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496
495화. 공익광고 (2)
유순태는 얼른 입에 든 율무차를 삼키고, 다급하게 물었다.
“바, 방금 들었지? 채영이가 아빠라고 한 거 맞지?”
그 물음에 강소가 대답했다.
“그래, 들었다.”
유순태는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유채영이 ‘엄마’ 소리만 했지, ‘아빠’ 소리는 하지 않았었기에 내심 유순태는 서운해 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아빠라는 소리를 듣자, 얼떨떨했다.
“아바!”
유채영은 다시 아빠 소리를 했다. 아까보다는 좀 더 정확한 발음이었다.
‘빠’에 가까운 ‘바’ 소리.
그제야 양춘각 식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채영이가 사장님께 아빠라고 부른 게 틀림없습니다.”
“축하드려요.”
유순태는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했다.
“아빠 소리를 들어서 좋은 건, 하영이나 채영이나 마찬가지네.”
“당연하지.”
강소가 말했다.
“둘 다 네 딸이니까.”
“하하하. 그런 거겠지?”
사실 유채영이 엄마 아빠 소리를 한 건 보통 아이들보다 무척 빠른 편이다.
하지만 이미 유채영이 보여 주는 빠른 성장에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그때 김지은이 물었다.
“그런데, 이번 어린이날 때요. 하영이 데리고 어디 다녀오실 계획 있으세요?”
그 물음에 임소영이 대답했다.
“안 그래도 지금 고민하던 참이야. 어딜 데리고 다녀와야 하영이가 좋아하려나.”
저번 어린이날처럼, 유하영은 올해에도 어린이날 축제의 초대 가수가 되어서 무대에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어린이날은 양춘각이 쉴 수 없는 날이기도 했기에 4일 날 미리 어딘가에 다녀오기로 했다.
마침 그날은 양춘각의 정기휴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럼 거긴 어떠세요?”
“어디?”
“파주 쪽에 어린이 직업 체험 랜드가 있거든요.”
“거기도 좋기는 한데, 생각보다 비싸더라고.”
그 말에 김지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저에게 어린이 직업 체험 랜드 티켓이 생겼거든요. 무려 다섯 장이나요!”
“어머? 그래? 다섯 장이면…….”
임소영이 강소와 허만철을 보며 말을 이으려는 그때 허만철은 움찔했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그건 그가 홀리 웨폰의 주인이기 때문에 생긴 기민한 감각이었다.
그 위기감의 원인은, 자신 옆에 앉아 있는 김지은이다.
‘……’
살고자 하는 생존본능은 허만철의 두뇌 회전을 빠르게 했고, 그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저, 저는!”
“응?”
“저는 5월 4일에 아. 주. 중. 요. 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허만철을 위협하던 위기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행히, 그의 행동은 정답이었다.
김지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티켓이 한 장 남네요. 음, 어쩌죠? 아! 사장님 내외분하고 하영이하고 알바 오빠. 그리고 저. 이렇게 다섯 명이 딱 맞네요! 그렇죠?”
그 말에 유순태는 허허 웃었다.
무슨 생각인지 그냥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강소는 피식 웃으며 허만철을 보았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유순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강소에게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그는 기꺼이 김지은과 힘께 하기로 했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아니,
그녀와 함께 있으면 왠지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왠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 * *
다음 날,
유하영은 유치원에 가지 않았다.
오늘은 공익광고의 촬영 날이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차현태와 하태복, 그리고 백은하.
이렇게 삼인방과 함께 촬영장에 온 유하영은 감독과 스탭들에게 인사했다.
“안녕.”
“하영이 왔네?”
“어서 와.”
피곤한 얼굴로 쌍욕을 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들은 유하영의 등장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유하영은 스탭들에게 직접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아! 하영이! 너무 사랑스러워.”
“고마워! 이모 너무 좋아.”
“오, 오빠도 좋다. 흐윽!”
“오빠는 무슨! 삼촌이지!”
“윽! 너무 하십니다.”
그때, 다른 누군가가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유하영과 함께 공익광고를 찍기로 한 배우, 천해진이었다.
“아저씨!”
“하하하! 안녕. 하영아.”
천해진 옆에 유하영이 서 있는 모습에 모두 눈이 개안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크흐! 잘생긴 남자 옆의 귀여운 아이인가?’
‘그림이 된다! 그림이 돼!’
더군다나 초코빵 중에서도 열렬한 핫 초코빵 천해진이다.
그가 유하영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애정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니, 그걸 바라보는 이들도 덩달아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조감독은 계속해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크게 소리쳤다.
“자자, 그럼 메이크업 시작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번 공익광고 [F급 게이트에 빠졌을 땐, 이렇게] 편의 시나리오는 간단했다.
유하영이 길을 가다가 F급 게이트에 빠지는 상황을 연기하고, 천해진이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설명하는 식이었다.
곧 메이크업실에서 유하영과 천해진이 나왔다.
유하영은 반바지에 귀여운 스타일의 셔츠를 입어, 활동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천해진은 헌터의 복장을 했다.
움직이기 편하도록 과하지 않은 깔끔하고 가벼운 방어구를 입고 있었다.
F급 게이트라 해도, 게이트는 게이트.
그러니, 게이트 전문가라 할 수 있는 헌터로 스타일링 하는 것이 신뢰성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거란 판단 때문이다.
그런 이유와 별개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 배우로 손꼽히는 천해진이다.
모두 저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역시 본판이 좋으니 뭘 입어도 빛나네.”
유하영도 엄지를 치켜 올려 주었다.
“아저씨! 멋있어요!”
“하하하. 그래? 하영이가 칭찬해 주니까 기분이 엄청 좋네.”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유하영은 골목을 걷고 있었다.
그때,
“아앗!”
그녀는 발밑의 구덩이에 빠지는 연기를 했다.
물론, 모든 것은 크로마키 위에서 하는 연기였다. 나중에 그 위에 CG 처리를 할 터.
F급 게이트에 빠진 유하영은 울먹이며 소리쳤다.
“아빠! 엄마!”
그때,
천해진이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만약 깜깜한 구덩이에 빠졌을 때, 힘껏 소리를 질러보세요. 3초 안에 메아리가 들린다면 우리 친구는 F급 게이트에 빠진 겁니다.”
유하영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해! 게이트에 빠졌나 봐! 그럼 나 마수에게 잡아먹히는 거야? 흐으윽!”
그 말에, 옆에 서 있던 천해진이 말했다.
“이런! 우리 친구가 F급 게이트에 빠졌군요! 하지만 당황하지 마세요! F급 게이트 안에는 마수가 없습니다.”
유하영은 대본대로, 벽을 손으로 쿵쿵 두들겼다.
“여기 이렇게 있을 수 없어! 나가고 싶어!”
쿵쿵쿵!
“잠깐!”
천해진이 손을 들며 말했다.
“F급 게이트에 빠졌다면 손으로 벽을 두들기지 마세요. F급 게이트의 벽은 울퉁불퉁하고 날카로운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아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유하영은 이곳저곳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 어딘가에 입구가 있을 수도 있어. 입구를 찾아야 해.”
그 행동에 천해진이 두 손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안 돼요! 안 돼! F급 게이트의 입구는 이미 사라진 후랍니다. 깜깜한 곳에서 움직이다가 다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유하영이 화면을 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선, 가장 중요한 건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겁니다. 48시간만 지나면 게이트가 역류하니까요.”
.
.
.
촬영은 계속되었다.
원 테이크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유하영이 다시 찍자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훌륭한데?”
“그래도, 제가 마음에 안 들어요. 제가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다시 찍어야지. 그래도 되겠죠? 천해진 씨?”
감독의 물음에 천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어차피 오늘 온종일 촬영할 것으로 예상했고, 또 유하영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만족이다.
.
.
.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은, 오늘 광고를 의뢰한 곳에서 준비해 주었다.
원래 광고 쪽 촬영장이 예산이 넉넉한 만큼 식사가 잘 나오기로 유명하긴 했다.
그리고 공익광고는 더더욱 밥이 잘 나왔다.
출연료를 전액 기부하는 만큼, 밥이라도 잘 먹으라는 의미였다.
그 음식들은 초코빵들의 서포트와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스탭들은 고급스럽고 맛깔스러운 음식들에 감탄했다.
유하영 역시 좋아했다.
그렇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천해진은 개인 대기실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여기가 촬영장이라는 곳이군.”
갑자기 문이 열리며 들린 목소리에 천해진은 순간 기겁했다.
상처투성이의 남자.
“위, 위리 님?”
그보다 높은 서열의, 어둠의 족속 위리였다.
“여, 여기는 어떻게……?”
“알려 줄 것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없어서 물어보니 여기 있다고 해서 말이지.”
“그, 그러셨군요.”
위리는 거침없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고, 소파에 앉았다.
천해진은 매니저에게 눈짓했고, 그는 얼른 안에 있는 모든 스탭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저희 가서, 음료수라도 한잔할까요?”
이번에 새로 바뀐 매니저는, 스파이이자 네르갈 가문의 일족이다.
그렇기에 눈치 빠르게 행동했다.
모두가 나가고, 위리는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참 열심히도 사는군.”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하는 거야. 열심히 하거든.”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하하.”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음…… 장소가 장소니 만큼, 술은 무리겠지. 냉수나 한 잔 주게.”
“네.”
천해진은 이래서 위리가 싫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행동하긴 했지만, 그래도 선은 지켰기 때문이다.
천해진은 얼른 일어나 미니 냉장고 안에서 냉수를 꺼내 컵에 따라 상 위에 놓았다.
“드십시오.”
“고맙네.”
위리는 냉수를 마시고 컵을 내려 놓았다.
“자네가 전에 그랬지? 어비스의 녀석들 중 혹시 왕의 명령을 받고 이쪽에 온 이들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네. 그랬습니다.”
“그래서 왔네.”
위리가 말을 이었다.
“그 변태 기생충 녀석들이 왕의 명령을 받고 두 번째 인간계로 왔거든.”
“그랬군요.”
천해진은 심각해졌다.
위리가 변태 기생충 녀석들이라 부르는 자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의 명령을 받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도 있더군. 아마도 나처럼 게이트의 틈을 이용하여 들락거리는 거겠지.”
“…….”
천해진은 애써 미소 지으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어?”
그 목소리에 천해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고, 곧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건 유하영.
그녀의 품에는 오렌지 주스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아, 앞에 아무도 없었니?”
“네.”
유하영이 대답했다.
“아무도 없었어요.”
매니저가 모두를 데리고 근처 카페로 갔기 때문이다. 천해진이 문을 잠갔으리라고 생각한 것.
천해진은 당황했다.
위리의 모습은 빈말이라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온몸이 끔찍한 상처로 뒤덮여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울지 않는 아이가 없었다.
만약 유하영이 울면, 위리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만약 하영이가 울거나 하면, 강소 님한테 죽을지도 모른다.’
식은땀으로 순식간에 온몸이 축축해졌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그때,
“어? 안녕하세요. 아저씨.”
유하영이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했다.
“아저씨 드시라고 음료수 가져왔는데, 손님이 계시네요. 이거 아저씨 드세요.”
그리고 유하영은 위리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음료수를 내밀었다.
“어? 나 주는 거냐?”
“네.”
유하영의 말에 위리는 그것을 받았다.
“대접할 줄 아는 아이구나. 험험.”
사실 위리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자꾸 눈길이 가는 아이였다.
“그리고 이건 아저씨 거요.”
유하영은 하나 남은 음료수를 천해진에게 주었고, 천해진은 그것을 받았다.
“고, 고맙다.”
그때 위리가 그녀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냐?”
“유하영이에요.”
“너는 내가 안 무섭냐?”
사실 위리도 자신이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 물음에 유하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무서워요?”
“어? 그, 그야, 나는 상처가 많으니까…….”
“살기 위해 싸운 거잖아요. 그건 무서운 게 아니라 안쓰러운 거예요.”
유하영의 어휘력은 제법 늘었고, 그래서 안쓰럽다는 단어도 알고 있었다.
“…….”
유하영의 말에 위리는 말을 잃었다.
안쓰럽다니!
지금까지 그 누구도 자신에게 그리 말한 자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유하영의 그 말은 위리의 가슴에 깊숙이 박힐 수밖에 없었다.
살기 위해 싸웠는데 그게 안쓰럽지 않으면 뭐가 안쓰럽겠는가?
“맞다. 네 말이 맞구나.”
그때,
유하영이 다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를 불렀다.
“아저씨.”
“왜 그러냐?”
“있잖아요. 도둑 조심해야 해요.”
“도둑?”
“네. 냄새 엄청 지독한 도둑이 있어요.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것들 훔치려고 해요.”
무림에서 온 배달부 49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