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675
32화. 해방이다 (1)
대한민국 승전기념 콘서트는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의 상처받은 마음은 어느 정도 치유될 수 있었다.
각성자 협회 본부.
윤한종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창문을 통해 그 아래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야경이었지만, 그에게는 반짝이는 전등 불빛 하나하나가 가슴속에 깊이 와 닿았다.
격변의 시대가 시작되고, 게이트가 열리고 마수가 튀어나와 사람들을 습격했을 때만 해도 촛불 하나 마음 놓고 밝힐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껏 환하게 밤을 비출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시대는 여기까지다.
이제 이 세상을 더욱 발전시키는 건 자신이 아닌 후대의 몫이다.
그때 인터폰으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 성진호 과장님 오셨습니다.
윤한종은 인터폰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들어오라고 해.”
곧 문이 열리고 성진호가 들어왔다. 덥수룩한 머리카락에 안경을 쓴 그는 약간 꺼벙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윤한종은 안다.
그 안경의 렌즈 너머에는 그 누구보다 차갑고도 뜨거운 눈이 있다는 것을.
“부르셨습니까?”
“그래, 편하게 앉아.”
성진호는 소파에 앉았고, 윤한종 역시 소파에 앉았다.
“진호야.”
“왜 갑자기 그렇게 무게 잡고 그러세요?”
“일전에 한 약속. 지킬 때가 되었다.”
윤한종이 말을 이었다.
“이번 성기사 전쟁 전에 말했잖아.”
이번 전쟁은 성기사 전쟁으로 명명되었다. 처음으로 성기사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너에게 이 자리를 넘기겠다고.”
그 말에 성진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랬죠. 그런데 협회장님. 그냥 조금만 더 계시면 안 됩니까?”
그의 물음에 윤한종은 즉답했다.
“안 된다.”
“그러시지 말고요.”
“이 녀석아! 나도 전략실장이랑 데이트라는 것 좀 해 보자! 지금까지 30년 넘게 일만 했다!”
윤한종은 말을 이었다.
“이번 2월 18일에 너에게 이 자리를 넘길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
“대답 안 하냐?”
그의 반문에 성진호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성진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인사이동 조치도 해야 한다는 거네요.”
“이미 내정해 놓고서는 뭘 죽는소리야.”
“그래도 서류 작업이…….”
“한 며칠만 더 고생해. 그러면…….”
그리 말하던 윤한종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좀 편해질 거라는 거짓말은 못 하겠네.”
“협회장님…….”
“그럼 나가 봐. 바쁘다면서?”
윤한종은 성진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
.
.
성진호는 윤한종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에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미 알고는 있다. 뭘 어찌해도 결국은 자신이 윤한종의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이대로 있고 싶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가능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 *
밤늦은 시각.
양춘각도 영업을 종료할 시간이 되었다.
문 앞에 [영업종료] 팻말을 달고,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리미리 정리해 놨기에 실제로 정리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안녕히 계세요.”
“내일 뵐게요.”
“그래, 조심히 잘 들어가고. 진혁 씨랑 철영 씨도 조심히 들어가.”
“네.”
황진혁과 맹철영 그리고 오동수가 퇴근했다.
그때, 강소가 핸드폰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순태야. 이따가 손님이 한 분 오신다고 하네. 특별한 손님이다.”
“누군데?”
“성진호 과장님.”
“아!”
유순태와 허만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만철은 성기사이기에 성진호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순태는, 처음에는 성진호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양춘각 단골이 되고 몇 번 오면서 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강소가 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을까? 이미 영업시간이 끝났는데…….”
“상관없어. 오랜만에 술 한 잔 하지 뭐.”
“그럼 기다리겠다고 연락한다.”
강소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사이 허만철이 말했다.
“그나저나 그 바쁘신 분이 무슨 일일까요? 전에 듣기로 은탑의 3대 워커홀릭이 있는데 그중 탑이 성진호 과장님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이 시간에 밥을 먹으러 온다고 한다는 건 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러니까…….
“마음이 많이 복잡하신가 보다.”
딸랑.
약속했던 10시가 되었다.
성진호는 양춘각 안으로 들어왔다. [영업종료] 팻말이 걸려 있었음에도 문은 열려 있었다.
“어서 오세요.”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성진호는 사과부터 했고, 그 사과에 유순태가 손을 저었다.
“하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강소가 말했다.
“앉으십시오. 뭘 드시겠습니까?”
“짬뽕이랑 소주 주십시오.”
“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유순태는 주방으로 들어가 짬뽕을 만들기 시작했고, 강소는 성진호의 앞에 기본 찬들과 수저를 놓았다.
“저…….”
그는 강소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 그가 이곳에 온 건 강소에게 상담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 하소연에 가까울 거다.
솔직히 그의 주변에는 그가 하소연을 하면 들어 줄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그게 그들에게 짐이 되는 건 싫었다.
그러나 강소는 철저하게 중립적인 인물이며, 능력도 있으니까 마음에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합석을 권하려고 했는데 그 앞에 수저가 두 쌍이 더 놓였다.
“……?”
“혼자 술 마시면 무슨 재미입니까? 같이 마셔야죠.”
강소의 말에 성진호는 그 배려에 감동했다.
“역시 이곳에 오길 잘 한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유순태가 준비대에 짬뽕과 몇 가지 음식을 내놓았고, 강소는 그걸 식탁 위에 옮겼다.
그 음식들을 본 성진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떡볶이입니까?”
“네. 마침 저희도 출출해져서 야식을 먹으려고요.”
그리고 쫄탕수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화끈한 메뉴들이다.
그걸 보며 성진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제가 매운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하면 매운 것이 그렇게 땡기더군요.”
“그런 사람들이 좀 있죠.”
“제가 이곳에 처음으로 왔을 때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죽음의 땅에서 생긴 A-0128109 게이트 안에서 발견된 제로급 각성자에 대한 증거가 저를 참 힘들게 했죠.”
그 증거란, 다름 아닌 강소로 인해 생긴 증거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마수들을 주먹 한 방으로 끝냈기 때문이다.
강소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뭐, 강소 씨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문득, 당시의 상황이 떠올라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 앞의 잘생긴 청년이 그 증거들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에게 하소연을 했었으니까.
“자, 그럼 한 잔씩 합시다.”
그들은 잔에 소주를 따랐고, 한 잔씩 마셨다. 그리고 성진호는 자신이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이번 달 중순쯤에 저는 각성자 협회장이 됩니다.”
“아! 축하드립니다.”
“경하드릴 일이군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성진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무섭습니다.”
그는 묵묵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나갔다.
“협회장의 자리는 무척이나 막중한 자리입니다. 이 나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런 자리죠.”
“…….”
“제 선택에 의해서 이 대한민국은 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후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제 선택이 일으킬 여파를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
“처음에, 영감님이…… 어, 그러니까 협회장님이 저를 차기 협회장으로 내정했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날이 오니…… 두렵습니다.”
유순태와 강소는 성진호의 넋두리 같은 하소연을 따스한 눈빛으로 들어 주었다.
“그러셨군요.”
유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는 과장님이 어떤 심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과장님은 잘 해내실 겁니다. 그러니까 협회장님께서 과장님을 꼭 찍으신 거겠죠. 하하하.”
유순태의 웃음에 성진호도 웃었다.
“하긴, 제가 좀 유능한 인재죠.”
강소가 말을 이었다.
“사실은 말입니다. 저는 고립인이 아닙니다.”
“네?”
“저는 차원을 넘어왔습니다.”
“역시 그러셨군요.”
생각보다 담담한 성진호의 태도에, 강소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게이트를 통해 차원을 넘어온 존재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셨군요.”
강소는 말을 이었다.
“당시 저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작은 소녀의 보호자로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저런 사정이 뭔지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수 없었다.
“그때 그 소녀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왜 혼자서만 생각하고 혼자서만 행동하느냐고요. 왜 혼자서만 고고한 척하느냐고요.”
“…….”
“그때 소녀가 해 주었던 말을 지금 과장님께도 똑같이 말해 주고 싶습니다. 짐이란 것은 나누어지는 겁니다. 과장님께는 사랑하는 분도 있고 믿음직한 동료들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물론, 여기까지는 위로하기 위한 말이죠.”
순간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무리 의논을 하고 또 짐을 나누어 진다고 해도, 결국 선택은 최종결정권자의 몫입니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랬다.
아무리 입에 발린 말을 해도, 결국 결정은 협회장의 몫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마음의 짐도 말이다.
“하지만 말입니다.”
강소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선택에 참고가 될 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민심입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제가 이 대한민국에 와서 이 나라에서 살기 위해 도서관이라는 곳에서 수많은 책을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성진호의 말에 강소가 대답했다.
“이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백성들이 이끌어 가는 나라라는 겁니다.”
“아…….”
“현재에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지도, 자포자기하지도 않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끊임없이 궁리하고 노력합니다.”
“그렇죠.”
“외세의 침략으로 윗사람들이 도망쳐도, 분연히 일어나 외세에 맞서서 싸웁니다.”
격변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도 그랬다.
정치인들이 짐을 싸서 다른 안전한 방공호로 피신할 때, 마수에 맞선 자들은 일반 국민들이다.
“그래서일까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이곳은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가 그리 높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현재 대통령도 있고 국회의원도 있지만, 서서히 그들의 입지는 좁아져 가고 있었고 거의 상징적인 의미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건 각성자 협회라는 기관의 존재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자업자득인 거다.
“하하하. 그건 그렇죠.”
성진호가 웃으며 긍정했다.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뭔가 결정하실 때, 민심을 살피라는 겁니다. 그러면 최소한 국민들의 지지는 잃지 않을 겁니다.”
강소의 말에 성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몇 차례 술잔이 돌아가고, 강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강소가 화장실로 향하고, 성진호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 오길 잘 한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유순태가 하하 웃었다.
“너무 현실적으로 말한 건 아닌가 걱정이네요.”
그 말에 성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강소 씨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습니다. 무섭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거겠죠. 아직 이 나라는 안정된 나라가 아니고, 마수와 블랙맨으로 인해서 고통받는 국민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그는 짬뽕 국물을 들이켜다가 급히 물을 마셨다.
“흐아!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점점 매워집니까?”
그 말에 유순태는 웃었다.
“하하하.”
“이것도, 정신 차리라는 의미겠죠?”
“꿈보다 해몽입니다.”
“그런데요.”
성진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결혼이라는 거요. 어떻습니까?”
“그건 말입니다. 직접 해 보시면 압니다.”
* * *
코드명 검은 숟가락.
그는 블랙맨이다.
이번 승전기념 콘서트 때 계획했던 것은 불행하게도 전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가 속한 단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남은 조직원들을 전부 긁어모아서 이번 일을 계획했다.
피의 보복이다.
그러나 아무나 죽여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이번 일을 계획한 이유는 세상의 주목을 받기 위함이니까.
그래서 고른 타깃 중 하나가 바로 성진호다.
그러던 중, 오늘 성진호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평소 그의 출퇴근길에는 경호원이 배치되어 있었기에 거사를 치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면 말이 달라졌다.
곧 그들은 성진호를 제거하기 위해서 움직였고 성진호가 양춘각이라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성진호가 나오길 기다렸다.
‘각오해라! 우리의 피의 보복을!’
.
.
.
그 시각.
화장실에 간다고 했던 강소는 현재 화장실이 아니라 양춘각 옥상에 서 있었다.
아까부터 신경에 거슬리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 성진호 과장님이 저런 허접한 것들에게 당할 분은 아니지만…….’
이 나라를 위해 밤샘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 정도는 배려해 줄 수 있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외전 2부 – 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