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653
10화. 감이 좋은 남자 (3)
유순태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귀가 멍멍했다.
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사막이었음에도 마치 물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신 차려!”
짜악!
순간 왼쪽 뺨이 화끈해지면서 퍼뜩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누군가 그의 뺨을 때린 것이다.
이미 샌드웜은 헌터들에 의해서 처리되었다.
하지만 죽거나 다친 이들은…….
“겨, 겨, 경석아!”
유순태는 박경석에게 달려갔다.
샌드웜은 박경석의 하반신을 먹어치웠다.
그 바람에 박경석은 아직 의식이 있는 상태로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파! 으아아악!”
“야! 박경석!”
“순태야. 나 아파…….”
박경석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프다고 했지만, 자신이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손을 잡아 주는 것뿐이었다.
“미안해. 너랑 같이 움직였다면 네가…….”
만약 그랬다면 박경석이 이런 꼴이 되지는 않았을 터.
유순태는 자책했다.
그때 여자 힐러가 다가왔고, 박경석을 살폈다.
유순태는 그녀에게 애원했다.
“겨, 경석이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그의 애원에도 힐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빨리 목숨을 끊어 주는 것뿐입니다.”
“네?”
유순태가 소리쳤다.
“어떻게 그래요? 제 친구인데! 제 친구인데…….”
“그러니까 더더욱 그래야죠.”
힐러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요? 너무 잔인해서요? 비인간적이라서요? 쯧쯧, 기본적인 짐꾼 교육을 받았으면 다 아는 건데 왜 이렇게 강짜를 부릴까?”
힐러가 못 박듯이 말했다.
“잊지 마세요. 이곳은 게이트 안이에요. 이곳은 밖의 세상과는 또 다른 법과 도덕이 있는 곳입니다.”
힐러는 박경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쓸데없는 대화를 하는 동안 친구분은 약 2분 동안 받지 않아도 될 고통을 느꼈군요. 진짜 고통스러울 텐데.”
유순태는 움찔했다.
탁-!
박경석이 유순태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말했다.
“순태야…… 그냥…… 그냥 죽여 줘.”
“경석아…….”
“나, 너무, 아파, 아프다고!”
박경석은 유순태의 손에 자신의 단도를 쥐여 주었다.
그건 이곳에 들어올 때 호신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용돈을 털어 구매했다.
하급 마수의 발톱 가루를 코팅한 단검이다.
“내가…… 스스로 죽고 싶어도, 손에 힘이 안 들어가…….”
아마도 과다출혈 때문인 듯했다.
“그러니까, 도와줘. 얼른…….”
유순태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곳은 게이트라는 것을.
그리고 게이트의 의미를.
끝까지 박경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게 오히려 친구를 힘들고 괴롭게 하는 것이다.
“미, 미안해.”
“제, 젠장…… 부모님한테 죄송하다고 전해 드…… 려. 그리고 내가 더 미안하다. 괜히 너를 끌어들여서…… 친구가 그러면 안 되는데.”
박경석은 숨을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너, 나밖에 친구가…… 없어서, 거, 걱정이다.”
“뭐, 뭐래…….”
“내가 기도해 줄게. 나보다…… 크윽! 나보다 엄청 좋은 친구가 생기도록, 나처럼 위험에 끌어들이지 않고…… 오히려 구해 줄 수 있는 좋은 친구…… 가 생기도록.”
박경석은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죽여 줘. 마지막 부탁이야.”
그 말에 유순태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단도를 들었다.
그때였다.
서걱-!
“……!”
유순태는 깜짝 놀라 두 눈을 치켜떴다.
친구의 목이 잘려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헌터 백수아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왜, 왜…….”
“아직 너는 친구의 피를 감당하기에는 어리니까.”
“…….”
“원망하고 싶으면 나를 원망해도 돼.”
그리고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힐러가 말했다.
“역시 백수아 헌터님은 사람이 너무 좋으시다니까.”
죽은 박경석은 더는 아프다고 소리치지 않았다.
소리치지 못하는 게 더 맞는 말일 테지만, 유순태에게는 그게 중요했다.
유순태는 백수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백수아 헌터님.”
그를 보며 헌터들은 긴장했다.
보통 이럴 경우 상대는 백수아에게 울며불며 난리 치는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유순태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유순태는 자신의 친구를 죽인 것에 대한 증오를 백수아에게 돌리지 않았다.
그는 증오해야 할 대상을 착각하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덕분에 제 친구가 편안해졌습니다.”
뚝, 뚜둑.
붉은 모래 위에 유순태의 눈물이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
그런 그를 보며 헌터들은 다시 봤다는 표정으로 유순태를 보았다.
“무슨 애가…….”
“너 열아홉 살 맞냐?”
그 물음에 유순태가 고개를 들었고, 대답했다.
“저, 사실 열여덟 살입니다.”
“뭐?”
“이번에 수능 봤다면서?”
유순태가 머리를 긁적였다.
“학교에 다시 들어갈 때 행정적인 착오가 있어서……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아…….”
그들은 납득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도 나이가 한두 살 적고 많아도 별 상관없이 어울렸다.
턱.
그때 그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올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언팀장 백신온이다.
“마음이 아플 텐데…… 장하구나.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이 어울릴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그는 힐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가 보는 건 기린 포터 길드의 팀장 최병백이었다.
“그리고 혹시 여기서 살아나가면, 정산 관련해서 억울한 일이 있을 거다.”
“네?”
“그리 되묻는 것을 보니 진짜 아무것도 모르나 보네. 아무튼, 나중에 연락처 줄 테니까 연락해라. 도와주지.”
유순태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박경석의 시신은 태워졌다.
게이트에서 시신을 매장하는 건 상당히 위험했다.
좀비가 되어 나타날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목을 자른 후 태워야 했다.
그렇게 박경석의 시신이 완전히 재가 되는 것을 확인한 후 재의 일부분을 챙겼다.
장례식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으득!
유순태는 이를 갈았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죽인 마수에 대한 증오가 거세게 타올랐다.
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유순태의 감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마수에 대한 복수심 때문인 듯했는데, 그 덕에 레이드 팀은 순조롭게 레이드를 진행할 수 있었다.
“드디어! 끝이다!”
“와아아아!”
헌터들은 물론이고 짐꾼들까지 만세를 불렀다.
보스를 죽이자, 그들 앞에 게이트를 나가는 출구가 생성되었다.
우선 짐꾼들이 마수 부산물을 짊어지고 게이트를 나갔다.
그리고 백신온이 먼저 나가고 헌터들이 나온 후 부팀장이 마지막으로 나왔다.
“드디어…… 나왔다.”
유순태는 감격스러웠다.
“야. 경석아. 너도 좋…….”
그리 말하던 유순태는 깨달았다. 살아서 나왔다는 이 감격을 함께 나눌 친구는, 죽었다는 것을 말이다.
들어갈 때 서른네 명이었던 짐꾼들 중, 살아나온 짐꾼들은 열다섯에 불과했다.
그리고 헌터들도 몇 명 죽었다.
카메라를 들고 마이크를 든 기자들이 달려와 취재를 하려고 했다.
유순태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마음이 지친 이들.
하지만 그들이 이룩한 업적을 기뻐하는 사람들.
뭔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공식 발표는 길드를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이언팀장 백신온은 그리 말하고는 헌터들과 그들을 데리러 온 버스로 향했다.
그는 뭔가를 지시한 후, 유순태에게 다가왔다.
“수고했다. 덕분에 반 이상이 살아나왔다.”
“…….”
그리고 그의 손에 몰래 뭔가 쥐여 주고는 다시 버스로 돌아갔다.
“자자, 얼른 움직입시다.”
기린 포터 길드 최병백 팀장의 말에 짐꾼들은 그곳의 트럭에 자신들이 가져온 부산물들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버스를 타고 길드로 향했다.
정산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짐꾼들은 기린 포터 길드에 도착했다.
회의실에서 잠시 기다리자 곧 최병백이 한 여자와 함께 들어왔다.
“정산 영수증입니다.”
그녀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며 서류를 나누어 주었고, 짐꾼들은 서류를 확인했다.
“…….”
곧 짐꾼들 사이에서 험한 소리가 나왔다.
“뭐야? 이 금액은?”
“우리가 이 푼돈 받으려고 그 개고생을 한 줄 알아?”
“9대 1이라면서? 그런데 이게 어떻게 9대 1이야?”
“이런 개자식!”
그들의 원성에 최병백이 말했다.
“뭐 잘못된 거 있습니까? 그거 계약대로 처리한 건데?”
“계약?”
“기억나지 않으시면 보여 드리죠.”
곧 그 여자가 계약서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여기 보시면, 체류비라고 해서…….”
유순태는 두 눈을 깜박였다.
그러고 보니…….
“저, 이게 무슨 뜻이죠?”
“뭐가 궁금한데?”
“그러니까…… 이 부분이…….”
“아, 그냥 명목상 써 놓은 거야. 신경 쓸 필요 없어. 너희가 주목해야 할 곳은 여기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런 세세한 조항을 건너뛰고 곧바로 수익배분에 대해서 말했으니까.
그러니까, 수익배분이 9대 1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외의 수수료나 장비 대여료라든지 게이트 체류비라든지 등등 말도 안 되는 것들로 떼어가는 게 반 이상이었다.
그러니까 10퍼센트를 뗀 나머지 금액이 900만원이었지만, 이것저것 떼 가고 남은 금액이 100만원이었다.
9대 1이 아니라 1대 9나 마찬가지인 것.
“저, 그런데 제 죽은 친구의 몫은…….”
“무슨 소리야?”
“네?”
“여기 계약서 끝에 있잖아. 게이트 내부에서의 사망에 대해 길드는 면책되며, 수당 역시 지급할 의무가 없다.”
최병백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죽으면 못 받는다는 거지.”
“…….”
유순태는 이를 악물었다.
이건 아니었다.
그때 주머니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백신온 팀장이 그에게 몰래 준 연락처이다.
“그리고 혹시 여기서 살아나가면, 정산 관련해서 억울한 일이 있을 거다.”
“네?”
“그리 되묻는 것을 보니 진짜 아무것도 모르나 보네. 아무튼, 나중에 연락처 줄 테니까 연락해라. 도와주지.”
백신온 팀장이 그리 말한 이유가 있었다.
짐꾼들은 결국 100만 원씩 받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유순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아, 거기 순태 군.”
“……?”
그가 뒤를 돌아보자 그에게 유독 친절하게 대해 준 기린 길드 소속 짐꾼이었다.
“네?”
“정산에 대해 서운한 게 좀 있지?”
“…….”
“보니까 돈이 급한 것 같은데…… 사실 이건 아무에게나 알려 주는 건 아닌데, 길드 소속이 되면 한 건당 500만 원씩 받을 수 있거든. 물론 10년 계약이지만.”
그는 말을 이었다.
“어떻게? 내가 다리 좀 놔줄까?”
그 말에 유순태가 웃으며 말했다.
“저, 생각 좀 해 볼게요.”
“그래? 늦으면 안 되는데…….”
“늦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 말한 유순태는 길드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근처의 공중전화로 향했다.
아직 격변의 시대 이전처럼 핸드폰이 흔한 시대는 아니었기에 곳곳마다 공중전화가 있었다.
그는 주머니의 연락처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이번에 함께 게이트에 들어갔던 짐꾼 유순태입니다. 청신 길드 백신온 팀장님이신가요?”
그의 말에 전화기 너머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문제 생겼지?
“아, 네…….”
– 알았다. 거기 어디냐?
그날, 기린 포터 길드는 탈탈 털렸다.
알고 보니 청신 길드는 적룡 길드 산하 길드였고, 그만큼 힘이 있었다.
그러니까 도와준다고 할 수 있던 것.
그리고 헌터들의 위상은 생각보다 높았다.
다음 날, 유순태는 제대로 된 자신의 몫과 친구의 몫을 정산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복잡했다.
친구의 죽음을 그 부모님에게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왜 그런 표정이야? 정산도 제대로 받았는데?”
백신온 팀장의 물음에 유순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요, 친구랑 저랑…… 여행 간다고 하고 온 거라서요.”
“저런…….”
“저야 살아 있으니까, 부모님에게 등짝 좀 맞으면 되는데…… 친구는 아니잖아요.”
죽었으니까.
그 말에 백신온이 잠시 뭔가 생각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그럼 이번까지 내가 도와주지.”
“네?”
“팀원들의 부고를 전하는 건 익숙하니까.”
그 표정은 씁쓸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몇 명 부고를 전해야 하는데, 한 명 더 추가되는 것뿐이니까.”
그 말에 유순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런데 왜 이렇게 저에게 잘해 주세요?”
“왜? 이상하냐?”
“네.”
유순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로 알았어요. 사람이 잘해 주면 뭔가 이유가 있다는 것을요.”
“그건 그렇지.”
“백수아 헌터님도 그렇고 팀장님도 그렇고…….”
“우선, 수아는 너를 보니까 남동생이 생각난다고 그러더라.”
“네?”
“너랑 수아의 죽은 남동생이랑 엄청 많이 닮았거든. 나도 보고 깜짝 놀랐다.”
“아…….”
“그리고 나는, 네가 대견하기도 하고 또 네 그 예리한 감 때문에 우리 팀원들이 많이 살았으니까, 그 은혜를 갚는 거다.”
백신온 팀장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누군가가 너에게 호의를 베풀 땐 그게 호구 잡으려고 그럴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네.”
“그런데, 앞으로 짐꾼은 안 할 거냐? 만약 짐꾼을 하고 싶다면, 괜찮은 곳 소개해 주려고 하거든. 용산에 있는 램프 포터 길드라고 업계 최고의 짐꾼 길드에 말이야.”
백신온 팀장이 말을 이었다.
“생각할수록 네 그 감이 아까워서. 그 예리한 감도 재능이니까.”
무림에서 온 배달부 외전 1부 – 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