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573
572화. 모의 전투 훈련 (4)
한적한 공원.
사람들이 오가며 단풍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격변의 시대 이전에는 10월 말은 되어야 예쁜 단풍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격변의 시대가 오면서 계절 간의 변화는 극명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름처럼 더웠는데,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고 순식간에 단풍이 들곤 했다.
이제 곧 급격하게 겨울이 올 터.
맹철영은 공원 벤치에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김명희의 말을 떠올렸다.
“맹철영 씨는 고의로 일에 관여된 게 아닌 점, 그리고 이 일을 반성하고 있다는 점과 또한 레드 풀 문을 제조 및 유통하는 일당을 검거할 수 있는 데 큰 기여를 하셨기에 징역 3년 형이 내려졌습니다.”
“그렇군요.”
이미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생각보다도 훨씬 가벼웠다.
각성자 협회는 각성자들에 대한 처결권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게 각성자 협회의 힘이자, 존재 이유였다.
일주일에 두 번, 각성자 협회 본부의 과장 이상과 헌터 총회 및 포터 총회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통해 그들의 처벌이 결정되었다.
맹철영은 문득 김덕진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럼 김덕진…… 그자는?”
“마약의 제조 및 유통죄는 상당한 중죄입니다. 게다가 그 마약으로 인해 이미 많은 각성자들이 미쳐 버렸죠.”
김명희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특별 무기징역 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아…….”
특별 무기징역 형이 뭔지는 맹철영도 알고 있었다.
과거 폐지 수순으로 가던 사형제도가 부활했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마수로 인해 인적 자원도 물적 자원도 모두 부족한데 범죄자를 수용하느라 그것들을 사용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타락한 각성자들, 블랙맨으로 인해 안 그래도 마수 때문에 힘든 이들은 많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고, 그 증오심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도 사형제도는 부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 사람들은 한 가지 생각에 다다랐다.
“저들에게 사형은 너무 편한 형벌 아니야?”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특별 징역형이다.
마정석으로 인해 이전에는 상상만 했던 것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고 그걸 감옥에 적용한 것.
수감자는 감옥에서 편히 있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괴로움이 순차적으로 가해졌으니까.
인권 문제가 있겠지만, 블랙맨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것이 전 세계적인 방침이었다.
그리고 특별 무기징역이라는 건 그 괴로움을 죽을 때 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것.
“저, 저는 특별 징역형 아니죠?”
“네.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순식간에 땀이 쭉 찼다.
김명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문을 열었다.
“그럼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 앞으로 착하게 사세요.”
“……네?”
순간 맹철영은 그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 징역 3년이라면서요?”
“아! 중요한 걸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
“집행유예 5년이에요.”
“저, 정말인가요?”
“네. 강소 님께 고마워하세요.”
그러고 보니 강소가 형이 경감될 수 있도록 설득하느라 애를 썼다고 했다.
“네, 그래야겠네요.”
가을 하늘을 보던 맹철영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고맙다고 인사는 해야겠지.”
* * *
그 시각.
양춘각은 점심 장사를 마무리했다.
“수고했다.”
강소의 말에 유순태가 주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수고는 뭘, 네가 더 수고했지.”
양춘각에 직접 오는 손님도 많았지만, 배달을 시키는 손님이 더 많았다.
“말했잖아. 지금보다 배달이 더 많아져도 나는 상관없다고.”
“하하하. 그랬지.”
“하지만 이번에 모의 전투 훈련에 참가하면서 느낀 게 있다. 그건 배달부가 나 말고 하나 더 있어야 한다는 거다.”
강소는 말을 이었다.
“나한테 일이 생길 때마다 가게 문을 닫을 수는 없잖아.”
“…….”
유순태는 대답하지 못했다.
매출의 반 이상이 강소의 배달 덕분인데, 그걸 배려하지 않는 것도 염치가 없고…….
“그래서 말인데, 배달부를 하나 더 구했으면 한다.”
“배달부를?”
“가까운 곳 위주로 배달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될 것 같다. 먼 곳은 내가 가면 되니까.”
그 말에 유순태와 허만철 그리고 황진혁과 김지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되겠네요.”
“솔직히 그 많은 배달을 강소 형님 혼자 배달하는 건 좀 그렇죠.”
강소가 말했다.
“대신 내 월급을 좀 깎아도 된다.”
그 말에 유순태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야! 네 월급을 왜 깎아? 그런 소리는 절대 하지 마.”
“하하하.”
“그럼 배달부 구한다고 써 붙여야겠군.”
그 말에 강소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강소는 맹철영에 대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런 정보를 알아야 하는 건 고용하는 자의 권리라고 생각되었으니까.
그리고 유순태는 강소가 예상했던 반응을 보였다.
“네가 추천하는 사람이잖아. 그럼 별문제 없겠지. 우선 데리고 와 봐. 면접은 봐야지.”
“이미 오고 있다.”
“응? 네가 부른 거야?”
“그건 아니다.”
강소의 대답에 김지은이 말했다.
“고맙다고 인사하러 오는 게 아닐까요?”
잠시 후.
딸랑.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키는 180cm 정도 되는 짧은 머리의 평범한 남자였다.
“저,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 강소 님 계십…….”
“반갑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맹철영이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얼굴이 한결 좋아 보이는군요.”
“강소 님 덕분입니다.”
어느새 강소를 강소 님이라고 부르게 된 맹철영이다.
그는 맹철영에게 자리를 권했다.
“커피 한 잔 하시겠습니까?”
“아, 네.”
강소는 직접 커피를 타서 주며 그 앞에 앉았다.
“김명희 과장님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아, 네…….”
그때 맹철영은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과, 과장님이요?”
“네. 김명희 과장님이요. 왜 그러십니까?”
“그분이 과장님이셨군요. 엄청 무서운 분이셨네요.”
강소는 잘 몰랐지만, 사실 각성자 협회 과장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각성자 협회 본부, 그러니까 은탑의 과장들은 상상 속 존재라고 말할 정도.
하지만 양춘각에서는 예외였다.
강소 덕분에 과장들이 양춘각에 자주 방문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아무튼, 제가 이렇게 찾아뵌 것은 정식으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말에 뒤에 있던 김지은이 빙긋 웃었다.
그녀의 짐작대로였기 때문이다.
원래 퇴근해야 할 시간이지만, 궁금해서인지 아직 가지 않고 있었다.
“아닙니다. 맹철영 씨께서 용기를 내 주신 덕분입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양춘각 안으로 유하영이 들어왔다. 유치원이 끝나고 하원한 것.
요즘 대부분의 스케줄이 끝나면서 유하영은 다시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잘 다녀왔어?”
그리고 유순태는 하태복과 차현태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그때,
“어? 혹시 하영이?”
맹철영의 말에 강소가 물었다.
“하영이를 아십니까?”
“대한민국에 하영이를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사실 제가 초코빵이거든요.”
“그러셨군요.”
“그러고 보니 하영이 아버지가 요리사에…… 중국집…….”
유하영과 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팬클럽 사이트에 양춘각이라는 상호는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맹철영은 이곳이 유하영의 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던 것.
“짐작하는 바가 맞습니다.”
“아!”
그때 유하영이 맹철영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어, 어어, 아, 안녕.”
유하영은 자신의 토끼 가방 안에서 초콜릿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이거 먹어요.”
“고마워.”
그리고 유하영은 2층으로 쪼르르 올라갔다.
그걸 본 유순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끄덕임에 강소는 맹철영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죠. 가진 능력은 달리는 능력뿐이니까요.”
“그러면, 여기는 어떻습니까?”
“네?”
“사실 저희 양춘각에서 배달부를 한 명 더 고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맹철영 씨에게 저희 양춘각에서 배달하시는 건 어떤지 제안하는 겁니다.”
“그럼 저야 좋죠. 하지만 저는…….”
그는 망설였다. 자신은 전과자였으니까.
강소가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이미 유 사장님께 전부 말했습니다.”
유순태도 그 옆에서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강소가 추천하고 또 하영이가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 합격이지요.”
“월급은 지금까지 받던 것보다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나머지는 여기 사장님과 이야기하시면 됩니다만, 이곳에서 배달하시기 전에 저에게 개인적으로 훈련을 받으셔야 합니다.”
“후, 훈련이요?”
“네. 배달을 위한 훈련입니다.”
명색이 양춘각의 배달부이다.
‘C급의 실력으로는 제 시간에 배달하기는 힘들지.’
사실 C급만 되어도 중상위권에 속한 실력자라고 할 수 있었지만 강소의 눈에는 한참 부족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강소의 훈련을 거치면 어느 정도 배달 좀 하는구나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테니까.
“전에 모의 전투 훈련 때 저에게 무척 빠르다고 하셨죠?”
“네.”
“저에게 훈련을 받으면 맹철영 씨도 그렇게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물음에 맹철영은 고개를 끄덕였고, 강소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계약서를 작성할까요?”
그렇게 양춘각은 새로운 배달부를 구했다.
* * *
어비스.
왕은 옥좌에 앉아 있었다.
툭, 툭, 툭.
그는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들겼다.
“벨부가 실종되었다라…….”
왕은 자신의 권능으로 벨부의 실종을 알아차렸다.
“쯧!”
그는 혀를 찼다.
하지만 그 이유가 벨부의 실종이 안타깝거나 슬퍼서는 아니었다.
단지 짜증 나고, 아까울 뿐.
이내 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도 따르지 못하게 한 그는 홀로 지하로 내려갔다.
곧 도착한 곳은 자신의 본체가 갇혀 있는 수정이 있는 방이다.
눈을 감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아직 수정은 반이나 남아 있었다.
그는 예언자 가문의 가주가 했던 예언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정 안에 갇힌 자여, 수정 안이 가장 안전한 곳이니 굳이 벗어나려고 애쓰지 말아라. 네가 수정 안에서 벗어나는 그날에 그가 준비한 가장 날카로운 창이 네 가슴을 꿰뚫으리. 그날 너는 달이 그림자에 가려진 것을 보리라.”
그 예언 때문에 월식 전에 수정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월식 전에 수정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다음 월식 때까지는 아무 일 없다는 뜻이지.’
그는 일부러 수정을 녹이지 않았고,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월식이 지나갔다.
“자네가 한 마지막 예언은 틀렸군.”
예언가 가문의 가주는, 왕이 보낸 수하의 손에 죽었고 그자의 정수는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이제 월식이 지났으니, 미뤄 두었던 일을 해야 할 때다.
왕은 자신의 품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그 병을 기울여, 수정에 부었다.
치이이익.
액체가 흘러나왔고 그 액체가 수정을 녹였다.
쩍-!
쩌저적-!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자신을 억겁의 시간 동안 봉인해 왔던 수정이 다 녹아 버리는 날, 자신은 다시 저 높은 곳으로 향하리라.
“그나저나, 왜 시키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지.”
어둠의 족속들에게 두 번째 인간계에서 절망의 구슬을 모아오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그들이 보내오는 절망의 구슬은 왠지 점점 그 양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게 신경 쓰였다.
왕은 자신의 본체가 있는 방에서 나와, 옆방으로 향했다.
그곳 역시 왕만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다.
왕은 방 한가운데에 놓인 자신의 이블 웨폰, 암흑의 창을 바라보았다.
검붉은색의 이블 웨폰, 암흑의 창은 현재 강화 중이었다.
그리고,
강화의 재료는 바로 어둠의 족속의 정수이다.
왕은 창이 놓인 곳 앞에 있는 제단에, 반역죄를 물어 처분한 어둠의 족속에게서 획득한 정수를 놓았다.
우우우웅-!
곧 제단이 진동하며, 암흑의 창은 정수 안의 오러를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왕은 텅 비어 버린 정수를 다시 집어 들었다.
텅 비어 버린 정수라 해도 마수를 만드는 데 중요하게 쓰였다.
몇몇 이들은 마수를 만드는 재료가 어둠의 족속의 정수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빈껍데기 정수로 만들어지는 존재가 마수였다.
‘비어 버렸다고 해도, 상당한 힘이 남아 있으니까. 이 정도 크기면 못해도 백 마리의 마수는 만들 수 있겠군.’
왕은 웃었다.
정수 속 오러로 자신의 이블 웨폰을 강화한다.
텅 비어 버린 정수로 마수를 만든다.
마수를 두 번째 인간계에 보내어 절망의 구슬을 얻는 데 사용한다.
절망의 구슬로 자신의 본체를 봉인한 수정을 녹인다.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완벽한 선순환이었다.
물론, 절망의 구슬을 모으는 콜렉터들에게는 절망의 구슬이 게이트를 여는 데 사용된다고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다른 이들은 분명 문제를 제기할 터니, 그렇게 설명한 것.
그리고 멍청하게도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사실 게이트를 여는 건 왕의 권능일 뿐이다.
물론 사실을 안다면, 가만히 있을 자들은 없을 것이다.
왕이 자신의 신하와 백성을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건 왕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들은 자신의 도구였을 뿐이다.
그는, 루시퍼는 처음부터 빛나는 자리를 다른 이들과 나눌 생각이 없었으니까.
무림에서 온 배달부 57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