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676
33화. 해방이다 (2)
그 시각.
김명희는 다급하게 양춘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약 20분 전에 그에게 급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 큰일입니다. 지금 블랙맨 ‘검은 식탁’ 일당이 성진호 과장님을 노리고 있습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이번 승전기념 콘서트 때 일을 망친 블랙맨 조직 ‘검은 식탁’이 피의 보복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은탑의 고위급 인물들.
오늘 성진호는 평소 출퇴근하던 루트를 벗어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거다.
솔직히 성진호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런 자들이 한 트럭이 와도 멀쩡할 거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것 아닌가.
김명희는 급히 성진호의 위치를 파악했다.
– 나? 지금 양춘각인데?
성진호의 그 말에 김명희가 양춘각으로 달려가는 이유가 바뀌었다.
‘서둘러 체포해야 해! 그래야 혹시 모를 다른 직원들에 대한 피의 보복을 막을 수 있어!’
그녀가 그리 생각한 건 강소의 존재 때문이다.
강소가,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양춘각 주변에서 험한 짓을 하려는 이들을 가만 둘 리가 없었다.
‘하영이랑 채영이 교육상 좋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라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으실 테니까.’
.
.
.
김명희의 예상대로였다.
강소는 혹시라도 유하영과 유채영이 잠에서 깰 수도 있었기에 최대한 조용하게 블랙맨들을 처리했다.
탁탁.
그는 가볍게 손을 털며 중얼거렸다.
‘마침 김명희 과장님이 오시는군. 수고를 덜었구나.’
곧 강소의 앞에 김명희가 숨을 헐떡이며 나타났다.
“하아, 하아, 강소 씨. 그러니까…….”
그런 그녀에게 강소는 검지를 들어 입술에 댔다.
“쉿-!”
“……?”
“애들이 깹니다.”
“아…….”
그 말에 김명희는 자신을 따라온 직원들에게 최대한 조용하게 블랙맨들을 체포할 것을 지시했다.
“바쁘십니까? 바쁘지 않으시면 성진호 과장님과 함께 들어가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 말에 김명희는 양춘각 안을 들여다보았다.
성진호가 유순태와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즐거워 보였지만 어쩐지 약간은 애잔해 보이기도 했다.
김명희가 말했다.
“조금만 더 둬도 될까요? 이제 곧 이런 일상적인 즐거움을 누릴 여유도 없어질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 * *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갔다.
그러던 중, 빅 뉴스가 세상에 알려졌다.
[속보입니다. 오늘 윤한종 각성자 협회장이 사의를 표하였습니다. 차기 협회장으로는 현 성진호 지원1과장을 지명하였고, 취임식은 이번 달 18일로 예정…….]양춘각에서는 손님들이 식사하며 그 뉴스를 보고 있었다.
“결국 협회장님이 은퇴하시네.”
“지금 나이를 생각하면 은퇴하실 때도 됐지.”
“그래도 참 훌륭하신 분인데…….”
“그건 그렇지.”
그들 중 노년층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윤한종이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리고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마음고생을 했는지 말이다.
“하아,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은퇴하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아쉽네.”
“새로운 협회장 역시 잘하겠지만, 그래도…….”
“그런데 이대로 윤한종 협회장님을 보내드리는 건 좀 그렇지 않아? 그동안 받은 은혜가 얼마인데!”
“암! 사람이라면 그러면 안 되지.”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때 유하영이 유채영을 안은 임소영과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잘 놀고 왔어?”
“네!”
오늘 유하영은 단짝 친구 이윤주의 집에 놀러 갔다 왔다. 그리고 임소영도 박문자 원장에게 머리를 다듬고 왔다.
그사이 유채영은 미용실 아주머니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사탕들도 아주머니들에게 받은 것.
“손에 든 건 책이니?”
허만철의 물음에 유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윤주가 빌려줬어요.”
제목을 보니, 노란 손수건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아주 아주 오래전에 출간된 명작이다.
그때 그 책을 본 한 남자가 말했다.
“아!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이건 어떨까요?”
* * *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윤한종의 은퇴와 성진호의 각성자 협회장 취임식 날이 다가올수록 은탑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런 긴장감을 느낄 틈도 없었다.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지원 1과.
성진호는 자신의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자신은 이곳의 붙박이 가구나 다름없었다.
‘이곳도 이제 곧 작별이구나.’
그는 책상의 전화기를 들어, 내선 번호를 눌렀다.
따르릉.
벨이 울리고 곧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네, 지원 1과 1팀장 이연곤입니다.”
“잠시 제 사무실로 오세요.”
“네.”
곧 그의 사무실에 이연곤이 들어왔다. 지원 1과장의 사무실은 거의 1팀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님.”
“네.”
서로 바쁘니, 성진호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제 이곳이 팀장님의 새로운 사무실입니다.”
“……네?”
이연곤은 반문하고 말았다. 성진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정식으로 인사발령은 되지 않았지만, 미리 준비하시라고 알려 드리는 겁니다.”
“그럼…… 제가?”
“네. 새로운 지원 1과장입니다.”
성진호의 말에 이연곤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승진하면 기뻐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아니었다.
성진호의 옆에서 그를 보좌하며, 지원 1과장이 얼마나 바쁘고 힘든지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도 집에 잘 못 들어갔는데, 이제 더더욱 집에는 못 들어가겠군요.”
“제가 믿고 맡길 분이 이연곤 팀장님밖에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할 수 없죠. 그래도 미리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틀 뒤에 정식으로 발령이 날 겁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맡게 되실 일이 바로 현 협회장님의 은퇴식과 제 취임식입니다.”
.
.
.
그 시각.
윤한종은 자신의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제 이 사무실의 주인이 바뀔 테니까.
– 협회장님. 전략실장님 오셨습니다.
인터폰을 통해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라고 해.”
그의 대답이 문이 열리고 전략실장 강은혜가 들어왔다.
“앉으세요.”
“네.”
“그런데 어쩐 일입니까? 인수인계 문제로 바쁠 텐데.”
이번에 윤한종이 은퇴하면서, 강은혜 역시 은퇴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녀는 현재 열심히 인수인계 중이다.
“아, 이거 보여 드리려고요.”
그녀의 손에는 두툼한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건?”
“가고 싶은 여행지요.”
“네? 여행지요?”
그의 반문에 강은혜가 샐쭉해져서는 말했다.
“어머! 저랑 약속하신 거 잊으셨어요? 이번 전쟁이 끝나면 은퇴하고 함께 여행 다니자고 했잖아요.”
그 말에 윤한종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잊어버립니까? 다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이실 줄은 몰라서 놀랐습니다.”
“저라고 놀러 가고 싶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저는 협회장님의…….”
“이젠, 다른 거 하면 안 됩니까?”
“네?”
윤한종은 강은혜의 말을 끊었고, 하고 싶었던 말을 내질렀다.
“이제 내 아내로 살면 안 됩니까?”
브레이크 없는 급발진에 강은혜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졌다.
“다 늙어서 주책이에요!”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서로 마음만 맞으면 되지요. 허허허.”
“모, 몰라요!”
그런 그녀의 앞에 윤한종은 뭔가를 내밀었다.
반짝이는 작은 물건.
다이아몬드 반지다.
“정식으로 말하는 겁니다. 은혜 씨. 나랑 결혼해 주십시오.”
강은혜는 윤한종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긴장했다는 뜻이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뭐 해요? 손가락에 얼른 끼우지 않고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강은혜의 약지에 윤한종이 준비한 반지는 딱 들어맞았다. 그들의 미래처럼.
* * *
2월 18일.
대한민국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바로 오늘이 윤한종 각성자 협회장의 은퇴와 성진호 신임 각성자 협회장의 취임식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축하사절을 보낼 수 있는 여력이 되는 나라에서는 축하 사절을 보내왔다.
여력이 되지 않는 곳에서는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TV생중계를 통해 모든 행사를 지켜보았다.
귀빈들과 중요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윤한종의 은퇴식이 먼저 거행되었다.
“다음으로는 오늘 은퇴하시는 윤한종 협회장님의 마지막 말씀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윤한종은 연단에 섰다.
“오늘 저는, 각성자 협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운을 띄운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격변의 시대가 찾아오고 저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각성자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생존의 문제는 해결되었고, 저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그걸 알기에 이 자리를 후대에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는 숨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저를 도와 이 나라를 위해 애써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수많은 희생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윤한종은 고개를 돌려 성진호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신임 각성자 협회장님께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 협회장, 잘 부탁합니다. 좀 살살 좀 다뤄주십시오.”
그 말에 내빈석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말, 참으로 감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윤한종은 연단 옆에 서서, 모두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그 인사에 내빈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이상입니다.”
윤한종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다음으로는 성진호 신임 각성자 협회장님의 인사 말씀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성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윤한종에게 먼저 인사를 한 후 연단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신임 각성자 협회장 성진호입니다. 우선 전임 협회장님을 위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짝짝짝짝!
그 말에 모두 윤한종을 위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박수가 잦아들고, 성진호가 말을 이었다.
“저는…….”
.
.
.
모든 행사가 끝났다.
윤한종은 각성자 협회의 모든 직원과 악수를 하였고, 헤어진다는 서운함과 그동안 함께 했던 회한 때문인지 모두 눈물을 보였다.
“그리 눈물이 헤퍼서 어떻게 해?”
“협회장님…….”
“이젠 그냥 할아버지라고 불러. 나 이제 협회장 아니야.”
그리 말하며 모든 인사를 마치고 윤한종은 차에 올라탔다.
마지막 퇴근을 위해서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하네.”
“네! 그리고 그동안 모시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나야말로 고마웠네. 앞으로 우리 신임 협회장도 잘 부탁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운전기사는 천천히 차를 몰았다.
“응?”
그런데 윤한종의 눈에 뭔가 특이한 게 보였다.
자신의 퇴근길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붉은색 카네이션이 들려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거리 곳곳이 카네이션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카네이션의 의미는 감사.
지금 국민들은 윤한종에게 수만 송이는 될 법한 붉은색 카네이션으로 그의 은퇴길을 축하해 주고 있는 거다.
“협회장님!”
“윤한종 협회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행복하세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은퇴 라이프를 즐기세요!”
그리고 사람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윤한종의 귀에 들려왔다.
“아…….”
윤한종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까지 헛살지는 않은 것 같군.’
그렇게 윤한종은 붉은색 카네이션 꽃길을 따라 마지막 퇴근을 했다.
.
.
.
그리고,
그 길이 보이는 옥상에서 윤한종의 마지막 퇴근을 지켜보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의 발아래에는 빈사 상태가 된 블랙맨들이 쓰러져 있었다.
“부디. 평온한 여생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제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그리 중얼거릴 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우. 오늘 저녁에 한잔할 생각인데? 아우도 오겠느냐? 양춘각으로 오면 된다]그의 형님, 강소에게서 온 메시지다.
그는 얼른 답장했다.
[네. 형님]* * *
그 시각.
전임 각성자 협회장을 배웅하고 온 신임 각성자 협회장 성진호는 이제 그의 사무실이 된 69층 협회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책상이 될 각성자 협회장의 책상을 보았다.
여전히, 그곳에는 윤한종이 앉아서 집무를 처리하고 있을 것 같았다.
“……!”
순간 그의 눈이 책상의 명패에 닿았다.
[각성자 협회장 성진호]그는 피식 웃으며 그 명패를 부드럽게 쓸어 보았다.
‘참 나, 영감님도 이건 대체 언제 만들어 놓으신 거야.’
그는 책상에 앉았고,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오늘 받은 각성자 협회장의 아이디를 넣고 문서망에 접속했다.
[대기 중인 결재문서 197건]그걸 보자 성진호는 자신이 협회장이 되었다는 것이 확 실감 났다.
‘젠장…….’
일 시작이다.
* * *
다음 날 아침.
윤한종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신문을 보았다.
신문의 헤드라인은, 자신의 은퇴다.
그걸 보고 윤한종은 오늘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왜 출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그는 커튼을 걷었다.
매일 보는 풍경이었지만, 오늘은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는 씨익 웃었다.
해방이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외전 2부 – 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