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497
496화. 공익광고 (3)
유하영의 말에 순간 천해진의 대기실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만약 천해진과 위리가 인간이었다면 경보기를 설치하는 등의 보안 시설 강화에 대해 생각했을 터.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유하영의 말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누군가 내 것을 훔치려고 한다는 거냐?”
위리의 물음에 유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하영이 말을 이었다.
“최근에 아저씨가 선물 받은 거 훔치려고 해요. 왜냐하면, 그 도둑은 자신이 선물 받은 거 잃어버렸거든요.”
그때 밖에서 유하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영 양! 어디 있어요? 하영 양!”
백은하의 목소리에 유하영이 헤 웃으며 말했다.
“저, 가 볼게요.”
도도도 달려가, 문을 열고 쏙 나갔다.
천해진은 문을 닫으며 위리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 드러난 건 의문이었다.
그는 어둠의 족속 중에서도 드물게 마음에 드는 이였다.
그렇기에 천해진은 그에게 말했다.
“하영이는 결코 허튼 말을 하지 않습니다. 유념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런가?”
“네.”
“그런데 하영이라는 아이, 특별해 보이는군. 혹시 예언의 능력을 타고난 건가?”
그 말에 천해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능력이 많은 아이이긴 합니다.”
“저 아이를 아끼는군.”
“…….”
천해진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위리는 그의 눈에서 두려움을 보았다.
소중한 무언가를 뺏기지 않을까 염려하는 두려움이다.
“걱정하지 말게나. 나는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취미는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대체 누가 내 것을 도둑질한다는 건지.”
위리는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천해진이 말했다.
“제가 한 가지 정보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좋네. 이번에 내가 알려 준 정보는 그 정보로 값을 받도록 하지.”
위리가 천해진에게 어비스의 동태에 대해서 알려 주는 대신, 천해진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천해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건 서비스라고 치죠.”
“서비스?”
“우리 하영이를 위한 서비스입니다.”
* * *
공익광고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스탭들은 서로서로 격려의 말을 했고, 유하영 역시 스탭들에게 돌아다니며 일일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그 인사에 스탭들의 광대가 승천했다.
“하영아. 잘 가렴.”
“네, 아저씨.”
그리고 천해진은 헤어질 시간이 오자 슬픈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 듯한 그 모습에 유하영이 웃으며 말했다.
“얼른 가세요. 매니저 아저씨가 기다려요.”
“괜찮아. 하영이 가는 거 보고 갈게.”
“네. 그럼 저 먼저 갈게요.”
유하영은 하태복의 도움을 받아 차에 올라탔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천해진은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수고하셨습니다.”
매니저의 말에 천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고생 많았어.”
“갑자기 위리 님이 오시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놀랐다.”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핸드폰에는 집사로부터 위리가 방문할 거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하지만 촬영 중이었기에 보지 못했다.
매니저는 깜빡 잊고 핸드폰 무음 모드를 해제하지 않았었고.
‘참, 일이 이렇게 되려니까…… 이렇게 되는구나.’
그리 중얼거리며 천해진은 핸드폰에 남겨진 메시지를 보았다.
[알았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강소에게서 온 메시지이다.
분명 오늘 유하영은 위리를 만난 것에 대해서 강소에게 말할 터였다.
그리고 자신은 유하영이 말하기 전에 먼저 강소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안 그러면, 맞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위리가 가자마자 두 엄지를 필사적으로 움직여 메시지를 남겼다.
[강소 님, 오늘 촬영장에 어둠의 족속인 위리 님이 방문했는데 하영이와 만났습니다. 하영이가 위리 님에게…….]로 시작하는 장문의 메시지였다.“후우…….”
천해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감사하다고 한 것을 보니, 안 맞겠군. 다행이야.’
* * *
붉은색과 보라색이 섞인 어두운 하늘.
그 아래에는 성 하나가 서 있었다.
왕이 거하는 성보다는 작았다.
하지만 투박하면서도 사각형을 이루는, 효율성을 극대화한 성의 모습은 생각보다 위용이 넘쳤다.
그곳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몰로와 그의 집사였다.
“위리, 그놈이 지금 없다는 게 확실하지?”
“그렇습니다. 확인 결과 지금 출타 중이라고 합니다.”
“그것의 위치는?”
“가장 중요한 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몰로와 집사가 있는 곳은 위리 가문의 성.
그리고 직접 위리가 가지고 있는 마수를 훔치기 위해서 왔다.
마수에 소속을 정해 놓은 것도 아니었으니, 훔치고 입 닦으면 마수를 잃어버린 건 자신이 아니라 위리가 될 터였다.
하지만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위리의 서열은 자신의 바로 위였고, 성을 지키는 이들 또한 한 무력 하는 자들이었으니까.
그래서 몰로가 직접 온 것이기도 했다.
그의 가문의 이블 웨폰의 능력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마수를 훔칠 수 있었으니까.
몰로는 자신의 이블 웨폰을 꺼냈다.
그의 이블 웨폰의 이름은 ‘눈물의 부채’.
상대의 감정과 감각을 조종할 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의 서열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는 ‘눈물의 부채’의 능력을 사용했다.
위리 가문의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감각이 통제되었다.
시각도, 후각도, 청각도, 모든 감각이 통제된 것.
“음?”
“뭐지?”
“피곤했나?”
병사들은 고개를 갸웃했을 뿐이었다. 정말 짧은 시간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그게 수상한 일이라는 것을 눈치채면 귀찮아졌기 때문에 그리한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라 해도 몰로가 성에 침입하여 마수가 있는 곳까지 가는 건 충분했다.
평소 위리가 중요한 것들을 놓아두는 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그곳은 성의 5층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그리고 그 보물의 방의 보안이 그리 철저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군! 멍청한 위리 놈.”
보물의 방의 잠금장치는 자물쇠 하나뿐이었다. 그는 자신 옆의 집사를 보았고, 집사는 품에서 철사를 꺼내 자물쇠를 열었다.
찰칵.
자물쇠가 열렸다.
그들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그 안에는 이런저런 귀중한 것들이 가득했지만, 정작 값나가는 아티펙트는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벽에 제대로 놓여 있는 것들은 투박하면서도 잘 만들어진 무기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무기들 밑에는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바포메트의 뿔을 찍어 버린 도끼] [아바돈의 날개를 베어 버린 검] [아가리아의 머리를 깨어 부순 메이스]그것만 봐도 위리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이 전투에 미친 새끼.”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서둘러 마수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것들을 헤치며 찾던 끝에 드디어 마수를 발견했다.
그건, 목걸이였다.
그 목걸이는 아공간 목걸이였고, 목걸이의 펜던트 안에 수많은 마수가 들어 있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유용한 물건들을 어둠의 족속들도 즐겨 사용하고 있었다.
“흐흐흐. 찾았다.”
저벅, 저벅, 저벅.
그때 그의 뒤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몰로는 뒤를 돌아보았다.
보물의 방 앞에 서 있는 상처투성이의 남자.
위리였다.
“……!”
놀란 몰로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을 얼른 뒤로 숨기며 말했다.
“아, 미안. 열려 있어서 나도 모르게…….”
“연기하는 거 티 난다.”
“연기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미안하지만.”
위리는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그 안에 있던 마수는 여기로 다 옮겼어.”
“……!”
그 말에 몰로는 자신이 들고 있던 펜던트를 보며 물었다.
“거, 거짓말! 아니, 내가 마수를 노린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네가 마수를 잃어버렸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라?”
“…….”
몰로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곳에 올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건 당연했다.
‘그런데 소문이 났다고? 벌써? 누구냐? 누가 소문을 낸 것이지? 그럼 왕도 알고 계시는 건가?’
몰로는 초조해졌다.
그때 위리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집사가 외쳤다.
“아닙니다! 제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아는 자는…… 컥!”
순간, 그를 향해 위리가 주먹을 휘둘렀다.
“시끄럽군.”
쾅-!
위리의 주먹에 집사의 몸은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힘없이 늘어졌지만, 몰로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번 집사는 꽤 쓸 만했는데. 아깝네.’
아무래도 다른 집사를 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보다, 문제는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인데…….’
그때 위리가 말했다.
“몰로, 내 동족이여.”
“…….”
“왕의 용맹한 전사였던 네가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비열해진 것이냐?”
“변하지 않으면?”
몰로가 이를 갈았다.
“나는 어비스에 처박혔을 때부터 변하기 시작했어.”
그는 소리쳤다.
“우리는 왕을 따랐다. 빛나는 왕을 따라 거사에 가담했지. 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건 뭐지?”
“…….”
“어비스에 처박혔다. 그리고 빛나는 이름 역시 잃어버렸지. 우리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지?”
위리가 말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그것 가지고 징징대지 마라.”
“그래, 싸움만 아는 네 녀석은 그저 싸울 수만 있다면 상관없겠지.”
분노 가득한 몰로의 말에 위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렇게 인간이 미워서 그런 짓을 한 거냐?”
그들이 빛나는 왕을 따라 거사를 일으킨 이유.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다.
“아, 그거?”
몰로는 어깨를 으쓱했다.
“맞아. 인간이 미웠어. 그 멍청한 것들 때문에 우리가 이 꼴이 된 거니까. 그래서 인간의 아이를 산 채로 태워 바치도록 유도했지.”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나중에는 맛있더라고.”
“…….”
위리의 몸에서 오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말 변했구나. 내가 알던 네가 아니군.”
“네 말대로, 나는 네가 알던 내가 아니다.”
화아악-!
몰로의 몸에서도 오러가 일어났다.
“일이 이렇게 된 김에, 너를 꺾어서 내 서열 아래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쾅-!
순식간에 그 둘은 부딪혔다.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며 위리의 성이 부서졌고, 그 틈으로 위리와 몰로가 튀어나왔다.
콰과광-!
콰앙-!
그 격돌은 주변을 초토화시켰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는 황폐한 곳이었으니까.
몰로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어째서! 어째서 정상적으로 싸울 수 있는 거지?”
몰로는 이미 처음부터 ‘눈물의 부채’의 능력을 사용하여 위리의 감각을 마비시켜 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위리는 처음부터 감각이 통제된 적이 없다는 듯이 싸우고 있었다.
콰직-!
위리의 주먹이 몰로의 얼굴에 박혔다.
그와 동시에 위리의 감각을 통제했던 힘이 약해지며, 통제가 풀렸다.
“아, 이제야 네놈 얼굴이 좀 보이네. 어떤 표정일지 상상할 수는 있었지만.”
“어, 어떻게!”
“네 이블 웨폰은, 전투 감각은 건드리지 못하더라?”
“크윽!”
“그럼 좀 맞자.”
콰직! 콰직! 콰직!
위리의 주먹이 몰로를 향해 날아들었고, 결국 몰로는 온몸의 뼈가 부서진 채 바닥에 쓰러졌다.
위리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만약 네가, 비열한 수를 쓰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이런 꼴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크윽!”
“그리고.”
위리는 몰로가 들고 있던 목걸이형 아티펙트를 집으며 말했다.
“마수는 아직 여기에 있다. 옮겼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
“그럼, 죽어라.”
콰직-!
위리의 발이 몰로를 짓밟았고, 몰로는 죽었다.
하지만 어둠의 족속은 죽는다고 해도 그게 죽음을 뜻하지 않았다.
어차피 몸이 복구되면 다시 깨어나니까.
‘이 정도면, 반년 정도는 누워 있겠지.’
마음 같아서는 정수를 빼앗아 진정한 의미의 죽음을 주고 싶었다.
‘그게 저 녀석에게도 좋은 일이겠지만.’
그건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이다.
그는 마수가 담긴 펜던트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늦었으면 잃어버릴 뻔했군.’
왕은 그들에게 마수를 선물로 주었지만, 그건 정말로 그들을 위해 준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마수를 잃어버렸다면 그걸 빌미로 그 역시 숙청을 당했을 터.
왕홀의 가문을 숙청할 적당한 명분이 없었으니 이런 식으로 명분을 만들기 위함일 수도 있었다.
“몰로, 네가 변한 것처럼 왕 또한 변했다.”
죽음을 겪지 않아도 되는 왕은, 죽음을 택했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나 역시, 변했다.”
위리는 몰로와 집사를 몰로의 성으로 돌려보내라고 명했다.
그리고, 부서진 성안으로 들어가며 자신에게 도둑을 조심하라고 해 준 소녀를 떠올렸다.
언젠가 그 소녀와 비슷한 여자를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그게 언제였는지, 어떤 여자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보답은 해야겠지. 뭘 좋아하는지 물어봐야겠어.”
.
.
.
그리고.
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가 있었다.
그는 턱을 긁적이며 그 모습을 보다가 순간, 사라졌다.
그곳에는 짜장면 소스 냄새만이 남아 있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49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