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51
50화. 거물급 아우 (3)
이신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제로급 각성자라는 것을 아는 자는 현재로선 윤한종과 강 여사뿐이었다.
그런데 그걸 알고 있다니!
‘블랙맨인가? 아니면 타국의 각성자? 은탑이나 정부의 각성자는 틀림없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강소에게서는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블랙맨의 불쾌한 기운도, 각성자들의 맑은 기운도, 아니 살아 있는 사람의 기운 자체가 말이다!
“당신은 누구지?”
순식간에 이신의 눈매가 매서워졌고, 살기를 내보였다.
“인간적으로 살기는 거둡시다.”
그의 살기는 순식간에 강소의 기운에 눌려 버렸다. 그 여파로 이신의 몸이 비틀거렸다.
“큭! 다, 당신은 대체…… 누구?”
“제 이름은 강소라고 합니다.”
문득 이신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생각이!
“설마 당신, 제로급 각성자입니까?”
“뭐, 그렇게 부르기는 하더군요.”
“……하지만.”
이신은 말을 이었다.
“그걸 어떻게 증명…….”
쾅-!
강소는 난데없이 문 앞에 나뒹구는 바위들 중 하나를 쳤고, 그 바위에는 주먹 자국이 찍혔다.
이신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명정심법을 적은 노트에도 찍혀 있던 주먹 자국이었으니까.
자신 앞의 남자가 바로 그 제로급 각성자였다.
“아무튼, 지금은 급하니 가면서 이야기하죠.”
이신이 물었다.
“왜입니까?”
“뭐가 말입니까?”
“그동안 그렇게 꼭꼭 숨어서 정체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는데, 왜 저에게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도움을 청하느냐는 겁니다. 당신의 능력이라면 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세간의 관심이 부담스럽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죠. 그리고 계속해서 미지의 제로급 각성자로 남는 건 이 세상에 혼란을 주는 것 같고 말입니다.”
“즉 대역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이신은 아까 명산 아트홀로 가기 전에 들었던 강소의 그 대답으로, 강소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걸 기반으로 조심스레 거래를 걸기 시작했다.
이 거래의 목적은 강해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신은 강소의 강함을 알 수 있었다.
제로급인 자신의 살기를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자연스레 눌러 버린 것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정체가 세상에 알려져서 과도한 관심을 받는 것이 싫으십니까?”
“그렇습니다.”
강소는 순순히 대답했다.
“대우받는 건 좋아도, 대우받으며 산다는 건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더군요.”
그건 이신 역시 동감하는 바였다.
“그렇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제가 귀찮은 일들을 대신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신 전면에 나서 드리겠습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쪽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겁니까?”
“저를…….”
털썩.
이신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제, 제자라고요?”
강소는 당황했다.
설마 이런 걸 요구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제자라니! 저는 제자 같은 거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제자가 되어서 뭘 얻는다고 제자가 되고 싶다는 겁니까?”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강하지 않습니까? 명정심법을 익히면 더 강해질 것이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강소의 말에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당신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아직 이 대한민국을 지키기에는 턱없이 약할 뿐입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에 말입니까?”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마수와 게이트 그리고 강대국들에 의해 불안한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합니다.”
“…….”
강소는 이신을 보았다.
그의 눈에는 간절함이 있었다.
“대한민국을 왜 지키고 싶은 겁니까?”
“그야 물론 제가 태어나고 자란 제 나라니까요.”
“정말 그 이유 때문입니까?”
“…….”
망설이던 이신이 대답했다.
“그리고…… 이 대한민국에는 제 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제 친구들이 있고…… 그리고 저와 함께 싸웠던 동료들이 있고…… 이 나라가 위험해지면 그들 역시 위험해지는 것이니…….”
강소는 이신을 보며 생각했다.
‘바른 사나이인가?’
이신이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은 이유는, 이른바 정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강소가 힘을 사용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했다.
이 땅에 유순태 가족이 살고 있으니까.
자신을 이 땅에 정착하게 해 주고, 이방인으로 살지 않게 해 준 그들이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자를 내세운다면, 나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겠지? 또한 여차할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이자가 더 강해져서 안전한 세상이 되면 순태의 가족들도 더 안전해지겠지.’
강소는 이신에게 물었다.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네, 저는 서른두 살입니다.”
강소보다 세 살이 적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 살에 꼬맹이도 아니고 서른두 살짜리 다 큰 제자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부담스럽군!’
하지만 안 된다고 하기에는 이신의 눈이 너무 간절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강아지 같았다.
“그러면…… 험험, 제자 말고 동생은 어떻습니까?”
“네? 동, 동생 말입니까?”
강소가 말을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자는 부담스러워서 말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그쪽의 수준으로는 매일 가르침을 받는다고 해도 소용은 없을 겁니다. 중요한 건 깨달음과 자신의 수련이니 조언만 조금 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즉 자신을 지도해 준다는 뜻이었다.
이신은 넙죽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형님!”
“넉살도 좋습니다. 그렇게 금방 형님이라 부르다니.”
강소의 말에 이신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동생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리고 말도 놓으시고요.”
자신 앞의 이신은 마치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는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풋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그렇게 하지.”
그렇게 강소는 거물급 아우를 얻었다.
* * *
다음 날 아침.
뉴스와 신문은 일제히 어젯밤 있었던 명산 아트홀에서의 테러 미수 사건을 보도했다.
“……하여, 이신 헌터가 그들을 제압하여 무사히 아무런 사상자 없이…….”
“2대 붐버맨이라 밝힌 블랙맨은…….”
그 뉴스를 보며 강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때 유순태가 그에게 물었다.
“강소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일 말이지.”
그가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도 있었지?”
“…….”
강소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유순태도 눈치챈 것 같았고, 또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기에는 양심이 찔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날 늦게 도착했군.”
“……그건 미안하다.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는데 중간에 일이 생겨서.”
유순태의 물음에 답한 것으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다.
“그런데 네 이름은 한 글자도 안 나오네.”
아직 강소의 정확한 실력을 모르는 유순태는, 그가 우연히 이신을 만났고 이신을 도와 활약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 네가 속상한 표정인데?”
“그야 물론 자신의 전공을 누군가 가로채면 기분 나쁜 것이 당연…… 아, 혹시 네가 부탁했냐?”
그제야 유순태는 강소가 처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는 다 누려 봤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은 일이 많았다.”
그리 말하면서 자신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강소는 피식 웃었다.
“맞아. 내가 부탁했지. 나는 뉴스나 신문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것이 싫으니까 나 대신 전면에 나서달라고.”
“그랬군.”
“그러니까 괜히 오해해서 욕하거나 그러지 마. 그 녀석, 착한 동생이니까.”
“응? 동생?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때였다.
딸랑.
“유 사장님! 음료 배달 왔습니다!”
문이 열리고 40대로 보이는 깔끔한 인상의 남자가 들어왔다.
“오 사장님!”
유순태와 강소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아 주었다.
그는 양춘각에 음료와 주류를 납품하는 오국천이었다.
오국천은 납품서를 내밀며 말했다.
“납품서 확인하시고요. 이대로 드리면 되죠?”
“네.”
그는 트럭에서 음료와 주류들을 꺼내서 문 옆의 공간에 쌓아 놓은 후 빈 병이 담긴 박스를 트럭에 실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강소는 오국천에게 물 한 잔을 내밀었다.
“아, 고맙습니다.”
오국천은 물을 들이켜고, 컵을 돌려주며 말했다.
“요 앞에 새로 서점이 오픈한다던데 아십니까?”
“서점이요?”
“저기 말입니다.”
그의 말에 강소와 유순태는 밖으로 나가 오국천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정말이었다.
이른 아침까지는 보지 못했는데, 빈 상가였던 그곳의 쇼윈도에 정사각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달빛책방이 곧 오픈합니다.
* * *
“대체 무슨 생각이야? 책방이라니?”
북한산에 있는 꽤 넓고 큰 고급주택.
이신의 집이었다.
응접실에는 이신과 각성자 협회장 윤한종이 마주 앉아 있었다.
딸깍.
이신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저 책방 열면 안 되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닌데. 갑작스럽게 책방이라니 당황스러워서 말이지.”
“이제 완전히 기운을 다스릴 수 있게 되니까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이신은 말을 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방 주인이 꿈이었거든요.”
“이유가 그것뿐인가?”
“네.”
윤한종은 수상하다는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저건 뭐냐?”
거실의 유리 진열장 안에는 네모난 돌덩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돌덩이에는 주먹 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 그거 제 보물입니다!”
“보물? 혹시 수석을 수집하는 취미라도 생긴 거냐?”
“전 그런 취미 없습니다. 그리고 저건 수석보다 훨씬 귀한 겁니다.”
윤한종은 그 돌덩이를 받치고 있는 나무에 새겨진 글자를 보았다.
20××년 5월 28일.
어제 날짜였다.
그리고 그 주먹 자국은 어딘가 많이 낯익은 자국이었고 그걸 본 윤한종은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그런데 그거 하나 물어보려고 찾아오신 건가요?”
이신의 물음에 윤한종의 시선은 다시 그에게 향했다.
“겸사겸사.”
윤한종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네가 제로급이 되었다는 건 다음 달에 밝힐까 한다.”
“다음 달이면, 6월이요?”
“호국보훈의 달이니까. 현충일 전날에 밝힐 예정이다.”
“뭐, 의미 부여도 되고 좋네요. 하지만 그거 그렇게 일찍 발표해도 되는 건가요?”
“왜?”
“6월 말에 한미중 헌터 특별 훈련이 있잖아요.”
“그렇지.”
“만약 다음 달 초에 제가 제로급이 되었다고 하면 분명 미국과 중국에서는 제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려고 각 나라의 제로급 각성자를 파견할 텐데요.”
윤한종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겠지. 지금 새로운 제로급 각성자의 등장은 그들에게 있어 썩 반가운 일은 아닐 테니까.”
“……뭐 어쩔 수 없죠. 감수할 수밖에요. 그렇다고 계속 숨기는 것도 모양새가 웃기잖아요.”
윤한종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열심히 사부님께 배우도록 해라.”
“사, 사부님이라니요!”
윤한종의 말에 이신은 당황했다. 자신은 그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않았는데…….
윤한종은 피식 웃었다.
“내가 널 알아 온 지 벌써 십 년이다. 내가 너를 못 읽을 것 같냐?”
그랬다. 윤한종은 다른 의미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설마 그걸로 그분께 뭔가를 요구한다든지 하는 건 아니시겠죠?”
“쯧쯧. 넌 내가 바보로 보이냐? 그분이 살린 생명과 앞으로 살릴 생명을 생각하면 감사의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무슨 그런 막말을 하는 거냐?”
“그, 그렇죠…….”
“비밀로 해 줄 테니까, 열심히 수련해.”
무림에서 온 배달부 5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