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648
5화. 일어나지 않은 일 (5)
아침이었다.
성녀는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녀를 비롯하여 에어리어 거주민들의 잠자리는 얇은 온열 장판이었다.
마정석으로 작동되는 것이라서 다행이었다.
만약 격변의 시대 이전처럼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에너지원을 구하지 못해 상당수가 동사했을 터였다.
예전에 쓰던 침대 같은 건 옛날이야기에서나 나오는 물건이었다.
매트리스 속 스프링은 제법 질이 좋았기에 전부 뜯겨 전쟁을 위한 물자로 사용되었고 웬만한 나무는 땔감으로 사용되었다.
라텍스나 메모리폼이 들어 있는 침대는, 이미 삭아 버려 있으나 마나였다.
똑, 똑.
방 한쪽에서는 간이정수기를 통해 정수된 물이 플라스틱 양동이에 한 방울씩 모이고 있었다.
성녀는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물컵을 꺼내어 모아진 물을 한 컵 떴다.
하지만 그 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건 위험했다.
그녀는 목에 걸린 아티펙트로 물을 정수 처리한 후 그걸로 얼굴을 닦고, 양치를 했다.
그리고 남은 물은 다시 간이정수기 위에 부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그때 성녀의 방에 쳐진 천을 걷고 송정훈이 나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성녀와 송정훈은 서로 성별이 달랐지만, 그는 성녀의 호위였기에 이렇게 같은 방에서 생활했다.
그건 자경단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밀착해서 호위하기 위함이었지만, 사실 거주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가 컸다.
송정훈 역시 간이정수기의 물을 떠서 세수와 양치를 했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마정석으로 움직이는 시계는 새벽 6시를 가리켰다.
“라디오를 켤까요?”
“네.”
송정훈은 마정석으로 작동하는 라디오를 켰다.
[치, 치칙…… 안녕하세요. 여러분. 간밤에 평안하셨나요?]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조현익이라는 남자의 목소리에 성녀는 미소 지었다.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주는 목소리이다.
그녀가 알기로 그는 JW그룹이라는 피혁제품을 주로 만드는 회사 사장의 막내아들이다.
그리고 JW그룹은 회사가 사라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존경받고 있는 회사였다.
대악마 루시퍼가 침공했을 때 마수 가죽 가공법을 아낌없이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구했다.
조현익은, 노래에 재능이 있었을 뿐 아니라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그 음색 역시 좋았다.
그래서 그 재능을 살려 마수 가죽 가공 공방을 하면서도 라디오 DJ로 활동하고 있다.
[에어리어 밖에는, 간밤에 눈이 내렸다고 하네요. 치지직…… 그래서 다행이에요. 우리의 발자국을 다 지워 주니까요. 치칙…… 그럼 아침을 알리는 첫 곡, ‘그댄 너무 아름다워’를 들려드리겠습니다]라디오는 에어리어에서 참으로 유용했다.
이런저런 소식을 알려 주기도 하고, 또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다독여 주기도 했으니까.
물론 자경단장 성진호는 언론 통제를 위한 유용한 수단이라고 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
성녀의 눈에 갑자기 보이는 장면이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윽!”
그녀는 비틀거리자, 송정훈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성녀님. 괜찮으십니까?”
“아…….”
성녀는 전혀 듣지 못하고 있었다.
덜덜덜덜.
성녀의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송정훈은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송정훈은 그런 성녀가 걱정되었다.
간혹, 이렇게 온몸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주룩.
피눈물을 흘릴 정도로 끔찍한 미래를 봤다.
성녀는 숨을 헐떡였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송정훈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자경단장님을 뵈어야 해요.”
그 단호한 눈빛에 송정훈은 안 된다고, 좀 안정을 취하신 다음에 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모시겠습니다.”
.
.
.
잠시 후.
성녀는 자경단장실 앞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앞에 서 있던 이연곤의 물음에 성녀가 대답했다.
“자경단장님을 뵈어야 해요.”
“알겠습니다. 말씀드리지요.”
이연곤은 노크를 했고,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네.”
“성녀님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들어오세요.”
그 말에 성녀는 출입을 위한 절차를 밟았다.
1차 보안검색 후 이연곤이 말했다.
“2차 보안검색을 하겠습니다. 손을 주십시오.”
“죄송한데 이번에는 보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녀의 말에 이연곤이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절차입니다. 개인의 사정을 봐주다가는 애써 세운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합니다.”
성녀가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이번 기억은 좀 아플 거예요.”
그녀의 서글픈 웃음과 그 말에 이연곤은 성녀가 자신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보안검색을 꺼리는 게 아님을 알아차렸다.
‘이번에 보신 기억이 얼마나 끔찍하기에…….’
이연곤은 조심스럽게 성녀의 손을 잡았고, 방금 전 성녀가 봤던 것을 보게 되었다.
“헉!”
이연곤은 식은땀을 흘렸다.
평소 그가 성녀의 기억을 읽을 때면 슬펐다. 그렇기에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헉…… 헉…….”
충격으로 호흡이 가빠졌다.
가슴이 아프고 괴로워서 피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탁-!
성녀가 자신의 손을 억지로 빼냈다.
그 바람에 성녀의 손에 상처가 났지만 이연곤의 능력발동은 멈추었다.
“괜찮으세요?”
“…….”
하지만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잠시 후, 겨우 진정한 그는 침을 삼키고 성녀에게 물었다.
“제가 본 게…….”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것 때문에 자경단장님을 뵈려는 거예요.”
“…….”
“이만 들어가 봐도 될까요?”
“……들어가십시오.”
성녀가 자경단장실로 들어가고, 옆에 있던 남자가 이연곤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저씨?”
“어…….”
“평소에는 그냥 눈물만 좀 흘리고 마시더니…….”
그 말에 이연곤은 대답하지 않고 쓰게 웃었다.
아직도 눈앞에 방금 봤던 장면이 어른거렸다.
아침부터 술이 고팠다.
그리고 이연곤은 그제야 깨달았다.
성녀의 눈 밑이 붉었던 건 피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 * *
성녀가 자경단장실에 들어가자, 성진호가 그녀를 맞아 주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성진호는 이미 깨어서 단장을 마친 상태였다.
단장이라고 해 봤자 물로 세수하고 양치하는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아침부터 어쩐 일이십니까?”
성진호의 물음에 성녀가 말했다.
“방금 미래를 봤어요.”
“그러셨군요.”
“제가 의도한 게 아니었어요. 그냥 보이더라고요.”
그 말에 성진호의 얼굴이 굳었다. 전에 성녀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럼 미래를 보겠다고 마음먹으면 보이는 겁니까?”
“맞아요. 미래를 볼 때 이렇게 하면 어떤 미래가 될까 하는 식으로 미래를 보는 거죠.”
“그렇게 해서 최적의 미래를 도출해 내는군요.”
“네. 하지만 제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경우, 그건 이미 일어난 과거 혹은 반드시 올 미래예요.”
“반드시 올 미래라면?”
“그 미래를 피하려고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피할 수 없는 미래예요.”
“…….”
“몇 번 그런 미래가 있었고, 피하려고 발버둥도 쳐 봤지만…… 안 되더라고요.”
그 말을 떠올리며 성진호가 말했다.
“아, 앉으라는 말도 못 했군요. 앉으십시오.”
“네.”
성녀는 소파에 앉았고, 성진호 역시 그 앞에 앉았다.
“그래서, 저희에게 닥칠 미래는 무엇입니까?”
그 물음에 성녀가 대답했다.
“5차 대공습이에요.”
“네?”
그 말에 성진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단어는 모두에게 공포를 주었다.
3차에 걸친 대공습으로 인류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그리고 가장 피해가 컸던 4차 대공습.
그 4차 대공습의 피해 정도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3차 대공습으로 인해 해외로 통할 수 있는 모든 통신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대한민국에 있던 8개의 에어리어 중 단 3개의 에어리어만 남았다는 것이다.
용산 에어리어가 얼마 전 사라졌지만.
성진호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언제입니까?”
“12월 22일이요.”
“잔혹한 크리스마스가 되겠군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성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한 명이라도 더 살 수 있습니까?”
“확실한 건 모여 있으면…… 위험하다는 거예요. 문제는 지금은 겨울이고…… 사람들은 지쳤죠.”
성녀가 말을 이었다.
“저도 지쳤네요.”
그녀의 쓴웃음에 성진호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렇군요. 20년이면…… 많이 버틴 거죠.”
아주 오래전 대한민국에 S급 게이트가 역류했던 적이 있었다.
대격돌이라 불린 사건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죽었고, S급 게이트가 역류했던 장소는 죽음의 땅이 되어 버렸다.
문득 성진호는 그 전투에서 죽은 선배 우해인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자신보다 3년 먼저 각성자 협회에 입사한 선배.
그는 피투성이가 되어 성진호를 불렀다.
“그리고…… 크윽! 성진호.”
“네. 선배.”
“내 인벤토리는…… 허억, 너에게…… 으윽. 양도한다. 그러니까…….”
성진호는 그때 우해인 선배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알 것 같았다.
‘이 나라를 지켜. 그리고 명희를 잘 돌봐줘.’
하지만 성진호의 첫사랑이자 끝사랑 김명희는 죽었다.
자신은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
선배가 남긴 유언 중 한 가지를 지키지 못했으니, 다른 한 가지라도 지켜야 했다.
물론 윤한종의 유언도 있었지만 말이다.
성진호는 성녀를 보았다.
“성녀님께서는 약해지시면 안 됩니다. 이 영등포 에어리어의 정신적인 기둥이시니까요.”
“그런…… 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죠.”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영등포 에어리어의 정신적인 기둥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성진호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영등포 에어리어를…… 아니 대한민국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가 보죠.”
성진호는 권호를 불렀고, 그에게 말했다.
“가서, 서민혁 참모를 불러오도록.”
“알겠습니다.”
잠시 후, 서민혁이 들어왔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서민혁도 깔끔한 모양새였다.
“부르셨습니까?”
“네. 앉으십시오.”
그는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성녀를 보았고,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성녀 역시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
서민혁이 각성한 능력은 ‘기억의 서고’.
한 번 경험한 건 뭐든 기억했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전략을 짰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았다.
사람들은 그가 아버지를 닮아 머리가 좋은 거라고 했다. 그의 아버지 서봉근은 국방부에서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소속으로 근무했다.
물론 대외비였다.
서민혁은 아주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유치원 현장학습을 갔고, 그곳에서 함께 블랙맨에게 납치당했다.
납치범들은 아들을 인질로 하여 서봉근에게 기밀정보를 빼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봉근은 알았다.
기밀을 말해 봤자 자신들을 살려 두지 않을 것을.
서봉근은 아들과 탈출했고, 그 와중에 서봉근은 죽음을 맞이했다.
눈앞에서 하나뿐인 가족인 아버지의 죽음을 본 서민혁은 분노했다.
아직도 그는 차갑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날, 서민혁은 각성했다.
그가 각성한 능력과 그리고 그가 똑똑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성진호에 의해 길러졌고 그는 현재 성진호의 참모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서민혁의 물음에 성진호가 말했다.
“아무래도 조만간 5차 대공습이 있을 듯해.”
“5차 대공습…… 말입니까?”
“그래. 자세한 건 성녀님에게 듣도록 해.”
서민혁은 성녀를 보았다.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의 말에 성녀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러니까 12월 22일 새벽에 대공습이 시작돼요. 어둠의 족속들은 이번 공습으로 이 땅에 남은 모든 인간들을…… 인간들을…….”
성녀는 숨을 내쉬어 진정한 후 말을 이었다.
“없애려고 작심한 듯해요.”
“그렇군요.”
서민혁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 공습의 특이점은 무엇입니까?”
“핀포인트 공격이에요. 저들이 에어리어의 위치를 알아차렸거든요. 그러니까 이곳에 모여 있으면 모두 죽어요.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곳을 나가서 흩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 말을 들은 서민혁이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에어리어 거주민 모두 흩어지는 건 위험하죠. 저들이 눈치를 챌 테니까요.”
“…….”
그의 말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생존 확률이 높은 이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나머지는 이곳에서 마지막까지 항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누가 남을 것인지, 누가 떠날 것인지를 정해야 할 듯합니다.”
그 말에 성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우선 나는 남아서 미끼가 되어야겠군. 솔직히 이곳을 떠날 자들은 소규모로 팀을 이루게 될 텐데 그러면 자경단장은 더 이상 필요 없잖아.”
그의 말에 서민혁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군요. 자경단장님께서 남으시는 게 가장 좋기는 하죠.”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저 역시 남을 생각입니다. 이곳에 생존자가 남아 있다면 추슬러야죠.”
성진호와 서민혁은 마치 날씨를 이야기하는 듯이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게 너무 소름 끼쳐서 성녀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자신이 봤던 미래와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외전 1부 – 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