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412
411화. 삼고초려 (2)
임송규의 말에 최인석은 혀를 찼다.
“네 가슴에 손을 올리고 솔직히 말해라. 나를 부원장에 앉힌다는 거, 친분 때문이냐? 아니면 정말 내가 필요해서냐?”
“그야 네가 필요해서지. 내가 친분으로 인사를 결정하는 그런 얼간이로 보이냐?”
“뭐, 그건 그렇지.”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너도 좀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면 안 되겠냐?”
“나도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이 다리로 부원장이라니!”
“그게 뭐 어때서?”
임송규가 말을 이었다.
“기억 안 나? 네 다리가 그 모양이 되었을 때, 네 통찰력 덕분에 모두 살아서 나올 수 있었다는 거.”
“그땐, 운이 좋았다.”
“운도 실력이야. 이 자식아.”
그렇게 계속 옥신각신했지만,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고 있었다.
그때 유순태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선배님.”
“왜?”
“선배님께서는 계속해서 본인이 능력이 없다고 하시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선배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
최인석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유순태는 얼른 말을 이었다.
“상암동의 게이트를 기억하십니까?”
“…….”
잠시 고민하던 최인석이 대답했다.
“하하하. 미안하네. 기억이 안 나는군.”
그 표정을 보니, 정말 기억이 안 나서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마 듣다 보면 기억나실 겁니다. 제가 두 번째로 들어갔던 게이트였습니다. 당시 들어갔던 헌터들과 짐꾼들까지 전부 죽을 뻔했습니다. 스톤 골렘이 동굴 입구를 막아 버려서 말입니다.”
“아, 이제야 기억나는군. 스톤 골렘도 머리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건이었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당시 통신을 통해 내린 지시 덕분에 저희 모두 무사히 생환할 수 있었으니까요. 선배님의 통찰력이 아니었다면 다들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그랬었나…….”
“선배님께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 일이라고 해도, 당시 선배님 덕분에 목숨을 구한 짐꾼들을 모두 그 게이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순태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능력이 없다고 하시면, 그때 선배님의 도움을 받아 살아 나온 저희들은 뭐가 되는 겁니까?”
그의 말에 거실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생각하던 최인석이 말했다.
“그도 그렇군. 미안하네.”
“선배님은 좀 더 자신감을 가지셔도 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게이트 안에서 죽어 가는 후배들을 위해서 힘써 주셨으면 합니다.”
그 진지한 표정에 최인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생각해 보겠네. 시간을 주게.”
.
.
.
서울로 돌아오는 길.
강소는 운전을 하는 유순태에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을 잘 할 줄은 몰랐다.”
“하하하. 그냥 얼떨결에 나온 거야.”
뒷좌석에 앉아 있던 임송규도 말했다.
“덕분에 녀석이 마음을 돌릴 것 같아.”
“하지만 선배님은 생각해 본다고 하셨는데요.”
임송규는 피식 웃었다.
“보면 알아, 저 녀석 지금 90퍼센트는 넘어왔어. 여기서 10퍼센트의 뭔가가 있으면 바로 넘어오는 건데. 뭐, 하늘의 뜻이라면 저 녀석은 오늘내일 내로 전화하겠지.”
그 대화를 들으며 강소는 조수석 창으로 최인석의 집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내 생각에는, 부원장 자리를 거절하는 이유가 집에 있던 그것 같은데…….’
분명 임송규는 최인석이 혼자 산다고 했다.
하지만 강소가 느낀 바에 의하면, 그의 집에는 최인석 혼자가 아니었다.
* * *
한 건물의 옥상.
그곳에서 연미복을 입은 한 남자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아, 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는지.”
그는 샤모스였다.
적잖은 시간 동안, 어비스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공간을 가르는 검이 허접한 목검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크윽! 젠장!”
그는 아직 그 목검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 목검이 공간을 가르는 검으로 다시 바뀔 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으아악! 젠장!”
그는 결국 그 목검을 바닥에 내리쳐 산산이 부수어 버렸다.
그때 누군가 옥상으로 왔다.
“많이 속상한가 보네?”
“아, 아스타 님.”
사뿐사뿐 걸어오는 여자를 본 샤모스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땅에 끌리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검은색 망사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붉은 입술 옆의 점은 묘하게 색기가 느껴졌다.
그녀의 이름은 아스타.
아스타 가문의 가주이다.
어둠의 족속은 가주가 되면, 본래의 이름 대신 가문의 이름이 그 이름이 되었으니까.
그녀는 무심한 눈빛으로 옥상에 어지러이 널린 목검 파편을 보았다.
그 눈빛에 샤모스는 움찔했다.
그는 아스타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그건 자신이 엄청나게 갈군 콜렉터들에게 몸을 의탁하자니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콜렉터가 아닌 다른 어둠의 족속은, 대한민국에 단 두 명이 있었다.
하나는 네르갈, 또 하나가 아스타였다.
네르갈에게 의탁하는 건 많이 위험했다. 자신의 모든 정보가 탈탈 털릴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래서 아스타를 선택했다.
그녀와 눈만 마주치지 않으면 안전했으니까.
지금 그가 서 있는 이 옥상은, 아스타 소유의 빌딩 옥상이었다.
아스타 가문은 여기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수많은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스타 가문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흑암의 12가문 중 하나였으니까.
그녀는 스르륵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공간을 가르는 검은 결국 돌아오지 않나 보네.”
“어쩔 수 없지요. 왕께서 저를 불러 주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요.”
“언제쯤이나 불러 주실까? 알잖아? 당신 말고도 시종으로 부릴 자들은 많다는 것을.”
“…….”
“그리고 공간의 검을 잃어버렸는데, 그걸 용서해 주실지도 모르겠고.”
“……!”
아스타는 정곡을 찔러 왔다.
“그거 왕에게 제법 중요한 물건이라고 하셨던 것 같더라고.”
“…….”
“나 같으면 그냥 도망갈 것 같은데? 호호호. 도망갈 곳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샤모스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곧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제 잘못이니,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
그녀의 입술이 재밌다는 듯 살짝 호선을 그렸다.
“하지만 눈빛에 확신은 없네.”
“아닙니다. 잘못 보신 겁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잡았다.
“이러지 마십시오.”
그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아스타에게 잡히면 끝이었다.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자신은 그녀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는 왕의 시종장입니다.”
“반드시 한 사람의 시종장일 필요가 있을까?”
“제 충성은 오직 왕께만 향합니다.”
그의 말에 아스타는 까르르 웃었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네. 충성? 왕에게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
“왕은 욕심이 많아. 자신이 원하는 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 방해된다면 그 무엇이든 망설임 없이 먹어치우지. 그게 설령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충신일지라도.”
그 말에 샤모스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아스타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어머? 당신도 알고 있나 보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충성을 바친다니! 미련한 거야? 아니면 뭐 바라는 것이라도 있는 거야?”
“그런 것 없습니다.”
“정말?”
아니다.
사실 대가가 있었기에 시종장 노릇을 한 것이다.
왕의 시종장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수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많은 어둠의 족속들이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
낮은 서열의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건 왕의 시종장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자신이 왜 왕의 비위를 맞추어 가면서 시종장을 했겠는가?
아스타의 말대로, 공간을 가르는 검을 잃어버린 이상 도망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안락한 도망 생활을 위해서는 재물이 필요했다.
그가 뇌물을 받아 쌓아 놓은 재물들은 지금 어비스에 있었다.
그걸 챙기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어비스로 돌아가야 했지만, 문제는 스스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 아스타가 말했다.
“감동이야. 아무 대가 없이 충성을 바친다니!”
그녀는 자신의 옷소매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 주었다.
“이게 뭘까?”
동그란 은색의 펜던트가 은줄에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었다.
“우리 아스타 가문에는 우리 영지와 이곳 두 번째 인간계를 연결하는 직통 포털이 있지.”
“그건 불가능합니다. 포털은 오직 왕의 권능입니다.”
“누가 그래? 그게 왕만이 가능한 권능이라고?”
“그건…….”
“물론 포털은 왕의 권능이지. 하지만 그게 왕만이 가능한 권능은 아니야. 실제로 ‘공간을 가르는 검’도 왕의 권능으로 만든 건 아니었잖아?”
“…….”
샤모스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걸 왜 비밀로 한 겁니까?”
“왕이 알면 기분이 좋겠어?”
“그건…… 그렇군요.”
“우리 가문을 지키기 위한 비장의 한 수랄까?”
“그런데 그걸 왜 저에게 알려 주시는 겁니까?”
“이게 필요해 보여서.”
“…….”
샤모스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제가 그걸 왕에게 보고할 수도 있습니다.”
“보고해도 돼. 보고할 수 있는 배짱이 있다면.”
아스타는 말을 이었다.
“이걸 보고하면, 공간의 검을 잃어버린 죄를 용서받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스타 가문의 분노를 사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
아스타 가문은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그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스타 가문을 건드린 자는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으니까.
왕조차도 껄끄러워하는 곳이 아스타 가문이었다.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결국, 샤모스는 항복했다.
아스타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역시 눈치가 빨라.”
“뭔가 바라는 것이 있으니까, 가문의 비장의 수라는 포털을 저에게 드러내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긴장하지 않아도 돼. 어려운 건 아니니까.”
아스타는 말을 이었다.
“그냥, 강원도에 다녀와 주면 돼.”
그녀는 샤모스에게 지시를 내렸고, 그 지시를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그럼 잘 부탁할게.”
“당장 다녀오겠습니다.”
샤모스는 즉시 몸을 날렸고, 그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아스타는 웃었다.
“급했나 보네. 호호호.”
“이번에는 샤모스가 농락당한 건가?”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놀랍도록 잘생긴 얼굴.
천해진, 아니 네르갈이었다.
“어머? 농락이라니? 그렇게 말하면 나 섭섭해.”
“그럼 그게 농락이 아니면 뭐지?”
“정당한 계약이지.”
“그 펜던트에 포털 기능 같은 거 없잖아.”
“맞아. 애초에 우리 가문에 포털 같은 건 없지. 그리고 나는 이 펜던트가 포털이라는 말을 한 적 없어.”
그녀는 비릿하게 웃었다.
검은색 뱀의 혀가 날름거렸다.
“원래 계약이라는 건 함정이 있기 마련이야.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샤모스가 멍청하지.”
“하아…….”
네르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샤모스에게 뭘 시킨 건데?”
“뭐, 별거 아니야. 그냥 동물 한 마리 사냥해 오라고 시킨 것뿐이야.”
“동물?”
“이제 슬슬 겨울이 다가오니까, 예쁜 가죽옷 하나 해 입고 싶어서.”
“너는 검은색 옷이 제일 잘 어울려.”
마음에 없는 소리였지만, 그 말을 들은 아스타는 기쁜지 네르갈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하지만 가끔 하얀 가죽도 괜찮지 않아?”
“그래, 뭐, 잘 어울리기는 하겠네. 그런데 하얀 가죽이라니? 그런 동물이 아직 남아 있었나?”
“아, 그건 내가 우연히 발견한 건데…….”
그렇게 네르갈은 아스타에게 정보를 얻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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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네르갈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옷깃을 손으로 툭툭 털었다.
솔직히 아스타와의 대화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네르갈에게 관심이 있었고 덕분에 제법 유용한 정보들을 말해 주곤 했다.
그리고 방금 들은 정보는 그냥 자신만 알고 있기에는 어딘가 찜찜했다.
그자에게 알려야겠군.
만약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관련하여 뭔가 일이 터진다면, 보나 마나 자신에게 달려와 정보를 요구할 터였다.
‘그리고 왜 진작 알려 주지 않았냐면서 몇 대 두들겨 패겠지.’
네르갈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픈 건 싫었다.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은 어찌 보면 이중 스파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원래 스파이는 이중 스파이지.’
무림에서 온 배달부 4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