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96
95화. 장마와 짬뽕 (3)
친구가 켈피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이혜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
펑-!
뭔가가 터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이혜수는 천천히 눈을 떴고,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비가 오는 가운데, 은색 헬멧을 쓰고 한 손에는 철가방을 든 사람이 친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아, 진아야!”
이혜수가 친구를 불렀다.
은색 헬멧을 쓴 그자는 이혜수를 보며 말했다.
“아는 사람입니까?”
“제 친구예요!”
“켈피를 보고 놀라서 다리에 힘이 빠진 것 같은데 같이 부축 좀 해 주십시오.”
“아! 네!”
이혜수는 얼른 달려가 강소와 함께 친구를 부축해서 학원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제 친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혜수의 인사에 강소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도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빠, 각성자였어요?”
이혜수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양춘각의 신속 배달부 오빠는 이 근처에서 유명했으니까.
“각성자이기는 한데, F급입니다.”
“네? 켈피는 D급이고 장마철에는 C급이 되는데요?”
강소는 이혜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은 모르쇠로 잡아떼기로 했다.
누가 봐도 F급 각성자가 C급 마수를 처리했다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나는 내가 켈피를 없앴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누가 도왔는지 켈피가 터져 버렸고, 그 틈에 얼른 이분을 데리고 그 자리를 피한 것뿐입니다. 이래 봬도 발은 빠르니까요.”
“아…….”
강소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실망했습니까?”
“아, 아뇨!”
이혜수는 홱홱 고개를 저었다.
“그 상황에서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요! 만약 오빠가 친구를 데리고 피하지 않았다면 친구가 다쳤을 테니까요.”
물론 강소는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만큼 미숙하지 않았다.
“음…….”
그때 진아라 불린 친구가 신음 소리를 내었다.
강소가 그녀의 몸에 안정의 기운을 불어 넣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진아야? 정신 들어?”
“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배달을 가야 해서 말입니다.”
“아, 네.”
강소는 학원의 계단으로 향했고 이혜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올라가세요?”
“배달을 시킨 곳이 여기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데요?”
“그거보다 두 발로 달리는 게 빠릅니다.”
순간 강소의 모습이 사라졌고, 이혜수와 친구는 눈을 깜박였다.
“헐…….”
“개 빨라.”
* * *
강소는 교무실에 짬뽕을 배달한 후 다시 양춘각으로 돌아갔다.
강소는 손을 내밀었다.
툭, 투툭, 투투툭!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세차게 내리는 장마철의 비 따위는 강소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반탄강기에 부딪혀 강소의 몸에 닿기도 전에 튕겨 나갔기 때문이다.
사실 강소는 자신이 있던 세계에서 살수로 활동하던 당시, 누군가 위험에 처했어도 돕지 않았다.
아니, 돕지 못했다.
누군가를 돕는다면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만난 한 소녀.
자신은 그 소녀를 도울 수밖에 없었고 그건 운명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어 죽을까 봐 누군가를 돕지 못하는 일이 없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실 귀찮아질 가능성은 있었지만.
그리고 강소가 누군가를 돕는 것에 점점 이유가 생겨나고 있었다.
유순태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도우라고 한 말도 이유이기는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를 도우면서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강소는 점점 더 평범한 인간과는 궤를 달리해 가는 자신의 능력에 간혹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결국 인간성마저 상실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솔직히 힘이 없으면 불편하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힘이 두려운 건 참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그랬다.
강소는 자신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이 싫었다.
“그나저나 뜻밖의 소득이군.”
강소는 인벤토리에서 방금 켈피를 잡고 얻은 마정석을 꺼내 보았다.
C급 마정석은 영롱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이거 하나가 천만 원 정도 한다고 했나?’
그렇다면 좀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이 시대에서 마정석은 돈이었고,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그때 강소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곳에 부니입 한 마리가 불어난 개울물에서 도로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오! 한 마리 추가!”
강소는 씩 웃으며 손을 까닥였고, 그 순간 그 부니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단지 마수의 심장에 박혀 있던 마정석만이 남아서 반짝일 뿐이었다.
홱-!
강소가 다시 손을 까닥이자 마정석은 강소의 손으로 날아와 안착했다.
‘마정석 회수에는 능공섭물이 최고군!’
그날 밤.
강소는 자신의 방에 들어와 앉은뱅이 탁자 위에 오늘 수생마수를 잡고 얻은 마정석을 올려놓았다.
와르르륵.
그런데 올려놓는 수준이 아니라 쏟아붓는 수준이었다.
그때였다.
“강소야!”
유순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라.”
강소의 방문이 열리고, 유순태는 말을 이었다.
“오늘 밤에 한잔해야…… 어? 그건 뭐냐?”
유순태의 시선은 강소의 방 안 탁자 위에 수북한 마정석을 향해 있었다.
“아, 이거?”
강소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켈피랑 부니입인가? 수생마수 잡고 주웠지.”
“아…….”
유순태는 머리를 긁적였다.
탁자 위에 수북한 마정석을 보자 강소가 제로급 각성자라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도 참, 그걸 왜 이렇게 자주 까먹는지.’
그건 유순태에게 강소가 제로급 각성자라는 것은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제로급 각성자이든 아니든 강소가 그의 친구라는 것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으니까.
“참 많이도 주웠네.”
“그냥 대충 세어 보니까 20개 남짓 되는 것 같다.”
그 말은 오늘 강소가 처리한 수생마수들이 20마리 정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렇군. 아,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이들도 몇 명 구했다.”
“잘했네. 얼른 나와라. 소맥 한잔하자.”
“알았다.”
유순태는 술상을 차리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고, 강소는 그런 유순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에게 말했다.
“저 마정석들, 너 가질래?”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유순태는 눈을 치켜떴다.
“네가 너의 노력으로 번 것인데, 내가 불로소득을 올리는 건 도둑놈 심보다.”
“불로소득이 아니라 내가 주고 싶어서 그러는데.”
“됐어. 자꾸 그런 거 받으면 버릇 나빠져.”
유순태의 말에 강소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뭐야? 왜 웃어?”
“아니, 너는 진짜 좋은 녀석이다. 그리고 그런 녀석과 함께 사는 나는 진짜 운 좋은 놈이고.”
유순태는 고개를 갸웃했고, 강소가 말을 이었다.
“저 마정석들을 보는 네 눈에는 욕심이 없잖아. 저거 하나에 천만 원 정도 하는데 말이야.”
강소는 그게 참 의아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물욕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고, 물욕 때문에 사람과의 사이가 틀어져 버리는 경우도 빈번했기 때문이다.
과거 강소가 살수로 활동할 때, 의뢰의 반 이상은 재물이 이유였다.
하지만 정말 유순태의 눈에는 한 점의 물욕도 없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
강소의 말에 유순태는 피식 웃었다.
“내가 왜 욕심이 없겠냐? 나도 사람인데. 다만, 욕심내서 안 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욕심을 내지 않는 거야.”
“욕심내면 안 되는 영역?”
“내 것이 아닌 것, 친구 것, 그리고 가족의 것.”
“…….”
“그것에 욕심을 내는 순간 불행해진다는 것을 배워서 말이지.”
강소는 그런 유순태를 보며, 그 역시 왕년에 엄청 고생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혹시 짐꾼을 했다는 그 시절에 겪은 일인가?’
유순태는 맥주와 소주를 가져왔다.
“앉아라. 오늘 안주는 짬뽕 국물이다. 그리고 비 오는 날에는 역시 소맥이지.”
강소는 탁자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술병을 자신 앞으로 끌어오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황금 비율로 말아 주지.”
“좋아! 오늘은 네가 말아 봐라.”
강소는 씩 웃으며 소주잔으로 소주를 계량하여 붓고는 그 위에 맥주를 부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3 대 7이 제일 맛있더라.”
“그게 이상적인 비율이기는 하지.”
소주와 맥주를 섞으면 도수가 높은 소주가 아래에 깔리니 한 번 섞어 주는 게 좋다.
젓가락으로 살짝 저어 줘도 된다는 말이 있지만 강소는 개인적으로 충분히 잘 섞는 것을 선호했다.
그건 유순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소는 양손에 소맥이 담긴 유리잔을 잡고 살짝 내공을 불어넣어 충격을 주었다.
화아아악-!
강소의 내공에 의해, 소맥은 진탕 섞이며 거품이 올라왔다.
하지만 유리잔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오! 신기하다! 이건 어떻게 한 거야? 전에 보여 주었던 장풍 같은 건가?”
“비슷한 거다.”
강소가 방금 쓴 무공은 내가중수법이라는 것이었다. 외상은 전혀 주지 않고 내상만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무공으로, 장법이나 권법을 사용하는 자들이 주로 쓰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중수법은 극성으로 사용하면 사람의 내장을 다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무공이지만, 지금 강소의 손에서는 소맥을 제조하는 기술일 뿐이었다.
“자, 마셔 봐라.”
“그래.”
유순태와 강소는 소맥을 쭉 들이켰다. 시원하면서도 알싸한 향이 올라왔다.
“완전 잘 말았는데?”
“칭찬 고맙다.”
강소는 안주로 짬뽕 건더기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혹시, 마정석이 필요하면 말해라.”
“어?”
“네가 원하면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까. 사실 나에게는 마정석 같은 것보다 너와 네 가족이 더 소중하니까.”
“내가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어?”
“그런 진지한 이야기 할 때는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라고! 이 자식아!”
“하하하.”
“한 잔 더 말아 봐라.”
강소는 유순태의 잔과 자신의 잔을 가져와 다시 소맥을 말았다.
그런 강소를 보며 유순태가 툭 말을 던졌다.
“고맙다.”
“어?”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다고.”
“……너야말로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지?”
“하하하. 이렇게 되면 쌍방 과실이냐?”
“뭐 그렇게 되겠지.”
강소는 소맥을 내가중수법으로 섞으며 물었다.
“그런데, 내가 마수를 잡아서 마정석을 얻어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문제 될 건 없는데.”
유순태는 말을 이었다.
“오히려 잘하는 일이야. 켈피나 부니입에게 잡아먹히는 사람들이 제법 많으니까.”
“그래? 그렇단 말이지.”
* * *
그리고 나흘이 지났다.
그동안 강소는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족족 수생마수들을 처리했다.
[맑은 하늘과 해가 그리운 요즘입니다. 장마는 아직 계속되고 있는데요. 앞으로 사흘 동안 더 이어질 전망입니다. 지역별 강수량을 보시겠…….]TV 속 기상 캐스터의 말에 강소는 하늘을 보았다.
쏴아아아-!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흐음…….”
강소는 요즘 마정석 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지난 나흘간 그가 모은 마정석은 백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인벤토리 안으로 들어갔다. 마정석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제법 귀찮은 일이구나.”
문득 강소는 자신 대신에 인벤토리의 정리와 청소 등을 맡아 줄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소가 정리를 끝내고 인벤토리에서 나왔을 때 짬뽕 냄새가 홀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오늘도 짬뽕이 잘 나가겠네.”
무림에서 온 배달부 9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