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661
18화. 그 남자, 그 여자 (1)
띠디디 띠디디.
알람 소리에 성진호는 눈을 떴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침인가?”
아직 방은 깜깜했고, 그는 일어나 전등을 켰다.
탁.
불이 켜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이다.
어젯밤 11시에 퇴근했으니, 잠을 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제는 일찍 퇴근한 편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면 버티지 못했겠지만, 그는 상위급 각성자였고 덕분에 회복이 빨랐으니까.
그리고 명정심법 덕분에 S급이 되면서 한층 더 건강해졌다.
그는 거실로 나갔다.
성진호의 집은 작지도 크지도 않은 24평 아파트.
그의 월급이면 더 큰 집에 살아도 부담이 없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그 혼자 사는 집이었고, 매일 야근에 밤샘이었기에 집에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솔직히 원룸이나 그런 것을 얻어 살고 싶었지만, 사회적인 체면이 있다면서 각성자 협회장 윤한종이 만류했다.
“내가 네 녀석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닌데, 생각해 봐라. 지원과의 과장이라는 녀석이 원룸에 살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
“월급을 적게 준다고 생각하겠군요.”
“그걸 아는 놈이 원룸에 산다는 말이 나와?”
“…….”
“네가 그런대로 좀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줘야 각성자들이 ‘각성자 협회 직원이 되면 돈을 많이 버는구나’라고 생각해서 많이들 지원할 거 아니냐.”
“갈아 버릴 인재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 역할도 해야 하는군요.”
“갈아 버린다니! 누가 보면 진짜 갈아 버리는 줄 알겠구나.”
“아닙니까?”
“……험험.”
그래서 성진호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 것이다.
그는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갔다. 체력단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곧 도착한 곳은 시민을 위해 개방한 운동장이었다.
그는 가볍게 몸을 풀고는 운동장 트랙을 달리기 시작했다.
운동장에는 아침부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 중에는 같은 각성자 협회 직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성진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목에 걸고 있는 외모변환 아티펙트 덕분이었다.
약 한 시간 정도 달린 성진호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거실에서 명정심법을 하였다.
모든 식전 일정이 끝나자 시간은 7시.
샤워를 위해 옷을 벗고 팔다리와 허리에 차고 있던 중력조절장치를 풀어 내려놓았다.
그건 그가 서철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제작한 것이다.
‘내일부터 30kg으로 늘려야겠군.’
일반인이라면 팔다리와 허리까지 도합 150kg의 중량을 몸에 짊어지고 달리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만 그는 S급 각성자다.
사실 각성자라는 존재는 여러모로 신기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마수라는 무시무시한 존재와 싸울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씻고 나온 그는 옷걸이에 옷을 걸어 놓고 세탁 기계를 작동시켰다.
최근 개발된 세탁 기계는 옷걸이에 옷을 걸어서 넣기만 하면 스스로 세탁과 건조에 다림질까지 되었기에 참 편했다.
옷을 갖추어 입은 성진호가 중얼거렸다.
“그럼 출근해 볼까?”
아침은 늘 그렇듯 각성자 협회의 식당에서 먹을 생각이다.
각성자 협회 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성진호는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출근한 그를 이연곤과 지원 1과 1팀원들이 맞이해 주었다.
지원 1과는 5팀까지 있었다.
그리고 각 과장의 사무실은 자신에게 속한 팀의 사무실을 위아래로 오갈 수 있었다.
마치 엘리베이터와 같이 말이다.
사무실을 들락날락하기 위해서는 보안검색을 거쳐야 했고,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도입된 시스템인데, 주로 과장은 1팀 사무실에 있었다.
“그럼 9시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회의가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안건이 나왔고, 성진호는 그에 대해 지시를 내렸다.
지원 1과는 모든 업무를 포괄하고 있었기에, 파악해야 하는 것들이 상당했다.
웬만한 이들은 머리에 과부하를 느끼고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의 정보량과 업무량이었지만, 성진호는 뛰어난 업무처리 능력을 보여 주었다.
직원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도 언급해 경각심을 줄 정도였다.
“그럼 회의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따 2시에 스케줄이 있어서 잠시 외출합니다.”
이런저런 보안상 다른 이들과는 공유하지 않았지만, 각 팀장은 그의 스케줄에 대해 알고 있었다.
“헌터 훈련소에 가시는군요.”
“네.”
성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장님께서 저에게 대신 가서 입소 축사를 하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
.
.
그날 오후.
성진호는 헌터 훈련소에 도착했다.
그를 경호하기 위한 경호원이 좌우에 붙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원 1과의 과장이자 차기 협회장으로 지목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헌터 훈련소 연무장에는 수많은 입소생들과 그 보호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기대감, 걱정, 설렘 등등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성진호는 피식 웃었다.
그걸 보자 자신이 헌터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자신은 김명희를 만났다.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고 사랑하고 또 사랑할 여자.
그는 자신의 왼손 약지의 반지를 어루만졌다.
어느덧, 그의 눈은 15년 전의 그날을 보고 있었다.
* * *
20세의 성진호는 헌터 훈련소에 도착했다.
헌터들의 양성을 위해 세워진 기관인 헌터 훈련소는 오늘이 6번째 입소자를 받는 날이다.
그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수많은 입소자들이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에 둘러싸여 격려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격려해 줄 가족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익숙했으니까.
그는 냉철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은 희망에 차 있었지만 머지않아 저 희망에 찬 눈빛들은 곧 현실을 직시하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입소자들은 강당으로 모여 주십시오!]그 안내에 입소자들은 모두 강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입소식을 하기 때문이다.
강당에 모인 입소자들은 모두 110명.
전국에서 모인 이들이었지만, 그 수는 적었다. 당연했다. 원래 각성자의 수는 적었으니까.
그리고 이 적은 각성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헌터 훈련소가 세워진 것이다.
입소식은 별다른 게 없었다.
헌터 훈련소장의 인사와 각성자 협회장과 헌터총회장님의 축사 등등…….
신규 입소생들의 반이 배정되었다.
헌터 훈련소는 3년 과정이었는데, 각 연차마다 반 배정이 달라졌다.
1년차 과정에서는 등급별로 나누었다.
아직 능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 미숙했고, 그런 상황에서 여러 등급을 섞어 놓으면 사고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2년차에는 A급과 B급, C급과 D급, E급을 섞어 놓았다.
어느 정도 숙련도가 올라가면서, 큰 사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차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중도에 퇴소하면서 인원 역시 줄어서 그렇게 반 배정을 해도 수업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3년차가 되면 A급부터 E급까지 모두 섞어서 반을 배정했다.
이때부터는 서로 다른 등급의 각성자들이 서로 힘을 합치는 방법을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높은 등급이 무조건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낮은 등급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님을.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 서 있어야 제 몫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아직,
신규 입소생들은 각자가 타고난 등급에 우열을 느끼고 이를 과시하거나 의기소침해 있는 그런 애송이에 불과했다.
입소식이 끝나고 수업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수업이 끝나고 오후 개인 정비 시간.
도서관으로 향하던 성진호는 불쾌함에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창고 옆에서 들리는 대화 때문이다.
“D급 주제에 우리에게 대드는 거냐?”
“와! 이 자식들 보게.”
“겁대가리가 없네.”
보나 마나 A급을 모아 놓은 A반 녀석들이 서열 정리라는 명분으로 D반 녀석들을 불러낸 듯했다.
‘한심한 것들.’
나중에 3년차가 되었을 때 볼만하겠구나 싶었다.
그는 그 상황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가 끼어들어 봤자 골치만 아프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입소생이 있었다.
“야! 너희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어, 명희 왔네?”
“뭐 하긴, 서열을 확실하게 하는 거지.”
그들의 말에 김명희라는 이름을 가진 입소생이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뭐? 서열 정리? 격 떨어지게 이게 무슨 짓이야? 아무리 봐도 이건 A급이 D급 애들 괴롭히는 건데?”
“괴롭히다니!”
“야! 너 누구 편이야?”
“너도 우리 A반이잖아.”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격 떨어지게 하지 말고 그 시간에 개인 훈련이나 하는 게 어때?”
김명희의 말에 성진호는 피식 웃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이들은 그녀의 말에 반발했다.
“우리가 잘못 생각했네. 같은 반이라서 사이좋게 지내려고 했는데 너 먼저 처리해야겠네.”
“그러니까.”
그 상황에 성진호는 더벅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지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김명희는 유일하게 호감이 가는 클래스메이트였으니까.
언제나 당차고, 자신감 있으며, 끈질겼다.
마치 독사처럼.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보는 듯했다.
그 역시 독사 한 마리를 속에 품고 있었으니까.
그는 그곳으로 향했다.
“어이, 그만들 하지?”
“뭐야?”
“진호잖아? 평소 책 읽는 데만 관심을 보이고 반 돌아가는 데는 관심 없던 네가 무슨 볼일이냐?”
그 빈정거리는 말에 성진호는 피식 웃었다.
“내가 반에 관심이 없었다고? 내가 왜 관심이 없어? 그냥 보고만 있었을 뿐이야. 너희들이 하도 한심해서 답이 안 나와서 말이지.”
“뭐?”
“뭐, 뭐라고?”
“야! 이상훈.”
그는 그들 가운데 있는 같은 반 훈련생에게 말했다.
“너 쟤 누나가 3년차이고 A급인 건 아냐?”
“뭐?”
“그리고 쟤 아버지는 적룡 길드의 B급 헌터지. 그건 알고 있어?”
그는 버럭 소리쳤다.
“클래스 일에 가족이 왜 나와? 치사하게!”
“그럼 너는 왜 등급 가지고 그러는 거냐? 치사하게?”
“큭!”
성진호가 말을 이었다.
“나중에 3년차가 되면 반 구성에 등급은 의미가 없어지지. 왜인 줄 알아?”
“…….”
“너 같이 등급 만능주의에 빠진 자식들 때문이야.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서로 협력이 안 되니까. 그래서 등급을 섞지. 여기서 문제. 그런 상황에서 누가 먼저 골로 갈까?”
“그, 그야 당연히 낮은 등급의…….”
“너 바보냐?”
“뭐? 이 자식…….”
성진호는 그곳에 있던 김명희에게 물었다.
“넌 알지?”
“당연하지.”
그녀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마수들은 본능적으로 주변에 있는 각성자들 중에 가장 높은 등급의 각성자를 먼저 노리잖아.”
“역시 정답이네.”
그와 그녀의 대화에 이상훈이 버럭 소리쳤다.
“사람이 까먹을 수도 있지! 그리고 거기에 대해 우리가 언제 배웠다고!”
“교재에 있는 그 내용, 네가 대표로 읽어 놓고서는 무슨 소리야? 너 수업 때 졸았냐? 아니면 바보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붕어 새끼냐?”
성진호의 신랄한 비난에 이상훈과 그 패거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진지하게 충고하는데, 생명 연장에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등급 놀이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오늘이라도 자퇴서 내고 꺼져.”
“윽…….”
이상훈은 직감했다.
더 이상 성진호와 말을 섞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너, 나중에 보자…….”
“나중에 봐서, 이길 자신은 있고?”
“제, 젠장!”
그들은 후다닥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D급 입소생들이 말했다.
“고마워.”
“덕분에 곤란한 상황을 모면했어.”
그들의 말에 성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 그리고 지금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저 녀석들은 틀림없이 또 너희를 찾아오겠지.”
“그,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긴…….”
성진호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쪽수로 밀어붙여야지. 다구리 몰라?”
“하, 하지만 그건 비겁한 방법이잖아?”
“비겁?”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럼 마수를 상대로 헌터 여러 명이 달려드는 것도 비겁한 건가?”
“…….”
“알아서 해. 내 말대로 하든가 아니면 그냥 그대로 살든가.”
“하지만, 다른 A급 애들이 가세하면…….”
“가세하지 않을 거야. 쪽팔린 게 뭔지 알면 말이야.”
성진호는 김명희를 보았고, 말했다.
“그럼 우린 이만 빠지지.”
“어…….”
김명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창고 주변을 벗어났다.
김명희가 말했다.
“도와줘서 고마워. 그런데 그렇게 독설을 내뱉으면 다른 애들이 별로 좋지 않게 볼 거야.”
그녀의 말에 성진호가 피식 웃었다.
“상관없어.”
그 말에 그녀 역시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너랑 나, 닮았네.”
성진호는 말없이 김명희를 보았고,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럴지도 모르지.”
그 말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침묵.
그 침묵을 깬 것은 김명희였다.
“그래서 말인데, 네 목표는 뭐야?”
“응?”
“단순히 헌터가 되는 게 네 목표는 아닐 것 같아서 말이야.”
“나는…… 은혜를 갚고 싶어서 입소한 거야.”
무림에서 온 배달부 외전 1부 – 1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