어갔대. 그래서…….”
유하영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강소에게 해 주었다. 사실 강소는 이미 두 아이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박소은의 아버지는 헌터였다. 그래서 이번에 게이트에 들어갔다고 했다.
아버지는 게이트에 들어가면서 “열 밤만 자면 아빠 돌아올게.”라고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열 손가락을 다 접었음에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래서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해서, 걱정이래.”
“그렇구나.”
헌터라는 직업은 수입이 높고, 세상의 존경을 받는 직업인 건 맞았다.
하지만, 사망률 역시 높았다.
그래서 헌터가 게이트에 들어가면, 그 가족들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무사 귀환하기를 기다렸다.
그건 짐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옆에서 유하영이 말했다.
“소은이가, 새싹들의 날 때 아빠에게 뮤지컬 하는 거 보여 주고 싶다고 그랬어. 그래서 여왕님 역할을 맡아서 무척 좋아했어.”
여왕님은 앤 공주의 어머니이자, 크리스털 왕국의 지배자였다.
그리고 제법 중요한 역할로서 혼자 노래를 하는 장면도 있을 정도로 비중이 높았다.
강소는 유하영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다 잘될 거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4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