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71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71화
* * *
서준이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무상 급식이 시행되기 한참 이전이었다.
그때는 급식비라는 걸 매월 납부했다.
수천 년을 마계에서 지내며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지만 그 금액만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51,300원.
물론 서준의 집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된 탓에 급식비를 나라에서 지원을 해 주었다.
그런데 왜일까?
왜 선생님들은 그걸 굳이 반 아이들이 다 알게끔 말씀하셨을까?
그것도 하필 종례 직전에.
“급식비 면제받는 학생들은 여기 이 신청서 부모님께 가져다드려라.”
몇몇 아이들이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수그리고 신청서를 가지러 간다. 서준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하다고 해서 자존심까지 없는 게 아닌데…….
-이럴 필요까지 있었나 싶어서요.
어쩌면 지금 벌인 일들이 황태수가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일지도 몰랐다.
‘아니…… 그게 맞겠군.’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라서.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하고 싶어서.
쓰게 웃은 서준은 액셀을 가볍게 밟았다. 벤틀리가 미끄러지듯 교내를 빠져나갔다.
* * *
“우와! 엄청 높이 떠 있다!”
도윤이가 하늘에 떠 있는 연을 바라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글쎄. 아마 이 실이 다 풀어질 때까진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와…….”
“도윤이가 해 볼래?”
“제가요?”
“응.”
“하지만 저는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무릎을 꿇어 도윤이와 시선을 맞춘 서준이 들고 있던 얼레를 조심히 건넸다.
얼떨결에 얼레를 받아 든 도윤이 상기된 표정으로 하늘에 뜬 연을 바라봤다.
“아까 형이 한 거 봤지?”
“네.”
“천천히 풀어 봐.”
도윤이 얼레에 감긴 실을 조금씩 풀었다. 연은 더 높이 떠올랐다. 그러자 도윤이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와아! 형! 보이죠? 연 엄청 높이 떠 있는 거 보이죠?”
“응. 잘 보여.”
서준은 얼레를 감았다 풀었다 반복하며 연을 갖고 노는 도윤에 환하게 미소 지었다.
* * *
최지후는 교원 경력만 10년이 넘은 베테랑 교사였다. 10년 넘게 분필을 잡았다는 건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는 말이 된다.
이 꼴 저 꼴 다 보게 되니까.
여선생들의 파벌 싸움, 남선생들의 기 싸움, 회식 자리에서의 음담패설, 교원들끼리의 불륜, 학부모와의 밀회…….
이런 일들에 비하면 학기 중에 학급의 담임이 바뀌는 일은 사건 축에도 끼지 못한다.
간혹 있는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웬일인지 이종훈을 마주 보고 있는 최지후의 표정은 잔뜩 긴장된 얼굴이었다.
“최 선생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도윤 학생의 할아버지가 찾아왔다는 말씀은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할아버지의 할 자도 우도윤 학생 앞에서는 꺼내서는 안 돼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십쇼.”
“권 선생 일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이종훈은 침음을 흘렸다. 권현주는 해임됐다. 물론 이번 사건이 해임까지 될 일은 아니었다.
과거와 다르게 체벌은 공인되어 있고, 한 아이를 차별 교육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입증할 수 없었으니까.
문제의 발단은 우습게도 촌지였다. 교육청에서 조사하다가 권현주가 촌지를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불과 몇 달 전 12구역에서 고등학교 교사가 촌지를 받은 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거렸다.
그런데 똑같은 12구역에서 이번에는 초등학교 교사가 촌지를 받았다는 사실이 대서특필된다면?
교육청으로서는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말이 암암리에 행해지는 촌지지, 엄연히 형사처벌감이었다. 어차피 금고형이 떨어지면 권현주는 해임 또는 파면을 금치 못한다.
그러니 교육청으로서는 어차피 징계 처분받고 해임될 교원을 사건이 커지기 전에 쳐 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덕에 3학년 영어와 6학년 영어만 전담하던 최지후가 3학년 2반의 담임이 된 거고.
“흐음…… 아이들이 묻지 않는 이상 굳이 먼저 언급하진 마십시오.”
“물어본다면요?”
“물어본다면…… 우도윤 학생 할아버지와 관련된 사실만 빼고 있는 그대로 말씀하십쇼. 선생으로서 받아서는 안 될 돈을 받아서 처벌을 받게 됐다고.”
“알겠습니다.”
“어차피 겨울방학까지 한 달도 안 남았습니다. 최 선생이 딱 한 달만 고생해 주십시오.”
“예.”
딩! 동! 댕! 동!
마침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라도 된 듯 비장한 표정과 함께 최지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다행히 아이들은 이전 담임에 대해 묻지 않았다.
‘학부형들한테 들었나 보군.’
이미 학부형들에게는 불미스러운 일로 담임이 바뀌었다고 연락이 간 상태였다.
학부형들이 자녀들에게 설명을 한 것 같았다. 최지후로서는 다행이었다.
수업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렇게 4교시가 되었다.
4교시는 국어 시간이었다.
“1단락은 23번이 읽어 볼까? 어디 23번이……!”
최지후는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그는 이미 이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우도윤 학생의 번호를 외워 둔 상태였다.
그런데 앞 전 수업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다 보니 방심을 해 버린 모양이다.
‘도윤이를 호명하다니!’
최지후는 도윤의 할아버지가 교무실에 찾아왔을 때 6학년 영어 수업 중이었다. 그래서 눈으로 보진 못했다.
하지만 동료 교사들에게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권현주의 뺨이 남아나지 않도록 따귀를 걷어 올렸다지?
‘거기다 천하의 황태수한테 잔심부름을 시킬 정도의 사람이면…….’
꿀꺽!
최지후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도윤이가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와서 다른 번호를 부를 순 없어.’
이미 23번이 읽어 보라고 말을 다 해 뒀는데 다른 번호를 부른다면 도윤이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엎질러진 물이다. 주워 담을 순 없겠지만 잘 닦기라도 해야만 한다.
“2, 23번이 도윤이였구나.”
“……네.”
“그래. 도윤이가 한번 읽어 볼까?”
“제, 제목. 소, 소, 소가 된 게으름배, 뱅이. 예, 옛날 옛날…….”
긴장했는지 도윤이는 말을 자꾸 더듬었다. 그러면서도 최지후의 눈치를 살폈다.
마침내 도윤이의 읽기가 끝이 났다.
“잘 읽네, 도윤이.”
“네?”
“잘 읽었어. 다음에는 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읽자. 알겠지?”
“에? 네!”
권현주는 도윤이가 말을 더듬을 때마다 혼을 냈었다. 그래서 도윤은 새로 온 선생님한테도 혼이 날 줄 알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잘 읽었다니…….
칭찬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도윤이의 얼굴에는 화색이 감돌았다.
하지만 칭찬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 모두 수고해 준 도윤이에게 박수.”
터져 나오는 박수 갈채에 도윤이는 수줍은 듯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도 그게 싫지만은 않은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 * *
서준은 멀리서 느껴지는 도윤이의 벅찬 환희감에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혹시 몰라 도윤이에게 권능 중 하나인 낙인(烙印)을 새겨 둔 상태였다.
흔히 낙인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사실 딱히 틀린 이미지는 아니었다.
상대의 영혼에 대한 구속력을 갖고 이를 통해 상대를 권속으로 삼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니까.
하지만 나쁜 목적으로 사용했을 경우에 저런 효과가 발휘된다는 거지, 서준이 도윤이에게 쓴 낙인은 살짝 달랐다.
영혼을 구속하지도 않고 상대가 복종심을 갖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도윤이에게 새긴 낙인을 통해 도윤이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혹시 위험에 처하진 않았는지 등등을 느낄 뿐이었다.
사실 이 낙인은 연준과 서우에게도 새겨진 것이었다. 만일을 위한 일종의 안배랄까?
아무튼 지금 서준이 읽은 도윤이의 감정은 환희감이었다.
‘다행이다.’
자꾸 도윤이를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입해서 생각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도윤이를 볼 때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도윤이가 기쁘면 과거의 어린 나도 기뻐하는 기분이었다.
사실은 자기만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만…….
* * *
늦은 밤.
장사를 끝마친 서준은 연준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홀로 가게에 남았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혼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박연도 곯아떨어져 있으니 혼술을 하기에는 딱 제격이었다.
안주는 아까 밖에서 사 온 광어회.
이제 술만 고르면 된다.
소주를 마실까 소맥을 마실까.
그것도 아니면 맥주만 마실까.
냉장고 앞에서 행복한 고민을 하던 서준의 눈에 청주(淸酒)의 일종인 청화가 들어왔다.
‘나쁘지 않겠군.’
맛도 소주에 비하면 부드럽기에 회와 먹기도 딱일 테고 말이다. 냉장고에서 청화를 꺼낸 서준은 미리 세팅해 둔 테이블에 앉았다.
먼저 두툼하게 썰린 광어회부터 초장에 콕 찍어 입에 넣었다.
‘맛있군.’
탱글탱글한 식감이 특히 일품이었다.
서준이 다음에 집어 든 것은 흔히 엔가와라고도 부르는 광어 지느러미였다.
광어의 별미 중 하나다. 이건 초장 대신 생와사비를 넣어 만든 간장에 살짝만 찍어서 입에 넣는다.
지느러미 살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맛의 향연.
‘이거지.’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진짜 행복은 이게 아니란 말씀.
이제 술도 곁들인다.
탁!
쪼로록!
청화 뚜껑을 딴 뒤 소주잔의 딱 절반만큼만 술을 따랐다. 그리고 단숨에 털어 넣었다.
소주를 먹으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크……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소주와 달리 개운하고 부드러운 맛이 자꾸 손이 가게 했다.
청화 세 잔에 회 한 점.
서준만의 혼술 규칙이었다. 그렇게 술을 즐긴 지 얼마나 됐을까.
딸랑!
풍경 소리와 함께 누가 안으로 들어왔다.
“불이 켜져 있길래 혹시나 하고 들어와 봤는데 혼자서 한잔하고 계셨군요.”
“어르신.”
손님은 다름 아닌 몽골인 헨리였다.
“제가 방해를 한 것 같군요.”
“아닙니다. 방해는요. 근데 경주 여행은 벌써 다 하셨습니까?”
“못 했습니다.”
“예?”
“꼭 가 보고 싶었는데…… 이놈의 타이밍이란 게 뭔지. 갑자기 일이 생겼지 뭡니까. 허허. 그 신라 왕릉이랑 석굴암은 꼭 한번 눈으로 보고 싶었는데…….”
“그럼 다시 몽골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예. 내일 오후 비행기입니다. 내일 아침에 올까 하다가…… 돌아갈 생각을 하니 잠도 안 오고 해서 와 봤습니다. 겸사겸사 사장님이 약속해 주신 그 고추장 삼겹살 레시피나 전수받을까 하고요.”
사실 헨리의 말은 변명에 불과했다.
고추장 삼겹살 레시피?
일반인들 중에서도 미식가인 사람들은 맛 한 번 보고도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파악한다.
하물며 헨리는 오감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초월자였다. 고추장 삼겹살이 익어 가며 대기 중에 퍼지는 냄새만 맡고도 뭐가 들어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레시피를 핑계로 이 가게를 찾은 건…….
‘안정감…… 때문이려나.’
이 가게에만 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지니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서준은 작게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여기 앉으시죠.”
“예? 하지만…….”
“레시피 전수받으셔야죠.”
“……사장님 앞에서는 자꾸 염치가 없어지는 것 같군요.”
헨리가 자리에 앉자 서준은 술잔을 하나 더 내어 왔다.
“회가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없어서 못 먹죠. 근데 이 술은 뭔가요? 처음 보는 술병인데?”
“청주라는 술입니다.”
“청주?”
“예. 뭐…… 정확히 말하면 청주 흉내를 낸 반쪽짜리 청주지만요. 따라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준이 헨리의 술잔에 청화를 따라 주며 지나가는 어조로 물었다.
“한데 같이 오신 일행분도 있으십니까?”
“일행이요? 아뇨. 애당초 한국 여행도 혼자 왔는걸요.”
“그렇군요.”