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11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11화
* * *
“부탁하지.”
서준은 이 말만 남기고 눈앞에서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혼자 남은 황태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일 수밖에 없었다.
“시발…… 그럼 가게는 어쩌라고.”
아니, 가게도 가게지만…….
“뚜루루두루루, 바닷속! 엄마 상어! 뚜두루루루! 아빠 상어!”
“뚜루루루뚜-!”
“…….”
저 애들은 어쩔 건데?
지금이야 만화에 빠져 있다지만 만화가 끝난다면?
‘천방지축 뛰어다니겠지.’
그러다 넘어져서 생채기라도 난다면?
‘……아공간.’
도저히 사람 몰골이 아니었던 채상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자신은 제2의 채상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안 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괴물의 소굴에서 살아 나가야만 한다.
황태수는 황급히 통화 목록을 뒤졌다. 당연히 연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였다.
-네, 황 사장님.
“이 사장, 혹시 가게는 언제 나오나?”
“왜 그러세요?”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자네 형님이 잠깐 나한테 애들이랑 가게를 맡기고 나갔어. 근데 곧 오픈 시간이잖아. 손님이라도 오면 곤란하기도 하고, 내가 또 애를 키워 본 적이 없어요.”
-아…… 어떡하죠. 저 지금 병원이라 당장은 못 갈 것 같은데.
“병원은 갑자기 왜?”
-아는 분이 총상으로 입원하셨다고 하셔서요. 형한테는 늦는다고 말했는데 형이 깜빡하고 말씀 안 해 주셨나 봐요.
“그럼 나 혼자 어떡해?”
-박연 씨 없어요?
“있는데 드라마 보고 있어.”
박연이 돌부처가 되는 유일한 순간이 바로 드라마를 시청할 때였다. 그리고 지금 박연은 돌부처 상태였다.
-그럼…… 아! 가게 문만 잠가 주시겠어요? 금방 갈게요.
아, 그 방법이 있었구나.
문 잠그고 손님이 들어오는 걸 물리적으로 차단만 하면 되는 거잖아?
하…… 괴물1하고 2 앞에서는 아인슈타인 뺨칠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가더니 왜 이럴 때는 안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니까.
“알았어. 대신 빨리 와야 돼. 나도 바쁜 사람이야.”
-네네. 감사합니다. 금방 갈게요.
황태수는 가게 문을 잠그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딸랑!
들어와 버렸다. 손님이.
하지만 당황하지 말자.
아주 간단하니까.
“지금은 가게 영업 안 합니다.”
“네?”
“사장들이 자리 비워서 지금은 영업 안 한다고.”
네덜란드에 인상파 화가 고흐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그냥 인상파 황태수가 있었다.
그가 인상을 구기자 손님들이 멈칫거렸다. 그에 황태수는 안주머니의 담배를 꺼냈다.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담배를 꺼내면서 그의 허리춤에 있는 권총이 드러났으니까.
“안 나가고 뭣들 해? 영업 안 한다니까.”
“하오만.”
“안 한다니까 자꾸…… 헙!”
“안녕하시오.”
“박 선생님……?”
“왜 그리 놀라시오?”
“드라마 보고 계실 시간 아니십니까?”
순간 박연이 표정을 굳혔다.
“무슨 속보랍시고 나와서 중단됐소.”
“…….”
“손님들이시오?”
“예? 아…… 예.”
“그럼 안으로 뫼셔야지. 자자, 들어들 오시오.”
“그래도 됩니까?”
“물론이지.”
“하지만 저분께선 영업을 안 하신다고…….”
손님이 쭈뼛거리며 황태수를 가리켰다.
“그러셨소?”
“아, 그게…… 서준 씨도 안 계시고 이 사장도 없어서요. 이 사장한테 전화해 보니 가게 문 잠그고 기다려 달라고 하기에…….”
“내가 있잖소.”
일전에 황태수는 신이 있을 것 같냐는 신성현의 질문에 단호히 있다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지금 황태수에게 보이는 신은 불신이었다.
불신을 가득 담은 눈빛을 박연에게 쏘아 보냈다. 하지만 또 다른 신을 믿는 박연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어서 들어들 오시오.”
“감사합니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소?”
“음. 삼겹살도 파네.”
“그러게요. 가격도 저렴한데요?”
“그럼 뭐 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저녁도 해결하는 셈치고 삼겹살에 소주로 할까?”
“그러시죠.”
“삼겹살 2인분하고 소주 한 병 부탁드릴게요.”
“삼겹살 2인분에 소주 한 병. 황 사장님!”
“에?”
“2번 테이블에 소주 한 병이랑 기본 안주 세팅 좀 부탁하오.”
“……박 선생님은 뭐 어쩌시게요?”
“나야 당연히 삼겹살 구워야지.”
“……괜찮으시겠습니까?”
“황 사장, 혹시 이런 말 아시오?”
황태수는 괴물2가 또 어떤 개소리로 자신을 놀라게 할지 지켜보기로 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물론 내가 서당 개는 아니지만 어깨너머로 본 게 있으니 못할 것도 없소.”
“박 선생님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고추장 삼겹살 굽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기 굽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뭘.”
심드렁한 박연의 태도에 황태수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기분을 느꼈다.
저 미친 괴물 놈은 고기 굽는 일을 무슨 물만 부으면 되는 라면인 줄 알고 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못 먹어도 고다!’
황태수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제가 하겠습니다.”
“황 사장님이 말이오?”
“예.”
“괜찮소. 내가 하리다.”
사실 박연은 이날만을 학수고대해 왔었다. 그는 동료 용사들과 여정을 함께할 때 요리 당번이었다.
당연히 요리에 대한 어떤 자부심이 있었다. 지구로 와서는 뽐낼 기회가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바로 그 기회가 왔다.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은데 거기에 더해 황 사장은 묘하게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너는 고기를 굽지 못할 거라는 뉘앙스로…….
연소되지 않는 성질을 가진 가라쿠스탄이란 몬스터조차 신성력을 이용해 불에 태워 버렸던 박연이었다.
이딴 끄렉세그 삼겹살 정도는 눈 감고도 구울 수가 있었다.
……라는 박연의 단호한 의지를 황태수가 모를 리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을 찾아야 돼!
황태수의 두뇌가 비상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이 위기를 타파할 해답이 떠올랐다.
“대신! 제가 나중에 영화 보여 드리겠습니다!”
“영…… 화?”
과연 괴물2는 관심을 보였다.
“예! 영화.”
“음…… 몇 편?”
“한 편?”
기대 어린 표정을 하고 있던 박연은 이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한 편은 너무 적소. 네 편으로 합시다.”
“네, 네 편이요?!”
“그렇소.”
괴물2와 영화를 보는 건 고욕 그 자체였다. 관람 후에는 여운에 젖어 몇 시간 동안 떠들어 대기까지 한다.
그런데 네 편이라니…… 괴물2랑 영화 네 편을 봐야 한다니! 이는 절대적으로 막아야 하는 일!
황태수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을 생각조차 못한 채 입을 열었다.
“그럼 두 편 정도로 합의 보시죠.”
“네 편.”
“박 선생님, 네 편은 너무 많습니다. 두 편으로 하시죠.”
“네 편.”
“하…… 좋습니다, 세 편.”
“네 편.”
“박 선생님. 세 편입니다, 세 편! 이 정도면 진짜 많이 양보한 거예요. 아시잖습니까?”
“네 편.”
“미치겠구먼…….”
답답한 듯 중얼거린 황태수는 생각했다.
사실 그가 주방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 가정을 하나 해 보자.
조수석에 탔다가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가 크게 나서 다쳤다. 이럴 경우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차의 통제권은 자신에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운전을 하다가 부주의로 사고가 크게 나서 다쳤다면?
그나마 덜 억울하다. 내가 통제하다가 사고가 난 일이니까.
황태수는 사고가 날 때 나더라도, 그래서 아공간에 처박힐 때 처박히더라도 자신의 부주의로 처박혔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럼 덜 억울하기라도 할 테니까. 생각이 거기에 미친 황태수가 한숨 섞인 대답을 내놨다.
“하…… 좋습니다, 네 편.”
“오케이! 네 편! 땡큐!”
박연이 흡족한 표정으로 앞치마를 벗고 주방을 나서자 황태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긴장을 풀긴 이르다. 최고의 고추장 삼겹살을 만들어야만 한다.
‘안 타게 잘 굽는 게 관건이다.’
고추장 삼겹살은 생각보다 해 먹기 까다로운 구이 요리다. 양념 때문에 탈 가능성이 높아서 불 조절을 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황태수는 먼저 뒤집개와 기다란 젓가락과 집게를 찾아 세팅했다.
“시발…… 근데 내가 왜 조리 도구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는 거지?”
한숨을 내쉰 황태수는 냉장고에서 소분된 고추장 삼겹살을 꺼냈다. 프라이팬은 천장에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바로 고기를 구울 순 없다.
화구의 화력과 프라이팬의 열전도율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호일은 일종의 보험이다. 고기가 타는 만일의 사태를 막아 줄 테니까.
서랍 속에서 호일을 꺼낸 황태수는 프라이팬에 호일을 감쌌다. 그리고 그 위에는 식용유를 듬뿍 뿌렸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불을 켰다.
타악!
화구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프라이팬을 달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달궈졌다 싶을 즈음.
‘지금이다!’
재빨리 불을 줄였다. 그리고 그 위에 삼겹살을 살포시, 마치 우는 아이를 달래어 요람에 내려놓듯 살포시 내려놓는다.
치이이이익!
순간 매캐한 연기가 치고 올라온다.
‘안 돼!’
황태수는 얼른 불길을 더 줄였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고기를 뒤집었다.
다행히 타진 않았다. 하지만 아직 긴장의 끈을 놓기엔 이르다.
또로로로-
과한 긴장 탓일까?
땀이 방울방울 맺혀 구레나룻을 타고 흘러내린다. 하지만 닦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 순간 황태수는 무아의 경지에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건 오직 프라이팬과 자신뿐.
긴 사투가 이어졌다.
촤아아아악!
화아아악!
타아아악!
타타타탁!
그리고 그 기나긴 사투 끝.
“헉헉헉!”
황태수는 승리할 수 있었다.
마치 100m를 전력 질주한 것처럼 숨이 가빴다. 숨을 고르던 황태수는 삼겹살을 그릇에 담았다.
“생각보다 소질 있어 보이는군.”
“아, 깜짝아!”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황태수는 펄쩍 뛰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괴물1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호일은 고기가 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두른 건가?”
“에? 아, 네네.”
“식용유도 둘렀군.”
“……타면 안 되니까요.”
“으음. 잘된 것 같군.”
“한다고 한 거긴 한데, 하하하하.”
“고마웠다. 덕분에 일은 잘 보고 왔다.”
“일이라면…… 바퀴벌레 말씀이시죠?”
서준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황태수에게는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마른침을 삼킨 황태수가 조심스럽게 앞치마를 벗었다.
조신하게 앞치마를 내려놓은 황태수는 서준의 시선을 피한 채 파슬리 가루로 마무리를 해 줬다.
“다, 다 됐네요. 그럼 사장님, 저는 이제 가 보겠습니다…….”
“오늘 일은 언제고 보답하지.”
“보, 보답이라뇨……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그, 그럼 전 이만…….”
꾸벅!
쏜살같이 사라지는 황태수에 서준은 피식 웃었다.
파슬리 가루가 뿌려진 고추장 삼겹살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제법이네.’
고개를 끄덕인 서준은 잘 플레이팅 된 삼겹살을 들고 주방을 나섰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어? 사장님이신가요?”
“네.”
“들어오시는 거 못 봤는데…… 이상하네.”
“잠깐 저 방에서 자다가 나왔습니다.”
“아…….”
“그럼 맛있게 드세요.”
* * *
“김 선생.”
“예, 과장님.”
“아까 김 선생이 그랬지. 정말로 라이게이션이 되어 있었냐고…….”
“…….”
“사실대로 말하면 믿을 텐가?”
“믿고 말고를 떠나 최소한 과장님이 허튼소리 하실 분이 아니란 건 압니다.”
작게 웃은 박민철이 술을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약간의 텀을 둔 채 말했다.
“라이게이션. 되어 있었어.”
“…….”
“나도 경황이 없어서 처음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했었나 보다 싶었는데…… 수술 끝나고 나니까 이게 영 찝찝한 거야.”
“…….”
“그래서 시설팀 찾아가서 수술실 CCTV 확인을 했지. 근데 내가 한 게 아니더군.”
“그 말씀은…….”
“혈관이 스스로 결착됐다고 봐야지. 이 경우에는 자가 회복이라고 해야 되려나.”
“그게 가능한 겁니까?”
“요지경이 된 세상 아닌가. 또 모르는 일이지.”
이번에는 김우진이 술을 벌컥 들이켰다.
“달리 아는 사람이 또 있습니까?”
“한 사람 더 알게 됐군. 김 선생 자네.”
“…….”
“어떻게 할 건지 묻지 말게. 어떻게 하고 말 것도 없으니까. 게다가 난…….”
피식 웃은 박민철이 술을 벌컥 들이켰다. 벌써 취한 건지 그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과장님. 외람되지만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왜 의사가 됐냐는 식상한 질문만 빼면.”
“…….”
“허허. 너무 식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과장님께 가장 듣고 싶은 대답이었습니다.”
“그거 다 이야기하려면 술 한 병 가지고는 안 될 텐데.”
“저 보기보다 술 셉니다.”
피식 웃은 박민철이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