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09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09화
* * *
“박 경위…… 우리 경수가…… 경수가 왜…….”
“어머님…….”
“경수…… 내 아들, 내아들…… 경수가 왜 저기에! 크흐흐흐흑!”
서준이 수술 대기실에 도착했을 때에는 박진후처럼 제복 입은 이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사람은 단연 바닥에 주저앉아 세상이 떠나가라 통곡하고 있는 아주머니였다.
아마…… 고경수의 어머니이자 혜진이의 할머니겠지.
“크흐흐흐흑! 걱정 말라며! 걱정 말라고 했잖아! 생일날에…… 생일날에! 흑흑흑!”
사경을 헤매고 있는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어미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만큼이나 가슴을 울리는 일은 없었다.
경찰관들 모두 고개를 떨궜다. 참고 참아 충혈될 만큼 충혈된 그들의 눈시울에서는 기어코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경위님.”
서준은 죄인처럼 구석에 서 있는 박진후에게 다가갔다. 그의 파란 제복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내 잘못입니다. 내가 좀 더 잘 살폈어야 하는데, 그럼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병신같이…….”
박진후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서준은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말은 굳이 이 대기실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대기실을 나온 서준은 사각지대를 찾았다. 그리고 본체를 투명화시켰다.
* * *
“선생님, 환자 BP(혈압) 계속 떨어집니다.”
“선생님, 리블리딩(재출혈)입니다!”
“일단 잡아! 거기 잡으라고! 거즈! 박 선생, BP!”
“BP 80/50!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70/40.”
“응급 수혈팩 RBC(농축적혈구) 세 파인트 올려!”
“아…… 계속 떨어집니다! 40에…….”
“어, 어레스트…… 어레스트입니다!”
“제세동기! 제세동기 가져와! 200줄 차지! 슛! 다시! 200줄 차지! 슛! 250줄 차지! 슛!”
사람들의 발음이 뭉개지고 말소리는 버퍼링이라도 걸린 것처럼 간헐적이더니 이내 그마저도 끊겼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걸 끝으로 이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대신 아득한 터널 저편에서 하얀 빛무리가 보였다. 왠지 내가 가야 할 곳이 바로 저기 같았다.
그걸 인지함과 동시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온 시름들이 한번에 떨쳐지는 듯한 편안함이었다.
편안함을 느끼면서 터널을 통과해 하얀 빛무리 앞에 섰다. 빛무리 앞에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역시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저곳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바로 앞에서 먼저 간 지안이가 반겨 줄 것 같았다.
왔어?
이제는 볼 수 없었던 미소를 보이면서 말이다.
그래…… 그 미소를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 했었지. 이제 볼 수 있는 건가?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자 하얀 빛무리가 몸 전체로 번져 나갔다. 마치 어떤 축복을 받는 기분이었다.
문을 열려는데 문득 누군가 그 어깨를 붙잡았다. 고개를 돌리니 놀랍게도 서준 씨가 있었다.
“서준 씨?”
“미역국은 잘 드셨어요?”
“네, 너무 맛있게 먹었어요. 퇴근하면 또 먹으려고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혜진이가 생일 선물 준비했는데.”
“아?”
그래…… 잊고 있었다.
혜진이가 있었지, 참.
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떤 선물을 준비했다던가요? 왠지 꽃반지 준비했을 것 같은데.”
“아뇨. 더 엄청난 걸 준비했어요.”
“효도 카드인가? 뭐예요?”
“글쎄요. 직접 받아 보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 돌아오세요.”
그 말을 끝으로 고경수의 세상이 암전됐다.
* * *
수술실.
긴박감이 감돌아도 모자랄 수술실은 웬일인지 고요했다.
집도의는 제세동기를 든 채로 석상처럼 굳어 있었고, 이를 보조하던 간호사는 스크럽복에 튄 피를 미처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들이 집도하던 공무원이 운명을 달리했기 때문이었다.
“시발…….”
집도의의 메마른 입술을 비집고 묵직한 욕지거리가 나왔다. 그는 수술대에 양손을 짚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선생님.”
그러다 어시의 맥 빠진 부름에 벽시계를 돌아봤다. 의사로서 이 순간이 가장 고통스럽다.
사망 선고를 내릴 때.
하지만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 역시 의사로서의 책무였으니까.
“고경수 환자, 15시 31분…….”
그때였다.
“어?”
“……?”
“뭐, 뭐지…… 선생님! 환자 바이탈(의식) 돌아왔습니다!”
깜짝 놀란 집도의가 고개를 쳐들고 모니터를 바라봤다. 과연 바이탈 사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이번에는 어시의 입을 비집고 나온 탄성에 가까운 독백이었다. 그에 집도의가 어시를 보며 소리쳤다.
“김 선생, 환자 이대로 죽일 거야!”
“아! 죄송합니다!”
“바스큘라 클램프(수술 집게).”
보조하던 간호사가 수술 도구를 내줬다. 집도의는 도구를 손에 쥔 채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희망이 생겼다. 환자가 죽음 직전에 힘을 낸 것이다. 의사로서 환자가 만든 기회를 이대로 날려 버릴 순 없었다.
놀랍게도 쿵쾅쿵쾅 요동치던 심장이 안정을 되찾았다.
체력 소모에 따라 후들거리던 다리도 멀쩡해졌다. 흐트러진 집중력도 놀라우리만치 되살아났다.
“후.”
여러 의미가 담긴 깊은 한숨과 함께 집도의는 수술을 이어 갔다.
그리고 그 한편.
의료진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림의 사람이 서 있었다.
그가 바로 앞에 서 있음에도 댓 명이 넘는 의료진들은 그의 존재 자체를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서준이었다. 눈을 감은 채 무형의 기운을 내뿜고 있던 서준이 어느 순간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자마자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무형의 기운들이 고경수에게 스며들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집도의가 멈칫거렸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이 환자 혹시 각성자였나?”
“아뇨. 기록지와 혈액검사 결과로는 일반인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방금 라이게이션(혈관 결찰)이 된 것 같았는데 김 선생은 못 봤어?”
“선생님이 손도 안 대셨는데 그럴 리가요.”
“다른 걸 본 건가…….”
* * *
수술실 문이 열리자 초췌한 모습으로 기다리던 이들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어떻게…….”
이정심의 말끝은 자꾸만 흐트러졌다. 무표정한 의사의 얼굴에 아들의 생사를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대신한 건 죄인처럼 두 손을 꼭 모은 채 구석에 앉아 있던 박진후였다.
“……어떻게 됐습니까?”
박진후의 질문에 의사는 대기실에 모인 이들을 쓱 훑어봤다. 모두들 초췌하고 수심에 찬 얼굴들이다.
“수술 도중 어레스트가 왔습니다.”
“어, 어레스트라면…….”
“심정지요.”
“안간힘을 썼습니다만…….”
의사가 말을 끝내지 않았음에도 이정심이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런 이정심을 흘긴 의사가 말했다.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끝을 흐린 의사에 모두가 의사의 입으로 시선을 모았다. 의사는 생사를 확인해 주는 대신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여러분들은 혹시 기적을 믿으십니까?”
“…….”
“숱하게 수술실을 들락날락거렸습니다만 전 믿지 않았습니다. 기적이란 건 염원이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
순간 의사가 방긋 웃었다.
“있더군요. 기적.”
“사, 살았습니까?”
“예. 수술도 잘 끝났습니다.”
도처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안간힘을 써서 버티고 있던 박진후도 그 말에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한테 감사하지 마십시오. 환자분한테 일어난 기적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그럼.”
* * *
눈꺼풀이 무거웠다. 마치 눈꺼풀에 무게 추를 달아 놓은 것 같았다. 천 근 같은 눈꺼풀을 힘겹게 밀어내며 눈을 떴다.
초점이 맞지 않았다. 마치 카메라에 노이즈가 잔뜩 낀 것처럼 흐릿하고 피사체가 겹쳐 보였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이내 수많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경수야!”
“정신 좀 드냐?”
“인마, 뭐라고 말 좀 해 봐!”
“어머니! 여기 경수 일어났어요!”
동료들의 호들갑에 고경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다 문득 검문 도중 발생한 총격 사건이 떠올랐다.
“아! 박 경위님은요?”
“뭐?”
“제가 제대로 대처 못 하는 바람에 용의자가 총을 쏘고 도주했었어요. 박 경위님은…… 경위님은 괜찮은 거 맞죠?”
동료들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사경을 헤매던 놈이 정작 멀쩡한 사람 걱정이라니…….
“죽었으면 어떡하게? 따라가게?”
“……많이 다치셨습니까?”
“옆에 보면 알 거 아냐.”
“옆에요?”
고개를 갸웃거린 고경수가 고개를 돌렸다. 보호자 침상에 박진후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봐, 괜찮잖아. 네 걱정이나 해라. 너 지금 죽다 살아난 거 아냐?”
“제가요?”
“심정지만 몇 번이 왔는데. 집도의 선생님 말로는 수술 도중에 심정지가 와서 사망 선고까지 내리고 있었다더라. 근데 기적적으로 의식 돌아왔고. 너 인마, 무슨 운을 그렇게 타고난 거냐?”
“그나저나 범인은요?”
“이 새끼 봐라. 네 걱정부터 하라니까?”
“어떻게 됐어요, 범인.”
동료가 침음을 흘렸다.
“아직 찾고 있어.”
“인상착의 제가 알아요. 드래…….”
“그건 우리도 알아, 인마. 진후가 얘기 다 했어. 범인 새끼는 우리가 무슨 수를 써서든 잡을 테니까 걱정 마라.”
그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아직 환자분 안정 취하셔야 해요. 다른 분들은 나가 주시겠어요?”
그 말에 동료들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고경수는 마침 생각난 게 있는지 동료 한 명을 불렀다.
“이 팀장님!”
“왜? 뭐 필요한 거라도 있어?”
“혜진이는요?”
“저번에 네가 데리고 갔던 술집 사장님이 맡아 주시고 있어.”
“아, 팀장님.”
“또 왜.”
“혹시 서준 씨도 오셨어요?”
“사장님? 오셨었나? 기억이 안 나네.”
“아까 그분 오셨어요.”
“그랬냐?”
“네. 근데 어느 순간 보니까 사라졌더라고요.”
“그렇다네. 근데 그 사장님은 왜 찾아?”
-그러니까…… 이제 다시 돌아오세요.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던 고경수는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닙니다.”
“싱겁긴, 몸조리 잘하고. 내일 또 올게.”
* * *
서준은 기억을 되감았다. 순간 떠오른 파노라마가 사생적 느낌을 물씬 자아내며 되감아졌다.
서준은 특정 부분에서 기억을 다시 재생시켰다.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전경을 관조하는 것처럼 재생되던 동영상이 일순 고경수의 시점으로 바뀌었다. 범인의 얼굴이 보인다.
하지만 범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경수의 기억을 카피했던 게 아니다.
탕!
“악!”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고경수가 목 언저리를 잡고 나뒹굴었다. 무력한 상태임에도 범인은 고경수의 뒤통수에 정확히 조준한 채 방아쇠를 당겼다.
탕!
다행이었다. 고경수가 범인이 재차 총구를 겨눴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구른 것이다.
“시발!”
범인은 욕지거리를 지껄이며 액셀을 밟았다. 차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앞으로 나아갔고 파노라마는 거기서 끝이 났다.
“고의였군.”
서준이 굳이 고경수의 기억을 되감아 본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범인의 고의성을 파악하기 위해.
그리고 고경수의 기억을 토대로 보자면 범인은 다분히 계획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